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 숨 쉬는 산.
퀘스트의 안내음이 정지했다.
나는 산꼭대기에 멈춰 선 채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공터에는 무엇 하나 보이질 않는다.
“정말로 여기가 맞긴 한 건가?”
자연스레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혹시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시스템이 알려준 장소는 분명 이곳이었다.
화살표는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이곳을, 지면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단지 아무리 살펴봐도 눈에 띄는 단서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오픈.’
결국, 나는 퀘스트 창을 열어 다시 한번 내용을 확인했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하르트의 스승, 지그문트의 흔적을 찾아 버들꽃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라. 난이도 C.]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현재 버들꽃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 사건을 해결하고 연금술사들의 계획을 저지하라. 난이도 A.]그러나 퀘스트를 몇 번이나 읽어봐도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참 불친절한 안내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도 그랬지만.’
참고로 버들꽃 마을은 내 고향을 말하는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몸이 아직 인간이었던 시절의 고향이라 해야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 몸에는 약혼녀가 붙어 있었지. 뭐, 2년이나 지났으면 이미 잊어버렸으려나?’
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지워내며 지면을 툭툭 찼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없는 입구가 생겨나지는 않았지만.
“그냥 부숴버릴까?”
“하지만 아저씨. 그러다가 단서가 같이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흠. 지면을 잘라서 그 부분만 옮기는 건 어때?”
“..부수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는 건가요?”
라나의 질문에 머쓱함을 느낀 나는 그대로 염제의 눈에 힘을 주었다.
혹시라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단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음?”
그런데 진짜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나는 잠시 공중을 박차며 위로 솟구쳤다.
도저히 이 거리에서는 내가 본 단서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이런..”
그렇게 얼마를 위로 올라갔을까.
머지않아 나는 내가 무엇을 본 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대한 형체.
“모두 위로 올라와!”
그 정체를 파악하는 순간, 나는 일행들을 향해 경고했다.
큰 소리에 놀란 그레고리오가 날뛴다.
라나는 그 위로 재빨리 올라탔다. 날아오르는 페가수스.
“뭐? 왜 그러는 건데?”
“지금 수프나 끓일 때가 아니라고!”
반면, 야영을 준비하던 니콜라스와 엘리아는 대처가 조금 늦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다시 한번 재촉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늦어버린 모양이다.
쿠웅!
굉음과 함께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금 전 내가 목격한 거대한 ‘눈’.
그 눈의 주인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왁! 이게 뭐야!”
니콜라스와 엘리아가 기울어지는 지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린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천둥마가 그들을 낚아채고 달리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바람이 몰아친다. 휘둘러지는 거대한 손.
그 손이 니콜라스의 몸을 향해 내질러진다.
“데모닉!”
다행히 니콜라스의 소환이 한발 빨랐다.
그림자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형체.
콰앙!
데모닉이 그 손을 막아선다.
“이런 미친..”
그러나 기껏 소환한 것이 무색하다고 해야 할까.
공격을 막아내기가 무섭게 데모닉의 허리가 무참히 꺾여버렸다.
실로 가공할 만한 위력이다.
“젠장..”
단번에 숨이 끊어진 데모닉.
다행히 니콜라스가 몸을 피하기엔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세 마리의 말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우리가 있던 곳이 산이 아니었단 말이야?”
하늘 높이 올라간 후에야 비로소 사태를 파악한 니콜라스가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솔직히 내 생각에도 이건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건 커도 너무 크잖아.”
완전히 일어선 거대한 형체를 바라본다.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린 우리. 이쯤 되면 목이 아플 지경이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하늘을 날면서도 올려다봐야 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내려선 곳은 산이 아니라 거대한 골렘의 몸이었던 모양이다.
숨 쉬는 거인.
비늘처럼 돋아난 광물들이 골렘의 몸 위에서 번쩍인다.
“..아무래도 산의 심장을 이용해 만든 것 같은데.”
“그걸로 무기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어?”
“만들기 전까지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나 보지.”
나는 그렇게 답하며 염제의 눈을 이용해 골렘의 몸을 훑었다.
시스템이 측정한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는 C.
그러나 저 골렘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아무리 봐도 그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강해진 건 맞지만 저런 걸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정도는 아니지.’
바꿔 말하면 굳이 저 골렘을 쓰러트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겠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퀘스트를 완료할 방법이 존재한다는 뜻일 테니까.
‘아니, 단서가 망가지면 안 된다고 했으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게 정석인 건가?’
나는 솔레이를 불러 저 골렘의 몸을 살펴보려 했다.
“푸르릉.”
“젠장. 하필 이럴 때 말을 안 듣다니.”
그런데 오늘은 더 일하기 싫다는 것일까. 솔레이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놈과는 언제고 날 잡아 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너 나중에 보자.”
어쩔 수 없지. 지금은 그냥 튼튼한 다리를 믿는 수밖에.
나는 불꽃을 내뿜으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골렘의 뒤편으로 이동한 나.
부웅!
그런 나에게로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날아든다.
나는 마주 손을 내밀어 놈과 주먹을 맞부딪혔다.
쿠웅!
강한 충격이 전신을 뒤흔든다. 삐걱거리는 어깨.
그래도 다행히 밀려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힘에 있어선 호각인 것 같다.
‘이게 정말 정련되지 않은 재료의 힘이란 말이야?’
나는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한낱 재료 따위를 맞수로 인정하고 싶진 않았던 탓이다.
나는 그대로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아저씨! 부수면 안 된다니까요!”
아 참. 그랬지.
공중에서 멈춰 선 채 방향을 비튼다.
그런 나를 향해 골렘의 두 손이 손뼉을 치듯 부딪혀 온다.
나는 그것을 피해 새벽의 걸음을 내디뎠다.
“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광경이 있었다. 가까스로 스쳐 지나는 골렘의 손.
그 손가락 틈새로 보인 붉은 빛.
“그러고 보니 시스템은 처음부터 저길 가리키고 있었지?”
나는 그대로 골렘의 팔 위에 달라붙었다.
오러를 이용해 발을 고정한 나는 그대로 표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물론, 골렘이 그 꼴을 두고만 보지는 않을 거다.
날아드는 손바닥.
“타핫!”
뽑혀 나오는 검. 어스름의 초식이 나에게로 떨어지던 손가락을 난도질한다.
머리 위로 바위 더미가 쏟아져 내린다. 탁한 먼지가 코끝을 찌른다.
“이 국지적 재난 같으니라고.”
나는 그 바위들을 피해 속도를 올렸다.
목적지가 가깝다. 검 끝에 불꽃이 스친다.
“햇무리.”
원형으로 쏟아지는 검강이 놈의 팔을 도륙한다.
어깨 위에서 잠시 숨을 돌린 나는 곧장 녀석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개벽.”
그렇게 도달한 목적지. 인간으로 치면 쇄골이라 할 수 있을 장소에 멈춰 선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검격이 골렘의 몸을 양단한다.
* * *
“이게 그 산의 심장이야? 금속보다는 보석처럼 생겼네?”
골렘을 쓰러트리고 나니 밤이 찾아들었다.
나와 일행들은 적당한 장소에 야영지를 꾸리고 산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애써 준비해 온 물품들이 골렘이 일으킨 산사태에 쓸려 사라져 버린 탓에 식사는 사냥해 온 것으로 때워야 했다.
변변한 그릇도 없어 나무를 깎아 만든 무언가에 고기를 올려놓고 먹는 일행들.
그나마 조미료나 향신료가 남아 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앞으로는 솔레이에게 짐을 맡겨야겠군. 이래서야 성장기 어린아이인 라나에게..”
“아저씨. 먹을 것보다는 단서부터요.”
“쯧.”
먹을 것을 함부로 여기다니. 나는 혀를 차며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산의 심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었던 물건이었다.
아마도 시스템이 말한 단서는 이걸 뜻하는 거겠지.
“그거.. 계약서 아니야?”
역시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니콜라스는 단번에 내가 든 종이들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래, 아무래도 이 드워프.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야. 이런 계약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대체 무슨 내용인데 그래?”
“영혼의 계약. 너도 들어본 적은 있을 거야.”
내 대답에 니콜라스와 엘리아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영혼의 계약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니콜라스는 본인부터가 마법사이기도 하고, 엘리아는 200년을 살아온 엘프다.
오히려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영혼의 계약이 뭔데요?”
그렇기에 이 계약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 아직 어린 라나가 유일했다.
“..말 그대로, 어기면 영혼을 잃게 되는 계약이야.”
나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라나가 이 계약에 관심을 가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계약의 내용은 어떻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가요?”
다행히 그런 의도가 먹혀든 듯, 라나의 태도는 눈에 띄게 차분해져 있었다.
“아니, 비슷해.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된 것뿐이니까. 산의 심장, 뇌정, 요정 여왕의 날개 외에 남은 두 가지의 재료가 적혀있어. 심해의 진주와 바람의 결정.”
“물과 바람이군요. 그것들로도 무기를 만들기로 적혀있나요?”
“그래, 맞아.”
나는 종이들을 라나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그리고 한 번 계약을 한 이상, 이 드워프는 계약을 이행해야만 하지. 그렇지 않으면 영혼을 잃어버릴 테니까. 그런데 좀 성가시게 된 것 같아.”
“성가시다고요..?”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거든.”
왜 계약서를 이곳에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계약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지그문트는 이하, 다섯 개의 재료를 제련해 만든 무기를 제작하는 대가로 미스틸테인을 제련할 불꽃을 받는다.
참고로 말하자면 저 미스틸테인이 우리가 말하는 산의 심장을 일컫는 말이다.
설마 산의 심장까지 연금술사들에게 넘겨주기로 한 줄은 몰랐지만.
하긴, 드워프의 습성을 생각해 본다면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있어 무기라는 것은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쓰였을 때 의미를 갖는 물건이었으니까.
‘문제는 이다음이지.’
라나가 내 말을 듣고 계약서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
아마도 라나 역시 내가 읽었던 그 부분을 읽은 것 같았다.
“아저씨의 말대로. 이 이름.. 본 적이 있어요.”
아마도 연금술사들이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넣은 조약인 거겠지
“아무래도 연금술사들은 기껏 만든 무기가 다른 곳에 넘어가는 걸 경계한 것 같아. 무기를 받을 대상까지 정해둔 걸 보면 말이야.”
“..안드라스. 그 사람은 분명.”
“그래, 연구소의 소장이지. 팔레아스 령에서 내 손에 죽은 그 대머리 연금술사.”
내 대답을 들은 라나가 헛숨을 들이켰다.
나는 이 녀석이 무슨 걱정을 하는 건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대로 가면 지그문트가 꼼짝없이 영혼을 잃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설마, 지그문트가 죽게 되는 건가요?”
“아니, 이걸 봐. 여기 안드라스가 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 대리인을 적어 두었잖아. 심지어 그 대리인이 죽었을 땐 파라켈수스가 받게 되어 있지. 아마 무기만 넘겨준다면 지그문트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지금 대리인은 누구죠? 보리스? 처음 보는 이름인데.”
“나는 본 적 있는 이름이야. 숲에서 날 보고 도망쳤던 놈이지. 사실, 내가 곤란해졌다고 말한 건 그래서이기도 해.”
의아해하는 라나를 향해 나는 녀석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일전에 염제의 눈을 통해 읽어낸 내용들이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용사들을 되살리고 있는 그놈인 것 같거든.”
예이츠를 비롯해 과거의 용사를 되살려 온 정체불명의 연금술사. 보리스.
물론, 이제 와서 되살아난 용사 따위를 걱정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런 걸 걱정할 만큼 약하지 않았으니까.
‘어디까지나 이전과 같은 수준이라면 그렇다는 거지만.’
그런데 예이츠에게서 십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나는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직감.
‘아무래도 성가셔질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저울로 존재하지 않는 적을 가늠한다.
흔해 빠진 성검을 든 용사와 세상에 하나뿐인 재료로 만든 무기를 든 용사.
과연 그중에 어느 쪽이 더 성가실까.
“에휴.”
진짜 한숨이 다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