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87)
86마왕의 각오
쿠구궁―!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암석 속에서 세레나는 나를 끌어안고 빛살처럼 몸을 날렸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하늘과 땅이 거침없이 뒤흔들린다.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에 속이 뒤집어지며, 토악감이 배 속을 채워 든다. 하지만 나는 혼란스러운 속을 억지로 누르며, 두 팔로 세레나를 끌어안아 몸을 고정했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 섣불리 움직일 경우 위험만 초래할 뿐임을, 경험상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난 뒤, 사방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호흡을 정리하고, 세레나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괜찮나요?”
“…응.”
기껏 씻은 몸이 흙먼지로 더러워진 데다가,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뒤집힐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무사했다. 안심한 듯이 살짝 한숨을 내쉬는 세레나, 그녀에게 내가 마찬가지로 안부를 물으려던 찰나, 세레나는 배낭에서 급히 수건을 꺼내 둘러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수건을 질끈 묶어, 몸을 가리고 몸을 돌렸다.
“아리스. 물러서 계세요.”
“……?”
가라앉은 음성과 함께 앞으로 나서는 세레나, 그녀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나는 일순간 몸을 경직시켰다. 좀 전까지 우리가 몸을 담그고 있던 온천, 그곳에서부터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 기운이 나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건… 마력?
단순한 마법사의 수준이 아니다. 가히 마술사와도 비견될 만한….
그러면서도 그저 단순한 마법사나, 마술사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마력, 이런 질감의 마력을… 나는 알고 있었다.
촤아악――!!
“……!”
온천의 물이 폭발하듯 치솟으며, 튀어나온 ‘그것’을 보며, 나는 숨을 들이켰다.
바위처럼 큰 덩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육신을 둘러싸고 있는 회색 안개, 단지 뭉쳐 있는 것 자체만으로 적어도 6주문 이상의 중소급 마법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그 강력한 마력의 덩어리가 나를 숨죽이게 했다.
요마(妖魔).
그것도 뚜렷한 본신을 갖춘 채, 강맹한 마력을 흩뿌리고 있는 요마를 보며, 나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늘 섬의 떠돌이’나 ‘이름 없는 골짜기의 공포’ 외에도, 지상에 남은 요마가 있음에 놀라서는 아니었다. 그 요마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미묘한 질감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뀌이이이익――!!
요마가 갑자기 터트린 포효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혼란 마법…!
비록 3주문 정도의 약대급 마법이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법은 마법, 성력을 지닌 신관이라면 몰라도 보통 인간은 결코 마법을 당해 낼 수 없다.
검자라고 불리는 세레나조차 순간적으로나마 비틀거리는 모습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렇게 세레나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마력의 안개를 휘감은 요마가 우리에게 돌진했다.
두두두두두두두――!!
너무 빨라!
그 엄청난 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에 놀라서 마력을 일으키려던 나는 일순 흠칫했다. 마력을 사용하면 폭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실수, 망설임으로 마력을 일으킬 타이밍을 잃었기에 나는 무방비하게 그 돌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체중과 가속도에 마법의 힘마저 더해져, 무쇠라도 깨부술 수 있게 된 돌진을 마주 보며 내가 무심코 입술을 깨물 때, 세레나가 그 거체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하아아아압!”
그것은 과연 기합이었을까?
요마가 토해 낸 혼란 마법에 비해 뒤지지 않는, 쩌렁쩌렁한 기합성이 사방에 깔린 안개를 흔들며, 세레나의 주먹이 요마를 향해 내질러졌다. 무모하다.
아무리 천검자라 불리는 절정의 검사라도, 저 거구에 마력까지 사용한 요마의 돌진을 주먹으로 막아 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러나 세레나의 가녀린 주먹이 요마의 미간에 정확히 틀어박힌 순간, 나의 확신은 얼음처럼 깨져 나갔다.
쿠우우웅――!!!
투석기로 성벽을 때려 박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짓말처럼 우뚝 멈춰지는 거체.
세레나가 사실 관성 제어의 권능을 지닌 레토스의 신관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은 비현실적이고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뀌이이이익――!!
고작 가녀린 여인의 일수에 막힌 것이 분한 듯, 요마는 괴성을 토해 내며 세레나를 밀어붙였다. 그녀가 체중의 차이마저 감당해 낼 수는 없는 듯, 그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나며, 암반에 긴 발자국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나는 서둘러 주문을 외우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나 내가 채 주문의 첫마디를 외우기도 전, 요마의 미간에 닿아 있던 오른손이 당겨지며, 교대하듯 튀어나온 그녀의 반대쪽 손이, 다시 요마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퍼엉―!
뀌이이익…!
너무나 단순해 느리게까지 보이던 일장, 하나 그 일장이 미간에 틀어박힌 순간,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는 요마의 모습은 내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맙…소사!!
아무리 검자라도 맨손으로 요마를 때려눕히다니, 이게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경악과 감탄을 담아 세레나를 바라보길 잠시 곧장 요마를 향해 달려드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순간 당혹감을 느꼈다. 물론 적이 쓰러진 이상, 그 빈틈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느껴지는 이유 모를 조급함은, 내게 한 줄기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세레나가 왜 저렇게 다급해하는 것일까? 검조차 들지 않은 채, 요마를 압도한 그녀가 어째서…? 검조차 들지 않은 채?
설사 신관 전사라도 받아 내지 못할 돌진을, 검사인 세레나가 맨손으로 받아 냈다는 것, 그 현실에 숨겨진 의미를 뒤늦게야 깨닫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꺾여 있는 오른 손목과 살갗이 찢어진 채 피를 흘리는 왼손의 상처가 마치 각인되듯 내 눈에 파고들어 온다.
그리고 또 하나, 땅에 쓰러진 채 머리를 흔드는 요마를 중심으로,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한 마력의 흐름이, 내게 반사적으로 경호성을 토하게 했다.
“피해!!”
퍼어엉!!
나는 경고와 동시에 마력을 뿜어냈다. 충격 때문에 눈치채는 것이 늦었던 만큼, 미처 처음의 일격은 막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세레나가 내 외침을 듣고 피한 덕분에, 요마가 쏘아 낸 안개 덩어리는, 헛되이 땅에 틀어박혀 폭발을 일으켰다.
퍼벙!!
우우웅…!
뒤늦게나마 마력을 뿜어 허공을 일그러트린 찰나, 수많은 안개의 화살이 그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가 2―3주문짜리 마력의 마의 화살, 그 위력은 수백 명을 몰살하고 남을 정도였지만, 강대한 마력이 집결되어, 성벽과 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마력 장벽을 허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마법을 막아 낸 나는 요마를 노려보았다.
이 요마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 감히 이 존재가 나의 가족을 해하려 했다는 것!
“멈춰.”
세계의 반을 지배했던 왕국의 군주, 모든 마의 정점에 위치했던 지배자, 인간을 초월한 마력을 지닌 파괴자, 팔십일 주문의 마왕의 권위를 담아 내가 나지막이 내뱉은 한마디 말에 요마의 거대한 몸이 움찔 멈춰 든다.
뀌, 뀌이익!
요마라도… 아니, 설사 악마라 할지라도 상관없어. 네가 내 가족을 건드린 이상, 설사 신이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세레나의 앞으로 걸어 나가며, 나는 요마를 향해 한 팔을 내뻗었다. 그리고 세레나의 부상을 깨달은 직후부터, 분노로 미친 듯이 들끓던 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것이 폭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아크넬의 마력을 끌어 올리지 않은 것은, 내가 지니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힘, 하지만 아크넬의 것이 아닌 반의 마력만이라도, 마술을 사용하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것이었다.
“위대한 폭풍의 지배자 세이너스여! 나 그대의 영혼을 품은 자, 그대의 권능을 원하는 자, 그대의 권위를 다스리는 자이니. 내가 원하는 것은 크레도스에서 뿜어져 나온 두 줄기의 바람. 심신을 찢어발기고 혼백을 날려 버리는 지옥의 광풍. 전쟁의 신 에티스의 진군과 기술의 신 드라비크의 기병을 막은 태풍이고, 세계의 허파에서 토해져 나온 태곳적 용의 숨결이니, 나 그대의 봉인을 풀어 지상에 크레도스의 바람을 불러내리라!”
심장으로부터 폭발하듯 터져 나온 마력이, 혈관을 타고 손안에 뭉쳐 구슬을 이룬다.
내 한 손에 다 쥐어질 정도고 자그마한, 그러나 능히 성 하나를 휩쓸 폭풍이 든 구슬에 나는 전력을 더해 마물을 향해 쏘아 냈다. 위기를 직감한 듯, 요마는 안개를 움직여 장벽을 밀어냈다. 그러나 마력 장벽도 날려 버릴 수 있는 마술 앞에, 그것은 그저 무의미한 저항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푸른 구슬이 안개를 꿰뚫으며 요마의 몸통에 틀어박힌 순간, 그 안에 응축돼 있던 폭풍이 터져 나왔다.
쿠과과과광――!!
뀌이이이이익…!!
맹렬한 질풍이 안개를 쓸어 내는 가운데, 요마의 거대한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마력 장벽을 치고 있음에도 그 기류만으로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만드는 거센 폭풍 속에서, 나는 똑바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풍에 의해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서서히 떨어져 내리는 요마를 직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그 거체가 떨어져 내렸다.
쿠우웅!!
거의 하늘 끝까지 치솟았던 만큼, 지진처럼 땅을 흔들며 떨어진 요마를 보며, 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피에 대한 갈증이 목을 가뭄처럼 마르게 하고, 뜨거운 분노가 피를 용암처럼 들끓게 한다. 당장 이성을 끊어 낼 듯 강렬한 충동이 서서히 가슴을 잠식해 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흑마법의 후유증을 무시하고, 마력을 남용하여 마술까지 사용한 대가.
하지만 그렇게 사용한 마술에 직격했음에도, 요마는 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한 마력을 뿜어내며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뀌익… 뀌이이이익――!!
쿠르르르릉―!
대체 뭐지, 이 요마는?
고작 3주문 정도의 혼란 마법이던 포효가, 5주문급 파동 마법이 되어 절벽을 흔드는 광경에 나는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하늘섬의 떠돌이’나 ‘이름 없는 계곡의 공포’를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요마라도 이런 마력의 증폭이 가능할 리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은… 폭주하는 듯한 느낌. 그래, 그렇다.
이 요마는 폭주하는 마력을 주체 못 하고, 어디로든 쏟아 낼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이.
바로 지금, 아크넬의 마력으로 온몸이 들끓고 있는 나처럼….
“…세레나. 도망쳐.”
“……!”
칼에 찔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세레나. 그러나 나는 그녀를 마주 보지 않았다.
오직 요마에게만 모든 시선을 집중한 채, 스스로의 분노를 다스리며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아리스… 무슨 말을…!”
“나라면 쉽게 이길 수는 없어도 적어도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사이… 코드를 데려와 줘.”
그래, 상대가 마력을 다루는 요마인 이상 결코, 나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가 정상일 때의 이야기, 저 요마와 나, 둘 다 마력이 폭주하기 직전인 상태라는 것이 문제였다.
단 하나의 마력만 폭주하더라도, 산 전체에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두 마력이 같이 폭주를 일으킨다면….
그때는 단지 이 산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다. 어쩌면 대륙의 십분의 일이 날아갈 수도 있다. 솔직히 코드라도 내 심장에서 들끓는 마력을 간단히 어떻게 해 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다만 그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기 전. 최대한 세레나를 떨어트려 놓고 싶을 뿐이었다. 설사 내가 여기서 폭주해 죽게 된다고 해도….
그녀가 휘말리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니까.
“…어서!”
나는 괜찮다. 손이 으스러질 때까지 나를 지켜 준 가족이자, 너무나 용감하고 강인하며 존경스러운 영웅, 그리고 싸워야만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연적인 이 여인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나 그런 굳은 각오는, 내 앞을 가로막고 선 인영에, 무너져 버렸다.
“…세레나!!”
뜻밖의 행동에 내가 비명처럼 내지른 고함에도, 세레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요마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 뿐이었다.
“이게 어리석은 짓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부드러웠지만, 그런데도 거부할 수 없게 하는 힘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
그리고 나는 새삼 깨닫는다.
내 앞에 있는 이 여인의 등이, 한없이 곧고도 아름답다는 것을… ,
“저는… 그분에게서 가족을 뒤에 두고 도망치는 법 따위는 배운 적 없답니다.”
고금 이래 최연소 검자이자,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천검자 세레나 R. 라바일.
“그리고 검이 없다고 해서 짐이 될 정도로 약하지도 않아요.”
그 이전에 나의 가족이자, 연적이며, 친구이고, 영웅인 그녀는, 다시 목숨을 걸고 나를 지키기 위해 나서 주었다.
“바보.”
정말… 바보같이…!
그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뻔히 알기에, 왠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분노와는 달리, 따스하게 마음을 감싸드는 온기는, 나에게 무심코 미소를 짓도록 했다.
쿠웅―!
이렇게 된 이상 절대 순순히 당해 줄 수도, 멋대로 폭주해 줄 수도 없다. 마력 장벽을 향해 부딪쳐 오는 요마를 노려보며, 나는 마력을 다스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내게 그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쩌적…!
마침내 금이 가기 시작한 마력 장벽을 보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마지막 주문을 준비했다. 아크넬의 마력과 세이너스의 마력, 그 81주문을 모두 끌어 올려 펼치는 대마술을….
그러나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고 의지를 다잡아도, 이것을 사용하고도 폭주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애초부터 폭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내 목숨 하나로 이 요마와 공멸할 수 있다면, 세레나만은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코드, 내가 죽으면… 당신은 슬퍼해 줄까?
파강!!
결국 깨져 나가는 마력 장벽을 느낀 순간, 나는 늦기 전에 주문을 영창하려고 입을 벌렸다.
아니, 벌리려고 했다.
푸욱―!
마치 땅에서 솟아나듯 세레나의 앞에 박힌 한 자루 검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본 지 겨우 하루밖에 안 되지만, 결코 몰라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검. 그것을 본 내가 무심코 숨을 죽일 때, 나지막한 음성이 안개 너머에서 흘러들어 왔다.
“잡아라.”
“……!”
그 목소리는 너무나 무뚝뚝하여, 감정 따위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쁘고도 반가워서…. 무심코 눈물을 왈칵 쏟아 낼 뻔했다.
“VHLV JI RHE, ECAE KUW FULRD.”
우우웅―!
세레나가 그 지시에 따라 검을 움켜쥐었을 때, 아득한 이방어의 주문이 울려 퍼지며, 검신에 새겨진 주술 문장이 빛을 발했다.
바로 그 순간, 검에서 뻗어 나온 찬란한 광채가 요마가 토한 안개 덩어리를 산산이 흩어 버렸다. 아무리 역대급 수준이라도, 투석기의 탄환 못지않은 파괴력의 마법이 녹아드는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광경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안개 너머로 시선을 향했을 뿐.
저벅. 저벅.
짙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그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