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 해츨링 탈환(2)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흩어진 파편들 사이로 피가 흘러나온다.
연금술사들이 붕괴에 휘말린 것이다.
‘저게 왜 무너지지? 혹시 부실 공사인가?’
루카르가 무너진 천장을 올려다본다.
구멍 난 천장 너머로 푸른 하늘의 모습이 보인다.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는 구멍.
누가 봐도 자연적인 붕괴는 아닌 것 같았다.
‘잔해 속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보통은 아닌데.. 어떻게 부순 거지?’
그러나 누가 의도적으로 부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게 저 잔해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보라.
얼핏 보면 드래곤의 둥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가 아닌가.
이 정도라면 설령 돌이 아니라 흙더미라 하더라도 대포 정도는 가볍게 막아낼 거다.
그런데 그런 천장을 저렇게 원형으로 부수는 게 과연 쉽겠는가?
‘하지만 저게 정말 침입자의 짓이라면..’
그렇기에 저 붕괴가 의도적인 거라면, 그 범인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루카르가 희망을 품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는 거다.
‘엄마가 온 건가?’
물론, 그럼에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이긴 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근거 없는 망상은 아닌 게, 지금 상황을 보면 정확하게 루카르가 없는 쪽의 천장만이 무너지지 않았는가.
만약 이것이 루카르를 확보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면..
‘어쩌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루카르가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지독한 후회가 눈 앞을 가린다.
한때는 나가고 싶어 미칠 것 같았던 둥지가 이제는 너무나도 그리웠다.
지겹다고만 생각했던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진다.
루카르는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루카르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아.”
희망은 찰나에 불과했다.
루카르는 이내 절망감에 휩싸인 채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루카르의 부모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을 한 잿빛 머리의 인간.
새빨간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요사스러운 분위기의 남자.
“너로군.”
남자가 루카르를 바라보며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봐도 좋은 뜻으로 자신을 찾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곳보다 더 무서운 곳으로 끌려갈지도 모르겠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루카르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공포가 그의 몸을 휘감는다.
물러서는 그. 그러나 곧바로 벽에 등이 닿는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이대로 끝나는 건가?
루카르의 마음이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너, 괜찮니?”
그런데 그 순간, 남자의 뒤에서 웬 아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루카르의 눈이 그 아이를 따라 움직였다.
떨리는 시선.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
“너는.. 누구야?”
루카르의 앞에는 갈색 머리칼의 소녀가 서 있었다.
혹시 저게 말로만 듣던 요정인가?
루카르는 넋을 잃은 채 소녀와 눈을 마주했다.
“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루카르는 다시 몸을 움츠리며 몸을 떨었다.
“이제 괜찮아.”
소녀.. 라나는 그런 루카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의 손이 루카르의 이마에 닿는다.
“집에 가자. 루카르.”
평소라면 그런 행동에 외려 경계심을 느꼈을 거다.
조금 전만 해도 믿었던 차비에게 배신당했으니 더 그럴 테고.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그런데 어째서일까. 유독 라나만큼은 무언가가 달랐다.
오직 그녀에게만큼은 경계심을 느끼기는커녕 있던 공포마저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변화였다.
“조르디네스를 만났어. 지금은 없지만.. 그래도 노드릭은 함께 있지.”
라나가 루카르를 향해 속삭인다.
루카르는 그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다.
휘둥그렇게 뜬 눈동자.
“노드릭 아저씨가 왔단 말이야?”
아무래도 라나의 말과 행동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루카르가 라나를 따라 몸을 일으킨다.
“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루카르는 이윽고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탓이다. 아무래도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하기야 해츨링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
“못 일어나겠어?”
“응. 배가 너무 고파서 그만..”
“아저씨. 아무래도 이대로 데리고 가긴 힘들 것 같은데요?”
잠시 루카르의 상태를 살피던 라나가 뒤돌아 소리쳤다.
그런데 아저씨라니? 루카르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한다.
조금 전 그가 겁을 먹었던 회색 머리의 남자.
그는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채 차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제법 매섭다.
“그놈 데리고 물러나 있어라. 조금 뜨거울 거다.”
그런데 하필이면 레드 드래곤인 제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라나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루카르의 눈이 소년 특유의 오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저 남자를 보며 겁에 질렸던 건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뜨거우면 얼마나 뜨겁다고 그런 말을.. 우왁!”
그러나 배짱을 부리는 것도 잠시, 루카르는 이내 겁에 질린 채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불의 화신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우고도 남을 종말이 타오르고 있다.
녹아내리는 지면. 루카르는 그 끔찍한 열기에 헛숨을 토해냈다.
“아저씨! 적당히 하세요!”
“음. 힘 조절이 잘 안되네. 미안하다.”
다행히 라나의 외침 덕에 상황이 한결 나아지긴 했다.
그런데 정말로 이게 힘 조절의 문제인 건가?
아무래도 라나 역시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루카르는 얼이 빠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 * *
침입자의 정체를 확인한 차비의 얼굴에 당혹이 서린다.
하기야 저 얼굴을 어떻게 알아보지 못할 수 있을까.
저 남자야말로 그들 연금술사의 계획을 번번이 실패시킨 숙적이거늘.
‘도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설마..!’
차비의 눈이 정령사, 이프리트에게로 향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프리트의 위치에 대한 출처가 데이브 클락이었다는 사실을 들은 것 같다.
물론, 그녀의 ‘족장’에게서 들은 내용인 만큼 확실하진 않았지만.
‘일부러 방치한 건가?’
그러나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데이브는 연금술사들이 이프리트를 데려가는 걸 일부러 방치했다는 뜻이 된다.
아지트의 방향을 알아내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 근방 수십 킬로미터는 생명 탐지 장치로 감시하고 있었다면서?’
순식간에 진실을 찾아낸 차비.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은 그런 제 가설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녀는 데이브에 대해 알지 못했으니까.
음속의 수십 배의 속도로 달리는 솔레이나 상대가 어디에 있건 쫓아갈 수 있는 낙인.
그중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는 거다.
어쩌면, 그냥 모른 채로 있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고.
‘아니, 그냥 운이 나빴던 것뿐이야.’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녀는 의도적으로 데이브의 능력을 깎아내렸다.
그래, 그녀가 바라마지 않았던 꿈이 이렇게 좌절될 리 없다.
이것은 그저 한순간의 시련에 불과하다.
차비는 그렇게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아..”
그런데 저 불꽃은 뭐지?
저 찬란한 불꽃은, 정말로 시련에 불과한 건가?
“이런 미친..”
아니, 저것은 단죄다.
감히 가당치도 않은 꿈을 꾼 하루살이에게 내려지는 신의 단죄.
“으아아아악!”
타오르는 불꽃. 차비의 마음에 공포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변한다.
전신을 뒤덮는 비늘과 길어지는 팔과 다리.
드레이크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그녀가 벽면을 내달린다.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는 몸.
“이, 이런 게 진짜로..”
고개를 내려보면, 그녀의 아지트는 이미 완전히 녹아내린 채 흘러가고 있었다.
연금술사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대로 가면 그녀 역시 같은 결말을 맞이할 테지.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참을 수 없는 공포가 가슴을 물들인다.
어서 이곳에서 도망쳐야..!
“어스름.”
그런데 저 불꽃은 대체 무엇일까.
저 수천 가닥의 검강은 또 뭐고?
“..말도 안 돼.”
그녀의 상식이 또 한 번 무너지기 시작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지옥이다.
그녀가 들은 데이브에 대한 정보 중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 광경이다.
“저게 대체 뭐야! 뭐냐고!”
검강의 그물이 그녀를 향해 날아든다. 세계를 짓무르는 불꽃.
차비는 그것을 피해 전력을 다해 내달렸다.
물론, 의미는 없었다.
설령 그녀가 드레이크가 아니라 드래곤이었다 하더라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아.”
하늘의 그물이 펼쳐진다.
뒤이어 떨어지는 것은 무언가의 조각난 파편이었다.
* * *
음.. 아무래도 좀 지나치게 날뛴 것 같다.
이래서야 라나까지 화상을 입을지도 모르겠는데..
“자리를 떠나지. 내게 할 말도 있어 보이는데.”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이프리트를 향해 말했다.
“..그러지. 하지만 그전에 우선 저 아이부터 데려가야 할 것 같군.”
이프리트의 눈이 해츨링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어째 녀석을 아는 눈치인 것 같은데.
“저 아이라.. 혹시 아는 사이인가?”
“맞네. 저 아이가 아직 알이었을 무렵에는 내가 저 아이를 지키고 있었지. 일종의 태교였지.”
태교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한 거 아닌가?
드래곤의 자식 사랑이 대단하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정령사까지 동원할 줄이야.
“라나, 가자. 그 꼬마는 이프리트가 옮길 거다. 화염의 정령을 쓰면 되겠지.”
“..명령하는 게 자연스럽군.”
“그게 싫으면 내가 꼬리를 잡고 끌고 가도 되긴 하는데.”
“내가 하지.”
진작 그랬어야지.
나는 라나의 손을 잡아 끌어올렸다.
“고생했다.”
“제가 한 건 별로 없는걸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요?”
“좀 바쁜 것 같더라. 뭔가 단서를 발견한 모양이야.”
“단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나를 그레고리오의 위에 태웠다.
우선은 식사부터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까.
* * *
“내 이름은 데이브 클락이다.”
“..이프리트. 정령사다.”
“그래, 알고 있어. 드라키아의 동생이잖아.”
“드라키아를 알고 있나?”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이프리트와 루카르에게 개괄적인 상황을 알렸다.
연금술사들의 목적과 우리가 하는 일.
그들이 왜 납치당했으며 드라키아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솔직히 믿기 힘들군.”
“그렇겠지. 그런데 네가 본 것까지 부정할 생각이야? 애초에 믿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건 너야. 솔직히 해츨링은 이 녀석 말고도 있지만 정령사는 많지 않잖아?”
“..그건 그렇군.”
한참을 달싹이던 입술이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한숨과 함께 쏟아지는 것은 체념이었다.
하기야 그로서도 마음이 복잡하긴 할 거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드라칸이라 들었으니까.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너는 별 도움이 안 돼. 이번에도 맥없이 붙잡혔잖아.”
“..내가 그런 말을 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령술의 수준과는 별개로 네 성향은 전투와 안 맞아. 차라리 라나가 너보다는 더 잘 싸울걸?”
내 말을 들은 이프리트가 라나를 바라본다.
라나는 루카르와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아하니 최대한 루카르를 안심시켜 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런데 저 해츨링, 아무리 봐도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다.
어째 눈빛이 심상치 않다고 해야 할까.
라나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즐겁다는 듯 눈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 속내가 훤했다.
“에휴. 라나 저 녀석. 어른이 되면 고생깨나 하겠네.”
“음? 무슨 뜻이지?”
“아니, 그보다는 본론으로 들어가자. 혹시 미끼가 되어볼 생각 있어?”
“..뭐라고?”
그래, 미끼라는 말에 경계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프리트를 향해 최대한 선한 웃음을 지어 보이려 애썼다.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할 작정이냐!”
어째 역효과가 난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