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 토끼와 사막(2)
토인족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들이 니콜라스와 엘리아임을 확신했다.
하기야 마수를 부리는 남자와 불과 바람을 다루는 엘프라니.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 리 있겠는가.
‘문제는 그 두 사람이 어쩌다가 붙잡힌 거냐는 점인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믿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두 사람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수준이던가.
설령 패배했다 하더라도 바람의 결정과 천둥마가 있는 만큼,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는 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물론, 그런 게 가능할 만한 사람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두 사람이기에야말로 범인이 누구인지는 더 명확해지겠지.
솔직히 음속으로 날아가는 두 사람을 정확히 감지하고 그 앞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야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우리의 행적을 생각하면 가장 유력한 건 하나뿐이었다.
연금술사.
애초에 내가 두 사람에게 정보 수집을 우선시하라고 말한 것도 그놈들의 개입을 우려해서가 아니던가.
‘내 경고를 무시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그들을 보낸 건 그들의 실력과 판단력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연금술사와 만나게 되더라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나는 토인족의 눈을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떨리는 눈이 나를 마주한다.
“어..저도 잘 모르는데..”
“모르면서 도망을 쳤다고?”
“아니 그럼 뭘 어떻게 합니까! 당장 죽게 생겼는데!”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는 토인족의 모습에 나는 염제의 눈을 사용했다.
그 모습에 흠칫하며 몸을 떨기 시작하는 그.
태도는 수상쩍기 그지없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우선은..”
“아저씨. 뭔가가 와요.”
그렇게 토인족을 다그치는 것도 잠시. 나는 이어지는 라나의 경고성에 말을 멈췄다.
서서히 일어서는 감각. 그러나 여전히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라나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 터.
“그렇다는 건..마족인가?”
“아뇨, 조금 달라요. 그보다는 아저씨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뭐라고?”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프 데몬. 그것은 비단 인간과 마족 간의 혼혈만을 일컫는 건 아니었으니까.
“언젠가는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마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건 무수한 도적의 무리였다.
낙타를 타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거대한 모래 먼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토인족을 향해 물었다.
“도대체 뭘 했길래 저렇게 끈질기게 쫓아오는 거야?”
“그..별 일은 아니고요. 그냥 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죠.”
“뭐든 간에 네 잘못이라는 거네?”
“저, 저만 버리고 도망치시려는 건 아니죠? 그래봤자 소용없다고요. 이미 당신들도 저놈들의 표적이..”
알게 뭐람. 나는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보아하니 저들 모두가 하프 데몬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열 명 중 하나 정도?
뭐든 간에 저놈들 중에 내 걸림돌이 될 만한 녀석은 없는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도적질해 먹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만..’
“같잖은 마기로군. 고작 그걸 믿고 나에게 덤비려는 건 아니겠지?”
앞서 말했듯, 마기는 보다 강한 마기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나의 검이 짙은 암흑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릴리스의 세계에 다녀온 이후 더욱 강력해진 힘.
“어스름.”
검강의 그물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래 먼지. 귀를 찢어발기는 듯한 파공성.
이윽고 바람이 멎는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이어진다.
나는 도적들과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더 덤빌 거냐?”
사실, 내가 한 것은 낮에 했던 위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적 중 누군가를 죽인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내 힘을 과시한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소드 마스터는커녕 익스퍼트 수준조차 드문 저들에게는 고작 위협 정도로 느껴지진 않을 거다.
남은 것은 오직 공포와 경악뿐이다.
“누, 누구십니까? 혹시 바알님께서 보내신 겁니까?”
그런데 여기서도 바알의 이름이 나오는 건가?
클라리스의 말에 의하면 파라켈수스는 모든 하프 데몬을 죽이려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작 그 협력자인 바알이 하프 데몬들을 살려두고 있었다고?
심지어 연금술사들의 근거지 바로 옆에?
‘어쩌면..’
아무래도 바알 녀석. 조만간 파라켈수스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전 회차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한 것 같지만.
“너희는 바알의 부하냐?”
“..당신이 바알 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충성심이라도 내세우겠다는 거냐?”
“그보다는..은혜를 갚으려는 거죠.”
은혜라..좋은 정보를 얻었군.
아무래도 바알은 이들로부터 얻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파라켈수스로부터 너희를 보호해 주겠다고 하던가? 너희는 그런 거짓말을 잘도 믿어버린 거고?”
“..바알 님을 욕하시려는 겁니까? 그만하시죠. 바알 님과 단장님은 이 세상에 버림받은 저희를 유일하게 거둬준 분들이십니다.”
“과연 그럴까?”
나는 무심코 쓴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점점 더 머릿속에서 분명해지기 시작하는 생각들.
생각해 보면 전부터 이상하다고 여기기는 했었다.
당시 일개 종자에 불과했던 파라켈수스가 어떻게 아리벨을 속일 수 있었던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애초에 아리벨이 파라켈수스를 믿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겠는가.
고작 일개 종자 하나가 신을 속이고 세계를 멸망에 이르게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만약, 그 당시에 파라켈수스를 도운 사람이 있었다면 어떨까.
‘용신과 바알, 파라켈수스까지..배신자가 넘쳐나는 세상이군.’
그런 놈을 믿고 지난 삼천 년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새삼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내뱉을 만한 분노는 아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이유는 뭐지? 설마 아직도 나와 싸워볼 생각인 거냐?”
나는 도적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렇게 겁을 주면서도 괜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들을 그냥 풀어줄 생각이었다.
이 토인족에게 한 것처럼 주술을 걸 생각도 없었다.
이들이 하프 데몬인 이상, 어차피 연금술사들에게 밀고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당신과 싸우고 싶진 않습니다. 물론 당신이 저희를 풀어주실 경우의 이야기겠지만요.”
“풀어주마. 그거면 된 거냐? 흉흉하게 달려오던 것치고는 별거 아닌데?”
“..사실, 저 토인족에게 용건이 있긴 합니다만.”
“뭔데? 물건이라도 훔쳐 갔냐?”
“..아뇨, 저희 단장님을 혼수상태에 빠트린 범인이라 쫓은 것뿐입니다.”
“..뭐?”
그런데 어째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돌아온다.
아까부터 눈을 못 마주친다 했는데 그런 이유에서였나?
고개를 돌려보면 이프리트의 뒤에 숨은 채 쥐 죽은 듯 있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우리를 방패로 내세우려는 건가?
솔직히 기가 찰 지경이다.
“데려가. 어차피 곧 헤어질 생각이었으니까.”
“뭐, 뭐라고요? 그건 너무하시잖아요! 저희가 어떤 사인데!”
“..어떤 사이인데?”
“그거야..크흠. 아무리 세상인심이 각박하다지만 저들이 절 죽일 걸 알면서도 보내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너나 나나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인데 뭐가 문제인 거지?”
내 물음에 토인족의 입이 다물어졌다. 바쁘게 움직이는 녀석의 눈.
그 모습에 도적들의 눈이 다시금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나와 저 토인족이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겠지.
“너는 오히려 우리를 저 도적들에게 팔아넘기려 했던 입장이잖아. 우리가 널 도와줄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제, 젠장..어서 도망쳐야..”
“그건 알아서 하고. 뭐,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저놈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황이지 않던가.
“아, 안내할게요! 안내할 테니까 제발 좀 살려주십쇼!”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마경까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흠.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긴 한데..
귀찮음을 감수하느냐, 길잡이 없이 가느냐..
“이봐, 우선 자리에 좀 앉지 그래? 언제까지 낙타에 타고 있을 거야?”
나는 우선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 * *
토인족의 이름은 생원이라 했다.
그리고 도적단의 부단장이자 쓰러진 단장을 대신해 그들을 이끌고 있는 저 남자.
마족과 인어의 혼혈은 렌 차오였다.
“그래, 단장은 어쩌다 쓰러진 거지?”
“..저희 단장님은 조만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그리 쉬운 경지는 아닐 텐데?”
“..마기의 폭발을 이용하려는 거였죠.”
“실패할 만도 하군.”
렌의 말을 듣는 순간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애초에 마기의 폭주라는 게 그리 쉬운 방법은 아닐 터.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 해도 고생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라나와 처음 만난 실험실에서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힘이 부족할 때면 마기를 폭주시키곤 했으니까.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런 건 일반적인 방법이라 보긴 힘들었다.
자칫 실수했다간 몸이 터져나갈 위험성도 있었고, 무엇보다 안정적이지가 않았으니까.
“..저희도 말려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단장님은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셨죠.”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설마 아직도 사정을 숨길 생각은 아니겠지?”
“아뇨..이렇게 된 이상 말씀드리도록 하죠. 보아하니 당신께서도 마경에 볼일이 있으신 것 같으니까요.”
마경? 설마 이놈들도 마경에서 살고 있었던 건가?
“사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닙니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죠. 불현듯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 것 같았죠. 그리고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렌의 말을 듣는 순간 빛의 정령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생각난 것은 바알이 준비하고 있었던 어둠의 정령에 대한 것이었다.
만약, 바알이 어둠의 정령을 제작하려 했던 것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면..
‘하프 데몬들을 모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나?’
아무래도 바알은 이들을 숨은 칼로써 쓰려고 했던 모양이다.
프로키온이 마수를 드리우고 있던 버들꽃 마을과 적탑주가 기다리고 있던 발할라 제국.
그리고 이곳 사막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선.
도대체 뭘 하려고 한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파라켈수스의 역린을 찌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는 건..바알의 목적과 파라켈수스의 목적은 다르다는 거군. 일시적 동맹 관계라는 건가?’
누군가가 다른 하나를 죽여야만 끝나는 동맹 관계.
바알이 그런 피 튀기는 동맹을 시작한 이유는 아마 하나뿐이겠지.
‘날 노리고 있었던 거군..’
새삼 입 안이 쓰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 동족의 시신과 영혼을 팔아넘기면서까지 이루고 싶었던 게 고작 마왕의 목이었다니.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은 한낱 거짓에 불과했단 말인가?
미심쩍은 구석은 있어도 마족에 대한 사랑과 나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진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니까 네가 한 말을 요약하자면 이런 뜻이군.”
나는 렌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지금 마경에는 무수한 마수의 군대가 있다는 것.”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니콜라스였다.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마수를 다루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그.
그리고 그런 니콜라스가 이곳에 온 이유가 스승을 찾기 위해서였다면..
“인형이라..”
떠오르는 것은 파라켈수스의 목소리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
만약 전대 용사가 종자에게 성검을 넘긴 것이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면..
“해야 할 일은 명백한 것 같군.”
“..길잡이가 필요한 거라면 저희가 맡겠습니다. 마경으로 가는 길이라면 저희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너희가 저놈을 쫓는 이유를 아직 안 물어봤군. 너희 단장이 힘을 원한 이유는 알겠는데 왜 저놈을 죽이려고 드는 거냐? 설마 저놈이 너희 단장을 쓰러트린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런 거라면 차라리 화도 안 났겠죠.”
렌의 눈이 불타오른다. 생원을 노려보는 그.
그와 동시에 생원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걸린다.
“그, 그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본의 아니게 그런 짓을 했다고? 하필 우리 천막을 모조리 무너트려 버렸다고? 너 때문에 연공 중이셨던 단장님이..!”
“저, 저는 그냥 먹을 것 좀 얻어가려다가 실수로..”
“얻어가긴 개뿔 훔쳐 가려다가 들킨 거였겠지!”
음. 아무래도 누구의 잘못인지는 명백한 것 같다.
“칼 빌려줄까?”
“감사합니다!”
“으아악! 생원 살려!”
별빛으로 찬란한 밤하늘 아래, 적막함 속에서 생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