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76)
174DARK ENDING: 우리는 예정된 어둠에 도달한다
성의 붕괴에 휩쓸릴까 봐 어둠의 군세 또한 다 도망쳤기 때문인지,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상대는 없었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드, 정신 차려!”
“쿨럭쿨럭!”
비록 심장을 피했다고는 하지만 그분의 상태는 절대 멀쩡하지 않았다. 이미 큰 부상을 입고 있던 그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치명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 또한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지라, 우리의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느리게나마 위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우리는, 그러나 도중에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
이미 지반까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일까. 커다란 바위와 함께 무너진 토사로 인해 계단이 막힌 모습을 본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에게 이걸 치울 여유는 없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즉시 위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로 인해, 지하 전체가 붕괴할지도 몰랐다
“…가까운 곳에 다른 출구가 있다.”
“어디입니까?”
“조금 전 들어온 통로에서, 옆으로… 쿨럭, 들어가면 된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분의 인도를 따랐다. 어둠의 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훤히 알고 있는 그분의 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거미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벽 앞으로 우리를 인도한 뒤, 그분은 벽에 새겨져 있던 거미 다리 중 하나를 살짝 건드리셨다.
쿠구구궁.
비밀 통로…!
설마 이런 곳에까지 있었을 줄이야. 벽이 위로 올라가며 나타난 공간을 보고, 나는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작동한다는 것만 해도 이 기관 장치가 얼마나 튼튼하고도 정교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성 바깥으로 이어져 있는 탈출 통로다. 두께 3m의 철문에 막혀 있는 데다 안쪽에서밖에 열 수 없어서 잠입에는 사용할 수 없었지… 쿨럭쿨럭!”
그분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성이 무너지는 와중에 이 통로라고 멀쩡하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막힌 계단을 파헤치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가능성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내가 망설임 없이 통로 안으로 걸음을 들여놓은 순간, 한 줄기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수고했다.”
탁!
무슨…?
부축받고 계시던 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강한 힘에 나는 아리스와 함께 그대로 앞으로 떠밀려 버렸다.
바닥에 넘어진 충격에 뇌진탕을 일으킨 듯 아리스가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는 가운데, 이 영문 모를 사태에 당혹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본 나는 얼어붙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쿠르릉거리는 소음과 함께 어느새 반 가까이 내려와 있는 육중한 철문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너머에서 거미 문양을 손으로 짚고 선 채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빛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 그분의 모습이 나를 굳어지게 하고 있었다.
“왜? 어째서…!”
“아무리 사냥을 잘하는 매도 잡아먹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 싸늘한 음성을 들은 나는 눈을 부릅떴다.
믿고 싶지 않았다. 절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그리고 언제나 무표정하던 얼굴에 맺힌 비틀린 미소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철문이 땅에 떨어진 순간, 내 마음은 산산이 깨져 나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