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 데이브 클락(1)
“..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여명검이 뱀들을 갈라내는 순간, 나는 형언하기 힘든 불쾌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에서 괴리감이 느껴지는 감각이다.
“..벨?”
사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었으니까.
“..여긴.”
여신 아리벨과 조우했던 그 순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데이브 클락이 되어가던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리벨의 방이잖아?”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
쌓아 올린 블록들이 무너지는 것처럼 뒤바뀌는 풍경.
연금술사와 괴조의 모습이 사라지고, 눈에 익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돌아오셨군요.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공간 정체불명의 생물이다.
거대한 날개와 보이지 않는 얼굴. 빛나는 몸과 찬란한 지팡이.
이 공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그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
그런데 어째서일까.
분명 처음 보는 생물인데도 불구하고,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휘몰아치는 바람 한복판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것.
아리벨의 천사.
“네가 나를 부른 거냐?”
-아니요. 당신을 부른 건 제가 아닙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어디까지나 당신이죠.
그런데 묘하게 공손한 태도군.
천사라면 분명 더러운 마족의 영혼이 들어왔다면서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제가 그럴 리가요.
“..설마 생각을 읽는 거냐?”
-아뇨. 그냥 당신의 표정이 좀 노골적이어서요.
확실히 천사는 천사라는 건가?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런 것치고는 어째 나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눈치지만.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하는 거지?”
-글쎄요. 당신이 여기에 오게 된 건 어디까지나 척마의 가호 때문이니까요. 자력으로 돌아가긴 힘들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척마의 가호가 날 죽이기라도 했다는 건가? 분명 공격은 베어냈을 텐데?”
-그게 문제죠. 왜냐하면 연금술사들의 목적은 마기를 지우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척마의 가호를 깃들게 하는 거였으니까.
나는 그 말에 가만히 손을 쥐어보았다.
인간의 것이 아닌, 마족 특유의 창백한 손이 보인다.
뛰지 않는 심장과 차가운 피.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보면, 가호에 의해 억눌렸던 권능들이 느껴진다.
“..튕겨 나간 거군.”
-네, 당신은 죽은 게 아닙니다. 데이브 클락의 몸에서 쫓겨난 것뿐이죠.
그럼 지금까지 내가 들어가 있던 몸은 어떻게 된 거지?
설마..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설마 그 몸이..”
-네,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갔죠.
미치겠네 진짜.
* * *
푸른빛이 몰아치고, 데이브가 눈을 뜬다.
여기는 어디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나는 분명 여신님과 약속하고..’
무심코 내린 손에 무언가 복슬복슬한 게 느껴진다.
“우왁! 이건 뭐야?”
“푸르릉?”
의아하다는 듯한 기색의 솔레이.
그러나 상황을 파악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카이란의 공격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히이잉!”
솔레이가 지면을 향해 내려간다.
거의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급격한 하강이다.
본래의 데이브.. 아니, 벨제뷔트였다면 눈 하나 깜짝 않고 견뎠을 움직임.
“으, 으아아아악!”
그러나 평범한 목수였던 데이브에게는 버거울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데이브가 솔레이를 끌어안은 채 비명을 내지른다.
솔레이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멈춰 설 수는 없다. 솔레이의 걸음이 종횡무진 하늘을 누빈다.
데이브는 이제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한 채 솔레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벨이었다.
“너, 혹시 데이브야?”
“여, 여신님? 여신님이죠?”
“와, 일이 이렇게 된단 말이야?”
벨은 데이브를 보는 순간 모든 사정을 간파한 것 같았다.
하기야 평소의 시니컬함은 어디 가고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이상함을 깨닫겠지만.
“데이브. 일단 허리부터 펴고 앞을 봐!”
“네, 네? 뭐라고요? 여기서 어떻게..!”
“시키는 대로 해! 설마 죽고 싶은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감히 여신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는 것일까.
데이브는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몸을 떨면서도 허리를 세우려 노력했다.
물론,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국 다시 솔레이의 목을 끌어안는 그.
“카이란이 눈치채면 끝이야. 지금 네 상태를 알면 모든 게 끝이라고!”
“하, 하지만 이건 약속이랑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대로 포기할 거야? 클로드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거냐고!”
“..클로드.”
하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일까.
데이브는 이내 결연한 얼굴로 허리를 세운다.
그런 데이브의 뺨 옆을 스치는 탄환.
“으악!”
뺨 위로 그어지는 붉은 선과 그대로 흘러내리는 피.
아무래도 지금 그의 몸에는 에테리얼 바디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필시 벨제뷔트의 영혼이 빠져나간 탓이겠지.
데이브의 마음이 공포로 물든다.
“그래, 잘하고 있어!”
그러나 설령 비명을 지를지언정,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몸을 떨고 있긴 하지만 눈빛만큼은 결연하기 그지없다.
사실, 그런 데이브의 행동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모양새가 조금 우스워서 그렇지 솔직히 누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감히 머리를 들 수 있겠는가.
“그, 그런데 이제 뭘 어떻게 하죠?”
“..싸워야지.”
“네? 제, 제가요?”
물론, 그것이 용기일지 만용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터다.
“우선 상태창을 열어봐. 벨제뷔트가 사라졌으니 네 상태창에도 변동이 있을 거야.”
“제, 제 상태창이라고 해 봤자 별 건 없을 텐데..”
“글쎄. 과연 그럴까?”
의미심장한 벨의 목소리에 데이브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열리는 상태창.
띠링!
[상태창이 열립니다.이름: 데이브 클락.
성별: 남자.
나이: 28세
종족: 인간.
스테이터스: 근력 210 / 체력 205 / 민첩 221 / 오러 1900
가호: 성찰의 가호 / 길잡이의 가호 / 장인의 가호 / 요리의 가호 / 화염의 가호 / 광휘의 가호 / ???의 가호]
그런데 어째 뭔가가 많이 바뀐 것 같다?
“28세..? 벌써 3년이 지났단 말이에요?”
“..지금 그게 중요한 거니?”
“아 참. 그랬지. 대체 저 정신 나간 스테이터스는 뭐죠? 그리고 저 물음표가 달린 가호는 또 뭐고요?”
“어째 처음 보는 가호다 싶더라니.. 역시 그 가호는 네 몸에 내려진 가호였구나.”
벨의 눈빛이 흔들린다.
어쩌면 그 가호들은..
‘지금은 전투에 집중하자.’
벨이 고개를 휘저으며 생각을 털어낸다.
이 순간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데이브일 테니까.
“요약하자면 이런 거야. 지금 네 힘은 어지간한 기사의 것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
“..그럼 저것들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다는 건가요?”
“물론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벨.
그런데 그 순간, 카이란이 탄 괴조가 아틀라스 1호에게 날아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디선가 뱀을 닮은 로봇이 날아와 합류한다.
“도대체 왜 안 죽는 거냐! 데이브 클락! 어떻게 척마의 가호를 견딘 거지?”
이어지는 것은 울분에 찬 카이란의 목소리다.
그와 동시에 융합하기 시작하는 로봇들.
“이렇게 된 이상, 합체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거대한 날개와 뱀을 닮은 검을 쥔 거인이다.
합체 로봇 아틀라스. 카이란의 최고 걸작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음, 아무래도 정면으로는 힘들 것 같네.”
이어지는 벨의 말에 데이브가 울상을 짓는다.
* * *
그러니까 이런 말이군.
척마의 가호는 말 그대로 마를 ‘밀어내는’ 힘이라는 것.
“마왕 벨제뷔트의 죽음도 그런 이유였겠군. 영혼을 잃어버린 육신이 붕괴해 버린 거야. 지금처럼 육신을 맡아줄 영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마왕 벨제뷔트라..
“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아뇨 그냥. 남 일처럼 말한다 싶어서요.
천사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귀를 찔러 든다.
어딘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웃음이다.
‘어째 이 천사가 더 여신처럼 느껴지는데? 하기야 벨에 비하면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그런 것보다 문제인 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다.
척마의 가호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이브 그놈에게 모든 걸 맡겨둘 순 없지 않겠나.
다른 일이라면 모를까 그놈이 싸움을 잘할 것 같지도 않은데.
“..역시 부숴야 하나?”
-부순다고 해서 부술 수 있을 것 같나요?
“..아니. 솔직히 내 손만 아플 것 같군.”
웬만하면 말릴 법도 할 텐데 그냥 웃고 마는 천사.
하기야 발두르는커녕 무기 비슷한 것도 없는 내가 신의 공간을 어떻게 부수겠나.
‘잠깐..’
그런데 이 공간을 보면 볼수록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왜 그런 걸까?
처음엔 분명 전생의 방에서 본 공간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분명 본 적이 있어. 그것도 아주 최근에.’
마음을 가라앉힌 채 생각에 잠긴다.
조급함을 버리고 머리를 맑게 하는 거다.
“..심상 공간.”
-네?
“이곳은 아리벨의 심상이었군.”
나는 한참이나 허공을 노려보고서야 비로소 이곳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진작 깨닫지 못한 것일까.
이전에 노드릭 때문에 내 심상을 본 적도 있었을 텐데.
설마 신의 공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심상이었단 말인가?
-생각보다 빨리 눈치채셨군요.
“너도 알고 있었다는 거군. 그런데 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지?”
-그냥.. 당신을 보고 있으면 즐겁거든요.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악마라면 모를까 천사가 이런 말을 하니 징그럽기 짝이 없다.
‘..하던 일부터 계속하자.’
아무튼 실체를 알았다면 이야기는 간단했다.
나의 심상으로 아리벨의 심상을 열어젖히는 것.
나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 내면의 형태에 집중했다.
사실 그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에 직접 방문해 보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완성된 심상.
“..음.”
그런데 이걸 어떻게 밖으로 꺼내야 하는 거지?
활로를 찾았다 싶었는데 금세 또 벽에 막히고 말았다.
-고민이 있으신가요?
그러던 중, 천사가 나를 보며 묻는다.
“..네 할 일 하지 그래? 그렇게 보고 있으니 좀 부담스러운데?”
-그럼 도와드리지 말까요?
“너, 설마 심상을 꺼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냐?”
-글쎄요.. 어떨 것 같나요?
그런데 이 천사는 대체 누구의 편인 걸까.
아리벨의 천사라면 당연히 날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
“..도와다오.”
-그러죠.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 천사에게 줄 만한 건 가지고 있지 않은데?”
-괜찮아요. 그저 제 이름을 불러주시기만 하면 되니까.
고작 이름? 혹시 지금 농담하는 건가?
‘..아닌 것 같은데.’
단순히 장난인 것치고는 태도가 지나치게 진지하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빛이 진심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이름에 무슨 저주 같은 게 걸려 있기라도 한 건가?
“이름이 뭔데?”
-솔리아. 좋은 이름이죠?
글쎄. 어째 솔레이와 이름이 비슷한 것 같아서 좀 떨떠름한데.
그렇다고 말과 닮은 이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 솔리아. 부탁하마.”
-네, 기꺼이.
솔리아는 대답과 동시에 나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눈을 가린다.
어두워지는 시야.
그런데 지금 뭘 하는 거지?
의아함을 느끼던 중, 솔리아의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린다.
-어려워하실 거 없어요. 당신께서 일찍이 하신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내가 전에 했던 일? 내가 뭘 했다는 건데?
-그 뱀파이어의 심상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마음을 휘둘렀죠?
글쎄. 생각해 보면 딱히 내가 뭔가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심상은 어디까지나 내 것이었으니 다루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할 수 있었는데 왜 지금은 못 하는 거죠?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때는 내가 심상 속에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의 당신도 육체가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애초에 무엇을 기준으로 마음과 육신의 영역을 구분 짓고 계신 거죠?
그건..
“아.”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른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런데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일까.
나 자신조차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미처 보지 못했다.
대체 그게 뭐였지? 분명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말로 옮길 수가 없다.
“..이런 거였군.”
그래도 요령은 알 것 같다.
한 번 깨달은 이상,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겠지.
손 위에 뭉쳐 드는 심상.
검은 태양이 세계를 갈라낸다.
나는 그대로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다.
멀어지는 아리벨의 세계.
-..잘 다녀오세요.
그런데 왜 너는 울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