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 두 개의 시간선(3)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것은 하나의 기만책이었다.
필멸자의 몸으로 세계의 섭리를 속여 보이겠다는 발칙한 생각.
아리벨이 들었더라면 세계를 걸고 도박을 걸 생각이냐며 난동을 부렸을 발상이다.
‘아마 불가능하진 않을 거야.’
그러나 불현듯 떠오른 것치고는 제법 근거가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아마도 해답은 외신의 힘.. 마기에 있겠지.’
조금 전 나와 데이브 클락이 연결되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생각해 보면 그 순간, 나는 분명 세계의 섭리에서 벗어난 일을 벌이고 있었다.
나의 불꽃은 시간선을 넘어 데이브에게 도달하였고, 그것은 분명 세계의 규칙을 어기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본래라면, 세계에는 또 다른 왜곡점이 생겨났어야만 했을 거다.
사실상 내 손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그런데 어째선지 세계는 변하지 않았다.
원인은 분명했다. 그 자체로 섭리를 거역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외신의 힘.
돌이켜 생각해 보면 파라켈수스 역시도 그런 적이 있지 않던가.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이계의 물건들을, 왜곡점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제약을 받지 않았다.
외신의 힘을 이용해 신들과 섭리의 눈을 가린 것이다.
그렇다는 건, 마찬가지로 놈의 힘을 가진 나에게도 그와 같은 규칙이 적용되고 있을 테지.
‘외신 덕분에 데이브를 구할 수 있었다는 건가? 생각하고 보니 참 웃기네.’
새삼스럽지만 힘이라는 건 양날의 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는 적을 죽이지만, 때로는 나를 벨 수도 있다는 거다.
물론, 나라고 해서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겠지.
아무래도 조금 더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집중하기 시작했다.
“언제 외신이 돌아올지 몰라. 서둘러야 해.”
이윽고 나의 눈이 바라보는 것은 과거의 풍경이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손쉬운 성공이었다.
“..이게 진짜로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나 마냥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사용과 동시에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는 마기.
과거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의 영혼이 삐걱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힘의 소모가 필요 이상으로 극심했다. 아직 시공검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그래도 처음치고는 제법 잘하는 것 같긴 했다.
아마도 외신이라는 선례를 참고한 덕이겠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직 내 마기 조종 능력은 외신의 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나로서는 놈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열려라.”
나는 최대한 그와 같은 형식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손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3개월 전의 풍경이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내가 저 구멍 안으로 들어선 직후의 순간이겠지.
“찾았다.”
시야를 이동시켜 보면, 외신의 속삭임에 몸부림치는 사신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신을 바들바들 떨며 저항하는 사신장들.
그러나 한낱 필멸자의 의지로는 신의 언령에 대항할 수 없었다.
“크아아아악!”
이윽고 그들의 영혼이 불타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날뛰는 사신장의 모습이 보인다.
“..잘 받도록 하마.”
나는 그런 사신장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대를 죽이지 않고서는 마기를 뽑아낼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보다 심후해진 경지가 저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도 마기만을 빼앗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외신의 당혹스러운 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곧장 시점을 틀어 연합군이 모인 장소로 이동했다.
내심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오만해지지 말자.’
잊어선 안 된다. 나와 외신의 능력은 비교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당장만 해도 보라. 고작 시선을 옮기는 것조차 버거워 무의미하게 힘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이래서야 조금이라도 지체되었다간 외신에게 발각되고 말 거다.
그 순간, 내가 벌여놓은 모든 일들은 수포가 되어버릴 테지.
‘여기서부터가 문젠데…’
사신장의 심마를 제거하긴 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설마 외신씩이나 되는 놈에게 솔루이를 죽일 방법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문제가 있다면 내가 연합군의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내 개입으로 인해 과거는 바뀌었을 터.
그러나 나는 바뀐 과거 속에서 솔루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알지 못했다.
죽음을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젠장.. 이러다가 외신에게 들키기 전에 마기가 먼저 고갈되겠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마기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애써 시공검을 유지하려 노력해 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삐걱이는 영육. 이윽고 세계가 닫힌다.
“젠장.”
아무래도 마기를 다시 보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히 지금의 나는 마기의 자체적인 회복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마 외신의 팔을 삼켰기 때문이겠지.
그래, 어찌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차라리 솔루이가 죽은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역시 죽어버렸군.’
연합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 슬픔에 잠긴 솔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라고 해야 할까. 연합군은 이번에도 외신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나마 사신장들이 솔리아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못하겠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기계 군단이 연합군이 있는 곳을 덮쳐들고 있었다.
‘그래도 원인은 찾아냈군.’
그렇게 얼마를 살폈을까. 나는 이윽고 솔루이가 죽은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연합군 내부에 산재해 있던 외신의 끄나풀들.
그것이야말로 ‘뒤바뀐 과거’에서 솔루이를 죽게 만든 원흉이었던 것이다.
‘어디서든 배신자가 문제구나.’
나는 그제야 단테가 언급했던 배신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번에 말썽을 일으킨 것은 한때 나 역시도 본 적이 있는 ‘화염의 반지’였다.
그 아티펙트를 이용해 일으킨 폭발이 솔루이를 비롯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에 빠트린 것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배신자들의 얼굴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찾았다.”
그사이 회복된 마기를 쥐어짜 내며 간신히 시공검을 펼친다.
이윽고 펼쳐지는 것은 과거의 풍경이다.
순식간에 베어낸 배신자들의 목이 바닥을 나뒹군다.
이로 인해 또 한 번 과거가 변하게 될 거다.
“..재밌는 짓을 하고 있었구나.”
외신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어째 일이 쉽게 풀린다 싶더라니..’
아무래도 외신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버린 모양이다.
하기야, 지금 생각해 보면 배신자들의 색출이 지나치게 손쉬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넘어가지 않았을 함정이었다.
‘너무 조급하게 행동한 건가? 아니, 상대는 외신이야. 언젠가는 들켰을 일이라는 거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손에 들리는 것은 검은 태양의 검이다.
“가당찮구나. 너 따위가 나와 싸우겠다고?”
“..그게 이상한가?”
“이상하고말고. 나는 너와 싸울 생각이 없거든.”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나는 까닭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놈을 바라보았다.
외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면, 저 아득한 곳에 위치한 하계의 모습이 보였다.
“너..”
그러나 놈이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이 시간선이 아니었다.
외신의 눈은 아득한 미래를, 본래의 내가 있던 시간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간선에 존재하는 데이브 클락을 찾아내고 있었다.
“너에게 가능한 일이 내게는 불가능할 줄 알았더냐?”
놈의 마수가 데이브를 가리켰다. 마탄이 날아간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양신이 다급히 그 앞을 막아보았지만 그보다는 외신이 더 빨랐다.
“아무래도 너의 그 순환은 저 녀석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모양이구나.”
조소와 함께 전해지는 목소리.
그러나 외신의 말은 틀렸다.
나의 순환은 데이브 클락이 아니라 내게 종속된 영혼들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그걸 모르고 데이브를 공격한다는 건 외신 역시도 지금의 내 상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거겠지.
“바꿔 말하면, 저 녀석을 쓰러트리면 모든 게 끝난다는 건가?”
문제는 외신의 착각을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타앙!
외신의 마탄은 이미 데이브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향해 휘둘러지는 시공검. 그러나 나의 검은 맥없이 튕겨 나갈 뿐이었다.
“어떠냐. 너의 무력함을 이제 알겠더냐?”
나는 말없이 외신을 노려보았다.
* * *
데이브의 검이 단테의 몸을 튕겨낸다. 이어지는 것은 연격이다.
보랏빛의 섬광이 유성우와 같은 형상을 그려내며 단테의 몸을 두드린다.
콰직!
이윽고 단테의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데이브의 승리가 가까웠다.
‘왜 공격이 약해진 거지?’
물론, 데이브가 우세를 점할 수 있는 건 순전히 그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혼검을 마주하는 순간 눈에 띄게 약해진 단테의 적대감.
단테는 외신에게 세뇌된 상황에서조차 본능적으로 힘을 빼고 있었다.
파삭!
이윽고 황혼명멸이. 황혼검 최후의 초식이 단테의 몸을 꿰뚫는다.
“..아.”
단테의 눈에 이성이 돌아온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교차하는 시선에 착잡한 감정이 서린다.
“당신은 그분이 아니군요.”
“..네가 말하는 그분이라면 지금 여기에 없어. 미안하다.”
“아니요.. 이해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단테가 하늘을 바라본다. 그로부터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이런..”
회한이 차오르는 순간, 단테의 감각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숙이세요!”
“뭐, 뭐 하는 거야?”
단테는 곧바로 데이브를 향해 몸을 던지며 소리쳤다.
졸지에 단테에게 깔려버린 데이브.
콰앙!
그 순간, 하늘에서부터 날아오는 것은 거대한 마탄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데이브조차 감히 막을 엄두가 나지 않는 탄환이었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명확했다.
마탄은 단숨에 단테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 데이브의 몸에 박혀 들었다.
“커헉!”
데이브의 입에서부터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테가 방패가 되어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기야 저것은 외신의 마탄, 신이 내린 심판이다.
고작 사람 하나의 몸으로 감싼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콰직!
단숨에 박살이 나버린 단테의 몸. 강철로 된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날린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비로소 찾아든 죽음이었다.
“데이브!”
사색이 된 라나가 데이브의 상태를 살폈다.
이어지는 것은 예이츠의 권능이다. 그의 능력이 데이브의 몸을 치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젠장.. 이게 무슨..”
그러나 신의 저주는 그리 간단히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기야 태양신의 영혼을 무려 영겁의 시간 동안 떠돌게 한 힘이다.
한낱 치료의 권능 따위로 해결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비키세요!”
크루세이더들과 함께 안드로이드와 싸우던 이자벨이 예이츠를 밀어냈다.
다급하게 데이브의 손을 잡는 그녀.
“이건..”
그러나 성녀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죽지만 않았다면 그 어떤 이라도 회복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가진 그녀이지만, 신의 저주를 상대로는 그녀 역시 한낱 필멸자에 불과했다.
촤륵.
외신의 저주가 데이브의 영혼을 적신다. 데이브의 눈이 감겨들기 시작했다.
“데이브! 데이브!”
라나가 그런 데이브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라도 있지 않은 한 되살아날 수 없을 상처였다.
“비켜.”
그런데 그 순간, 하늘을 물들이는 불꽃이 있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내리는 화염이 안드로이드들의 몸을 휩쓴다.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일그러진 육체를 가진 괴인이었다.
“..프로키온?”
라나가 황망한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지금 그놈에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야.”
프로키온은 그런 라나와 이자벨을 물러서게 하며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손에서부터 피어나는 거대한 불꽃.
화르륵!
이윽고 데이브의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