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24)
123마왕의 악몽
“여기 츄리오넬의 명물인 츄리오넬 빈대떡이 있다요!”
“축제 기간 한정 판매품을 팝니다! 헥, 헥, 지금이 아니면 못 사는 한정 판매품입니다! 크헥, 헤엑!”
“자, 자, 자! 마음껏 구경하고 가십시오! 대륙에 단 99명밖에 없는 마법사의 특별 공연이 준비 중입니다!”
…이게 축제라는 건가?
다섯 개의 프라이팬을 돌리며 즉석으로 만든 빈대떡을 팔고 있는, 눈에는 띄지만 빈대떡은 설익었을 듯한 상인과 갖가지 여신상을 곤돌라에 실은 채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내지르며 신상의 무게로 가라앉는 곤돌라에서 물을 퍼내느라 정신없는 장사꾼, 그리고 입에서 불꽃을 뿜으며 열심히 쇼를 홍보하고 있지만 불꽃보다 침을 더 많이 토해 내는 광대까지.
한 명만 있어도 눈에 확 뜨일 듯한 이들이 무려 수십 명 단위로 가득 채우고 있는 거리를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굉장해….
물론 내가 마왕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츄리오넬보다 큰 도시를 점령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츄리오넬에는 단순한 크기를 떠나, 알 수 없는 활기가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물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거리 한가운데로 넓게 흐르는 수로(水路)와 그 위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곤돌라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목을 끄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아리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반쯤 넋을 잃은 채 도시를 바라보던 중, 나는 그 부드러운 음성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
본래는 찬란히 빛나는 금발을 후드로 가린 채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를 빛내는 절세의 미녀, 세레나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조금 지나친 강행군이었으니, 츄리오넬에 머무는 동안 푹 쉬어 두세요.”
“응.”
옛날이었다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약한 모습을 숨기려 했겠지만, 상대가 다름 아닌 세레나였기에, 나는 굳이 그런 오기를 부리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내게는 세레나의 배려를 거절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에 휘말려 루반 공국의 수도인 루바젤을 떠나온 이후, 우리는 말을 타고 쉴 틈 없이 강행군을 해 왔다.
그나마도 오랜 전쟁 경험을 통해 기마술에 숙달된 나이기에 버텼던 것이지. 만약 평범한 소녀였다면….
아니, 설령 건장한 장정이라도 기마술이 미숙했다면 진즉에 쓰러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강행군을 겪고도 흔들림 없이 곤돌라 앞에 서 있는 그와 여유롭게 뒤에 앉아 있는 세레나의 모습은 솔직히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여튼 둘 다 괴물이라니까….
나의 시선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일까, 세레나는 후드 밑으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신관이 걱정되시는 건가요?”
신관이라고?
그 느닷없는 말에 의아해하길 잠시, 나는 곧 그 의미를 깨달았다.
축제란 본래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인간이 신에 바치는 제사 의식에서 비롯된 것.
그렇기에 축제 기간에 신관을 초청해 신의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관례였다.
이런 바보….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알고 주의해야 함에도 정작 축제를 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세레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눈치를 채다니.
나는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신관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츄리오넬에는 원래 신전이 없을뿐더러, 축제를 열 때도 신관을 초청하지 않는 게 보통이니까요.”
“왜?”
“츄리온 상인들이 관리하는 도시니까요.”
“…과연.”
세레나의 간단명료한 대답을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무욕을 중시하는 신관이라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를까, 행사에 초청하려면 기부금을 내야만 한다.
달마다 한 번씩 축제를 여는 츄리오넬에서 매번 신관을 초청하면 큰 지출이 되는 것이다.
하긴, 츄리온 상인들이 그런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할 리가 없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던 나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풍덩!
…무슨 소리지?
무언가가 물에 빠지는 듯한 소리에 무심코 주변을 둘러본 나는 의아해했다.
수로 밖을 걸어가던 사람들부터 다른 곤돌라에 타고 있는 사람들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왜 저런 눈으로 우릴 보는 거지? 세레나의 후드가 벗겨졌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세레나는 여전히 후드를 눌러쓴 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앞을 보고 있을 뿐….
새하얗게 질린 얼굴?
그제야 세레나의 얼굴이 창백한 데다가 그 입술마저 파리하게 질린 것을 깨닫고 나는 당황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항상 침착하던 세레나가 이런 표정을 짓다니.
그 자체가, 보통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왜? 대체 뭐 놀랄 게 있다고? 앞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그제야 깨달은 한 가지 사실에 나는 피가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고,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이 곤돌라에 있는 것은 사공과 나와 세레나뿐, 마땅히 있어야 할 그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방이 물로 가득한 수로 한가운데에서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추측해 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코드!”
첨벙!!
그것은 누가 먼저였을까.
내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물속을 내다보기 위해 고개를 내민 것과 나를 스쳐 지나간 세레나가 물에 뛰어들기까지, 모든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이뤄진 일이었다.
왜?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나는 물속을 바라보며 손등을 꽈악 깨물었다.
실수 따위는 모르는 그가 왜 물에 빠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대로 그도 세레나도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촤악 하고 곤돌라 옆에서 물이 솟구치며 한 팔에 코드를 끌어안은 세레나가 수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악!
“하아, 하아…. 아리스!”
“응!”
이런저런 짐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식을 완전 잃고 있기 때문일까.
묵직하기 그지없는 그의 몸을 사공의 도움을 받아 겨우 끌어올린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출 듯한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추운 겨울날 물에 빠진 탓인지 그의 몸은 온기 한 점 없이 차가웠다.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따로 놓여 있었다.
숨을, 쉬지 않아…?!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며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손을 꽉 움켜쥐고 의식을 지켰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도….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으니까.
정신을 차린 나는 즉시 그의 코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아주 찰나간의 망설임 끝에 그와 입술을 맞대고 전력으로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사실상 인공호흡을 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그나마도 루바젤에서 약술사 일을 할 때 간단하게 방법을 들어 둔 것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인공호흡은 무척 어색했지만, 그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인공호흡을 이어 나갔다.
“아리스, 이제 제가 할게요.”
어느새 곤돌라로 다시 올라온 것일까,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던 만큼, 그 못지않게 창백하게 질려 있는 데다가, 아직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세레나의 모습은 결코 멀쩡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의술을 아는 그녀의 도움이 절실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자리를 교대했다. 그리고 세레나가 그와 입술을 맞추는 모습을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커헉…! 쿨럭, 쿨럭!”
아…!
세레나가 인공호흡을 시작하고 조금 뒤, 거센 기침과 함께 물을 토해 내며 다시 호흡하기 시작한 그의 모습에 나는 무너지려던 하늘이 다시 재생되는 것을 본 것처럼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을 세레나와 공유할 수는 없었다.
“사공! 이 근처에 신전… 아니, 신관이 있는 곳이 있습니까?”
“예? 그, 글쎄요. 약술사라면 몰라도 신관님은 잘….”
“그럼 당장 약술사가 있는 곳으로 가 주십시오!”
“아, 예.”
세레나…?
아직까지도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얼굴로 곤돌라에 있던 모포로 그를 감싸며 사공을 재촉하는 세레나의 모습에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물론 그가 의식을 잃고 있는 상태인 만큼, 약술사에게 보이는 게 좋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에 빠진 뒤의 조치 정도라면, 세레나라도 충분히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다급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약술사를 찾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창백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 세레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리스. 그분이 의식을 차리지 못하시는 이유는 물에 빠지셨기 때문이 아니에요.”
뭐?
그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순간 의아함과 당황함을 느꼈다.
그만큼 세레나의 말은 뜻밖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말에 느낀 당혹감에 비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의식을 잃으셨기 때문에 물에 빠지신 거예요.”
아주 작고도 사소한 차이.
하지만 그 차이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순간 나는 세레나와 마찬가지로, 싸악 핏기가 빠져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