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53)
151검자의 상념
항구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츄리오넬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가는 하나의 쾌속선.
그 갑판 뒤에는, 한 사내가 턱을 괴고 앉아 밤하늘 아래에서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츄리오넬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로군.”
사내는 한 줄기 나지막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싸구려 술 데모니레인을 잔에 따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세계를 정복했던 암흑성의 총사라면 틀림없는 이류 중에서도 이류. 아무리 미숙하다고 할지라도 삼류 악당인 ‘전쟁의 전도사’를 당해 낼 수는 없었을 텐데….”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홀로 말을 이어 가던 사내는 문뜩 뒤를 향해 살짝 시선을 돌렸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
사내의 나지막한 물음에도 뒤에 서 있던 복면의 여인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 묵묵부답에도 사내는 애초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망조차 않고 태연하게 술잔을 들어 올렸다.
“하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전쟁의 전도사’를 꺾은 이상 그자가 숙련된 삼류 악당이라는 건 분명하니까.”
그것은 이미 대화라기보다는 혼잣말. 그러나 사내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혼자만의 대화를 이어 갔고, 복면의 여인 또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망정 사내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10년 전 그녀가 실어증에 걸린 그날부터 그들의 대화는 침묵 속에서만 이뤄졌으니까.
“그리고 그자의 정체가 암흑성의 총사가 아닌 그 무엇이 됐든, 여기서 포기했을 거라면 애초부터 신전의 추격조차 각오하면서까지 ‘로드 오브 킹덤’의 폐허에서 열쇠를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 터. 결국 우리의 승부는 모든 것이 시작했던 장소에서 다시 이루어지게 되겠지.”
혼잣말과 함께 가볍게 술을 한 모음 삼키고 사내는 갑판의 정중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이 향하는 것은 눈처럼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한 명의 소녀.
기묘한 문자가 새겨진 아홉 겹의 사슬에 의해 갑판 한중간에 철저하게 포박된 채 창백한 얼굴로 의식을 잃고 있는 은빛 장발의 소녀는 너무나 가녀리게 보였지만,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동자에 동정심 같은 것은 단 한 점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게 소녀를 바라보기를 잠시,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반쯤 뽑아 들고 칠흑과도 같은 검신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과연 이류 악당인 나와 삼류 악당인 그. 우리 둘 중에 과연 최후의 장을 완성하는 것은 누구일까?”
그 목소리는 공허하게 허공에 울려 퍼졌지만 사내는 상관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칠흑의 검을 검집에 꽂아 넣고 품에서 하나의 책을 꺼내 들었을 뿐.
온통 검은 표지에 피처럼 붉은 문자가 새겨진, 불길하고도 사악한 기운이 한가득 꿈틀거리고 있는 《악의 서》를 바라보며 사내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부터 축제를 시작해 보자. 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지을, 우리 악당들만의 축제를.”
수십 년에 걸쳐 암흑성의 13사도의 유산과 《악의 서》를 모아 온 자,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 힘을 바탕으로 13명의 전도사를 거느리고 거대한 비밀 조직을 만들어 온 자.
칠흑의 검주라 불리는 사내, 마검자의 뒤에서 복면의 여인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