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 결핍.
라나를 붙잡으려던 꼬마의 손을 잡아 내던진다.
“큭!”
맥없이 바닥을 나뒹구는 꼬마의 몸.
그래도 이전처럼 손이 통과하지 않는 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확실히 손에 주술의 힘을 담으니 조금 낫긴 한 모양이다.
“저리 비켜!”
그런데 한번 바닥을 구른 것으로는 부족했던 건가?
꼬마는 바닥을 나뒹굴기가 무섭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즉시 라나를 향해 달려드는 꼬마.
그래, 확실히 그 집념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어딜!”
그러나 세상에는 집념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나는 다시 한번 꼬마를 붙잡아 내던졌다.
“아르카나!”
그런데 혹시 학습 능력이 없는 건가?
이미 두 차례나 바닥을 굴렀음에도 배운 게 없는지 꼬마는 다시 일어서며 달려들었다.
이래서야 마수를 조련하는 쪽이 훨씬 더 쉬울 것 같다.
“좀 가만히 있어라. 정신 사납다.”
아무래도 조금 더 강경하게 나서야 할 것 같다.
나는 손에 담긴 주술의 힘을 한층 더 강렬하게 불태웠다.
꼬마의 힘을 전부 봉인해 버릴 작정으로 손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몸 상태가 멀쩡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나와 아르카나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지 않은가.
“아르카나를 내놔!”
그렇게 꼬마는 얼마 못 가 가진 힘의 대부분을 봉인 당해야만 했다.
허나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꼬마는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서까지 라나를 향해 손을 뻗어갔다.
“마치 아르카나게 네 거인 것처럼 말하는구나? 미안하지만 저건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나는 그런 꼬마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와 동시에 분노와 원망으로 얼룩지는 눈동자.
꼬마가 나를 노려본다.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그러나 아르카나라는 게 떼를 쓴다고 해서 줄 물건이던가?
“애초에 네 몸으로는 저걸 감당할 수 없어. 죽는다고.”
“상관없어! 저걸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해 보려 했지만 도저히 들어먹질 않는다.
아무래도 단단히 홀려버린 눈치다.
이래서야 심문이고 뭐고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라이라.”
그러던 중, 노드릭이 꼬마를 향해 그리운 이름을 부르짖었다.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시선.
그의 시선은 분명 누군가의 흔적을 쫓아 움직이고 있었다.
“난 라이라가 아니다.”
반면, 꼬마의 눈은 여전히 무기질적이다.
노드릭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다.
이런 녀석에게 협박이 먹힐 것 같지도 않고.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흠.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네가 내 말에 대답해 준다면 아르카나와 만나게 해주는 거야.”
허나 그 순간 이 막연하기 그지없는 대화에 개입하고 나서는 인물이 있었다.
“넌 누구냐.”
“니콜라스.”
니콜라스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꼬마와 눈을 마주한다.
그런데 아르카나와 만나게 해주겠다니?
설마 저 꼬마를 죽이려는 작정인가?
‘아, 거짓말이군.’
그러나 의아함도 잠시.
나는 꼬마 몰래 윙크해 보이는 니콜라스의 모습에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우선 정보부터 얻어내고 보자는 건가?’
하지만 바보도 아니고 그런 뻔한 말에 속을 것 같지는..
“그렇게 하지.”
“좋아.”
그런데 저걸 속아버리네.
니콜라스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을 이어간다.
“우선 이름부터 물어보자. 이름이 뭐야?”
“이름은 없다. 다만..”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 * *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달리는 소년.
아담 체스터의 발길이 어느 한 곳에서 멈춘다.
평소라면 이런 식으로 달려서 이동하는 일은 없었겠지.
번개의 정령이 장식으로 있는 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쿨럭.. 하아.. 하아..”
그러나 지금의 아담에게는 이브가 없었다.
번개의 정령이 쏟아낼 뇌전을 숨겨줄 만한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도주에는 평소보다 면밀한 주의가 필요했다.
“왜 이리 늦었어요?”
그렇게 얼마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담이 뒤늦게 합류한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 찬 눈.
누가 봐도 괜한 화풀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을 행동이다.
하기야 첫 임무를 대차게 말아먹어 버렸으니 오죽하겠냐마는.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아담의 실패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담은 변변한 전투 경험 하나 없는 초심자인 반면 상대는 불패의 백전노장이었으니까.
애초에 연금술사들의 만류를 무릅쓰면서까지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는 거다.
“다음부턴 늦지 말아 주세요. 제가 화내는 꼴을 보기 싫다면.”
“..명심하지.”
그나저나 멋대로 계획을 망쳐놓은 주제에 저토록 뻔뻔한 모습을 보이다니.
소년 앞에 선 연금술사, 카이란이 남몰래 한숨을 내쉰다.
강자 앞에서는 누구보다 순한 양이 되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그 누구보다도 잔혹해지는 소년.
솔직히 카이란은 그런 아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왜 저 꼬마의 뒤처리를 내가 하고 있는 거지?
무엇보다 왜 혼자 돌아온 거지? 실험체는 어디에 두고?
“설마 실험체를 빼앗긴 건가?”
“내 잘못 아니에요. 함정에 빠졌다고요. 당신들이 준 엉터리 정보 때문에 말이죠.”
“..그렇군.”
카이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말로만 수긍할 뿐, 누가 봐도 납득한 기색은 아니었다.
아무리 함정에 빠졌다 하더라도 실험체를 빼앗긴 건 아담의 잘못이었으니까.
차라리 시키는 대로 했다면 모를까 계획을 바꾼 건 아담의 선택 아닌가.
그리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본래라면 아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실험체를 데려왔어야 옳다.
하기야 스스로를 ‘유일한’ 번개의 사제라 믿고 있는 저 꼬마에게는 무리한 부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제 누이처럼 멍청하군. 아니 그보다 심한가?’
카이란은 끝내 연금술사들을 저버리고 떠난 마리아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크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대한 자본을 들여 제작한 실험체를 빼앗기는 건 별개의 문제겠지만.
‘들인 돈이야 회수하면 그만이지.’
부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장착해 둔 함정이 잘 발동되면 좋을 텐데.
“이봐요. 듣고 있어요?”
“..그래, 아담.”
“그럼 제 계획에 동의하시는 거죠?”
“..계획?”
생각에 잠겨 있느라 아담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카이란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형편없이 일그러지는 아담의 얼굴.
카이란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이 성격 나쁜 꼬마의 기분을 달랬다.
“잠시 그분의 명령을 생각하고 있었던 거뿐이야. 딱히 네 말을 무시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고.”
“..흠.”
다행히 그런 카이란의 변명이 먹힌 듯, 아담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불같은 성격을 생각하면 맥이 빠질 정도로 가벼운 수긍이었다.
하기야 파라켈수스의 이름을 듣고도 뻣뻣이 고개를 들 수는 없을 테지.
아담이 강하게 나서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느낄 때뿐이니까.
“그래서 뭐라고 했었는데?”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다시 설명하죠. 그러니까 이번엔 잘 들으세요.”
바꿔 말하면 이 ‘오해’가 계속되는 한, 아담의 카이란에 대한 박대는 계속될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작 꼬마 하나가 신경을 건드린다고 해서 정체를 밝히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인데.
카이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듣고 있다.”
“그 라나라는 아이. 그 아이와 제가 결혼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헛소리지?
카이란은 일순 돌려줄 말을 잃어버린 채 입을 다물었다.
듣자 듣자 하니까 이제는 막 나가겠다는 건가?
“그 아이도 계획의 중요 인물인 거잖아요? 저와는 잘 맞을 것 같은데.”
“허..”
평소 사람 간에 급을 나누기를 좋아하던 아담답게 그 와중에도 그런 걸 보고 있었나 보다.
물론, 카이란이 듣기에는 이렇게 정신 나간 소리도 없을 테지만.
‘..이쯤에서 슬슬 분수를 알게 해줘야 하는 건가?’
아무래도 이 꼬마는 제 누이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 건지를 모르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떠올린 잔혹한 말들이 입 안에서 맴돈다. 비틀리는 입매.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렇죠?”
그러나 카이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전과 같은 수긍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참아볼 작정인 거겠지.
‘여기서 처분하느니 조금이라도 더 써먹는 게 낫지.’
카이란에게는 아직 생각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아담의 이런 오만방자한 부분조차 그의 계획에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지.
그의 정체를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계획을 따라야 한다. 네 계획은 이미 실패했으니 불만은 없겠지?”
“네? 하지만 그건..”
“불만, 없겠지?”
“..그러죠 뭐.”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끄덕이는 아담.
카이란은 일순 아담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좋아. 우선 그 옷부터 갈아입어라.”
그렇게 새로운 ‘연구소장’, 카이란 아틀라스의 활약이 시작된다.
* * *
그 이해할 수 없는 답변에 니콜라스의 얼굴이 망연자실해졌다..
“..뭐라고?”
무심코 내뱉은 되물음.
반면 이브의 얼굴은 태연했다.
“그게 그리 이상한가?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게?”
“아니, 그건 알고 있지만 뱀파이어와 뭐의 혼혈이라고?”
“혼혈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군.”
이브가 니콜라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나는 호문클루스. 연구소에서 제작된 인공 생명이니까.”
“그럼..”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한 니콜라스.
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파라켈수스의 기술력은 이미 하나의 생명을 창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거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새삼 벨이 왜 이브를 두고 왜곡점이라 말했는지 알 것 같아지는 순간이다.
세상에 반전 같은 건 없었다는 거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생포 따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인공 정령에 이어 인공 생명이라..’
도대체 파라켈수스는 뭘 하고 싶은 걸까.
태양신을 부활시킨 이후에는 이 세상을 기계 문명으로 뒤덮을 생각인가?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이번에는 네가 아니라 다른 꼬마에 대해서야.”
침묵한 니콜라스를 뒤로한 채 나는 꼬마를 향해 질문했다.
“아담을 말하는 거군.”
“그래, 그 번개의 사제. 그놈은 아무리 봐도 인간으로 보이던데 대체 무슨 종족인 거지?”
“..그게 무슨 뜻이냐. 아담은 분명 인간일 텐데?”
글쎄. 평범한 인간도 사제가 될 수 있다면 고작 그런 꼬마를 고르진 않았을 거 같은데.
뭐든 간에 이 녀석이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인가?
‘평생을 연구소에서 살았다더니 확실히 아는 게 별로 없군.’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 더 이상 물어볼 만한 건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남은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왜곡점의 처분이라..”
“..그게 무슨 뜻이지? 왜곡점? 처음 듣는 말이군.”
“..그렇겠지.”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이긴 했다.
내가 뭘 해야 할지는 명백했으니까.
당장 발두르를 뽑아 이 꼬마를 죽이는 것.
‘역시 조르디네스의 말을 듣지 말 걸 그랬어.’
그런데 어째 쉽사리 손이 나서질 않는다.
사실, 나 스스로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세상을, 마족을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시간을 거슬러 온 내가 이런 망설임을 품고 있다니.
“..데이브.”
그 순간 가만히 있던 벨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까닭 모를 슬픔을 담고 있는 눈빛은 무언가 많은 것을 전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고 있어.”
아무래도 선택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대로 발두르를 뽑아 들었다.
그대로 이브에게로 향하는 시선.
“..아저씨?”
라나의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아마 라나는 내 행동에 반대할 테지.
그러니 여기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나는 라나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검을 고쳐 쥐었다.
그와 동시에 붉게 타오르는 검.
“어스름.”
그러나 그 순간, 내 검이 갈라낸 것은 이브의 목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드는 무수한 탄환의 비.
그런데 왜 이렇게 안도감이 드는 것일까.
스스로도 알지 못할 감정을 연신 삼켜낸다.
나는 그대로 빗발치는 탄환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