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18)
117악당의 격동
“그러니 저는 힘으로라도 그대를 얻겠습니다. 설령 평생토록 저를 위해 노래 부르지 않는다 해도, 그대를 저의 새장에 가두고 오직 저를 바라도록 하겠습니다.”
…이 일을 어쩐다.
발코니가 살짝 보이는 복도의 언저리. 그 기둥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골치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왕실 기사들의 시체에 남은 상처와 암살자들의 기묘한 움직임 등을 통해, 그 배후가 성검자 늙은이의 손자인 애송이의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까지는 문제없었다.
일단 사태가 돌아가는 것을 보기 위해,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지켜보기로 한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리고 잘난 황제가 그 요망한 머리로 애송이의 음모를 까발려 줬을 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애송이가 ‘배반의 칼날’을 습득하고 있었을 줄이야….
뜻밖의 사태에 계집애와 녀석이 무력화된 뒤 내 머리는 김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황제가 죽든 말든, 이대로 숨어 있고 싶었지만, 그럴 경우 십중팔구 내가 암살범으로 지목당하게 되리라는 직감이, 나를 번민하게 했다.
애송이가 저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사이.
녀석이 마취에서 풀려나면 좋겠지만, 바들거리는 팔로 검을 드는 동작을 볼 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루기 힘든 소망이었다.
“잠시만 잠들어 계십시오. 그사이 모든 일이 끝날 겁니다.”
젠장. 어쩔 수 없나?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애송이를 보며,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검을 뒤로 한껏 당겼다가 애송이를 향해 있는 힘껏 내던졌다.
채앵!!
후우. 좋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자!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간 검이 애송이의 검에 튕겨 나오는 가운데, 기둥 뒤에서 빠져나온 나는, 천천히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아…!”
그러다 정들겠다, 응?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준 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지막한 탄성을 내지르는 녀석과 뻣뻣하게 굳은 채 안도하는 눈빛의 계집애, 그리고 요염한 미소의 황제를 천천히 둘러보고, 나는 마지막으로 애송이에게 시선을 향했다.
“…당신이었습니까?”
이 새끼. 역시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구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애송이의 눈을 보며,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쩐지 참 운 좋게 무도회장에 잠입할 수 있었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시종으로서 왕궁에 잠입한 것을, 이 애송이 녀석이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처음부터 나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암살자의 누명을 씌워 처리할 속셈이었다면 그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원래 애송이의 계획대로라면, 나는 무도회장에서 《악의 서》를 노리고 우르르 몰려든 암살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난도질되거나, 내부 동조자로 찍혀서 사형을 당했겠지.
끄으응….
“새를 새장에 집어넣는다 하여 너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에반 E. 트레이브.”
내심으로는 침음을 삼키면서도 나는 겉으로는 결코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적을 상대로 약세를 보일 수는 없었을뿐더러, 지금 내 적은 이 애송이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훨씬 두렵고도 교활한 적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설사 저의 것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새는 저를 바라볼 테니까요.”
“새장 안의 새가 바라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새장 밖일 뿐이다.”
“아니오.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소녀를 죽이고, 당신의 심장을 뜯어낸다면 새는 틀림없이 저를 바라볼 겁니다.”
이 새끼, 완전 미친놈일세.
차분한 말투 깊은 곳에 깔린 광기를 느끼고,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숱하게 많은 악당을 봐 온 나로서도, 이 정도로 맛이 간 녀석은 오랜만이었으니까.
끄응, 성검자 그 늙은이는 대체 손자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그러고도 영웅이 되고자 했던가.”
“그렇기에 영웅이 되고자 했던 겁니다. 새장 따윈 없더라도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날개를 얻기 위해서.”
“날개가 있다고 하여 박쥐가 새와 함께할 수 있을 듯싶던가?”
애송이의 말에 나는 내심 코웃음 쳤다. 그저 공을 세우고 명성만 얻으면, 영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어리석음이,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도 녀석에게 집착하는 그 광기 어린 집착이, 내게서 조소를 이끌어 냈다.
“이번 계획만 성공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영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증오가 아닌 사랑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단 말입니다!”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너는 결코 영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송이의 고함을 나는 단호하게 잘라 냈다. 굳이 황동의 왕좌나 악마의 황금률까지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다만 애송이를 똑바로 마주 보며, 나지막이 말을 이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날개가 없다면 날개를 만드는 대신 스스로의 발로 일어나 걷을 수 있나? 얻을 수 없다면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나? 그런데도 다만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나?”
“…….”
이 어리석은 애송이는 모를 것이다. 진정한 영웅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그 어떤 고난조차 이겨 내며, 다만 굳은 신념으로 나아가는 영웅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가련한’ 것인지 말이다.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나?”
“…닥치십시오.”
“배반의 칼날처럼 쓰레기 같은 검술로 적을 쓰러트리고, 이러한 모략 따위로 공을 세운다고 해서, 진정으로 영웅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에반 E. 트레이브?”
“닥치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너는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입 닥쳐!!!”
사나운 고함과 함께 애송이가 던진 예리한 단검을 보면서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계속 몰아붙이다 보면 애송이가 언젠가는 이렇게 폭발하리라는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 그렇기에 그 기습을 차분하게 피해 내며, 달려드는 애송이를 상대한다.
“당신이, 당신 따위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뭘 안다고 그렇게 떠들어 대느냔 말입니다!”
그림자 이동술과 그림자 베기인가? 마치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과 빛조차 베어 버릴 듯한 쾌검술도 나의 평정을 깨트리지는 못했다.
배반의 칼날을 습득한 데다가, ‘데스 쉐도우’의 암살자까지 끌어들인 애송이니, 그림자 베기라도 배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것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설령 짐작하지 못했다 해도 상관없다. 지금의 내게서 평정을 앗아 가는 것은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너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 같은 것은 없다.”
카앙! 암살검인 그림자 베기에 대해 천적과 같은 용병검 전장의 불꽃을 휘둘러, 애송이의 검을 튕겨 내며 나는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네게 전해 줄 말은 있지.”
한 걸음을 내디디며 방패를 밀어붙인다. 충분한 힘을 싣기에는 부족한 거리지만, 힘만 있다고 모든 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능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인간은 아득한 시간에 걸쳐 기술을 개발하고, 도구를 만들어 계승해 온 것이니까. 발을 힘주어 꾹 누르며, 무릎을 단단히 고정하고, 허리를 곧게 펴며, 어깨를 내밀고, 팔을 휘두르듯 밀어낸다.
어느 교본에서나 나오는 기본적인 방패 치기가 어떤 교본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자세로 구현된 순간, 방패를 팽이처럼 빙그르르 회전한다.
그렇게 완벽한 자세에 의해 방패에 집중됐다가 회전력에 발동된 내부의 스프링 장치에 의해 증폭된 힘을 애송이의 가슴팍에 밀어 넣는다!
콰앙!
“커억!”
폭발하듯이 뒤로 날려간 애송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드러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힘을 가한다는 것은 즉 힘을 되받는다는 뜻, 비록 애송이가 받은 것에 비하면 극히 적은 양의 충격이라고는 하지만, 이 골골거리는 몸으로 견뎌 낼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통 따윈 잊는다.
다만 평정의 껍질을 뒤집어쓴 채 그 안에 차 있는 모든 것을 하나둘씩 비워 간다.
“크윽. 이, 이게 대체 무슨…!?”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난 애송이의 사납기 그지없는 눈을 마주 보며, 나는 내심 냉소한다.
저 애송이가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바라보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냉소마저 버리며, 애송이의 움직임에 대비하여 방패를 쥔 손에 불끈 힘을 더한다.
“아니, 그럴 리가… 설마 그럴 리가 없어!”
파바바밧!
예상한 대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단검.
하나만 잘못 막아도 독을 터트리며 상황을 결판낼 수 있는 그 비검의 폭풍이 본능적인 긴장감과 공포심을 느끼게 하지만, 나는 긴장과 공포마저도 던져 버렸다.
바로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하늘도 없고 땅도 없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다.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다. 오로지 허공을 날아오는 단검과 나 자신밖에는 보이지 않는 공허의 영역 속에서 나는 담담히 팔을 움직인다.
카가가강!!
날아오는 단검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맞닿는 순간 방패를 흔들고 비틀고 밀어내어, 독탄이 장치된 단검을 아무 충격도 없이 흩뿌려지게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
그렇게 순백의 세계에 잠겨 있는 동안, 모든 단검을 흘려 낸 나를 향해 애송이는 절규하듯 질문을 던져 온다.
“어떻게… 당신이 ‘철의 영혼’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나조차 배우지 못한 그것을 대체 어떻게?!”
글쎄, 어떻게일까?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친 의문을 다시 묻는다. 다만 투명한 눈으로 애송이를 바라보며 나는 비웃을 마음조차 담기지 않은 무심한 대답을 던진다.
“그 어떠한 비전이라 해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기술. 네가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배우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 그렇다. 어떤 깨달음이 담긴 비전이라도 결국은 기술.
오로지 한평생 악을 추구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신에게 저주받은 악의 성지’. 그곳에서 악마의 축복을 받은 내게 있어 배워서 쓸 수 없는 기술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
특히 ‘철의 영혼’은 내게 악마의 축복조차 필요 없는 기술이었다.
“무아란 자기 자신을 비우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법. 긍지가 있다면 버려라. 집착이 있다면 잊어라. 욕망이 있다면 없애라. 소원이 있다면 포기해라.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을 때, 비워진 자신 안에 철의 영혼은 깃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무아지경의 시작이자 모든 것, 무아지경이란 원래 대단한 재능이나, 순간의 깨달음으로 이뤄지는 경지가 아니다.
그 대장장이 늙은이처럼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의 길만을 추구한 끝에,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마모되어 사라진 패배와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다만 허무한 마음과 공허한 의식만 남은 낙오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밑바닥이 바로 무아지경인 것이다. 그런 특성이 있었기에 나는 그 어떠한 비전보다 쉽게 ‘철의 영혼’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그렇게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어!”
아아, 그래. 너는 이해할 수 없겠지. 사나운 고함과 함께 달려드는 애송이의 검을 쌓여 있는 인형에 눈알을 꿰매듯, 차례차례 방패로 받아 낸다.
과도한 힘이나 화려한 기술은 필요 없다. 오로지 막고, 흘려 내고, 튕겨 내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도록 고안된 도구.
방패의 기능을 이끌어 내는 데에만 집중하며, 다시 공허 속에 잠겨 든다. 이 공허야말로 무아지경의 본질. 사랑에 집착하고, 명예에 집착하고, 긍지에 집착하고, 검술에 집착해 온 애송이 따위는 도달하기는커녕, 훔쳐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허무의 세계.
오직 절망의 끄트머리에 서 본 자, 좌절의 밑바닥에 이른 자, 하여 절망조차 잊고 좌절조차 포기한 자만이 이를 수 있는 무상무념의 영역. 그렇기에 나 또한 진정한 무아에는 이를 수 없었다.
무아지경에서 비롯된 집중력으로 평생 검술 하나 배운 적 없음에도 모든 병기를 극한까지 다룰 수 있는 성검자와 달리 마지막 하나의 집념을 버리지 못했기에 내가 철의 영혼을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패를 들었을 때뿐이며, 그나마도 본래 기능의 반조차 끌어내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을 반대로 말하자면, 나는 적어도 방패술 하나에 대해서는 성검자의 반절씩이나 사용할 수 있다.
즉, 나는 원래 ‘검’보다 ‘방패’를 들었을 때가 더 강하단 뜻이다.
그것은 무력적인 강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남는 능력에 특화돼 있다는 뜻.
하지만 흉내라고 할지라도 이 방패로 철의 영혼을 사용하는 이상, 설령 일류 검사라 할지라도 나를 쉽게 쓰러뜨릴 수는 없다.
더구나 철의 영혼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병장기를 극한으로 쓸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병기를 극한까지 이용한다는 것은 신체 능력은 최소한만을 사용한 채,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
더불어 무의식에 몸을 맡기고 움직이기에 정신적인 피로조차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연이은 백 번의 일기토에서 백전백승을 거두고, 홀로 이틀 동안이나 성문을 막아 낼 수 있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지구력.
그것이야말로 철의 영혼의 힘인 것이다. 최선의 방어는 최고의 공격과 마찬가지며, 아무리 단조롭고 지루한 싸움이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지켜 나갈 수만 있다면 빈틈을 먼저 드러내는 것은 체력을 소모하는 쪽일 수밖에 없다.
“으아아아아!!!”
오랜 격전 끝에 결국 좌우로 그림자 베기와 배반의 칼날을 쏟아 내 오는 애송이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그 공격은 분명 사납고도 강맹하다.
하지만, 결국 그뿐이다.
스스로의 목숨조차 포기한 공격이 무조건 강하다는 것은 풋내기의 착각일 뿐, 살고자 하는 의지조차 갖지 못한 자의 공격은 더욱 큰 빈틈을 만들어 낼 뿐이다.
자신의 모든 기술을 더없이 잘 알고 있는 적을 상대로라면 더더욱 말이다.
“파멸할지언정 포기할 수 없는 집착, 그것이 너의 악이라면….”
카가가가가강!!
오른손으로 펼쳐 내는 것은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화된 용병장 투검자의 비전 ‘전장의 불꽃’.
왼손으로 펼쳐 내는 것은 전장에서 지켜 내기 위해 특화된 움직이는 요새 성검자의 비전 ‘철의 영혼’.
그 하나의 검식과 방패술로 애송이의 모든 공격을 튕겨 내며 일격 필살의 삼대 검류 중에서도 최고의 카운터 검술인 ‘전장의 불꽃’에 따라, 검을 뻗어 낸다.
“너의 악의, 받아 가겠다.”
푸욱!
훤히 드러난 빈틈으로 찔러 넣은 검은 이미 망가진 갑옷의 틈새를 파고들어 그대로 애송이의 몸을 꿰뚫는다. 그렇게 찾아온 정적 속에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지.”
천천히 고개를 드는 애송이의 눈은 공허하여, 끝에 이르고 나서야 악의를 잃었음을 알려 준다.
“너에게 검을 가르쳐 주고, 가짜 《악의 서》를 만들어 낸 자가 누구냐?”
이미 수십 년도 전에 ‘나이트 워커’와 함께 사라진 ‘배반의 칼날’과 ‘데스 쉐도우’의 몰락과 함께 묻힌 ‘그림자 베기’를 알고 있는 자.
그리고 비록 어쭙잖은 가짜일망정 외관만큼은 원본과 거의 똑같은 《악의 서》를 만들어 낸 자를 묻는 나의 질문에 애송이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의 스승은 무서우신 분… 그분의 검은 검으로부터, 부디 그녀를….”
끊길 듯 희미한 음성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돌린 애송이는 녀석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다가 머리를 떨어트렸다.그러한 애송이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내며,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검은 검’이라는 것만으로도 단서는 충분하다. 그런 특이한 검을 사용하는 이들 중에서, 이런 검술을 가르칠 수 있는 자라면 한 명뿐. 설사 그자에게 그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단서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타나길 기다려 왔던, 《악의 서》의 단서가….
큭….
큭큭큭큭.
크하하하하하하하핫――!!!!!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문 채 부들부들 몸을 떤다.
어둠 속 깊은 곳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온 환희가, 희열이, 열망이, 기쁨이 공허하던 마음을 깨뜨리며, 녹슨 심장 속에 수십 년 동안 묻혀 있던 하나의 악의를 일깨운다. 하여 정점에 달한 열망이 밖으로 나오기 전, 격렬하게 타오르던 웃음을 지우고, 싸늘한 눈으로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바라본다.
마침내… 내게 또 한 번의 기회가 돌아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