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 해츨링과 열 자루의 검(3)
조르디네스의 물음에 티타르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무슨 생각이기에 그런 터무니 없는 짓을 하려는 거지?
하기야 무슨 생각이건 간에 더 이상 티타르를 정상적인 용사라 보긴 힘들었다.
모든 이종족을 배제하겠다는 것.
그 말은 곧, 오직 인간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보아하니 다른 십검들도 놀란 얼굴인데. 그런데 벨 얘는 아까부터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나는 아까 전부터 벨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쩌면 티타르와 그녀 간에 모종의 대화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때 내가 그녀와 만났던 전생의 방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예이츠의 경우와는 달리, 설득 자체를 시도하지 않고 있는 거겠지.
“그게 이상합니까? 인간이 인간을 위해 싸우겠다는데?”
“티타르!”
티타르의 터무니없는 발언에 십검들이 그를 질책했다.
언쟁이 점점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벨?’
그러던 중, 나는 주머니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무심코 그 위로 손을 올렸다.
“..너.”
그와 동시에 젖어 드는 손바닥.
대체 그 작은 몸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눈물이 나오는 걸까.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바뀐다던데.
아무래도 천둥검 티타르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한때 이 세계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용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옛 기억에 얽매여 배회하는 망령만이 남아있을 뿐.
하긴, 내가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
“너 그게 무슨 소리야?”
결국 참다못한 십검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으르렁거리듯 쏘아붙이며 티타르를 노려보는 그들.
반면, 티타르의 얼굴은 태연했다.
“진정해.”
“어떻게 진정하라는 거지? 예이츠의 말을 잊었어? 이대로 가면 세계가..!”
“그건 어디까지나 인류의 발전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의 이야기잖아.”
“..뭐라고?”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궤변일까.
십검들이 할 말을 잃은 채 티타르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내 말이 틀렸나?”
그러나 티타르는 당당했다.
그가 제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내 몸을 봐라. 아니, 너희의 몸도!”
“티, 티타르?”
“우리 중 누구라도 이렇게 되살아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이 있나?”
티타르는 제게 겨눠진 검 끝에 외려 목을 내밀었다.
강렬한 눈빛. 십검들은 그런 티타르의 기세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물러서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한번 일어난 일은 두 번도 일어날 수 있는 법이지.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나? 만약 우리가 이 비밀을 파헤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영생..이라고?”
그런데 다들 왜 저렇게 솔깃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저놈들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생전에 비해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 같은데. 예이츠랑은 다르게 부활이 완벽하지 않은 건가?’
영생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는 십검들.
그러나 사실, 티타르의 말은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들의 부활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내 실수가 원인이었으니까.
사실상, 티타르의 바람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 말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눈이 티타르에게로 향한다.
“그래, 우리가 억제력이 되는 거다. 인류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도록 영원토록 군림하는 거지. 그거야말로 우리 용사의 마지막 임무 아니겠나.”
티타르는 자신들이, 영웅들이 이 세계를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인간들의 발전과 멸망, 그 모든 것들은 그들의 손으로 충분히 억누를 수 있을 거라고.
‘영원이라고? 고작 천 년도 견디지 못할 놈들이..’
사실 하나하나 따져본다면, 저만큼 터무니없는 헛소리도 없을 거다.
논할 가치 없는 망상.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저 말을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심증이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완벽하진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설령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저들은 내 말을 신뢰하지 않을 거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도 의미가 없을 테니까.
“..확실히, 그렇게 되면 마족이 존재할 필요는 없게 되겠군.”
그런데 진심으로 저 말을 믿고 있는 건가?
나는 그 모습에 십검 내에서 실력을 숨기고 있다던 예이츠의 말을 떠올렸다.
왜 같은 용사를 상대로 힘을 숨기고 있나 했더니 이런 이유에서였나?
“이종족은 그렇다 쳐도 연금술사들은 어쩌시려는 거죠?”
보다 못한 내가 티타르를 향해 소리쳤다.
한때는 호적수라 여겼던 놈들이 한낱 망집 따위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열불이 나서다.
“그들을 왜 걱정하는 거지? 연금술사들은 결국 우리의 후손들이다. 잘 타이르면 알아듣겠지.”
“허.”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인류를 위해 다른 종족을 멸종시키겠다는 것만 해도 어이가 없는데 연금술사들이 뭐?
말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그렇게 착한 놈들이 수천 명 단위로 아이를 잡아가냐?
“..왜 비웃는 거지? 데이브. 내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당신들의 몸과 영혼을 멋대로 되살려 종처럼 부린 게 바로 그 후손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겁니까?”
점점 존댓말을 하는 게 힘들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뭐든 간에 티타르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그 눈에 어린 광기는 여전하다.
나는 그런 티타르를 향해 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당신은 조금 전 노드릭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분노했죠.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정작 후손이라는 작자들이 그 뱀파이어를 이용해 당신들을 부활시켰으니까요.”
“..뭐라고?”
황망하게 울려 퍼지는 티타르의 목소리.
사실, 나는 이쯤 하면 그가 마음을 접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대는 용사가 아닌가.
설마 용사씩이나 되는 놈이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 거다.
“..그 말은 부활의 단서가 뱀파이어에게 있다는 건가?”
“..뭐라고요?”
“역시 우리의 후손들이야. 적을 이용할 줄 아는군.”
그런데 왜 전보다 더한 망상이 돌아오고 있는 걸까.
혹시 뇌가 고장 나버리기라도 한 건가?
“뱀파이어라.. 좋은 정보를 얻었어.”
티타르가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노드릭을 바라본다.
조르디네스는 그런 노드릭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섰다.
그를 감싸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보호하는 사람일세. 감히 손을 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시죠. 어차피 길지는 않을 테니.”
그런데 대체 뭐가 길지 않다는 걸까. 그가 나를 바라본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내 등 뒤에 있는 라나를 보고 있는 거겠지만.
“다시 보자. 라나 클락.”
티타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내뱉은 채 떠나갔다.
그 뒤를 따르는 십검들.
아무래도 그들을 설득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나직한 한숨.
고민 끝에 떠올린 것은 조금 더 속도를 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조르디네스.”
“..그래, 데이브.”
“하늘을 날아서 들어가자.”
“..뭐라고?”
아무래도 팔자 좋게 야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모양이다.
나는 우선 해츨링의 탈환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한번 닫혔던 관문이 이제 와서 열리지는 않겠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방법이 있었다.
“원래는 이런 짓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봐, 데이브. 불법입국자라는 게 들키면 곤란해지는 거 아니야?”
“지금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잖아. 가자.”
나는 모닥불을 밟아 꺼트렸다.
마침 밤도 깊어진 상황이다.
이런 시간이라면 설령 하늘을 날아 성벽을 넘는다 해도 들킬 일은 없겠지.
“하지만 데이브. 정작 해츨링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잖아?”
“지금까지의 연금술사들의 행적을 생각해 봐. 그놈들은 언제나 가장 핵심적인 인물과 손을 잡고 있었잖아.”
“이번에도 영주와 손을 잡았다는 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잘 몰라.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니까.”
솔레이의 등에 올라 하늘로 솟구친다.
니콜라스는 그런 나의 뒤를 따라 날아올랐다.
“그럼 아닐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러다가 일이 커지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것저것 다 재고 덤비다간 늦어! 들쑤시다 보면 뭐든 나오겠지!”
“에휴..”
니콜라스의 한숨을 무시한 채 성벽을 넘어 단숨에 내달린다.
목표는 영주성이었다.
* * *
어지러이 흔들리는 불꽃.
횃불을 든 채 돌아다니는 병사들이 연신 하품을 터트린다.
“에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그러게. 애초에 우리가 이런다고 해서 마족들을 막을 수 있긴 한 건가?”
“못하겠지. 듣기로는 하급 마족만 해도 어지간한 기사들을 수십 명이나 쓰러트릴 수 있다던데?”
“..그러면 이러고 있어도 의미가 없잖아?”
두런두런한 목소리.
그런 그들의 뒤로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내린다.
“응? 지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어?”
“글쎄? 나는 못 봤는데?”
횃불이 흔들린다. 그림자에 녹아들 듯 사라지는 침입자.
새벽의 걸음이 성벽을 가로지른다.
침입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망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휘익!
망루의 꼭대기에 도착함과 동시에 당겨지는 몸.
침입자의 몸이 백작의 집무실을 향해 단숨에 도약한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쯧.”
그런데 역시 백작이 기거하는 곳답다고 해야 할까.
예상했던 것보다 경비가 철저했다.
침입자의 눈에 창가를 지나치는 기사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대로 들어가면 소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투웅!
침입자는 판단과 동시에 그대로 공중을 딛고 하늘로 솟구쳤다.
“응?”
그런데 아무래도 그 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변을 느낀 기사 하나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
“..착각이었나?”
한참을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기사는 결국 포기한 듯 다시 머리를 집어넣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어?”
그런데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충격.
아무래도 누군가가 그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기사는 당황을 금치 못한 채 버둥거렸다.
“컥, 케헥..”
숨통이 죄어온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을 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당황한 기사의 움직임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누, 누구냐!”
간신히 속박을 뿌리치고 뒤돌아선 기사.
그런데 차라리 그대로 쓰러지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기사를 맞이하는 붉은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난다.
“치, 침입.. 컥!”
차마 내뱉지 못한 경고가 입안에서 맴돈다.
이윽고 기사의 정신은 아득한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이쪽이야. 들어가 보자.”
그래도 기사의 희생이 영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긴, 전시 상황이니만큼 이 시간에도 순찰을 도는 기사들은 꽤 있었다.
그중 두 명의 기사가 단말마에 이끌려 방으로 찾아온다.
쾅!
큰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그와 동시에 무장한 기사들이 들이닥친다.
“..아무도 없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사들은 침입자의 모습은커녕 기절한 기사의 모습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우리가 잘못 들었나 봐.”
침입자는 기사들을 뒤로한 채 문밖으로 나섰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복도는 여전히 환했다.
아마도 혹시라도 있을 침입자를 경계한 거겠지.
물론, 대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침입자는 그 한복판을 당당히 걸어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이어지는 노크음.
침입자는 이어지는 대답을 기다렸다.
“흠..”
그런데 왜 응답이 들려오질 않는 걸까.
백작이 안에 있는 건 틀림없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무언가가 이상하다.
침입자는 이내 손잡이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넌 또 뭐야?”
그런데 어째 상황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침입자를 바라보는 두 쌍의 눈동자.
이제 보니 그보다 한발 앞서 선객이 찾아왔던 모양이다.
“그러는 너는 누구지?”
흑단 같은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그리고 밤처럼 까만 드레스를 입은 소녀.
소녀는 방 한가운데에 선 채 침입자를, 데이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백작의 목을 움켜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