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 도플갱어(1)
데이브와 벨제뷔트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눈다.
그와 동시에 휘몰아치는 유형화된 살기.
그 여파에 밀려난 바람과 구름이 하늘 너머에서 산산이 찢겨나간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영혼이 공명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라나. 괜찮아?”
“..네.”
한편, 니콜라스와 엘리아는 라나와 노드릭, 이브를 데리고 멀찍이 물러섰다.
어쩐지 도망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여기에 남아봤자 데이브의 방해만 될 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라나를 지키고 있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해야 데이브 역시 싸움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니콜라스가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저기서 직접 싸우는 건 힘들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미래밖에 상상이 되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보아하니 지금의 실력으로서는 멀리서 원조하는 것이 한계인 것 같다.
‘..과연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사실, 니콜라스도 마음이 복잡하긴 했다.
벨제뷔트를 상대로 아무것도 못 한 채 패배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마왕의 힘은 그가 예상했던 수준을 아득하게 상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만큼은 니콜라스 역시도 데이브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데이브를 못 믿는 건 아니야.’
물론, 니콜라스 역시 데이브의 능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당장 클라리스와의 전투에서조차 데이브가 없었다면 라나를 지켜내지 못했을 테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안감을 느끼고야 마는 것은 벨제뷔트의 비현실적인 강함이 원인일 것이다.
과연 벨제뷔트가 데이브보다 못하겠냐는 의문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 것이다.
‘이번에도 데이브는 마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거잖아?’
무엇보다 데이브의 마기가 봉인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과거에도 말했듯 기본적으로 마기라는 힘에는 서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상위의 마기를 만나게 된다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거다.
‘데이브의 마기는 이미 사천왕을 넘어섰을 거야. 어지간한 마족이 상대라면 밀릴 일이 없겠지. 하지만..’
그리고 이 순간, 데이브의 눈앞에는 마왕이 존재하고 있었다.
만마를 지배하는 군주이자 마의 화신.
그런 마왕을 상대로 데이브가 어떻게 마기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기묘하군. 왜 너에게서 마기가 느껴지는 거지?”
심지어 벨제뷔트는 데이브의 마기에 대해서도 이미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필사적으로 마기를 숨기고 있던 데이브로서는 허탈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벨제뷔트의 검이 데이브를 겨눈다.
“데이브 클락. 소문으로는 용사라 불린다고 들었는데?”
늪처럼 흘러내리는 마기가 데이브의 어깨를 짓누른다.
강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원래 남의 말은 믿을 게 못 되는 법이지.”
“그렇다면 내가 멋대로 판단하면 된다는 건가?”
벨제뷔트의 눈이 데이브의 심장으로 향한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엔 기이할 정도로 친숙한 기운.
마치 거울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데이브가 그의 사생아일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왕의 눈이 없다는 게 이렇게나 불편할 줄이야.’
새삼 분신의 완성도에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순간 마왕의 눈이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저 남자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연금술사 놈들을 조금 더 닦달해 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붙잡아서 마왕성으로 데려가야겠군.’
벨제뷔트의 붉은 눈이 데이브를 바라본다.
쾅!
순식간에 데이브의 앞으로 이동한 그.
벨제뷔트의 대검이 데이브에게로 휘둘러진다.
상대를 멀쩡히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검격.
아무래도 팔다리 하나쯤은 받아낼 작정인 것 같다.
‘그렇게는 안 되지!”
염제의 눈이 검의 궤도를 쫓는다. 데이브는 발두르를 움켜쥔 채 충격에 대비했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돌이킬 수 없을 거다.
콰직!
그런데 아무래도 타점이 조금 어긋난 것 같다.
검이 부딪힘과 동시에 손목이 꺾인다. 그대로 미끄러지며 다리를 향해 날아드는 검.
다행히 발두르가 데이브의 목숨을 구했다.
데이브는 검의 단단함을 이용해 대검을 흘려냈다.
“큭..”
그 즉시 이를 악물며 물러서는 데이브.
그런데 설마 단 한 번의 검격조차 받아내지 못할 줄이야.
스스로의 실력에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역시 내 팔을 자른 게 우연은 아닌 모양이군. 용사보다 강한 남자라..”
그러나 정작 벨제뷔트는 제법 감탄한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데이브가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한 것 같다.
“힘 좀 세다고 비꼬는 거냐?”
“아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시겠지.”
다음 순간, 데이브의 검이 눈 부신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벨제뷔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오늘 하루에만 벌써 두 번째 여명검을 보게 되다니.
설마 세 번째도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네가 용사인지 아닌지는 의미가 없는 것 같구나!”
검게 물든 벨제뷔트의 검이 강하게 지면을 내리친다.
콰앙!
그와 동시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대지.
지상 위의 모든 것들이 마치 늪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벨제뷔트의 마기가 세계의 섭리를 비틀어 버린 것이다.
“이거야 원 내 얼굴 보고 욕을 할 수도 없고..!”
흘러내리는 지면에 발목이 잠기기 전, 데이브는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순식간에 허공을 박차는 그의 몸. 그의 발끝에 불꽃이 스친다.
화륵!
데이브의 몸이 원을 그리며 검을 내지른다.
햇무리. 원형의 검강이 벨제뷔트에게로 쇄도하는 것이다.
“소용없다!”
그러나 기껏 쏘아낸 검강은 고작 벨제뷔트의 주먹을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다.
유리 파편처럼 박살이 나는 검강.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힘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은 처참한 최후였다.
“진짜 너무하네.”
데이브가 혀를 차며 발을 구른다. 벨제뷔트의 대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데이브.
분명 피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어깻죽지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보통 위력이 아니었다.
마치 시공의 축이 어긋나 있기라도 한 것 같다.
“용케도 버티는구나.”
“이 상처 안 보여?”
다행히 재생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물론, 공격을 흘려내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거다.
상대의 공격을 예측.. 아니,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대응이었다.
데이브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면 당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승산이 없을 것 같다.
서로 간의 힘의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픈.”
띠링!
[상태창이 열립니다.이름: 데이브 클락.
성별: 남자.
나이: 28세
종족: 하프 데몬.
스테이터스: 근력 210 / 체력 205 / 민첩 221 / 오러 2000 / 마기 2000
권능: 염제의 눈 / 잔화의 에테리얼 바디 / 염제의 잔 / 완전한 흡정법 / 불의 재생 /
완성된 마기 조종 / 화염 조작
가호: 화염의 가호 / 광휘의 가호 / ???의 가호]
보아하니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 것 같다.
지금까지 미뤄두고 있었던 숙제를 끝마치는 것.
‘그랜드 마스터.’
그렇게 데이브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 * *
세상 모든 일들이 마음먹은 것처럼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포기와 타협을 일삼고 현실을 등에 업은 채 살아가는 거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허나 애석하게도, 이번만큼은 쉽게 타협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이번에 시도하려는 것은 마음의 검이었으니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거다.
“후.”
나직한 한숨. 나는 발두르의 검신 위로 심상을 쌓아 올렸다.
물론, 표현이 그렇다는 거고 진짜로 그런 건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검 위에 쌓인 마음이 눈에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제아무리 심상이니 마음의 검이니 해 봤자 그것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어려운 거기도 하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 위해선 이 심검을 구현해 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물론,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용사 중 그 누구도 심검을 통해 그랜드 마스터가 된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놈들이 그랜드 마스터가 된 방법도 정석은 아니지.’
그러나 의심할 필요는 없다. 길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당장 용사들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
개중 누군가는 그랜드 마스터가 되기 위해 장장 수십 미터에 이르는 검강을 만들어 냈고, 누군가는 수백 자루의 검을 조종하였으며, 누군가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무형의 검강을 쏟아내기도 했다.
‘의심하지 말자. 나만의 길을 걷는 거다.’
어쩌면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는 것에 정해진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명심한다면 사실, 답은 간단했다.
지금 내 눈앞에는 좁은 길 하나가 놓여있었으니까.
그 길을 걷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두고 볼 이유는 없지!”
벨제뷔트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 대검을 휘두르는 그.
솔직히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보니 나, 엄청나게 강하긴 했구나?’
새삼 과거의 내가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였는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이런 나에게 맞서 싸워야만 했던 용사들에게 조금은 동정심이 들기도 하고.
카득!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호승심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똑같은 수를 몇 번이나 써먹는 거야?”
벨제뷔트의 검에 맞서 발두르를 내지른다.
부딪히는 검날. 환한 빛을 내뿜던 여명검이 잿빛으로 물든다.
일견 이브가 사용했던 개와 늑대의 시간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혹시 나도 모르게 황혼검을 사용한 건가?’
일순 의아함이 들었으나, 나의 오러는 여전히 기분이 나쁠 정도로 정순했다.
휘둘러지는 검.
“크윽!”
나의 검이 처음으로 벨제뷔트를 밀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의 눈이 혼란으로 물드는 순간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한 것 같은데..
‘우연이군. 나도 그런데.’
솔직히 나도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이번에도 시행착오를 겪어야겠지.
의문을 삼킨 채 검을 내지른다. 맞부딪히는 두 자루의 검.
벨제뷔트가 나를 향해 물었다.
“대체 뭐가 변한 거지?”
“그야 내 마음이지.”
잿빛의 검흔을 타고 세계가 불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불의 화신과도 같은 검.
그러나 여전히 적에 비하면 미약하기만 한 힘이다.
‘진정하자.’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상대의 힘이 강하다 하여 절망할 필요도 없다.
내가 데이브가 되면서 무언가를 잃었듯, 나에게도 벨제뷔트에게는 없는 것이 존재하니까.
“클라리스는 이 검을 두고 이렇게 말하더군. 극광여명이라고.”
“너..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거냐!”
대체 어느 쪽 이름을 묻는 것일까.
클라리스? 아니면 극광여명?
뭐든 간에 나로서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극광여명이라는 이름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봐, 내 검은 그렇게 눈이 부시지도, 화려하지도 않잖아.”
“지금 내 앞에서 작명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벨제뷔트에 의해 어둠에 잠겼던 세계가 어슴푸레한 빛을 품는다.
나의 검이 일으킨 작은 변화였다.
클라리스의 검이 여명의 절정을 드러낸다면, 나의 검은 그 시작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늘에 가득한 먹구름. 어둠에 잠긴 세계.
그리고 그 너머에서 떠오르는 모호한 빛.
“회색여명.”
검게 물든 심상에 피어난 나만의 여명.
잿빛의 검강이 벨제뷔트를 향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