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 구멍(1)
갑작스레 등장한 사신장들이 병사들의 앞을 지나간다.
소란스러웠던 연무장에 침묵이 찾아드는 순간이다.
“이곳에 용사가 있다고 들었다.”
하기야 사신장이라 함은 호루스족 최강의 전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저 등 뒤의 ‘주홍빛’ 날개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바.
비록 사신장들이 수백 년간 침묵하고 있었다고 한들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자는 없다는 것이다.
“그..누구십니까?”
“용사 이외에는 관심이 없으니 썩 꺼져라.”
“아, 아니 그게..”
“입 다물라 했다.”
제각기 할 말만을 꺼내며 병사들을 위압하는 사신장.
네 명의 그랜드 마스터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에 병사들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개중에 몇몇은 그런 사신장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았지만, 그 역시 길지는 않았다.
결국, 병사들을 훈련시키던 단테가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용사님은 왜 찾고 계신 겁니까?”
“너는 용사가 아니군. 우리는 분명 용사를 찾고 있다고 말했을 텐데?”
“용건을 말씀해 주십쇼. 아무리 사신장님들이라 해도 용사님을 함부로 대할 수는..”
“오만하구나.”
제 일위 루멘의 얼굴에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가 걸린다.
당연하게도, 그 미소에 즐겁다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기가 얼어붙는 것만 같은 살기. 절로 숨이 막히는 것만 같다.
분명 심장이 뛰고 있음에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기분.
단테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봐, 루멘.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데?”
“..흠. 그래, 바로 처리하지.”
남은 이위부터 사위까지의 사신장 럭스, 칸델라, 와트가 루멘을 재촉했다.
루멘의 눈빛이 완전히 살의에 젖어 든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살의가 피부를 찔러 든다.
단테는 눈앞의 남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왜? 설마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단테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사신장이라 한들 같은 호루스족이 아니던가.
그런데 단순히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짓을 벌인다고?
“죽어라. 멍청한 녀석.”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죽음은 현실이었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단테의 목을 향해 날아든다.
단테가 황급히 검을 뽑아 들려 했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
상대의 공격에 비해 단테의 움직임은 너무도 느렸다.
단테는 고통을 직감하며 눈을 감았다.
“커헉!”
그런데 어째서일까. 비명을 내지른 것은 단테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눈을 떠보면, 그의 눈앞에는 반으로 갈라져 버린 루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 뒤를 잇는 것은 푸른 검극이었다.
세 명의 사신장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푸른 날개의 남자.
“용사님?”
검 끝을 타고 피어오르는 여명이 사신장을 몰아붙인다.
눈이 부시다 못해 멀어버릴 것만 같은 광채가 느껴진다.
그 광채에 겁을 먹은 사신장들이 황급히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든다.
“이런 미친!”
물론, ‘고작해야’ 그랜드 마스터 정도가 지금의 아르카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크아악!”
아르카나의 검격이 사신장의 몸을 난도질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상처를 불사르고 육편을 도륙했다.
고통에 일그러지는 사신장의 얼굴.
그러나 아르카나의 공격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자, 잠깐! 우리는..!”
“너희가 누군지는 알 바가 아니야.”
사신장들이 뒤늦게나마 무언가를 소리치려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사실, 그들이 무엇을 말하건 간에 아르카나는 듣지 않을 작정이었다.
헬리오스 형제들이 그 난리를 피울 때도 관여하지 않았던 사신장들이 아니던가.
그런 사신장들이 이제 와서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단테를 죽이려 하기까지 했다고?
“모조리 불살라주마. 더러운 배신자들.”
아르카나는 그 이유를 외신의 개입 때문이라고 보았다.
물론, 아무런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실제로 저들에게선 에테르가 아닌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배, 배신자라니 우리는 그저..!”
“닥쳐.”
검 끝에 맺히는 것은 더없이 투명한 태양이었다.
태양신의 심상을 바탕으로 벼려낸 심검.
“그, 그 검은..!”
사신장의 눈에 경악이 스친다.
여명검을 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태양신의 권능을 사용하기까지 하다니.
설마 당대의 용사는 태양신의 화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제, 젠장. 막아야 해!”
“저걸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그러나 경악도 잠시. 사신장들은 이내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보며 눈을 감아야만 했다.
실로 허망한 최후였다. 아니, 그랬을 터였다.
“..어?”
한참을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 최후에 눈을 떠보면, 웬 꼬마 하나가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르카나의 심검은 그런 꼬마를 겨눈 채 멈춰 있었다.
아르카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무슨 일이냐. 솔루이.”
“..이들을 죽여선 안 됩니다.”
솔루이의 눈에 붉은빛이 나타난 건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 * *
붉은 눈이라..나로서는 복잡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눈빛이다.
“죽여선 안 된다라..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거지?”
바알을 닮은 소년. 바알의 눈을 가진 소년.
언젠가 사제가 되어 태양신의 이름을 널리 떨칠.
그러나 결국엔 그 이름에 얽매여 영겁의 시간을 헤매게 될 영혼.
내가 검을 멈춘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저들은 운명을 비틀 열쇠니까요.”
“..열쇠?”
그러나 솔루이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그런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멸망에 대비해 여러 준비를 하고 있는 건 맞지만 굳이 배신자에게까지 손을 뻗어야만 하는 건가?
괜히 이들을 들였다가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솔루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용사님의 생각과는 달리 저들은 배신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변명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근거가 부족하다.
“설마 내 눈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저놈들이 단테를 죽이려 한 건 진심이었어.”
“네, 그렇겠죠.”
“심지어 지금도 너를 노려보고 있잖아. 표정을 보니 누가 자기들을 구해줬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나는 솔루이를 향해 살의를 드러내고 있는 사신장을 보며 혀를 찼다.
저게 어딜 봐서 무고한 사람이란 말인가.
지금이라도 목을 잘라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젠장..! 나를 반으로 가르다니!”
심지어 그 와중에 한 놈이 더 끼어들기까지 하고 있다.
가장 먼저 나에게 잘려 나간 사신장이었다.
확실히 사신장답게 다른 호루스족들에 비해서도 재생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이래도 저들을 죽이지 말라는 거냐?”
“네, 저들에겐 죄가 없으니까요.”
“..단테가 죽을 짓을 했다는 거냐?”
“아뇨..저는 그저 저들이 병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병이라고? 얼핏 들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다.
나는 등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놈의 몸을 붙잡아 그대로 지면 위에 내리꽂았다.
‘병에 걸린 것 같지는 않은데..? 하긴, 애초에 그랜드 마스터쯤 되는 놈들이 병에 걸릴 리도 없긴 하지.’
그러나 솔루이의 말과는 달리 남자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기야, 호루스족이라는 종족은 태생부터가 병과는 거리가 먼 종족이다.
조금 전만 해도 내 칼에 잘리고도 곧장 재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 호루스족의 사신장이, 그랜드 마스터 씩이나 되는 작자가 병에 걸린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그런다고 해서 보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솔루이의 목소리에는 나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 마음속을 읽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다.
“..무슨 뜻이냐.”
“사신장이 겪고 있는 건 몸의 병이 아니니까요.”
“..마음의 병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이들이 미쳤다고?”
“정확히는..심마라고 해야 할까요?”
심마라고? 그런데 어째 내가 알고 있는 심마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기분인데.
“..미트라.”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 하나가 있었다.
사제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외신에게, 마의 존재에게 손을 뻗었던 패륜아.
“네, 맞습니다. 그 남자가 범인이죠. 전대 사제를 죽인 것도, 사신장에게 외신의 파편을 넣은 것도요.”
“..배신자다운 행동이네.”
외신의 파편.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참작의 이유가 되기는 했다.
지난 세월 사 형제들의 만행을 두고 본 것 역시 스스로의 심마를 다스리기 위함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고.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건 아마도 자신들의 심마에 대해 ‘용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겠지.
‘문제는..’
나는 에테르를 사용해 사신장의 몸을 결박했다. 지금부터 할 일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 솔루이의 눈을 마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깃든 누군가라고 해야 할까.
“바알, 거기에 있는 거냐?”
“..네?”
내가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솔루이의 눈에 깃들어 있던 붉은 빛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구한 눈이 나를 마주한다.
나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본래라면 유폐되어 있어야만 할 바알이 나를 찾아 이 시대에 도달했다는 건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거겠지.
‘뭐든 간에 보통 일은 아닐 테고.’
그 여신조차 7년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만으로 큰 페널티를 짊어져야 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제아무리 정신만을 보내는 것이라 해도 쉬운 일은 아닐 터.
사실상 바알이 한 짓은 자칫하면 영혼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다들 무사한 거냐?”
아무래도 조금 더 서두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 *
인간들의 나라 ‘현’.
역사상 최초로 모든 국가를 통일한 거대한 제국의 황성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저마다 인류의 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겼다 칭송받는 마법사들과 연금술사들.
하나같이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이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들라.”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현국의 황제이자 ‘철혈대제’라 불리는 노인이었다.
젊은 시절, 네 개의 제국으로 갈라져 있던 인간들의 나라를 통일해 버린 전무후무한 제왕.
“그래, 성과가 있었다 들었다.”
철혈대제의 물음에 고개를 조아리던 이들 중 한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흑단 같은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요사스러운 붉은 눈동자를 지닌 그녀.
그녀의 이름은 사마연이었다.
현국에서 대대로 재상직을 역임해 왔던 사마가의 후손이자 그녀 스스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마법사.
“네, 조만간 제왕의 뜻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이제는 저 검을 구멍을 닫을 때가 된 거겠지.”
300년 전, 소국에 불과했던 현국의 재상 사마준.
그는 당시의 현왕에게 현국을 발전시킬 한 가지 방책을 제안했다.
그 방식의 정체는 바로 외계의 존재를 끌어들이는 것.
그렇게 소환된 존재들을 이용해 당시의 강국들을 무너트리고 빈자리를 차지하자는 것이었다.
“300년..길었구나.”
한때는 현국의 충실한 방패가 되어주었던 검은 구멍.
그러나 현국이 세계의 패자가 된 지금, 저 구멍은 그들의 살을 갉아먹는 재앙에 불과했다.
“계획을 시행하라.”
“황명을 받듭니다.’
철혈대제의 명령에 사마연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일까. 대전 안의 그 누구도 그녀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좋아. 이제 이 세상은 우리 사마가의 것이..’
그렇게 사마연이 남몰래 품어온 야망을 되뇌고 있던 찰나.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황성 위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