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 용사의 우울(1)
“지, 지금 용사라고 하셨습니까?”
경악으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 데이브가 적탑주의 눈을 마주했다.
과연 저 반응은 어느 쪽일까.
흔들리는 시선과 흘러내리는 식은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적을 만난 것에 대한 당혹인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유명인을 만난 것에 대한 놀람일까.
‘티그리스와 레온하트가 그랬던 것처럼, 발할라에도 연금술사의 손길이 닿아 있겠지.’
물론 인공 정령 계획을 막아내는 것은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령 하나에만 온전히 매달릴 수는 없다.
연금술사들의 계획은 대륙 전반에 걸쳐 다방면에서 시행되고 있는 반면, 데이브의 몸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갔다간 상대의 계획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거다.
주도권을 얻기 위해선, 상대보다 앞서나갈 필요가 있었다.
‘니콜라스가 잘해주면 좋으련만.’
그걸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니콜라스와 엘리아의 이탈이었다.
두 사람은 한발 앞서 사막으로 출발해 정보를 모아보기로 했다.
사실 이건 데이브가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니콜라스가 그 말을 꺼냈을 땐 조금 놀랐지. 솔직히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째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데이브로서는 니콜라스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사막은 니콜라스의 고향 땅 아닌가.
일행 중에는 그보다 사막에 대해 아는 인물이 없었고, 무엇보다 니콜라스의 마법은 도시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여러모로 니콜라스가 가는 편이 효율이 좋다는 거다.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닌 것 같지만.’
물론, 효율이 모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실제로 니콜라스의 요청을 수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고.
반대로 데이브가 불안감을 느낀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이었다.
‘선대 용사의 종자라..’
니콜라스는 그답지 않게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에 발견한 ‘단서’가 그 원인이었을 거다.
비록, 니콜라스는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데이브는 아마도 그것이 니콜라스의 스승과 관련된 물품일 거라 추측했다.
성검 아켈루스를 니콜라스에게 전해주었다던 전대 용사의 종자.
바꿔 말하자면, 성검도 없이 마왕에게 덤벼들었던 용사의 종자.
니콜라스를 마치 아들처럼 키워주었다던 그.
그를 향한 니콜라스의 마음을 아는 이상, 데이브로서는 감히 니콜라스의 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제발 이상한 일이 안 생기면 좋을 텐데.’
나직하게 토해지는 한숨.
“크흠.”
그 뒤를 잇는 것은 누군가의 헛기침이다.
고개를 들어보면, 불편한 기색의 적탑주가 데이브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지.
그답지 않게 한눈을 팔고 말았다. 확실히 마음이 심란하긴 한 모양이다.
‘그래, 이번 일부터 마무리 짓자.’
우선 이 불길한 ‘예감’은 미뤄두자.
데이브는 그렇게 적탑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적탑주.”
“그.. 생각할 게 많으신가 보군요.”
한동안 방치한 탓인지 적탑주는 제법 기분이 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데이브는 그런 적탑주에게 제 실수를 사과하는 대신 이야기의 본론을 꺼내 들었다.
“사실, 그렇긴 합니다. 어쩌면 이 제국과 마탑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실례를 범했군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앞에 두고.. 가 아니라. 뭐라고요?”
데이브의 눈이 시큰둥한 기색의 적탑주를 살핀다.
그와 동시에 붉어지는 눈동자.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적탑주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건 대체 뭐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해 둘 게 있습니다. 적탑주.”
“뭐, 뭡니까?”
“당신은 연금술사들과 손을 잡고 있습니까?”
초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떨어진다.
하지만 확실히 효과적인 질문이긴 했다.
기껏해야 8서클 수준인 적탑주로서는 무슨 짓을 해도 염제의 눈을 속일 수 없을 테니까.
“여, 연금술사라니. 그게 대체..”
“협력 고맙습니다. 당신은 그들과 무관한 것 같군요.”
“..네?”
“혹시 이 세상의 비밀에 관심이 있습니까?”
적탑주는 이제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기분이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리고 비밀이라니? 고작 그런 말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건가?
‘적탑주 체면이 있지..!’
적탑주의 눈에 결연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가 눈치 볼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눈앞에 있는 것이 최강의 정령사건 용사이건 간에 이 탑에서는 그의 의지를 따라야 했다.
적탑주의 눈이 데이브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천천히 열리는 입.
“만약 제게 협력한다면, 조금 전의 불꽃을 연구하게 해드리죠.”
“하겠습니다!”
그러나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불꽃이었다.
* * *
대륙 최대의 교육기관이라 불리는 상아탑.
흔히들 상아탑이라 하면 마법사들의 육성에만 힘을 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검술과 체술 같은 전투술을 비롯해 측량과 항해, 토목과 건축과 같은 기술에 이르기까지.
마법사들은 하나의 길만을 고집할 만큼 어리석지도, 배타적이지도 않았다.
상아탑은 그야말로 온갖 지식을 섭렵한 하나의 도서관과도 같았다.
그들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광신도들이었으니까.
물론, 마탑이 무려 일곱 개나 있는 도시인 만큼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아이야?”
그래서일까.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상아탑이지만 그중에서도 마법사 학부는 특별했다.
아니, 딱히 특별한 건 없지만 스스로를 다른 학생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여긴달까.
사실, 실제로도 어느 정도의 특권이 있기도 했다.
매년 선출하는 우수 학생에는 늘 마법 학부의 아이들이 포함되었고, 전 학부를 아우르는 학생회장 역시 마법사가 아니면 될 수 없었다.
아마도 마탑의 눈치를 보는 건 학생들만이 아니라는 거겠지.
하기야 어른일수록 그런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긴 할 거다.
“맞아. 저 아이야.”
그런데 오늘따라 그런 마법 학부가 소란스러웠다.
상아탑이 이례적으로 받은 한 편입생이 그 소란의 원인이었다.
“틀림없어.”
하긴,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본디 상아탑의 교육이란 월반 시험을 받지 않는 한 1학년부터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니까.
그런데 갑작스레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7학년에 편입하다니.
“하지만 편입생이라면서? 그 정도면 입학도 못 해야 정상인 거잖아?”
아마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은 두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렸을 거다.
하나는 그 편입생의 마법 실력이 보통이 아닐 경우.
그렇기에 월반 시험을 보는 게 무의미하다 판단한 경우.
“본인 입으로 마법을 못 쓴다고 했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그러나 막상 그 편입생의 실력을 확인한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다.
무언가 뒷배가 있거나, 비리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감히 우리 마법 학부를 뭐로 보고..!”
평소 스스로가 마법사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던 학생들로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겠지.
실력이 부족한 정도여도 문제가 될 판국에 마법을 전혀 쓰지 못한다니?
그 어떤 마법사가 그 말을 듣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쟤들은 왜 저래?”
“음.. 벌써 세 명이 고백했다던데?”
그런데 어째 분노하지 않는 마법사들도 있는 것 같은 건 어째서일까.
심지어 고백까지 했다고?
작년의 우수 학생이자 자랑스러운 ‘마이어’의 둘째 딸 엘레나 마이어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얼굴 좀 반반하다는 이유로 저 마법도 못 쓰는 편입생에게 들러붙어 있는 꼴이라니!
“다들 제정신이야?”
“으악. 엘레나다. 튀어!”
“잡히면 반성문이다!”
마법 학부의 대표이기도 한 엘레나의 등장에 남학생들이 순식간에 산개했다.
그런데 개중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저 멀리 달려가는 금발이 바람을 타고 흔들린다.
엘레나의 기분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은 편입생부터야.’
엘레나가 편입생을 쏘아본다.
숨기지 못한 적대감이 눈빛을 타고 뻗어 나온다.
“고마워.”
그런데 이 편입생, 눈치가 없는 걸까 생각이 없는 걸까.
하기야 뭐든 간에 정상은 아니겠지. 누가 이런 상황에서 감사를 표한단 말인가?
“고맙다고?”
“응. 조금 귀찮았거든.”
“..귀찮아?”
대체 얘는 뭘까?
어떻게 된 게 하는 말마다 심기를 거스르는 거지?
엘레나는 스스로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
“너, 마법을 못 쓴다는 게 사실이야?”
참자. 감정적으로 나서지 말자.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작정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큼 꼴사나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 자신은 자랑스러운 요한 마이어의 딸 엘레나 마이어다.
고작 불법 편입생의 말 따위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아니, 이제 조금은 써.”
이거 봐라. 마법을 쓸 수 있다지 않은가.
그런 것도 모르고 괜히 소문에 휩쓸려 그녀를 매도했다면, 그것만큼 꼴사나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 그럼 역시 소문이 잘못된 모양이구나? 듣기로는 네가 마법을 전혀 못 쓴다고 하던데.”
“아니, 잘못된 건 아니야.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건 조금 전부터거든.”
그런데 뭐라고?
엘레나는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마법을 뭐 어쨌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응?”
“너, 마법사를 우습게 보는 거야?”
“아. 그런 뜻이었구나. 미안, 그런 뜻은 아니었어.”
악의 없는 눈동자가 엘레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맑다 못해 투명한 눈빛을 보고 있으려니 엘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편입하자마자 고백을 받을 만한..
“헉.”
정신 차리자. 그녀는 지금 이 편입생에게 걸린 부정의 의혹을 풀러 온 것 아니던가.
“너, 이름이 뭐야?”
“..레니. 레니 슈나이더야.”
“나는 엘레나 마이어야. 갑자기 소리를 지른 건 미안하지만 나는 학부의 장으로서 너에게..”
“응, 잘 부탁해. 엘레나.”
그런데 왜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는 걸까.
분명 해야 할 일을 하러 온 건데도 불구하고 마치 몹쓸 짓을 하러 온 기분이 든다.
엘레나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레니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다.
“음. 다들 자리에 앉아라.”
때맞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차가운 눈빛이 인상적인 마법사였다.
다섯 개의 원소 마법을 두루 익힌다는 청탑 소속의 중견 마법사 유찬.
그의 눈이 빠르게 주위를 훑기 시작했다.
“거기에 있었군. 네가 그 편입생인가 보지?”
유찬의 시선을 따라 학생들의 눈이 레니에게로 향했다.
누군가는 애정을, 누군가는 경계심을, 또 누군가는 분노를 담은 눈동자.
유찬은 경멸하는 쪽이었다.
스스로가 청탑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로서는 감히 부정을 저지른 자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레니는 그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레니 슈나이더입니다.”
“그래, 슈나이더. 듣자 하니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조금 전에 1서클이 되었습니다.”
“..뭐라고?”
그러나 레니는 유찬의 깔보는 듯한 물음에도 태연했다.
강의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변한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호의가 싸늘하게 식어간다.
조금 전이라니? 마치 이 강의실에서 서클을 쌓았다는 듯한 발언이 아닌가.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건가?”
유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신성한 교실에 자격 없는 자가 들어온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이제는 자신을 능멸하다니?
“..믿기 힘드시겠죠. 하지만.”
“하지만?”
“..그냥 보시는 게 빠르겠네요.”
분노한 사람을 상대로 말은 의미가 없을 테지.
레니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손을 뻗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마력.
손 위로 모여드는 마력이 푸른빛을 띠며 춤추기 시작한다.
“이, 이게 무슨..”
물론, 그게 전부였다면 유찬은 그냥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거다.
지금 이 교실에서 그 정도도 못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마, 마력이 늘어나고 있잖아?”
그러나 그 마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면 어떨까.
마치 무언가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처럼 부풀어 가고 있다면?
1서클. 그래, 저 마력의 양은 분명 1서클이겠지.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마력이 계속 쌓여 나간다면 서클의 개수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
“..신이시여.”
그렇게 레니 슈나이더는.
아니, 라나 클락은 왜 자신이 ‘마법소녀’라 불리는지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