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74)
172BLACK ENDING: 우리는 언제나 구원을 갈구한다
어렸을 때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사창가 뒷골목에 버려져 운이 좋게 어떤 창녀에게 주워 길러졌고,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살던 도중, 나를 덮치려던 취객을 찔러 죽이고 도망친 것이,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살인범으로 쫓겨 도망 다니던 내게 있어 훈련생을 구하던 ‘데스 쉐도우’에 거둬진 것은 둘도 없는 행운이었다. 비록 훈련이 힘들기는 했지만, 끼니마다 음식 쓰레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받고 있는 훈련이 살인 기술이며, 암살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살인에 대한 거리낌 때문만이 아니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했다. 차라리 다시 쓰레기를 주워 먹고,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며 살게 되더라도 사창가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데스 쉐도우’에 발을 들인 내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보다 노력했다.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고, 교관들이 가르치는 것을 필사적으로 배웠다. 그래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5교관을 좋아했다.
5교관은 언제나 냉정하고 무뚝뚝했지만 절대 할 수 없는 일은 시키지 않았고, 배울 수 없는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단지 ‘생존 훈련’을 넘어 암살자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으니까.
그 가르침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나는 5훈련관에 배치됐을 때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다.
비록 배치되자마자 5교관에게 질책을 당하고, 과도한 훈련으로 쓰러질 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쁨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정작 나를 신경 쓰게 한 것은 5교관의 냉혹함이나 과도한 훈련이 아니라, 나와 같은 훈련생인 7호였다.
7호는 신기한 존재였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에 더불어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그 성품마저도 빼어났기에 7호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우리 모두가 우러러보는 상대였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7호가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 비밀을 눈치챈 것은 아마 같은 여자인 나뿐이었을 것이다. 5훈련관에 있던 여자 훈련생은 오직 나와 7호뿐이었으니까.
그리고 7호는 내가 여자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워낙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나는 여자답지 않게 비쩍 말라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비관하지 않았다. 내게 7호는 질투의 대상이 아닌,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그 안에는 차후에 정식 암살자가 된다면 여성인 내가 7호와 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그리고 7호와 함께 암살행을 나서면 내가 죽을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얄팍한 계산도 없지 않아 있었다.
설령 그런 계산이 없다고 해도, 나는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7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고, 그녀를 동경하며 뒤에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나의 동경은 너무나 간단히 깨어져 버렸다. 7호가 3교관을 베고 탈출한 뒤부터 모든 것은 엉망으로 무너져 버렸다. 5교관은 우리를 두고 7호를 쫓아갔고, 4교관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1교관과 2교관마저 다른 암살자들을 모두 데리고 7호를 추적해 간 덕분에 상관들을 모두 잃어버린 우리는 그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망설임 끝에 7호를 쫓아갔다. 그녀를 추적하거나, 도우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녀를 쫓아가고 싶었고, 그래서 그녀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7호의 도중을 쫓던 중, 5교관이 1교관과 검을 나누다, 상처 입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5교관은 내게 있어 단순한 교관이 아니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죽지 않을 듯한,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을 듯한, 부모와 같고, 스승과 같으며, 혹은 그 이상의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던 7호가 손에 넣을 수 없는 태양이라면, 은은하게나마 어두운 나의 삶을 비춰 주는 달과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살아남는 법을 잘 알던 5교관이 7호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유를 절대 알 수 없었다.
그 혼란 속에 1교관을 따라 움직이던 끝에, 나는 마침내 7호를 발견했다. 대체 7호의 무엇이 5교관에게 스스로를 희생하게 했는지, 앞으로 7호는 과연 어떻게 될지를 어둠 속에서 몰래 지켜보던 끝에 나는, 보고야 말았다.
데스 쉐도우 최고의 검사이던 1교관을 일검에 베어 넘기고, 100명에 달하는 데스 쉐도우의 정예를 홀로 참살해 버린 미친 괴물을. 수풀 속에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새어 나온 오줌이 바지를 흠뻑 적시며, 덜덜 떨리는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발밑에 노란 웅덩이를 만들어 낼 때까지도, 그리고 7호가 내가 숨어 있던 수풀을 스쳐 지나 어둠 저편으로 사라진 뒤에도, 나는 얼어붙은 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이는 순간 7호가 다시 돌아와 내 목을 베어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살고 싶었다. 다만 살고 싶었고, 그저 살고 싶었다.
그렇기에 비명과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 듯한 입을 억지로 틀어막았고, 숨소리를 내면 그 괴물에게 잡아먹힐 듯싶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수풀 속에서 덜덜 떠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해가 떴다가 저물고, 이슬이 옷자락을 적시고, 석양이 하늘을 스쳐 지나 또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도,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목이 마르다 못해 찢어지는 듯싶었지만, 두 눈에 새겨진 괴물에 대한 공포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살고 싶은가?”
그 갑작스러운 음성에 나는 발작하듯 몸을 튕겨 올려 달아났다.
아니,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뻣뻣해진 몸은 간단히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가 지려 놓은 오줌 한가운데 엉덩방아를 찧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던 내게, 그는 나지막이 말해 왔다.
“다만 살기를 바라느냐?”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무엇 하나 마시지 못한 덕분에 바짝 메말랐기 때문이 아니라, 말문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린 공포가 내게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기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향해, 4교관은 조용히 손을 뻗어 냈다.
“그렇다면 나의 손을 잡아라. 네가 나의 전도사가 된다면 네게 생명을 주마. 불로불사의 무한한 생명을…!”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메마른 갈증이었고, 끝없는 두려움이었다.
그것이 돌이키지 못할 선택이 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언제 다시 되돌아와 나를 죽일지 모르는 7호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크게 내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나는 무서웠다.
나는 두려웠다.
나는 살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하여 세상에 천검자 세레나 R. 라바일이란 영웅이 탄생한 날, 나는 ‘어둠의 군세’의 ‘죽음의 전도사’가 되었다.
** *
그 이후의 10년은 어둡고도 암울하기 그지없는 나날이었다.
4교관은 붕괴한 데스 쉐도우에서 남은 훈련생들을 긁어모아 내게 떠맡겼고, 나는 필사적으로 훈련생을 훈련시키며 나 스스로도 단련을 거듭했다.
때로는 내 자리를 노린 훈련생의 칼날이 목을 파고들었고, 때로는 독을 먹고 피를 토했지만 4교관에게 받은 불사의 심장이 있었기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암습한 훈련생의 심장을 베어 먹었다.
역겹다기보단 오히려 향기롭고 황홀한, 그렇기에 더욱 치가 떨리는 감각 속에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심장을 삼켰다.
언젠가, 4교관의 뜻이 이뤄지면 이런 날이 끝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지만 구원은 찾아오지 않았다.
폭발음을 듣고 달려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4교관의 시체가 나를 절망에 몰아넣었고, 공동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5교관이 모습이 나를 좌절케 했으며, 그의 품속에 안겨 있는 마왕의 모습이 나를 허무케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검은 이미 5교관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왜… 나는 구원받을 수 없는 거지…? 왜, 어째서…!”
7호는 영웅으로서 구원받았다.
마왕조차도 그 믿음을 보상받았다.
하지만 나는? 나는 왜 구원받을 수 없는 거지? 왜 당신은 날 구해 주지 않은 거지? 왜 나를 악으로서 살아가게 버려둔 거지?
“나의 악의… 받아 가라.”
그런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5교관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굳어 버렸다.
…나는 그저 그녀를 동경했고, 그를 존경했다. 그녀를 닮길 원했고, 그에게 배우길 원했다. 심장을 파먹고 사람을 죽이며 살아가기 싫었다. 누군가 나를 구원해 주기를 바랐을 뿐이고, 그저 그렇게, 아무리 추악하게라도 살고 싶었다.
내가 바란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촤아악!
심장을 파고든 칼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뒤를 돌려, 너무나 슬픈 푸른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아아, 그래.
이제야… 나를 구원해 주는구나.
10년 전 내가 받았어야 할 구원 속에, 이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행복 속에 나는 입을 열었다.
기억해 줘. 너만은 기억해 줘…. 내 이름을… 23호도, 죽음의 전도사도 아닌…. 나의 이름은….
그 작은 속삭임을 남긴 채, 나는 조용히 꿈속에 잠겨 들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꿈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