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 순환과 역순환(2)
사실, 저 하늘에 열린 구멍을 닫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니, 본래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마기를 손에 넣은 지금이라면 상황이 다르다고 해야겠지.
“아마 시공검으로 쓰기만 하면 미래가 바뀌겠지.”
한때, 저 하늘의 재앙을 처음으로 연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의 사마가의 가주였다.
그리고 두 번째 구멍을 연 것은 파라켈수스의 전생이자 연국의 시조가 되는 연화은.
그 말인즉, 그 두 사람을 제거하기만 해도 세계의 운명이 변한다는 뜻이 된다.
‘구멍이 닫히면 신들이 합류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렇게 되면 모든 역사에서부터 외신을 내쫓을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는 저 구멍을 닫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이전까지의 내 힘으로는 300년 전의 시간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내 힘으로는 300년 전은커녕 연화은이 구멍을 낸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했었다.
기본적으로 내 시공검의 경지가 낮기도 했지만, 외신 본인부터가 내 개입을 막고 있었던 탓이다.
아마 원영신을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하늘을 닫겠다는 발상은 떠올리지도 못했겠지.
“..그런데 그 두 사람을 죽인다고 끝날까?”
문제는 내가 두 사람을 쓰러트렸을 경우 벌어지는 여파였다.
‘단순히 구멍이 닫히고, 신들이 외신을 쓰러트리는 걸로 끝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마가의 가주를 쓰러트린다는 건 사마연이 탄생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다.
그 말은 그녀의 환생인 릴리스의 탄생 역시 없었던 일이 된다는 거다.
그뿐인가? 내가 연화은을 쓰러트리는 순간, 이 세계의 역사에는 연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질 거다.
어쩌면 파라켈수스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
물론 파라켈수스의 소멸 자체는 나에게 있어 좋은 일이긴 했다.
사라지는 게 파라켈수스뿐이라면 말이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만 안다면 좋을 텐데.”
릴리스가 소멸한다면 변하는 건 그녀의 운명만이 아니다.
환생을 거듭했던 그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마족들과 마왕들의 운명도 변하게 되겠지.
사람 하나의 운명을 바꾼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바꾸는 것과 같았다.
그 결과 세계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거다.
당장만 해도 보라. 내가 마경이라는 장소를 지우는 순간, 라나의 곁에서 데몬 하트의 용병들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나로서는 별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이 이 세계에 있어선 무수한 변화를 낳고 있다는 거다.
‘마경이 사라지니 인간들의 영역이 더 넓어졌어. 그리고 마족에 대한 탄압이 더 심해졌고..’
자칫하면 내 선택으로 인해 대륙에는 마족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돌아간 그곳은 내가 아는 세계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지.
어쩌면 내가 아는 얼굴들 역시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고민이 깊어 보이시네요.”
그렇게 얼마를 고민하고 있었을까. 사마연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며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릴리스와 닮은 얼굴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절로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혹시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마연의 말을 거절하고 싶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새로운 세계’ 따위를 기대하는 점이나, 앞으로 그녀의 환생이 겪게 될 일에 대해서나.
사마연의 이런 살가운 태도가 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탓이다.
“..혹시 네 꿈으로 세계를 구현하는 것도 가능한가?”
“..네?”
그러나 나 자신의 껄끄러움과는 별개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만약 사마연이 릴리스와 거의 같은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녀의 꿈으로 이 세계의 흐름을 구현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내가 미래와 과거의 변화를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나는 시공검을 사용함으로써 세계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고 싶었다.
내가 벌인 행동의 결과를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지난번과 같은 사고가 벌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에 대해선 내가 알고 있어. 지금 필요한 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구현할 공간이야.”
“..세계를 완벽히 구현하는 건 불가능해요. 물론 겉모습만을 따라 하는 정도라면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당신이 원하는 건 그 정도가 아닌 것 같네요.”
그러나 당연하게도,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내가 바라는 건 살아 숨 쉬는 세계야.”
“그걸로 뭘 하고 싶으신 건데요?”
“과거, 그리고 미래를 바꿀 거야. 너에게 세계의 구현을 부탁한 건, 그 과정에서 세계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알고 싶어서였고.”
“..그런 게 정말로 가능한가요?”
“바꾸는 것만이라면 지금도 할 수 있어. 사실, 나는 당장에라도 저 하늘의 구멍을 닫을 수 있을 거야.”
사마연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 하늘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가 사라지겠죠. 아니.. 태어나지조차 못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뭐, 그런 거지.. 그런데 왜 웃고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나름대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뇨, 당신이 제 걱정을 해줬다는 게 좋아서요.”
“내가 언제 네 걱정을..”
“네, 알아요. 당신이 보고 있는 건 미래의 저겠죠. 저의 환생이라고 해야 할까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그야 당연히 알죠. 사실 전 당신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거든요.”
사마연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마치 자기가 명탐정이라도 되는 것 같은 태도였다.
물론, 지금 말한 게 전부 사실이라면 스스로를 명탐정이라 칭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작 그 정도의 단서만으로 진실에 도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현순에게 들었군. 아니, 꿈을 이용해 정보를 빼냈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나에게는 시공검이 있었다.
그녀가 무슨 수작을 벌인 건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는 거다.
“..칫. 재미없게.”
“..장난할 기분 아니야.”
나는 경고하듯 사마연과 눈을 마주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눈을 감아버리는 걸까.
“..뭐 하냐?”
“음? 키스하려는 거 아니었나요?”
“내가 왜?”
“그야.. 미래의 저는 당신의 아내였으니까요.”
나는 가볍게 사마연의 이마를 밀어냈다.
“너와 릴리스는 별개의 인물이야. 그리고 미래의 너 역시 썩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는 못 했지. 진짜로 미래를 봤다면 너도 알 거 아니야?”
“틀렸어요.”
“..뭐라고?”
“릴리스가 슬퍼한 건 벨제고트를 잃었기 때문이니까요. 그전까지의 릴리스는 분명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죠.”
“..그게 뭐? 결국 네가 말하는 새로운 시대 같은 게 없다는 건 분명하잖아? 세계는 변하지 않아. 내가 바꾸려는 미래는 고작해야 멸망하지 않는 것 정도라고.”
“아뇨, 그 시대는 있어요. 조금 전에 당신께서 말씀하신 거잖아요.”
사마연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가리켰다.
“당신은 미래를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고요.”
“..지금 이대로는 못 바꾼다니까?”
“그럼 준비하면 되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방금 네 입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저 혼자라면 그렇겠죠.”
사마연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저희라면 어떨까요?”
그녀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창백해지는 뺨과 붉게 빛나는 눈동자.
그녀의 눈은 분명 나에게 있어 아주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릴리스.”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벨제뷔트.”
그녀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 * *
나는 벙찐 얼굴로 릴리스와 눈을 마주했다.
도대체 어떻게 릴리스가 여기에 있는 걸까.
분명 파라켈수스에게 당해버렸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파라켈수스는 분명 라나와 데이브를 꿈속의 세계로 끌어들였어. 그렇다는 건 분명 릴리스의 능력을 빼앗았다는 건데..’
나로서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솔직히 말하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로 릴리스인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표정을 보니 알겠네. 내가 의심스러운가 보지?”
“..너라면 그렇지 않을까?”
“아니, 내가 당신이라도 의심했겠지. 하지만 그럼 나는 누구지? 파라켈수스인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설마 너도..”
“바알과는 달라. 바알은 대가를 치르고 이곳에 왔지만, 나는 아니거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몰랐어? 꿈속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는 거.”
나는 릴리스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릴리스는..
“너, 설마 파라켈수스에게 일부러 잡힌 거야?”
“나무를 숨기려면 숲속에 숨기는 법이잖아?”
나는 그 말에 기가 차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몸을 숨기려 해도 그렇지 설마 스스로 파라켈수스에게 잡혀버릴 줄이야.
“그럼 라나와 데이브를 가둔 것도 너였던 거야?”
“그래, 그편이 더 속이기 쉬울 테니까.”
“..그 두 사람은 죽을 뻔했고?”
“그 두 사람은 내 알 바 아니잖아.”
“..에휴.”
아무래도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와 동시에 변하는 눈빛.
다시 사마연으로 돌아온 그녀가 나를 향해 말했다.
“어때요? 이젠 가능하겠죠?”
“..너희 두 사람이 기준이 되겠다는 거야?”
“맞아요. 비록 모든 시간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저와 릴리스 사이에 있는 시간만이라면 가능하거든요. 물론, 당신에게 그럴 힘이 있다 면의 이야기겠지만요.”
“..가능이야 하겠지. 나는 그 정도의 힘을 손에 넣었으니까.”
“역시, 이 세계를 바꿀 사람은 당신이었네요.”
사마연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제는 아득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나와 릴리스가 처음 만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생김새 빼고는 닮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그렇지만도 않나 보네.’
나는 익숙한 미소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꿈속의 하늘은 푸른빛이었다.
아마 이곳이 사마연의 세계이기 때문이겠지.
릴리스의 세계와는 다르게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마연의 심상으로 가득한 세계. 그러나 반대로 릴리스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아직 두 사람의 세계가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
이유는 명확했다. 두 사람의 윤회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자, 이제 저를 받아들이실 준비가 되셨나요?”
“..그렇게 말하니까 좀 어감이 이상한데?”
“그야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니까 당연하죠.”
하기야 지금의 사마연은 마족이 아니라 인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녀가 호루스족.. 그러니까 마족이 되기 전까지는 릴리스와 별개의 인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저게 진짜 내 전생이라고?”
“옛날의 너를 생각하면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네가 생각하는 옛날은 대체 언제인 거야?”
그 말인즉,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릴리스의 운명이 갈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릴리스와 눈을 마주했다. 붉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과거에 개입하게 되면 너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도?”
“그렇게 볼 거 없어. 나도 각오는 했으니까. 무엇보다 네가 구하려는 사람 중에는 벨제고트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나는 그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것은 사마연의 승낙뿐이었다.
“후회하지 않겠어? 마족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거지?”
“물론이죠.”
“한번 이 길에 들어서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이제 인간의 삶은 지긋지긋하거든요.”
“마족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나는 자신만만한 사마연에게 마족들의 삶을 보여주기로 했다.
내 눈에는 사마연의 이런 태도가 인간 특유의 고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네 말대로 마족은 인간과 달라. 욕망을 위해 백성을 희생하지 않지.”
사마연의 눈꺼풀 위로 무수한 죽음이 드리운다.
내 손에 희생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이들.
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해야만 했던 이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당연하게도 그 얼굴 중에는 사마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데도 마족을 동경하는 거냐?”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그런데 왜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거지?”
내 물음에 사마연은 나를 가리켰다.
“당신이 모든 것을 바꿔줄 테니까요.”
나는 부담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올곧은 신뢰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세계는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