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 네가 심연을 들여다보는 순간.
사실 나는 딱히 기발한 묘책 같은 걸 떠올린 게 아니었다.
그저 발상을 역전시켰을 뿐.
“저 팔을 삼키는 게 가능할까?”
나는 최초에 연합군을 덮쳤던 외신의 팔들을 바라보았다.
사실상 내가 시공검을 펼쳐 이 꼴이 되게끔 몰아간 원흉들이다.
물론 외신 본인도 아니고 고작 팔 따위에 원한 같은 걸 가지지는 않는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저것들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껏 마기를 이용해 시공에 개입해 왔었다.
사신장을 심마에서 벗어나게 만들기도 했고 연합군 내의 배신자들에게 손을 뻗기도 했다.
그 말인즉, 마기라는 힘에는.. 외신의 힘에는 세계의 섭리를 속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는 건,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거겠지.
나는 시간의 힘을 이용한다면, 저것들에게 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지.”
나는 외신의 팔들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뒤이어 놈들을 향해 뻗어지는 의념.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확신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짜로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나의 의념은 어렵지 않게 놈들의 몸에 스며들고 있었다.
놈들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 스스로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간단한 성공이었다.
심지어 이전처럼 외신의 팔을 흡수하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미 한 번 성공한 적이 있어서 그런 건가?.. 아니, 그래서가 아니야.’
나는 외신의 팔이 지나치게 잠잠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무래도 이 거대한 흐름은, 마기를 가진 존재들을 잠재우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상극으로 분류될 법한 힘이었다. 외신이 이곳에 침입하지 못하고 물러선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공간의 이점. 이 순간 이곳은 내 홈그라운드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상 외신의 팔은 물 밖에 나온 물고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안의 마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문제는 이 흐름이 나에게도 독이 된다는 건데.”
그러나 마기를 채운다는 건 기본적으로 양날의 검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힘을 얻는 건 좋지만, 마기를 품는 순간 나 역시 외신처럼 이 흐름에서 배척당하게 될 거다.
지금이야 몸속 깊숙한 곳에 마기를 모아두고 있다지만,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
나는 곧장 이 흐름에 휩쓸려 정체 모를 장소로 굴러떨어지고 말 거다.
힘을 취하는 건 좋지만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는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만 힘을 취하고 그 이상의 힘에는 손을 뻗지 않기로 했다.
“..음.”
그런데 어째서일까. 무려 수십 개나 되는 외신의 팔을 삼켰음에도 몸에서 부담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지금의 내 몸속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고요했다.
혹시 이것도 이 흐름 덕분인가?
“우선 삼키고 보자.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그러나 내가 멀쩡할 수 있는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걱정은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은 힘을 쌓아야 하는 순간이라는 거다.
나는 그대로 다음 먹잇감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럭스의 검에 꿰뚫리기 직전, 모습을 드러낸 팔들이 여럿 있었으니까.
서걱!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연합군을 덮치려는 광선을 잘라냈다.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시공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경악으로 물든 단테의 표정을 보며 그대로 외신의 팔들을 집어삼켰다.
그런데도 아직 내 안에는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둬!”
그런데 그 순간, 또 한 번 하늘이 열리며 외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손을 휘저어 그것을 다시 봉합했다.
“거참. 밥 먹는데 시끄럽게.”
다음 순간, 나의 시선은 ‘마경’의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신이 죽은 장소에서부터 비롯된 재앙이 덮쳐든 땅.
본래라면 앞으로 수십억 년에 걸쳐 마수들에 의해 고통받았을 땅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이 세상에 저곳만큼 마기를 품은 땅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실상, 힘을 쌓는 데에는 저곳만 한 곳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이래도 되는 건가?”
손을 뻗기 직전 나는 생각했다.
조금 전 외신의 손들을 집어삼킨 것과는 달리 이것은 명백하게 인과에 손을 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마수들을 집어삼키는 순간, 마경은 더 이상 마경이라 불릴 이유를 잃게 되겠지.
물론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을 피해 마경으로 숨어들었던 토인족들이나 하프 데몬들의 미래는 분명 변하게 될 터.
‘어쩌면 손휘와 니콜라스의 운명까지도..’
내 행동으로 인해 그들의 운명이 좋게 변한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만약 그들의 삶이 망가지거나 태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고민은 나중으로 미루자.”
결정은 빠르게 이뤄졌다. 어차피 당장 망하게 생긴 세상이 아니던가.
우선은 저지르고 수습은 나중으로 미루는 거다.
나는 내 나름의 결의를 품은 채 마수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귓가에 들려오는 외신의 목소리를 지워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흘러들어오는 마기의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아마도 그것들의 숫자 때문이겠지.
마수들 하나하나의 마기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장 수십억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쌓인 마기는 그야말로 무한에 가까웠다.
“이쯤에서 멈춰야겠.. 이런..”
나는 이 이상의 힘을 받아들이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지금은 우선 받아들인 힘부터 갈무리해야 하는 순간이다.
“..젠장.”
그런데 내 의지와는 다르게 마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늦춰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라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통제를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나의 그릇에 기어이 남은 마수들의 힘을 털어 넣고 있었다.
사실, 범인이 누군지는 명확했다.
“외신..!”
아무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으로 나오려는 모양이다.
외신은 마수들의 마기를 기어이 전부 끌어내어 나에게로 떠넘기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몸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외신은 나에게 모든 마수의 힘을 떠넘기고도 모자라 그 자신의 힘까지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대로 내 몸을 붕괴시키려는 작정인 것 같았다.
‘적에게 오히려 힘을 불어넣다니..!’
나는 이를 악물며 최대한 마기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한계가 찾아왔다.
사실 이렇게 되면 세계의 운명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다간 나에게서 터져 나온 이 마기가 순환의 고리를 오염시킬 수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나 하나가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붕괴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끄르륵..”
그러나 마음먹기와는 다르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차마 담아내지 못할 정도의 힘에 전신이 꿈틀거린다.
당장에라도 몸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감각.
‘젠장, 너무 쉽게 본 건가?’
나는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여기서 정신을 잃었다간 애써 구성한 육체가 붕괴해 버리고 말 거다.
그렇게 되면 내 안에 깃든 마기가 어디로 흘러 나갈지는 뻔한 일이겠지.
“하하하! 그래,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외신의 조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도 놈을 얕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마기가 차올랐다면 그냥 써버리면 되는 거잖아?’
이윽고 떠올린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극히 단순한 발상이었다.
그래, 너무 많이 차오른 것이 문제라면 차는 족족 사용해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당장 수정해야 할 과거들도 있었으니 나로선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둘 것 같으냐..!”
그러나 그런 내 시도는 외신의 간섭으로 인해 막히고 말았다.
시공검을 펼치기가 무섭게 들어오는 외신의 방해가 내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기를 사용해서 비우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
지금으로선 스스로 이 마기를 처분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내 안의 마기가 날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외신의 간섭 때문이겠지.
이전에도 그랬지만 마기라는 힘은 내가 받아들인다고 해서 나의 것이 되는 게 아니었다.
분명 내가 가지고 있고 나의 것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외신의 영향을 받고야 마는 것이다.
물론 평소 같았으면 이런 간섭쯤은 어렵지 않게 떨쳐낼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한정으로 들어오고 있는 마기를 통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나로서는 이 마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런데 어디에 써야 하지?’
마기를 흐름의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은 외신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흐름의 안쪽에 마기를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
‘남은 것은 하나뿐이군.’
다음 순간, 나는 내 몸을 구성하던 의념을 풀어 헤쳤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선택한 도박이었다.
통제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터져나가는 마기의 힘.
물론, 그렇다고 내가 마기의 통제를 포기해 버린 건 아니었다.
“크으윽..”
의념을 얇은 막처럼 둘러낸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에 마기가 섞여 들지 않는 것이다.
얇은 막으로나마 두 개의 힘을 격리한다면 당장 재앙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물론,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안 그래도 무너질 것 같았던 의념을 한층 더 얇게 만든 만큼, 붕괴는 필연적인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두근!
하지만 폭발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확산을 일컫는 말이다.
터져나가려는 마기를 묶어두는 강력한 구속력이 있다면, 그 이상의 장막은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뭘 하려는 거냐.”
외신의 말이 들려왔지만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마기의 덩어리를 내 안에서 휘감기 시작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와 동시에 전신의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마기의 흐름.
그것은 일종의 혈관과도 같은 형상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설마.. 너..”
그 모습에 기겁하며 힘의 공급을 끊어내려는 외신.
“그렇게는 안 되지..!”
그러나 시작은 외신이 했을지 몰라도 끝을 내는 건 나였다.
나는 내 안에 파고든 힘의 가닥을 움켜쥐었다.
“이런 미친..!”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고..!”
나는 그대로 놈의 힘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전신에 가득한 마기는 이미 나의 육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게 정말 마기가 맞긴 한 걸까?
‘애초에 마기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붙인 말이긴 했지.’
지금까지 내가 다루던 마기는 사실상 외신의 일부나 다름이 없는 힘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기라기보다는 멸망의 기운이라 불러야 마땅한 힘.
“크하하하하하하!”
그러나 이 순간, 내 안을 휘감고 있는 힘은 달랐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마왕’이라 불릴 법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콰직!
그렇게 얼마를 더 흡수했을까.
나의 힘이 막 전능함에 닿으려던 무렵, 외신으로부터 이어지던 힘의 줄기가 끊어졌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챈 외신이 제 팔을 잘라버린 것이다.
나로서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뭐야, 더 주는 거 아니었나?”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하지.”
“이제 와서 무게를 잡는 게 무슨 소용이 있지?”
“그래, 별 소용은 없겠지.”
외신은 생각 외로 순순히 수긍했다.
어쩌면 모든 걸 포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력한 태도였다.
“…”
그러나 이 순간, 나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느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변한 분위기와 함께 꿈틀대기 시작하는 세계의 흐름.
그와 동시에 점점 커져가는 소용돌이가 나의 시야를 가득 물들이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 인정하마. 태양신의 환생. 너는 내 생각보다 성가신 적이야.”
외신은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물론, 여전히 나를 향해 손을 뻗지는 못했다.
이 거대한 흐름은 외신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까지 그럴까?”
“..뭘 할 작정이냐.”
“네가 사랑하는 것들. 네가 사랑하는 세계가 닫혀도 너는 과연 웃을 수 있을까?”
놈의 손이 뻗어지고 있었다.
라나에게로, 데이브에게로, 프리드와 클라리스, 솔리아와 솔루이에게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뻗어지는 놈의 손이 나의 사람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에게서 앗아간 힘으로 과거를 바꿀 수는 있겠지. 하지만 너는 곧 알게 될 거다. 네가 손을 쓰면 쓸수록, 이 세계가 엉망이 되어간다는 것을.”
외신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제자리에 선 채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