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22)
121객의 밀담
그그그긍.
그곳은 어둡고도 어두운 지하.
그저 구정물과 쓰레기로만 가득한 하수도였다.
열 명의 암살자들이 왕궁에 침입할 때 사용했던 잠입로였지만, 이제 그곳에서 나오는 것은 한 명뿐이었다.
비척비척 하수도를 걸어 나온 인영의 상태는 사실 엉망이라는 말조차도 부족했다.
발코니에서부터 추락한 충격으로 몸 곳곳이 부서지고 으스러진 상태로, 기다시피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망가진 몸인데도, 암살자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다만 미리 준비돼 있던 은신처를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겨 나갈 뿐이었다.
“큭큭큭, 그 꼴을 보아하니 실패를 해도 정말 제대로 실패했나 보구나.”
“…….”
어둠 속에서 들려온 음성에 우뚝 걸음을 멈춘 암살자는 시선을 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유독 어둠이 깊은 골목 안, 그곳에는 가죽 갑옷을 입은 한 명의 중년인이 무언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래, 10년 만에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은 어떠냐?”
“…….”
암살자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는 암살자의 행동에 흥미를 잃은 것일까?
중년인은 왕궁이 있는 방향을 힐끔 쳐다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멍청한 애송이는 소임을 다했겠지?”
끄덕.
암살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중년인은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이며, 무언가를 던져 주었다.
탁!
“몸을 치료해 둬라. 초대장을 보낸 이상,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 둬야 할 테니.”
“…….”
암살자는 말없이 중년인이 던진 것을 주웠다. 그리고 따끈따끈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그것을,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강인한 턱 힘으로, 으적으적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우둑. 우드득!
암살자가 그것을 한 입씩 먹어 치울 때마다, 그 몸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복되 어갔다.
부러졌던 뼈가 붙고, 찢겼던 살이 아물고, 끊겼던 근육이 이어지며 모든 부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을 때, 암살자는 이미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던 것을 말끔하게 먹어 치운 뒤였다.
“큭큭. 상처가 나았으면 빨리 따라와라, 23호. 복수의 시간이 머지않았다!”
그 기이한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다, 중년인은 옆에 놓아둔 핏빛 검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런 중년인을 따라가던 암살자는 문뜩 그가 앉아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한가득 고여 있는 피 위에 장난감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하나같이 왼쪽 가슴이 파헤쳐져 있는 시체 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암살자는 중년인을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바닥에 고여 있는 피 웅덩이 속에서, 한없이 불길하게 일렁이고 있는 붉은 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