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 구멍(2)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황성.
“생각보다 잘 타는데?”
나는 하늘에 떠오른 채 사신장들과 함께 불타는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에게서부터 떨어진 푸른 불꽃이 지상의 모든 것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뭐가 문젠데?”
“인간들은 강합니다. 전면전이 벌어졌다가는 자칫 호루스족이 멸망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사신장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하기야 그들은 앞으로 이 세계에서 벌어질 일들을 모른다.
이런 내 행동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건 당장의 전쟁이 아니었다.
“호루스족은 강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안 됩니다. 이건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다고요!”
“인간 전부와 싸우려는 건 아니다. 그저 원흉을 제거하려는 거지.”
“..인간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하나가..아니, 열 이상이 덤벼드는 종족이죠. 그런 종족의 머리를 치고도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아마 루멘의 말이 옳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럼 이렇게 말하면 너희의 생각이 바뀔까?”
검을 뽑아 들어 성을 향해 내리친다.
쿠궁!
검강의 그물이 쏟아지며 성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저 안에는 분명, 이 모든 멸망의 시작점이 존재하고 있을 거다.
“이건 태양신의 명령이야.”
경악에 물든 눈빛이 보인다.
아마도 내 에테르가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겠지.
사신장의 눈빛에는 일전에 보였던 광기가 보이지 않았다.
“..태양신께서 용사님께 직접 말을 전하셨단 말씀입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 다르지. 목소리가 들렸다기보다는..보였다는 것에 가까우니까.”
내가 딱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나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창 위의 메시지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용사 시스템. 용사를 인도하는 신의 이야기가..
‘솔직히 따르고 싶진 않지만..지금은 어쩔 수 없지.’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서릿발 같은 칼바람. 무너지는 황궁의 천장을 단숨에 찢어발기는 폭풍이다.
“쉽게 당해주지는 않으려는 것 같군.”
“..이 세상의 절반을 집어삼킨 자들입니다. 쉽게 당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인간 혼자 세상의 절반이라..그렇게 많은 것을 삼키고도 만족을 못 하다니..역시 지워버리는 게 나을까?”
“..진심이십니까?”
“그럴 리가. 지금 인간을 지웠다간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할 테니까.”
“그 아이라 하심은..”
“잡설이 길어진 것 같은데. 가서 좀 싸워 보지 그래?”
나는 사신장을 묶어두고 있던 에테르를 풀어 헤쳤다.
그와 동시에 일변하는 표정. 나는 그들의 마음이 또다시 심마에 젖어 들고 있음을 간파했다.
당연하겠지만 단기간에 심마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저기서라면 너희의 심마를 떨쳐낼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대로 놈들의 날개를 후려쳐 지상으로 떨어트렸다.
심마에 물들기는 했지만 명색이 사신장씩이나 되는 놈들이니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
“호루스족!”
그보다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저 녀석이었다.
폭풍의 틈새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저 검은 머리칼의 여자.
“마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외신과 직접 계약을 나눈 건가? 어쩌면 세계의 멸망은 단순히 인간의 탐욕 때문만은 아니었던 건지도 모르겠군.”
이쯤 되니, 이 세계의 멸망은 어쩌면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기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렇다.
스스로의 욕망에 지나치게 쉽게 이끌리고, 유혹과 번민을 떨쳐내지 못한다.
탐욕과 분노와 밀접한 외신에게 있어 그런 인간들의 모습은 다루기 좋은 인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지.
“..닮았네.”
그런데 그 모습에서 릴리스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단순한 착각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릴리스를 닮은 인간이 나를 향해 손을 뻗어낸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그 눈동자.
손에서 뻗어 나온 힘에선 익숙한 향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릴리스인 거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그와 동시에 뒤섞이는 풍경.
아무래도 이 여자. 나를 꿈속의 세계로 가두려는 모양이다.
“소용없다.”
허나 그녀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녀의 능력은 릴리스에 비하면 한참이나 떨어졌다.
지금의 나를 잠재우기엔 힘이 부족하다는 거다.
“넌..누구지?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무너져 내리는 황성에 내려선 채 놈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나를 향해 소리치는 여자의 뒤에는 반쯤 죽어가는 마법사들의 모습이.
그리고 권좌의 위에는 당혹을 금치 못하는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호, 호루스족? 그렇다면 네가 이번에 호루스족의 무리를 일통했다는 용사란 말이냐?”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한 황제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용사라니? 아무래도 나에 대한 소문이 인간들에게까지도 난 모양이다.
‘하긴, 딱히 숨긴 것도 아니니 모를 이유도 없긴 하지. 호루스족들의 움직임만 봐도 뭔가 벌어졌다는 것 정도는 알 테니까.’
황제가 몸을 일으켜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폐, 폐하! 그자는 위험합니다!”
“너희는 물러서라!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 자가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목숨을 잃었다는 걸!”
평범한 꼭두각시인 줄로만 알았는데 황제는 황제라는 건가?
노인의 형형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검은 눈동자.
“너, 이름이 뭐지?”
“현순. 그러는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호루스의 용사.”
“아르카나.”
“그래, 아르카나.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이런 상황에서도 주도권을 잡겠다는 건가? 수작이 뻔하긴 하지만 못 넘어가 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사라진 천장 밖 하늘 위를 가리켰다.
“우리는 저 검은 구멍을 처리하기 위해 왔다.”
“..저 구멍 때문에 본 피해에 대해서라면 사과하지. 하지만 저 구멍은 우리가..”
“또 다른 구멍을 내 처리할 예정이었겠지.”
“..사마연. 어떻게 된 일이냐. 어떻게 호루스족에서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는 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사마연이라. 릴리스와는 전혀 다른 이름이군.
“도대체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겠지만..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너희가 개입하지 않아도 우리는 저 구멍을 제거할 예정이었다.”
“그 결과 세계가 멸망한다 해도?”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호루스족의 용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태양신의 권능에 대해서는?”
“..예언. 그런 거였군.”
이쯤 되니 현순 역시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눈치챈 기색이다.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 그 눈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동요가 숨어 있었다.
철혈대제. 그 이름과는 달리 그에게도 붉은 피가 흐른다는 거겠지.
“..사마연. 계획은 중지다.”
“하지만 폐하!”
“명령이다. 반론은 용납하지 않겠다.”
“…”
“대답은?”
“거절입니다. 폐하.”
“..뭐라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건을 해결하는 건 현순의 생각처럼 간단한 게 아니었다.
아마도 현순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
지금껏 그가 이룩한 모든 업적은 그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
“안타깝군요. 폐하. 그냥 모른 척 계셔주셨더라면 당신께서도 새로운 세상에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사마연..! 설마 지금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냐?”
신의 장난이란 이다지도 잔혹하다.
평생을 노력하며 살아온 인간을 한순간에 광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역모요? 우스운 말씀이군요. 고작 인간들의 황제 따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뭐라고?”
“당신께서는 분명 이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것에 성공하셨습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것은 이 세계의 절반밖에 지배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죠.”
“도대체..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당신은 모르시겠죠. 이것은 무려 300년간 계속 되어 온 저희 사마가의 비원이니까.”
..고작 300년 가지고 엄청 유난 떠네.
아무래도 더 이상 들어주기가 힘들 것 같다.
저들의 계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시작했으니 슬슬 끝낼 때가 된 거겠지.
‘괜히 방심했다가 구멍을 내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물론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하필이면 왜 이 시간대에 떨어지게 된 건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외신과 무슨 계약을 나눈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 어떻게 그 이름을..?”
“더 이상 너희의 계획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칼날 위로 모여드는 것은 투명한 빛이다.
태양신의 빛. 그렇기에 나와는 어딘가 맞지 않는 빛.
‘하긴, 나는 더 이상 태양신이 아니지.’
사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지금의 나는 태양신도, 용사도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그런 것이 되고 싶지도 않고, 바란 적도 없었다.
내가 태양신의 환생인 게 뭐가 어쨌단 말인가.
내가 과거와 같은 사람이 될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어, 어떻게 네가 그분의 힘을 쓰는 거지?”
“틀렸어. 이건 외신의 힘 같은 게 아니니까. 애초에 이게 진짜 외신의 힘이라면 지금의 내가 쓰지도 못했겠지.”
고개를 들어보면, 내 손에는 어느덧 검은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 내 안의 태양신을 억누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내놔! 그건 너 따위가 가질 힘이 아니야!”
사마연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물론 별 의미 없는 행동이긴 했다.
가볍게 그은 검. 그것만으로 사마연의 몸은 쓰러지고 있었다.
죽인 것은 아니었다. 내가 벤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내면.
외신과의 연결점이었으니까.
“이런다고 해서 끝날 것 같아?”
“끝나지 않겠지. 이 황성에는 너희의 끄나풀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태연한 얼굴이군. 계획은 이미 실행되었어.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야.”
“그걸 막기 위해 그놈들을 보낸 거야.”
나는 사마연의 말에 미소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보면, 저 멀리서부터 울려 퍼지는 굉음과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네 명. 조금 부족하지만 이만하면 시간 벌이 정도는 되겠지.”
“너..설마.”
“그래, 너희가 아까부터 숨기고 있는 그거. 그걸 언제 꺼내나 기다리고 있었거든.”
바닥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동이 무릎을 타고 머리를 울린다.
절로 피부가 저릿해지는 것만 같은 감각이다.
지금의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마기와는 근본적인 부분이 다른 힘.
“현순이라고 했던가? 도대체 이 지하에 뭘 숨겨두고 있었던 거지?”
“..거신병이다. 수백 년 전부터 왕의 혈통을, 그리고 황제의 혈통을 지켜주던 힘이지.”
“저것도 사마가의 작품이라는 거군.”
“..그렇다.”
현순의 얼굴이 침통함으로 물들었다.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마음. 그럼에도 기어이 쓰러지지 않는 건 그가 황제이기 때문이겠지.
“오는군.”
“아아..”
그러나 저항도 잠시.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거인의 모습엔 제아무리 황제라 한들 견뎌낼 도리가 없었다.
무릎을 꿇는 현순.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내게 있어 익숙한 형체의 괴물이었다.
“데모닉.”
실로 간만에 마주하는, 그러나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존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제멋대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상념 속에서 이를 갈았다.
팔레아스 령에서의 기억과 엘프 마을에서의 기억.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들의 얼굴까지도.
“어쩌면..”
엄습해 오는 기억들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다.
어쩌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