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62)
160사제의 전투(1)
“아아. 소첩도 참으로 운이 없나이다.”
달려드는 잡졸들의 모습에 절로 터져 나오는 것은 한탄. 갑작스럽게 솟아난 벽 때문에 그와 떨어지게 된 것도 부족해 우글우글한 적병에 둘러싸인 내 기분은 최악에 가까웠다.
우드득!
그 불쾌한 기분을 풀고자 평소보다 조금 과도한 손속으로 잡졸의 목을 2바퀴 반쯤 돌려 주자, 겁먹고 주춤하는 적병들을 보고 나는 조소를 머금었다.
재미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물론 이런 것들이라도 일단 살아 있는 만큼 뼈를 분지르고 피를 뒤집어쓰면 짜릿한 쾌감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음식으로 치자면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 무미건조한 건량을 씹는 것과 같았고, 성교로 치면 절정도 느끼지 못할 만큼 서툰 수컷을 상대하는 것처럼 지루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를 찾기 위한 걸음을 재촉했다.
이것들이 맛없는 건량이라면 그는 가장 질기지만 맛 좋은 야생의 소고기였다. 설사 직접 손을 쓰지 않고 단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겁고도 짜릿한 상대였으니까.
“죽이기도 귀찮으니, 그냥 알아서 물러나면 안 되겠나이까?”
“이, 이년이 감히…!”
무엇이 그리도 화나는지 성난 조루처럼 살기를 머금고 화살을 쏘고 달려드는 적졸들을 보면서도 나는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고작 이런 잡졸들 따위에게 쓰러질 정도로 내 힘은 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게는, 사제 전사로서 신에게 받은 권능이 있었다.
“여신의 가호가 나와 함께할지니, 어둠은 나의 평안이고 밤은 나의 안식이리라.”
내 미간을 향해 날아들던 화살이 갑자기 몰아친 질풍에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고, 내 목을 노리고 휘둘러진 검이 다른 검에 튕겨 나가 스스로의 주인을 찌르고, 나를 향해 우르르 달려오던 적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며 동료의 목을 분지른다.
내게 중력을 조절할 권능은 없다.
물체의 마찰을 통제할 권능도 없다. 경도 제어로 몸을 무쇠처럼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여신께 받은 것은, 틀림없는 최고의 권능이었다.
신들이 다스리는 모든 법칙 중에서도 가장 이단적인 법칙.
‘행운 제어’.
여신께서 주신 이 힘이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불운을 타고난 나라도 세상의 누구보다 많은 행운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이런 괴물 같은…!”
내 손바닥에 가슴을 후려 맞고 모든 내장이 터지고 조각조각 찢겨 나가 오공에서 피를 쏟아 내며 쓰러진 이를 보고 죽음의 공포를 되살린 것일까. 잡졸들은 더 섣불리 달려드는 대신,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아. 참으로 재미없나이다.
그저 이대로 손 몇 번만 놀리면 겁먹은 잡졸들은 단숨에 도망치겠지만, 쓸데없이 손을 쓸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그 모습을 방관하던 나는, 문뜩 묘한 것을 느끼고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크, 크어억!”
“끄으윽.”
얼굴이 새까맣게 물드는 것으로 시작하여 목이 졸리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픽픽 쓰러지는 잡졸들을 보면서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묘한 향기가 느껴질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주변에 있던 잡졸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 무렵, 한 줄기 음성이 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콜록콜록,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철판에 못을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음성을 따라,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피고름투성이 얼굴을 붕대로 감고 있는, 당장 관 뚜껑을 덮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노인을 보며 차갑게 웃어 보였다.
“‘죽은 자의 유혹’, 맞나이까?”
“콜록! 사라진 지 수십 년이나 지난 이 독을 알아보다니. 그대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해야겠군, 야월관 크레니아.”
“당신과 같은 분께 그런 평가를 듣다니, 소첩으로서도 참으로 영광이나이다.”
“호오, 내가 누군지 아는가?”
“‘죽은 자의 유혹’은 ‘커스 블러드’에서도 삼약사만이 사용할 수 있던 오대 절독 중 하나이니 말이나이다. 독약사 베이트?”
‘커스 블러드’의 수장 밑으로 최고 간부의 직위를 차지하고 있던 독약사, 의약사, 병약사. 그중에서도 가장 독술에 능했던 독약사는 기침과 함께 실소를 토했다.
“콜록콜록! 그래, 카츠이타로는 동부인이었고, 알자드는 남부인이었으니 남는 건 나뿐이라 이건가? 합리적이로군. 클클클클.”
실없이 웃어 보이는 독약사를 보며 나는 마주 미소 지었다.
비록 그에 비교할 정도는 안 되더라도 다른 잡졸들에 비하면 죽일 가치가 있는 상대가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분이 상쾌했으니까.
“하지만 이해할 수 없군. 이해할 수 없어.”
“무엇이 말이나이까?”
“그대는 대체 왜 그자를 돕는가, 야월관이여?”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치켜뜨는 내게, 독약사는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소첩이 본교의 수석 사제님을 돕는 게 무엇이 이상하나이까?”
“콜록콜록! 그래, 암흑 교단은 13사도 중 유일하게 총사를 배반하지 않았던 조직이지. 하지만 돕지는 않았을지언정 방관했던 프리 나이츠마저 철저하게 파멸시켰던 그자가 과연 암흑 교단이라고 해서 가만히 둘 것 같은가?”
아아, 그래. 그렇다.
천 년 전 신전과 함께 여신이 사라지며 방치된 암흑 교단은 타락해 있었다.
북방의 문화에 교단 특유의 교리가 뒤섞여 간음과 혼음이 일상적인 것은 물론이었고,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으니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여신께서는 많은 노력과 심려를 기울였고, 나 또한 많은 교도들의 피를 손에 묻혔지만, 암흑 교단을 정화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암흑 교단 또한, 결국 그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른 조직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교단에서도 뇌물을 받아들이고 내분을 조장하여 폭발시켰으니까.
암흑 교단이 아직 남아있는 이유는 하나,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타락한 사제들을 숙청하는 데 이용했기 때문일 뿐, 절대 그가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자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다면 버리는 게 좋네. 그를 믿었다가 찾아올 것은 오직 파멸뿐이니까. 그자가 변이한 전염병 때문에 몰살당해야 했던 ‘커스 블러드’처럼!”
피고름으로 얼룩진 반쪽 얼굴을 부여잡고 독약사는 절규를 토해 냈다.
변이된 전염병에 걸린 덕분에 가장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커스 블러드’.
그 유일한 생존자인 마지막 약술사의 절망은, 분노는, 증오는 그토록 깊고도 처절했다.
“우리 ‘커스 블러드’는 어째서 몰살당해야 했단 말인가? 우리 중에는 세계 정복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이들도 많았다. 그저 인간의 생로병사를 연구하고 약으로써 다스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았을 뿐인 이들도 있었거늘! 그자에게 인간의 마음이 있다면 절대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독약사의 말을 인정했다.
‘커스 블러드’가 존재할 당시 대륙의 약술은 극도로 발달해서 신화시대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고, 그렇게 발달한 약술이 있었기에, 병마에서 목숨을 구한 이들 또한 숱하게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이나이까?”
“…뭐라?”
“‘커스 블러드’가 몰살되는데,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나이까?”
“우리가… 우리가 몰살되는 데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고? 지금 뚫린 입이라고 내 앞에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그렇다면 묻겠나이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증오를 담아 고함을 지르는 독약사를 보며, 나는 차가운 조소를 머금었다.
“그대는 어째서 ‘검의 사도’를 독살했나이까?”
비록 대다수의 힘을 잃어버렸다고는 하나, 현세에 마지막 남은 여신의 힘은 절대 무력한 것만이 아니었다.
특히 여신의 지혜는 깊디깊어 암흑 교단을 복원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암암리에 13사도의 잔존자를 주목해 왔고, 그렇기에 ‘검의 사도’였던 세나드 R. 라바일이 독살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을 통틀어 검의 사도를 독살할 수 있을 약술사는 한 명, 오직 내 눈앞에 있는 독약사뿐이었다.
독약사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숨길 생각조차 없다는 듯, 유리가 으스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나드, 그래. 그는 대단한 이였지. 벌써 20여 년 전에 우리 ‘어둠의 군세’의 존재를 눈치챘으니까. 하지만 그는 단지 눈치채는 단계에서 머물지 않고 황제에게 우리의 존재를 밀고하려 했다. 그건 배신이었어!”
아아, 인간의 어리석음이여.
‘암흑성’을 배반한 사도의 후예이면서도 다른 배반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기와 독선.
너무나 악과 가깝지만, 절대 악이라는 할 수 없는 독약사를 보며, 나는 슬슬 지루함을 느꼈다.
“같잖은 변명은 그만두시지 않겠나이까.”
“콜록콜록, 뭐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은 어째서 다른 조직에, 그에 대한 존재를 밝히지 않았던 것이나이까?”
“……!”
순간 입을 다무는 독약사를 향해 나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어둠의 군세’가 이미 수십 년도 전부터 그에 대한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암흑성의 다른 사도들에게 알려 대비하게 하지 않은 이유는 뻔하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악의 서》의 파편을, 그리고 사도들의 조직을 흡수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커스 블러드’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는 소첩도 잘 알고 있나이다. 전염병을 연구한다는 빌미로 산촌의 주민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도, 인체 실험조차 불사하던 것도 변명하시겠나이까?”
“그것은 약술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고귀한 희생이었다.”
“당신의 욕심을 그렇게 포장하시는 것 아니나이까.”
“콜록콜록…! 내, 욕심이라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데 거창한 이유 따위는 필요 없나이다. 그저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나이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족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동물, 그렇기에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데 다른 이유란 필요 없다.
오직 순수한 살의, 그것만이 살인에 필요한 이유의 전부니까.
“무엇보다, 악당 따위가 대의 같은 걸 들먹이지 말란 말이나이다.”
“네년…!”
분노한 독약사가 고함과 함께 손을 뻗은 순간,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든 검푸른 독바늘을 가볍게 그것을 잡아챘다.
하지만 바늘에 찔리지 않았음에도 손을 타고 올라온 저릿한 감각은 나를 비틀거리다가, 벽에 부딪히게 했다.
“어리석은 년. 네가 아무리 사제 전사라고 해도 내 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싶으냐?”
독약사의 비웃음 속에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근육이 뒤틀리고 혈관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신을 아우르는 가운데, 정신만은 더더욱 선명하게 통증을 받아들인다.
그 깊고도 잔혹한 통증 속에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둠의 가호가 나와 함께할지니, 밤의 어둠 속에 나 여신의 축복을 얻으리라.”
“콜록콜록, 소용없다. ‘미친 용의 슬픔’은 내가 ‘미친 용의 눈물’을 개량해 만들어 낸 최고의 극독. 한 번 중독된 이상 누구도 살아날 수 없다.”
기도문을 외워 성력을 일으키는 내게 독약사는 가차 없는 조소를 던졌다.
본래 성력에 내성을 가진 ‘커스 블러드’의 독.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독약사 자신이 직접 사용한 것이니, 그만한 자신감을 가질 만도 했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감이야말로, 독약사의 실수였다.
파앗!
“뭣? 어떻게…!”
튕겨 나듯이 몸을 일으킨 즉시 나는 독약사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가 채 독을 사용하기도 전에 단숨에 그 목줄기를 틀어쥐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독약사를 보며 나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아실 필요 없나이다.”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과 함께, 목이 꺾인 독약사의 시체를 뒤로 집어 던지고 나는 흐트러진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확실히, 독약사의 독은 지독해서 신관 전사라도 버텨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제 전사인 동시에 사제장이자 ‘데몬 소울’이 만들어 낸 최고 최악의 실패작인, ‘마인’에게까지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최강의 병사를 만들려던 ‘데몬 소울’, 그들은 무수한 실패작을 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마족 외에도 성공작에 가까운 실패작도 있었으니, 그것이 ‘불사의 심장’을 통해 무한한 생명력과 재생력을 얻은 식인귀와 ‘저주받은 영혼’을 통해 강인한 육체와 강력한 내성을 얻은 마인이었다. 그들의 힘은 실로 막강해 단순한 성능만 놓고 본다면 마족 못지않았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결국 실패작이 된 이유는 그 흉성을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부상을 회복할 마력을 얻기 위해 심장을 먹어야 하는 식인귀는 그 감미로운 마력에 취해 마약에 중독된 듯 심장을 탐했기에 도저히 병사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인의 경우, 청각 상실 등 오감의 이상과 같은 인체 개조로 인한 부작용 외에도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단 하나의 실험체가 나머지 마인을 모조리 참살해 버린 것이다.
영웅&마왕&악당 [7권]
지은이 무영자
발행일 2020년 5월 29일
펴낸곳 (주)코핀 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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