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2)
2삼류 악당의 고행(1)
세상은 언제나 평화롭다.
하지만 그 속에도 싸우는 이들은 있다.
원대한 꿈을 좇는 그들은, 오랜 세월의 준비를 거쳐 나라마저 흔들 힘을 얻는다.
그런데도 그들이 승리한 전례는 드물다.
그들에게는 엄청난 적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적수에게 특별한 세력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신의 축복과 무한한 정의감만이 있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수들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 넓은 인맥을 이루며 항상 기적적인 승리를 거둬냈다.
그렇게 승리하는 적수를, 세인들은 영웅이라 칭하며 부귀공명을 선사한다.
반대로 패자들은, 악의 조직이라 부르며 비웃을 뿐이다.
이것은 그런 악의 조직인 ‘데스 쉐도우’.
그 조직에 맞선 영웅의 이야기는 아니다.
‘데스 쉐도우’의 수장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케인 S. 로나드.
‘데스 쉐도우’의 말단 교관직을 맡고 있는, 한 삼류 악당이었다.
* * *
자, 곰곰이 생각해 보자.
까마득하게 어릴 때 오지로 끌려온다.
그리고 죽도록 칼질을 해 대며 자란다.
당연히 보상 따위는 없다.
단지 조직의 칼로서 부려질 뿐.
그렇게 암살 조직의 칼로 활동하다 보면, 십 년 안에 태반은 시체가 되는 거다.
참 불쌍한 인생 아닌가? 쯧쯧쯧.
하지만 숙련된 악당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법.
괜한 동정심으로 감봉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날이 번쩍거리는 진검을 주저 없이 휘둘렀다.
카강!
“악!”
검을 놓친 훈련생이 비명을 내지른다.
슬슬 뱃살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40대의 나이지만, 옛날엔 좀 날리던 나다.
그런 내 검을 겨우 10대 중반의 꼬마가 받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당연한 결과라도 곱게 넘어갈 수는 없다.
“멍청한 놈.”
나도 오싹할 만큼 싸늘한 목소리.
꼬마만이 아니라, 훈련생 전원이 흠칫 몸을 굳힌다.
숙련된 악당은 철저하게 체면 관리를 해야 하는 법.
목소리 하나로 이만큼 위압감을 줄 수 있다면, 겨우 몇 날 며칠 동안 정성껏 목청을 가다듬는 준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흐흐흐.
물론 목청만이 아니다.
날카로운 눈매와 싸늘한 눈빛.
거기에 절도 있고 냉혹한 태도까지.
모든 게 합쳐져야만, 귀신같은 교관으로 그 체면을 세울 수 있다.
“네 실수가 뭔지 말해 봐라.”
“…검을 놓친 것, 그리고… 비,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꼬마는 덜덜 떨면서 대답을 내놓았다.
참 기본적인 대답이다.
하지만 여기는 악의 조직 ‘데스 쉐도우’.
그리고 나는 말단 관리직일망정 교관이다.
그 어떤 명답을 내놔도,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이 얼간이보다 제대로 된 놈은 없나?”
차가운 눈으로 훈련생을 돌아보자, 녀석들은 어마뜨거라 하며 시선을 피했다.
기본 훈련을 마쳤어도 결국 애송이.
내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까마귀 떼에 까마귀만 있으리란 법은 없다.
백조나 백학까지는 아니라도, 까치 한두 마리 정도는 기대해 볼 만하지.
“검을 휘두른 것. 그리고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 이 녀석처럼 말이야.
다른 훈련생보다 유독 왜소한 체격.
그런데도 꿋꿋이 나를 마주 보는 7호의 대답에, 나는 싸늘한 눈빛을 더욱 굳혔다.
“이유는?”
“필살의 자신이 없으면 검을 뽑지 말아야 하고, 목이 붙어 있다면 끝까지 목숨을 노려야 합니다.”
으음, 명답이로군.
수장이라도 이 이상의 대답은 못 하겠지.
하지만 여기서 순순히 물러나면 내 체면이 개떡이 된다.
훈련생에게 얕보일 수야 없지.
“아주 바보는 아니군. 하지만 틀렸다.”
7호가 미간을 꿈틀거린 순간.
나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까 훈련생의 것보다 훨씬 느린 검.
하지만 7호 녀석은 깔보지 않고, 곧장 검을 뽑아 들어 마주 휘둘러 온다.
다른 훈련생들도 시선을 집중했다.
그래, 제 놈들도 눈깔이 있다면 나와 7호가, 각각 아까 전의 얼간이와 나를 흉내 내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겠지.
하지만 결과까지 같다고 생각한다면 멍청이다.
끼긱!
검과 검 사이의 미세한 부딪침.
그 끝에 남은 것은 훈련생들의 부릅뜬 눈동자와 7호의 목에 닿아 있는 검극.
그리고 7호의 검에 살짝 베어진 내 어깨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핏방울이었다.
크으윽… 아, 아파 뒈지겠다! 젠장할!
아파서 당장 나뒹굴고 싶다!
하지만 그런 체통 없는 모습을 보여 줬다가는, 지금까지 한 모든 게 헛고생이 될 터.
눈물을 집어삼킨 나는 애써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나?”
“……?”
훈련생들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교관인 내가 훈련생보다 강한 건 당연한 일.
그런데도 왜 내가 부상을 입었는지, 이해가 안 가겠지.
하지만 다른 바보들과는 달리, 7호는 뭔가 깨달은 듯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설명해 봐라. 만약 못 하겠다면….”
나는 무의식적인 것처럼 목소리를 차갑게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통구이 해 먹을 닭을 떠올리며 은은한 살기를 피워 올리자, 7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살을 주고, 뼈를 깎기 위해….”
“틀렸다.”
나는 검에 살짝 힘을 더했다.
칼날이 목을 파고들며, 뚝뚝 흘러나오는 피를 본 훈련생들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정작 7호는 한결 침착해진 태도를 보였다.
이 녀석이라면 곧 해답을 깨달을 것이다.
내 그 꼴을 볼 수야 없지.
“너희들이 배운 ‘그림자 베기’는 일격 필살에서는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검술이다. 그렇기에 이격 따윈 필요도 없을뿐더러, 할 수도 없지.”
급격히 흔들리는 눈동자.
벌써 깨달았나? 조금만 늦었어도 선수를 뺏길 뻔했네.
젠장, 훈련생 따위를 상대로 이게 무슨 생고생이람.
내가 내심 욕지거리를 내뱉을 때.
7호는 침착하게 내 말을 받았다.
“오직 일격뿐… 이격도, 방어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뭔가 깨달은 듯.
훈련생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창백해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흩뿌리며, 나는 7호의 말을 끝맺었다.
“그래, 그림자 베기에서 한 번의 실패는 곧 죽음. 그렇기에 필살의 자신이 없어서는 펼쳐서는 안 되고, 필살에 실패했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다.”
검술은 30%를 공격, 70%를 수비에 두는 것을 가장 안정적이라고 한다.
칼질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하지만 그림자 베기는 다르다.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해 창안된 이 필살 검은 아예 수비식 자체를 배우지 않는다.
그런 그림자 베기로 방어를 하려 했으니.
아까 얼간이 녀석의 검이 튕겨 나간 게 당연하지.
반면 이 녀석은 끝까지 방어를 안 했다.
꽤 훌륭한 대처였지만, 그렇다고 내 어깨에 칼침까지 놓은 녀석을 칭찬해 줄 수는 없는 노릇!
“바보보단 좀 낫군. 하지만… 마지막에 검을 튼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인다.
내가 눈치 못 챘을 거라 생각했나?
흥, 건방진 녀석 같으니.
물론 마지막에 검을 틀지 않았다면 더 큰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지만, 그걸 못 피할 내가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그림자 베기는 필살 검. 아무리 연습이라도, 실패를 자처하는 멍청이는 필요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
마음에 새기는 정도로 내 어깨의 한이 풀릴 것 같으냐?
아예 몸으로 뼛속까지 새기게 해 주마!
“지금부터 훈련장 20바퀴 주행 후, 그림자 베기를 1식부터 18식까지 각각 100회씩 실시한다. 다 끝마치기 전까지는 휴식 따윈 꿈도 꾸지 마라.”
나는 최대한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한걸음 나와 있는 두 훈련생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23호. 7호. 너희들은 10바퀴, 50회씩 추가다. 못 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예!”
내 예상대로, 그들은 대답을 주저하지 않았다.
차이라면 23호는 내 살기에 겁먹어서, 7호는 자존심을 불태우며 답했다는 것.
오냐, 어디 한번 불태워 봐라.
그만큼 내가 손봐 주기는 쉬워지니까 말이지. 흐흐흐.
검은 복면로 차가운 얼굴을.
그리고 그 뒤로 음험한 미소를 감춘 나는 우르르 훈련장을 주파하는 훈련생들을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만 철저하게 굴려 주면 된다.
그럼 감히 나한테 대드는 놈은 없겠지.
저 7호 녀석은 조금 더 깝죽댈지도 모르겠지만.
끄응, 근데 이거 어깨가 갈수록 쓰리다.
그냥 치료실에 다녀올까?
하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칼침까지 맞아 가면서 체면을 세운 보람이 없다.
원래 부상을 입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빌어먹을! 7호 저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람.
훈련이고 뭐고 당장 때려치워?
갈등하던 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조금만 참자.
여기서 내가 손을 떼면 저 불쌍한 것들을 누가 손봐 주겠어?
성인군자의 마음으로 넘어가는 거다.
단, 이렇게 했는데도 성과가 안 나오면?
그래서 특별 수당을 못 받으면….
네놈들, 죽었다고 미리 복창해 두는 게 좋을 거다. 빠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