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35)
134영웅의 축제(2)
디딩, 디리링―.
그 소리는 그렇게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요하고도 잔잔하게,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평온하게 스치듯 귓가를 지나 바람에 녹아드는 소리였고, 그렇기에 행인도 힐끔 시선을 향하기만 할 뿐, 누구 하나 걸음을 멈추면서까지 일부러 그의 연주를 들으려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비록 걸음을 멈추는 행인은 없을지언정, 주변을 지나가던 귀 있는 이들 중 잠시나마 그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은 행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일류라기에는 부족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을 만한 가치는 느껴지지 않는 연주.
하지만 아주 잠시, 찰나 동안만이라면 기분 좋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소리. 비록 뛰어난 실력은 없을지언정 부족한 재능을 끝없이 갈고닦아, 일류 못지않도록 부드럽게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한 능숙함이 그 신비한 소리에는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의 옆에서 싱긋 웃으며 연주를 듣고 있던 여우 같은 계집애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라―라라, 라라라라.”
……!
여우 계집애의 입이 열리며 여리고도 가느다란 목소리가 그의 연주 소리를 타고 울려 퍼진 순간, 주변의 모든 시간이 얼어붙듯 모든 것이 정지해 버렸다.
손님을 끌던 호객꾼들은 입을 다물었고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돈을 잊었으며, 구경꾼들은 축제 대신 소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것은 심지어 나조차 예외가 아니라 순간적으로나마 내가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잊어버린 채, 소녀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음성의 고저나 청명함과는 상관없었다. 그저 더없이 고결하고도, 신성하며, 부드러워 마음에 직접 와닿는 듯한 그 노랫소리가 주변의 모든 인간들에게, 넋을 잃고 소녀를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이건… 성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순간, 나는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암흑 교단의 성가를 부르는 대담무쌍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없이 고고하고도 엄숙해야 할 성가를 이토록 친근하게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던 것이다.
이것이, ‘암흑의 의지를 대신하는 자’…라는 건가?
크리스의 말을 듣고 확인까지 했으면서도 반신반의하던 그 사실을 나는 이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성가를 부를 수 있는 소녀가 암흑 교단의 사제장이 아닐 리가 없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내게 그 사실을 믿도록 했다.
그만큼 여우 계집애의 노랫소리는 전율적이라 듣는 이로 하여금 숨소리조차 삼키게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욱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는 한 줄기 울림이 있었다.
그의 연주가 땀을 식혀 주는 산들바람이라면 소녀의 노래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자체였고, 그의 연주가 길을 인도해 주는 별빛이라면 소녀의 노래는 드넓게 펼쳐진 밤하늘이었고, 그의 연주가 길가에 난 한 줄기 잡초라면 소녀의 노래는 수많은 초목의 숲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차이가 있는데도 그의 연주와 소녀의 노래는 신비할 정도로 잘 어울리며, 보다 아름답고 평안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의 연주는 그저 평범하고 잔잔할망정, 흔들림 없는 능숙함으로 소리를 인도했고, 소녀의 노래는 고결하고도 아름다울망정 연주를 잡아먹지 않고, 부드럽게 그 위를 걸어갈 뿐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소리의 무도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확연하게 느껴지도록 완벽하게 화음을 맞추고 있는 둘의 공연은 나의 마음을 묵직하게 가라앉혔다.
저 자리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리고 설령 내가 있다고 해도 이런 공연을 해내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이 내게 자그마한 여자아이에게 질투심을 넘어 패배감까지 느끼게 하고 있었다.
…설마, 세레나도 아닌 저런 꼬맹이에게 이런 기분이 들게 될 줄이야. 마치 기습을 당한 느낌에 갑갑해하던 나는 입술을 꽈악 깨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흥. 아무리 그래도, 설마 저런 꼬맹이에게 내가 질 것 같아?
나는 81주문의 마왕.
신화시대 이래 최강의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마도로의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내가 저런 꼬맹이에게 질 리가 없다.
응. 그렇고말고.
게다가 가슴도 내가… 조, 조금은 더 큰걸.
내가 여우 같은 계집애의 가슴을 힐끔 흘겨보며 각오를 다지는 사이 다리 위의 공연은 마침내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공연을 불편하게 지켜보던 나조차도 그 화음이 끝났다는 사실에는 일말의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고, 넋을 놓고 소녀를 바라보던 구경꾼들은 아예 연주가 끝난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듯, 아직 입을 쩌억 벌린 채 멍하니 제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짝. 짝, 짝짝짝짝짝짝―!
“와아아아!”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누군가 손뼉을 치는 것을 시작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온 박수 소리와 환성을 들으며 나는 탐탁지 않은 기분으로나마 손뼉을 쳤다. 저 여우 계집애의 노래에 앞서 그의 연주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 노래에는 분명 박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한 줄기 고함이 관중 속에서 터져 나왔다.
“스… 스승니이이이이이임―!”
…뭐?
고함과 함께 관중 속에서 뛰어나온 어째 익숙해 보이는 소년이 다다다닥 그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나는 망연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 느닷없는 사태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슬쩍 옆으로 한 걸음을 물러날 뿐이었고, 그래서 바보 인간은 텅 빈 허공을 끌어안게 되었다.
촤아아아악!
…죽었을까?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허공을 날아 안면부터 철퍼덕 나자빠진 바보 인간의 모습에 무심코 그런 생각을 떠올렸던 만큼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그 인간을 보고, 입을 따악 벌릴 수밖에 없었다.
“우우… 너무해요, 스승님. 오랜만인데 안아 주지도 않으시고.”
…저 인간, 대체 몸뚱이가 뭐로 돼 있는 거야? 상처는커녕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얼굴로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바보 인간을 보며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는 별다른 놀람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익숙하다는 듯한 초연한 태도로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입을 열 뿐이었다.
“크리스. 여자애가 그렇게 함부로 뛰어다니는 게 아니다.”
……?
……!
뭐어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