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73)
171LOSS ENDING: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실패한다
후, 하여튼 재앙 덩어리 계집애 같으니.
품에 안긴 계집애를 보며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9번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마도술식. 그것을 8개나 남용해 버린 나로서는 그야말로 속이 쓰리다 못해 환장할 일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당장 살아남긴 했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자아,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계집애에게, 일단 급한 대로 흑룡 휘장을 둘러 주고, 나는 힐끔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난리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은 채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악의 서》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50년 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는 《악의 서》를 보며, 나는 흉소를 머금었다.
《악의 서》를 마침내 되찾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50년 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열쇠마저 이 손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내게 희열을 느끼게 했다. 그 희열 속에 내가 《악의 서》를 움켜쥔 순간, 등을 스친 것은 한 줄기 오싹한 한기.
한평생을 걸쳐 그야말로 숱하게 경험해 본, 하지만 어느 때보다 깊고도 섬뜩한 그 감각에 나는 반사적으로 계집애를 밀쳐 내며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너무나 빠르고 은밀한 기습에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푸욱!
뜨거운 통증과 함께 가슴을 관통한 칼날.
그것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린 나는 슬픔과 분노와 증오와 원망을 담고 있는 검푸른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왜… 나는 구원받을 수 없는 거지…? 왜, 어째서…!”
아아, 그런가.
증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서글프고, 원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련한 스스로의 악에 허덕이는 다른 삼류 악당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은 악으로 가득한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의 악의… 받아 가라.”
촤아악!
그리고 그 순간.
심장에 꽂혀 있던 칼날이 빠져나가며 분수처럼 흩뿌려진 피가, 허공을 붉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