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 진격.
세차게 몰아치는 모래바람.
나는 수차례 검을 휘둘러 폭풍을 잠재웠다.
옆에 있던 생원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 보인다. 나로서는 새삼스러운 이야기였다.
토인족이어서 그런가 이 녀석은 사소한 일에도 놀라고 겁을 먹었다.
“뭘 그리 놀라는 거야? 저기에 더한 것도 있는데.”
그러나 저 눈앞의 재앙에 비하면 내가 잠재운 폭풍은 초라할 뿐이다.
저 먼 곳에서부터 거대한 폭풍이 장엄한 원을 그리며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창공에 맞닿은 바람이 세상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구멍처럼 느껴진다.
맹렬한 바람. 거대한 대기가 망치처럼 나의 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직 마경까지는 수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그랬다.
이래서 마경이라는 건가? 도대체 저런 곳에서 토인족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저기가 확실해? 대체 저기서 어떻게 살았다는 건데?”
“저 폭풍은 계속 있는 게 아닙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죠.”
“조만간이라니? 얼마나 걸리는데?”
“음..적어도 사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확신은 못 합니다.”
사흘이라..빛의 정령은 물론이고 엘리아를 이용해 불의 정령까지 만들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 아무래도 타개책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일단은 마경에 대해 조금만 알아볼까?
“자연적인 바람이 저 정도라면 토인족은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사실 저 바람은 지상에만 영향을 줄 뿐 지하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토인족들은 매번 이 시기가 되면 토굴을 파서 숨어버렸죠. 어째 올해는 조금 빠른 것 같지만요.”
“..시기가 정해져 있다고? 그럼 매년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야?”
“그런 셈이죠. 전설에 의하면 한때는 이곳이 숲이었다는데 그때는 이런 바람이 없었다는 소문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뭐, 그건 말 그대로 전설이니까요.”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말을 맺는 생원.
하기야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숲은커녕 초목 한 그루도 제대로 자라긴 힘들 것 같다.
그 전설이라는 게 얼마나 오래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빙성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럼 저 안에서는 뭘 먹고 살아온 거야?”
“마수들이죠. 저희는 마수의 독에 내성이 있거든요. 저렇게 한번 폭풍이 불고 나면 휩쓸려 죽은 마수의 시체가 엄청나게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사실상 굶어 죽을 일은 없는 거죠.”
“마수라..”
사실 이곳이 마경이라 불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본디 마수라는 존재는 마족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생물들.
마족으로 인해 탄생하고, 마왕이 죽으면 그들 역시 사라진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유독 여기 마경에서만큼은 그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마족이 존재하건 말건, 심지어 마왕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 마경에서만큼은 마수들이 존재해 왔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 최근까지는 꽤 살만했습니다. 마수들이라는 게 앞에 있을 때나 무섭지. 숨어서 다니면 별것도 아니거든요. 가끔가다 운이 나쁘면 샌드 웜 같은 놈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마수들에게 갑자기 지능이 생겼다는 거군.”
“네, 그 남자가 원인이었습니다. 데이브 씨의 일행들을 잡아간 그 남자요.”
생원의 말에 의하면, 그 남자는 마치 마경 내의 모든 것을 죽이겠다는 듯 사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경 내의 상급 마수부터 시작해 지극히 드문 특급 마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마수를 긁어모아 부하로 삼았다는 남자.
당연하게도 이 마경 내에서 그 남자의 진격을 막을 만한 이는 없었다.
토인족은 물론이고 여타 종족들 역시 결집한 마수의 무리 앞에서는 무력히 쓰러질 뿐이었으니까.
전멸은 필연적인 이야기였다.
“용케도 도망쳤군.”
“사실 도망쳤다는 말도 과분합니다. 토인족은 원래 집단생활을 하는 종족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절 보십쇼. 저 하나만 남아서 이제 뭘 하겠습니까?”
“..혼자 살아남은 건가?”
“네, 그렇습니다. 참 비굴한 일 아닙니까? 비참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분하고 괴로워도 일단은 살아야죠. 저는 데이브 님만큼 강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생원은 원래 이곳에 돌아오기를 싫어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답지 않게 말이다.
아마 이곳에는 죽음만이 가득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겠지.
“도적단의 아지트를 찾았을 땐 곧 죽어도 뭔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지가 한참은 지났거든요. 설마 무심코 쓰러트린 천막이 줄줄이 넘어질 줄은 몰랐지만요.”
“나한테 변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예. 압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무심코 넋두리를 하게 되네요.”
“마치 예언자처럼 말하는군.”
“설마요. 예언자는 데이브 님, 당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껏 눈썹을 찌푸린 채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저건..”
거대한 폭풍 속을 가로지르는 그림자.
마치 강처럼, 혹은 산맥처럼 보이는 그것은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바람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설마 저거 용인가?”
“저런 용족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나로서는 처음 보는 형태. 그런데 어째 생원으로서도 아는 바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 모습에 이번에는 이프리트에게 질문했다.
“이봐, 혹시 저거에 대해 알고 있..”
그런데 이프리트의 반응이 조금 묘했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숨을 몰아쉬는 그.
그의 눈은 찢어질 듯 크게 뜨여진 채 저 거대한 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왜 그러는 거야?”
“..저건 용족이 아니라 정령일세.”
“뭐라고?”
이프리트가 나와 눈을 마주했다. 더없이 진중한 눈빛.
그는 명확한 어조로 조금 전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바람의 정령 말일세. 아직 모르겠나?”
“..엘리아.”
정확히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바람의 결정이라고 해야겠지.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저 폭풍을 바라보았다. 바람의 틈새를 비집으며 헤엄쳐 가는 용의 모습이 보인다.
확실히 일반적인 생물과는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긴 하다.
진짜 용이나 용족보다는 어둠으로 물든 사슴이나 강철의 소를 닮은 형태.
나는 그것을 보며 생원에게 질문했다.
“이봐 생원. 조금 전에 폭풍의 시기가 좀 빠르다고 했었나?”
아니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고개를 드는 것은 묘한 확신이었다.
“..안 그래도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습니다. 이 시기에 폭풍이 부는 건 맞지만, 제가 여길 빠져나올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전조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설마 저런 게 있었을 줄이야..”
생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래도 타개책 같은 걸 궁구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그 말인즉, 저 용이 존재하는 한 이 폭풍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니까.
* * *
한편 도적단의 아지트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그렇게 보내는 게 옳았을까요?”
렌의 물음에 올가가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
그런데 다들 말은 안 했을 뿐 내심 도적들 역시 렌의 말에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본래의 그들이었다면 올가의 말을 의심하기는커녕 데이브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렸을 테니까.
‘..내가 잘못한 건가?’
그러나 기묘하게도, 올가는 그들의 마음에 동조하기 시작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었다.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 직후 올가는 마치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만 같은 불안감을.
점차 숨통이 죄어드는 듯한 기묘한 압박감이 느끼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푸른 눈.’
어째서일까. 데이브의 그 푸른 눈이 잊혀지질 않는다.
마치 뒤집을 수 없는 운명을 예언하는 것과 같았던 그의 모습.
세상에 예언자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이 혹하고야 마는 것은 그녀가 약하기 때문이겠지.
“..이만 가자.”
그러나 올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이 아이들을.
그녀가 거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다, 단장님! 뭐, 뭔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거다. 렌의 외침에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 것은.
“..뭔가라니?”
“그게..웬 기계 같은 것들이..”
“기계라고?”
올가는 렌의 말에 망루 위로 뛰어올랐다. 저 먼 곳을 향하는 그녀의 눈동자.
“아..”
이어지는 것은 탄식이었다.
어둠이 드리운 하늘 아래. 저 먼 곳에서부터 강철의 군대가 진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도깨비불과 같은 푸른 안광을 흩뿌리며 전진하는 불멸의 군단.
“..젠장.”
그 숫자는 고작 일만이나 이만 정도가 아니었다.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백만을 넘어서는 강철의 군단이 사막에 찾아든 혹한을 가로지르며 진격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전투 준비!”
올가는 습관적으로 태세를 정비하라 명했다. 하지만 그런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작해야 일개 도적단. 백 명 남짓한 인원들.
대군에 맞서기엔 턱없이 부족한 전력이다.
“..아니, 도망칠 준비를 해라.”
“하지만..어디로 가죠?”
렌의 물음에 올가의 입이 다물어졌다.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상념.
그러나 사막을 휩쓸며 진격하는 저 대군을 피할 장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길이 있다면 마경을 향해 후퇴하는 길뿐.
“다, 단장님!”
“생각 중이니까 조금만 조용히.”
“그, 그게 아니라. 뭔가가 옵니다!”
“..또 온다고?”
도적 하나의 외침에 올가의 눈이 그것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런 미친..”
고개를 들어보면 거대한 강철의 소와 벼락을 부리는 거인이 하늘을 내달리고 있었다.
공기가 절로 떨려오는 듯한 감각.
대기 중에 가득한 정전기에 머리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것은 신의 심판과도 같은 섬광이다.
“다들 달려!”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올가는 곧바로 지면으로 도약하며 창을 들었다.
순식간에 휘둘러진 창이 목책을 부수고 길을 열어젖힌다.
낙타를 타고 내달리기 시작하는 도적단.
뒤를 잇는 것은 강철과 벼락으로 이뤄진 폭우였다.
“마경으로 달려!”
죽음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 * *
맹렬한 바람이 날아들며 얼굴에 부딪힌다.
그와 동시에 사라져가는 검은 먹구름.
뇌전을 무릅쓴 채 구름 위로 떠 오르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구멍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저, 정말로 이대로 가실 건가요?”
생원의 비명이 귓가를 찔러 들었다.
잠시 뒤돌아보면, 그와 함께 그레고리오에 탄 라나가 귀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모으는 것이 보였다.
나는 생원을 향해 말했다.
“입 닥쳐. 바람의 정령이 듣고 있을 테니까.”
“헉.”
그제야 입을 다무는 생원.
한번 경고했는데도 저러는 걸 보면 설마 연금술사들의 부하였다거나 뭐 그런 건가?
하긴, 내가 연금술사라도 저 녀석을 써먹을 것 같진 않지만.
“쯧. 아무래도 들킨 모양인데.”
말하기가 무섭게 바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나는 그대로 라나를 향해 가볍게 경고했다.
“라나, 혹시라도 떨어지게 되어도 걱정하지 마라. 조금만 버티고 있으면 내가 곧 널 찾아갈 테니까.”
“아저씨?”
걱정스레 나를 부르는 라나를 뒤로한 채 검을 뽑아 든다.
아쉽지만 지금은 설명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프리트. 조금 뜨거워도 참아라.”
“이건 조금 뜨거운 정도가 아닌..크헉!”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을 향해 솔레이를 내달린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입을 벌린 용.
나는 용의 목을 향해 검을 겨눴다.
타오르는 발두르의 빛이 더없이 눈부셨다.
“개벽!”
찬란한 섬광이 폭풍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