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48)
146영웅의 분전
검사에게 있어서 검이란 목숨과도 같다. 그렇기에 자부심 있는 검사에게 검을 손에서 놓는 것은 금기 중 금기.
비도술을 사용한 야검자가 검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개 도적으로 불린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그 불문율을 깨트린 한 명의 검사가 있었다.
검을, 방패를, 창을, 투구를, 갑옷을, 화살을 손에 쥐는 모든 것을 흉기로 삼아 휘두르고, 내던지고, 쏘아 내며 핏빛 폭풍으로 전장을 휩쓸던 자. 심마지경의 광기에서 비롯된 잔악한 손속과 온갖 만행으로 대륙의 공적으로 인정받은 자.
전쟁터를 전전하며 살육을 일으키는 그자를 처리하기 위해, 일천의 정예 용병이 움직였을 때, 세인들은 안도했고. 십수 년의 은거를 깨고 나타난, 투검자의 후예가 그자에게 결투를 신청했을 때, 검사들은 환호했다.
일격 필살의 삼대 검류 중 하나이자 최고의 용병검인 ‘전장의 불꽃’이라면 그자의 무도한 검을 꺾어 낼 수 있으리라고 모두가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일인 전승으로 전장의 불꽃을 계승해 왔던 투검자의 후예는 그자에 의해 쓰러졌으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된 검사들은 한탄하면서도, 일천의 정예 용병에게 희망을 걸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적을 베었다는 쌍검자조차 혼자서는 300의 병사를 상대하는 게 한계였다.
하물며 1 대 1000이라는 승부라고조차 할 수 없는 싸움의 결과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승부의 결과는, 검사만이 아니라 세상을 침묵하게 했다.
하나하나가 일류, 못해도 이류의 실력을 지니고 있던 용병 천 명의 시체로 뒤덮인 전장, 단 여섯 명의 생존자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죽어 버린 핏빛 대지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세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미치고 잔악한 공적이었을지언정, 그자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최강의 검사였다는 사실을.
그 때문에 지상 최강의 인간이라는 칭호와 함께 ‘광검자’라는 별호를 붙였던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그분과 적검자의 대화에 나는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암흑성의 총사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만큼 갑갑하기는 해도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분이 40년 전 광검자와 결투를 벌인 바로 그 투검자의 후예였다는 사실은, 그리고 광풍의 혈전 끝에 끝내 광검자를 쓰러트린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던 만큼, 더욱더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하나 진정 놀랄 만한 그리고 내게 숨을 멎게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오직 광풍만이 너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자만. 그것이 너의 악이라면… 보여 주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의 악의를 받아 낼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광풍을…!”
오싹!
적검자를 향하는 그분의 시선을, 그 깊고도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옷 안에서 폭발적으로 부푼 근육이,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고 섬뜩한 시선이, 무엇보다 평소의 무뚝뚝함 대신 사나운 광기로 폭발하듯 일렁이는 기백이 나의 몸을 얼음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차갑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그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웅!
오른손이 휘둘러졌다 싶은 순간, 그분의 손에 들려 있던 둥근 방패가 주변을 포위한 용병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방패는 결코 빠르거나 위협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없이 느리게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갈 뿐이었고.
그렇기에 용병들 또한 그것을 피하지 않고 조소와 함께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단 한 명,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버럭 고함을 내지르는 인물이 있었다.
“멍청한! 막지 말고 피햇!”
비명과도 같은 적검자의 외침에 흠칫한 용병은 그제야 몸을 피하려 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방패가 용병의 검에 부딪힌 순간이었다.
깡!
방패는 의외로 가볍게 튕겨 나왔다. 오히려 쳐 낸 용병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만큼.
하지만 적검자는 그 모습을 보며 으득 이빨을 깨물었고 나 또한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용병의 검과 충돌한 순간, 그 방패가 본래의 두 배의 속도로 다른 용병에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너무나 갑작스러운 공격에 두 번째 용병은 당황하며 방패를 쳐 냈고, 거기에서 더욱 속력이 배가된 방패는 마침내 세 번째 용병의 몸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우두둑!
“커억!”
방패는 단지 빨라지기만 한 것만이 아니었다.
속도 못지않은 힘이 실린 방패에 직격당해 뼈가 부러진 용병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 반동으로 다시 튀어나온 방패를 향해 그분은 또 하나의 방패를 던져 냈다.
카앙!
그리하여 서로를 향해 날아든 두 방패가, 허공에서 맞부딪친 순간, 미친 폭풍이, 이 지상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