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75)
173EVIL ENDING: 우리는 스스로의 악을 추구한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간발의 차이로 급소를 피하신 덕분일까. 안색이 약간 창백해지기는 했지만, 가슴이 꿰뚫린 것치고는 양호한 그분의 상태를 확인한 후,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23호의 시체를 바라보며 가슴이 아릿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녀에게 ‘홍염의 칼날’을 쓰고도 일격 필살을 이루지 못했던, 아니 않았던 이유를 깨달은 것은 그녀의 한 어린 외침을 들은 뒤, 애절하게 구원을 갈망하던 23호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뒤의 일이었다.
만약에 조부님께서 내게 ‘프리 나이츠’를 물려주셨다면, ‘데스 쉐도우’에서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바로 내가 되었고, 내가 되어야 했을 모습. 스스로의 업을 짊어진 채 누구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홀로 허덕이다가 절망에 잠겨 악이 되어야 했을,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리고 자책감 때문에. 나는 홍염의 칼날을 펼치고도 그녀를 죽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분에게 달려든 순간, 나의 몸은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그녀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 있었다.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이 나라 할지라도, 내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녀가 그분을 죽이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쿠구궁.
“움직이셔야 할 듯싶습니다.”
“그래.”
저 위에서 들려오는 붕괴음 속에, 나와 아리스는 그분을 부축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홀을 벗어나기 전, 나는 제단 위에 눕혀 놓은 23호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당신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그분을 살리기 위해 당신을 죽인 저의 죄를 인정할지언정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악을 품고,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죽음을 맞이하고도 어째서인지 너무나 평안하고도, 행복하여 마치 구원받은 것처럼 흐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시체를 뒤로하고, 나의 죄악을 버려둔 채 그렇게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