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23)
22용병의 욕심
“크… 크헉….”
피비린내 섞인 숨을 몰아쉬며.
체라스는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난데없는 바람에 날개가 꺾여 추락한 뒤.
계속 숲속을 헤맨 탓에, 그 몸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강렬한 집착과 하나의 끔찍한 공포가 체라스를 강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그, 마력은… 설마….”
그의 날개는 악마의 힘이 깃든 마법.
아무리 거세 질풍 속에서라도 부러질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바람에 섞여 있던, 작은 편린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한 그 섬뜩한 기운이 체라스를 두렵게 했다.
아흔아홉 마법사는 물론, 아홉 마술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엄청난 마력.
게다가 바람을 다루는 마법사라면…!
“그렇다면… 그, 계집이….”
체라스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프리 나이츠의 수장이 왜 이곳에 있는지.
그가 왜 드라고니아의 보물을 무시했던 것인지도.
그리고 자신이 살아난 것이 기적이나 마찬가지라는 것도.
“… 큭… 큭큭큭.”
그것을 깨달은 순간.
체라스의 마음을 채운 공포가 사라지며,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전율.
그런 상대로부터, 그는 살아남았다.
드라고니아의 보물에 대한 단서마저 손에 넣은 채!
아니, 드라고니아도 필요 없다.
그 계집에 대한 정보만 해도 충분하다.
로드 오브 킹덤이 세계의 반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
‘지상 최강의 마력’에 대한 정보라면, 그 어디에든지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놈들! 두고 보자. 날 살려 보낸 것을 후회하게…!”
체라스는 문뜩 말을 멈췄다.
갑자기 머리를 덮치는 현기증과 코로부터 흘러내리는 뜨거운 무언가가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뭐?”
그것을 닦아 낸 체라스는 눈을 크게 떴다.
코에서 홍수처럼 흐르는 새까만 피.
피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향긋한 냄새.
결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증상이 그를 경악하게 하고 있었다.
“이건, 설마….”
그는 다급히 왼손을 들어 보았다.
어느새 파랗게 물든 자신의 손끝.
그것을 확인한 페라스는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오색 악마의 유희?!”
오색무늬 버섯으로 만들 수 있는 극독.
몸이 오색으로 바뀌는 것으로 유명했던, 수십 년 전 ‘커스 블러드’가 멸망했을 때 함께 사라진 극독의 증상이 어째서 자신의 몸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경악하며 허공을 바라보길 잠시.
체라스는 문뜩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늘을 날아 도망치는 자신을, 이미 죽은 시체를 보는 것처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사내의 시선이.
“아, 안 돼!”
체라스는 떨리는 손으로 품을 뒤졌다.
그리고 가루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고, 미친 듯이 숲을 뛰어갔다.
오색 악마의 유희는 효과가 느리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해독도 힘들다.
아니, ‘커스 블러드’가 사라진 이상 아예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날 방법은 단 하나.
어떻게든 해독약을 받아 내는 것뿐.
그러나 그런 체라스의 달음박질은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짙은 어둠이 깔린 숲속.
그 한복판에서 달빛을 받아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보이는 회색 망토의 인영이, 체라스를 얼어붙게 했다.
“아… 아아….”
체라스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로드 오브 킹덤이 무너진 뒤에도 거침없이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던 자신을 비롯한 100명의 용병.
그들 대부분을 전멸시킴으로써, 자신을 이런 땅끝까지 도망치게 한 회색 망토의 인영을 보며.
체라스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고작 아이 몇 명을 팔아 치웠을 뿐이다.
그 정도로 이자가 움직일 줄도, 자신의 마법이 그토록 무용할지도, 100명의 용병이 금방 전멸하리란 것도, 이자가 여기까지 좇아올 거라는 것도.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이 끔찍한 현실에 절망하며 체라스는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S. R. 라바일―!!”
촤악―!
그 사나운 외침은 스쳐 지나간 검광 속에 묻힌다.
서서히 쓰러지는 용병 마법사의 시체를 앞에 둔 채, 회색 망토의 인형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당신의 죄, 죽음으로 갚으십시오.”
노예로 팔린 아이들을 구해 내기 위해 단신으로 하나의 무력대를 박살 내고, 대륙 끝까지 쫓아와, 그 대장의 숨통을 끊어 버린 인영.
10년 전부터 명성을 떨친 영웅.
세상에서 손꼽히는 검사 중 일인 ‘하늘의 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길고도 오랜 추적의 종착지가 될 장소.
드넓은 대륙에서도 가장 외진 곳 중 하나.
이 세계의 서쪽 끝에 있는 마을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