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
18화 – 아니 그거 오해입니다(2)
쿠르릉!
반복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한 탓일까.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결국 무너져 버렸다.
마족들은 지체 없이 앞으로 나서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아무래도 조금 늦은 것 같다.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젠장.”
치이익!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불꽃.
그 열기에 바닥에 있는 기름이 타들어 간다.
강자로서의 여유는 어디로 갔는지 초조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십장님도.. 느끼셨습니까?”
“그래, 못 알아볼 수가 없지. 틀림없어. 그건 마기였어. 심지어 마족급으로 순도가 높은 마기였지.”
“이 던전에 그 정도로 급이 높은 마수가 있었던가요?”
“..마수의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을 마주한 탓일까.
단탈리안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절로 미간이 좁혀진다.
설마 상대는 정체를 숨긴 마족이었던 것일까? 그 연구소에서는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거고?
‘그럴 리가.’
단탈리안은 자신이 떠올린 가정을 곧바로 부정했다.
비록 아주 잠깐 본 것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상대는 분명 인간이었으니까.
마기가 느껴지기는커녕 인간 특유의 체온과 고동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건 분명 마족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온기였다.
“안드로말리우스. 혹시 최근에 인간과 마족이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 들어본 적 있나?”
허나 그렇다고 제 감각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단탈리안은 다른 가능성을 물색해 보기로 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십장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애초에 마족과 인간은 섞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과거의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그렇죠. 애초에 용사라는 것 자체가 우리 마족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 아닙니까.”
“내가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것 같냐?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으니까 묻는 거잖아!”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그 남자가 하프 데몬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제가 아직 인간의 나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놈은 최소 20살은 넘은 것 같았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단탈리안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 그의 말이 옳았다.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자식을 보기가 힘든 종족이다.
약 100년마다 돌아오는 탄생 시기 외에는 애초에 자식을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은 탄생 주기가 끝나가고 있을 무렵.
남자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는 몰라도 스무 살은 넘어 보였으니 그가 하프 데몬일 가능성은 만에 하나라도 없다는 거다.
불현듯 치솟았던 단탈리안의 의심이 잦아드는 순간이다.
‘가만.. 그 남자의 마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
그러나 그 순간, 단탈리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용병들과 마주한 직후, 남자가 자신의 등 뒤로 숨겼던 어린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에 필적하리라고 여겼던 남자가 고작(?) 자신들을 상대로 도망을 치던 모습까지도.
“..연구소.”
“네? 갑자기 연구소는 왜 찾으시는 겁니까?”
“아까 그 남자와 함께 있던 어린 인간 기억하냐? 메르에게 그 어린 인간의 냄새가 언제부터 나기 시작했는지 물어봐. 아니, 그 연구소에서부터 그랬냐고 묻는 게 빠르겠군.”
“..메르, 혹시 확인할 수 있어?”
단탈리안의 명령과 동시에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이 빛을 발한다.
이른바 번역의 권능이라 불리는, 언어의 장벽을 무시할 수 있는 권능이었다.
“..아무래도 그 연구소에서부터 합류한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렇군. 아니길 바랐는데.”
스스로가 거나하게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단탈리안의 표정이 침통하게 변했다.
아마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 연구소의 정체가 이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겠지.
분명 그 연구소는 인간들이 하프 데몬을 탄생시키기 위해 만든, 또 다른 실수일 거라고.
“쫓아가야겠다. 아직까진 추측일 뿐이니까.”
어째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데이브가 쫓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라나까지도 마족들에게 쫓기게 된 거다.
물론, 단탈리안이라고 해서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데이브건 라나건 간에 그들이 마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본 것은 아니니까.
“..이봐, 너. 깨어있는 거 아니까 일어나지 그래?”
단탈리안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다행히 눈앞에는 적당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다.
마족의 등장이라는 느닷없는 재앙에 휘말려 전멸해 버린 용병대.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를 바라보며 단탈리안은 웃었다.
* * *
“후. 죽는 줄 알았네.”
아무래도 어찌어찌 살아남긴 한 모양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온몸이 쑤시는 건 흠이었지만.
“이러다가 진짜 중급 재생으로 올라가는 거 아닌가?”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일어선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지형을 살핀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길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야, 벨. 너는 나가는 길이 어딘지 알고 있냐?”
“그걸 내가 알겠냐! 계속 주머니 속에 있었는데 어떻게 길을 보라는 거야?”
“쯧. 길 하나도 제대로 못 찾냐?”
“너 진짜!”
나는 벨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예상했던 목적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장소에 와버린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설계자라 해도 길을 찾긴 힘들겠지.
던전 안의 지형은 침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에휴. 되는 일이 없구만.”
마왕 시절의 나라면 곧바로 다시 길을 찾아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지금의 나는 길잡이의 가호가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길치의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머릿속에 완벽한 지도가 있으면 뭘 하겠는가.
정작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데.
하다못해 이정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여기는 던전이다.
인간 놈들을 죽이려고 만든 곳에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거다.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일까.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말했듯, 던전은 살아있었으니까.
그 말인즉슨, 이 고동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곳에는 이 던전의 핵.
그러니까 심장이 존재한다는 거다.
그리고 보통 던전의 출구는 중심부를 기준으로 가장 먼 곳에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 소리를 기준으로 삼아 움직인다면 언젠가 출구로 나갈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던전의 최심부도 비슷한 거리에 있다는 거지만.
“여기가 큰 던전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방향을 잘못 잡았어도 바로 나오면 될 테니까.”
사실 이 점만 잘 숙지하고 있다면 제아무리 길치라 하더라도 출구를 못 찾을 염려는 없었다.
비록 출구로 나가는 과정에서 무수한 함정과 마수들과 마주하게 되긴 하겠지만.
하긴, 이 점에 대해서는 적어도 설계자인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함정에 걸리는 편이 좋지. 그러면 여기가 어딘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걸 거다.
그쪽이 최단 루트인 건 맞았으니까.
문제는 지금 그 방향에는 마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길을 고르는 건 제 발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거다.
“..그나저나 상황이 묘하긴 하네. 설마 연구원 놈들이 아니라 마족들과 먼저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나는 아까부터 정신을 못 차리는 마법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사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내가 쏘아낸 마기 때문인지 추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어느 쪽이건 간에 내가 원인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러게 네가 환영 마법을 쓸 수 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
“..이제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나는 또다시 투덜거리는 벨을 무시하며 마법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슬슬 정신 차려라. 곧 출발해야 하니까.”
“으윽.. 아, 아저씨?”
“그래, 몸은 괜찮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원망스럽다는 듯한 시선.
나는 모른 척 그 눈빛을 무시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지금은 이곳을 나가는 게 먼저였으니까.
“우선 올라가자. 식량도 없는데 오늘 안에는 여길 나가야지.”
“..못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혹시 슬라임 스튜 좋아하나?”
“..빨리 가죠.”
그래, 현명한 선택이다.
나도 슬라임은 먹기 싫었으니까.
그나저나 여기서 나가게 되면 돈이고 뭐고 우선은 요양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이러다가는 강해지고 말고 하기 이전에 어느 날 갑자기 객사해 버릴 것 같았으니까.
“이제부터 너에게 오러 호흡법을 알려주마.”
“지금요? 여길 나가야 한다면서요?”
“그래, 뭐라도 해봐야지. 솔직히 다음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보통 이럴 때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던가요?”
“그런 건 나약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진정한 강자는 언제나 최악의 사태를 가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솔직한 말로만 잘 될 거라고 해 봤자 변하는 게 있긴 하냐?”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오러 호흡법은 입문에만 수개월이 걸린다고 들었는데요?”
“완벽하게 익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그럼 안 배워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만약 내가 여기서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될 거 같으냐. 던전에서 살아 나간다 해도 너 혼자서 뭘 할 수 있지? 고작 2개월 동안 배운 체술로 집에 돌아갈 수는 있는 건가?”
마법소녀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래, 할 말이 없을 테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봤자 2개월의 수련으로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순순히 나를 따라 오러를 익히는 게..
“왜 저만 나가는 게 전제인 거죠? 그렇게 되면 절 두고 가실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제 보니 쓸데없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군.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널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네가 나보다 먼저 죽는 일도 없을 거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거지?”
“하지만 아저씨는 절 싫어하시잖아요?”
“…”
..그래, 솔직히 이 말에는 좀 놀랐다.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눈치는 있다는 건가?
아니, 어쩌면 내가 어린아이 상대로 감정 하나 숨기지 못할 정도로 나약해진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보였다면 미안하군.”
“아뇨, 딱히 티를 내거나 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냥.. 저도 모르게 알게 된 거니까요.”
이것도 아르카나 때문이라는 건가? 참 별의별 곳에 사용되는군.
“..숨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제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것도. 그래서 그 연구원들이 저를 쫓고 있다는 것도요.”
“머리가 좋군. 지나치게.”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가 변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아마도 그 푸른 구슬. 그걸 삼킨 이후부터였을 거예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네 탓은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하지만 제가 싫은 건 맞잖아요? 그런데 왜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저한테 아저씨의 이름을 주고.. 그 용병들한테 욕도 먹었잖아요.”
사실 이건 마법소녀의 오해였다.
아직 내 자아는 데이브 클락보다는 벨제뷔트에 가까운 상태였고 용병들의 말을 참아 넘긴 건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으니까.
마법소녀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데이브라는 이름에 애착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다.
물론, 이 마법소녀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신경 쓰지 마라. 나는 너를 지킨다. 너는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약속했으니까. 반쯤은 강제였지만.”
나는 내 어깨 위에서 움찔하는 벨을 무시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믿어라. 이유야 어떻건 간에, 나는 약속은 어기지 않아.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거든.”
그래, 나는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나 자신이.
우리 마족들 전원이 그 약속에 배신당했다 하더라도.
절망하게 되었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