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
13화 – 킹 메이커.
쿠르르르릉!
이 순간. 나의 몸은 하나의 문이 되어 있었다.
이곳의 모든 사기가 나의 몸을 통과하며 적을 향해 쏟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파도나 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직 나의 통제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현재의 내 역량으로는 이렇게 막대한 힘을 가지고도 단순히 쏟아내는 것밖엔 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허나 그렇다고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파도가 해일만큼 거대해진다면 왕국 하나도 너끈히 멸망시킬 수 있는 법이니까.
양이 많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라는 뜻이다.
쿠웅!
그렇게 파도가 밀려간다.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나는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했다.
적들과 함께 내 안에 충만하게 차 있던 힘들이 사라져 버린 탓이다.
몸을 지탱하려 애썼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나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진이 빠져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고작 하급 익스퍼트에 불과한 주제에 그랜드 마스터 급의 힘을 사용했으니.
그야 반동이 올 수밖에 없을 테지.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 거다.
“쿨럭.. 후우..”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일시적으로나마 출력을 높였는데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이 몸이 쓸만하다는 거니까.
최소한 그랜드 마스터.. 용사의 최소 기준치를 충족할 정도의 그릇은 된다는 거다.
뭐, 그 정도 실력으로 벨제뷔트에게 덤볐다가는 시작과 동시에 죽어버리겠지만.
‘그래도 하급 익스퍼트의 몸으로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야. 잘 키워 보면 어지간한 용사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올라설 수도 있다는 거니까.’
물론 지금으로선 그렇게까지 강해질 이유가 없긴 하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나는 무릎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피가 부족한 탓에 머리가 핑하고 도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하급 재생의 권능이 힘겹게 전신을 휘감고 있는 덕분이다.
띠링!
그리고 그 뒤를 잇듯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퀘스트 완료 내역이 있습니다. 완료 내역이 다수입니다. 지속 퀘스트 마법소녀를 위기에서 구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오러 스텟이 10, 근력 스텟이 8 증가합니다. 이어서 실험체들을 구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민첩이 9 상승합니다.]띠링!
[히든 퀘스트 달성. 발견되지 않은 왜곡점을 찾고 수정하셨습니다. 수정 내역이 다수 있습니다. 보상 측정 시작.]띠링!
띠링!
[전투를 통해 권능이 진화하였습니다. 과다한 마기 사용으로 인해 회복 기간 동안 스테이터스에 페널티가 가해집니다. 마기 스텟이 대폭 증가하였습니다.]귀가 아플 정도로 이어지는 알림음.
나는 잠시 그 내용을 곱씹었다.
퀘스트 완료에 대한 보상은 지금과 다를 바가 없으니 넘어가더라도 문제는 없겠지만.
왜곡점의 수정에 대한 보상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왜 아까보다 보상이 줄어든 거야? 이거 서운해서 일할 맛이 나겠어? 내가 안드로이드랑 키메라를 얼마나 많이 잡았는데. 오러를 한 200 정도는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뭐? 200점? 진짜 양심 좀 가져라. 좀.. 네가 그러니까 마족들이..”
억울하다는 생각에 불만을 말해봤지만 벨의 상태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보상을 더 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이유가 없을 테지.
나는 의미도 없이 이어지는 벨의 말을 흘려들으며 품속의 거울을 꺼내 들었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권능이 진화하였다는 말은 조금 솔깃했던 탓이다.
‘오픈.’
띠링!
[상태창이 열립니다.이름: 데이브 클락.
성별: 남자.
나이: 25세
종족: 하프 데몬.
스테이터스: 근력 40(-29) / 체력 50(-30) / 민첩 56(-40) / 오러 121 / 마기 187
상태: 과도한 마기 운용으로 인해 신체 능력에 제약이 생깁니다.
권능: 희미한 마왕의 눈 / 나약한 에테리얼 바디 / 훌륭한 화염의 잔 / 숨가쁜 흡정법 / 하급 재생 /
허술한 마기 조종]
그런데 확실히 무리하긴 한 모양이다.
정말로 내 몸이 이 정도로 망가졌단 말인가?
스테이터스에 붙은 빨간 글자에 눈이 아프다.
아무래도 내가 몸을 혹사하긴 한 모양이다.
하기야 인간이 된 주제에 마족이었을 때처럼 몸을 굴렸으니 오죽하겠냐마는..
‘그래도 결과는 나쁘지 않아.’
그 과정에서 권능이 두 개나 진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벨이 들었다면 또 양심이 없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에테리얼 바디와 흡정법이 진화할 줄은 몰랐는데.. 혹시 쓰면 쓸수록 진화하는 구조인가?’
생각해 보면 이번 전투에서 저 두 권능을 자주 사용하기는 했다.
에테리얼 바디의 경우는 그야말로 상시 가동이라 할 수 있었고 흡정법은 이곳의 원념을 빨아들이기 위해 한계를 넘어 가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재생이 진화하지 않은 건 좀 의외네.’
그래도 기왕이면 재생까지도 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 이것도 양심 없는 생각인가?
그러나 나로서는 재생의 권능이 진화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재생 스킬만 멀쩡했어도 이렇게 지쳐버리는 일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후우.. 뭐든 간에 일단 자리를 옮겨야지. 이봐, 이제 그만 가야지?”
그런데 마법소녀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
“라나?괜찮니? 무슨 일이야?”
벨은 곧장 마법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신이라는 얘가 환자를 내팽개치고 가냐..
그런데 마법소녀는 왜 저기서 무릎을 꿇고 있는 거지?
여기에 있는 건 시체랑 백골뿐인 것으로 아는데..
“…아, 그렇군.”
마법소녀의 어깨 너머로 조금 전 이곳에 던져졌던 시신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어루만지고 있는 마법소녀의 손 역시도.
아마 아는 얼굴인 거겠지.
창백한 얼굴과 싸늘하게 식은 피부.
떠나버린 생명과 가슴에 난 구멍.
그 위로 떨어지는 것은 눈물인가?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거죠?”
담담히 던져진 질문에 나는 답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 감정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야 할까.
고작 2개월 정도 만난 것에 불과한 이의 죽음에 왜 저토록 슬퍼하고 있는 것일까.
“..아는 사람인가?”
“네, 맞아요. 저에게 참 잘해 줬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고 해야 할까.
실험체들은 각박한 상황 속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서로를 아꼈던 모양이다.
내가 알고 있던 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분들은.. 죽어서도 가족의 곁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겠군요.”
“가족에 대해 들은 건 없나? 그 사람만이라도 데려다줄 수는 있을 거 같은데.”
“..아뇨, 들은 적 없어요. 집이나 가족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야 희망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팔려 온 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설령 이곳을 나가게 되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그럼 이곳에서 장례를 지내는 수밖에 없겠군.”
“가족들이 찾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리가 이 시신들 전부를 가지고 떠날 수는 없으니까. 아마 곧 추격자가 찾아올 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떠나고 싶은 심경이야.”
“…”
“그래도 정 신경 쓰인다면 이곳의 벨에게 부탁해 봐라. 환영 마법으로 이곳의 풍경을 저장해 놓는다면 언젠가 그들의 부모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해주실 수 있나요? 벨..님?”
말하기가 무섭게 마법소녀는 벨을 향해 눈빛을 반짝였다.
내 입장에서야 쓸데없는 걸 신경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에 들든 아니든 간에 결국 나는 마법소녀를 구원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화염의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게 아쉽군. 부싯돌도 없는 상황인데.”
“마기가 있으면서 마법은 못 쓴다고?”
“마법사들의 마나와는 다르니까. 마법을 쓰기 위한 권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아까부터 요란하게 파직거리고 있는 것이 불을 붙이기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화르륵!
생각대로 불이 잘 붙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조촐한 장례가 진행되었다.
비록 참석한 이들은 페어리에 인간 한 명 그리고 전직 마왕밖에 없는 조촐한 장례였지만.
아마도 원혼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일이겠지.
-우우우우우..
그러나 그 만족은 복수를 마쳤기에 생겨난 것은 아닐 거다.
혹시 알고 있는가? 저들이 남긴 미련은 분노보다는 슬픔이 더 컸다는 걸.
억울하게 살해당한 것에 대한 원한이야 분명 있겠지만 수백 년의 시간은 마왕에게도 긴 시간이다.
제아무리 영혼밖에 남지 않았다지만 한때 인간이었던 이들이 견딜만한 시간은 아니라는 거다.
결국, 아무리 커다란 원한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는 거겠지.
-..고마워요.
허나 세상의 모든 감정이 사라진다 해도, 고독감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진다.
설령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그들과는 달리,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점차 세월에 매몰되어 버리는 까닭이다.
그들이 살았던 고향은, 그들을 기억하던 친구들은, 사랑했던 가족들은.
기억 속의 풍경은,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기억하겠노라, 잊지 않겠노라.
그리 말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그 기분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일 테지.
‘나도 모르게 감상적으로 되었군. 진짜 인간 행세라도 할 작정인가?’
그러나 나는 저들을 송별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다. 하염없이.
* * *
티그리스 왕국의 왕성.
그중에서도 왕족만을 위해 준비된 연무장에는 오늘도 한 소년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 3왕자 미카엘 아볼로 아트레이 티그리스.
3왕자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왕위 계승을 노리는 야심 찬 소년이었다.
“스승님!”
허나 그런 염원과는 다르게 현실은 암담했다.
솔직한 말로 미카엘이 왕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그는 장자가 아니었으니까.
왕족이나 귀족에게 있어 장자라는 존재는 특별한 것이고, 정말 어지간한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아버지의 작위를 계승하는 것이 확실시되는 존재였던 탓이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차남까지는 작위를 계승할 확률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기는 했다.
장남이 병에 걸려 죽거나 불구가 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삼남에 불과한 미카엘로서는.
심지어 장남과 차남에게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는 이 상황에서는.
그가 왕이 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오늘도 열심이시군요. 어디.. 얼마나 늘었나 볼까요?”
그러나 미카엘도 바보는 아니었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다는 거다.
허나 그라고 해서 터무니없는 꿈을 품었겠는가.
당연히 그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다름 아닌 그의 스승이. 왕국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검성 파라켈수스가.
왕국의 모든 국민과 귀족들의 지지를 받는 그가 미카엘을 지지하고 있었으니까.
사실상, 정통성만 부족할 뿐이지 그 외의 것들은 차고 넘치는 상황이라는 거다.
“오늘은 스승님도 놀라실걸요? 보세요! 제 검을요!”
“오오.. 대단하군요. 설마 왕자님의 나이에 벌써 오러를 깨우치시다니..”
“스승님께서 주신 영약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보기엔 좀 그랬는데.. 이렇게 효과가 뛰어날 줄 알았다면 진작 먹을 걸 그랬어요!”
“하핫. 원래 효과가 좋은 약이 맛은 없기 마련이죠. 원하신다면 다시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어? 정말요?”
“물론이죠. 뭐, 그 전에 검 실력부터 봐야겠지만요.. 음?”
그런데 파라켈수스와 미카엘이 자세를 잡으려던 찰나, 연무장을 찾아온 불청객이 있었다.
“파라켈수스 님!”
“너 뭐야? 뭔데 방해를 하는 거야? 죽고 싶은 거야?”
“헉! 와, 왕자님! 그, 그게.. 주, 중요한 연락이라고 하셔서..”
“그래? 그럼 그 편지만 놓고 가.”
“그, 그렇게 하겠습..”
“잠깐. 생각해 보니 하나 더 놓고 가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네? 무, 무엇을 말씀입니까?”
그와 동시에 왕자의 검날 위로 미약한 오러의 빛이 맺힌다.
오러 익스퍼트라고 칭하기엔 미진한 검이다.
그러나 전령 하나의 목을 베기에는 차고 넘치는 위력일 테지.
“상황 판단 하나 할 줄 모르는 네놈의 쓸데없는 목. 그것도 두고 가야 하지 않겠어?”
왕자의 눈이 스산하게 빛난다.
전령은 겁에 질린 듯 그 즉시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시? 다시라고? 지금 너에게 다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왕자님. 그쯤 하시지요.”
그래도 다행히 그를 제지하는 이가 있었다.
왕자의 스승, 검성 파라켈수스였다.
“하, 하지만 스승님! 이 녀석이 저와 스승님의 대련을..!”
“허허.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왕이 되려는 자는 매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죠.”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할 테니 수련을 계속해 주십시오. 올해 안에 완전한 오러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죠.”
“..네!”
반색하는 왕자를 뒤로한 채 파라켈수스는 전령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는 곧장 전령에게서 받아 든 편지를 펼쳤다.
‘소장에게서 온 연락이군. 그런데 이건 뭐지? 마법소녀 계획이 성공했다고?’
줄곧 유지되고 있던 그의 평정이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