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 순환과 역순환(4)
릴리스는 걱정했지만 사실 꿈속의 세계에서 나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원영신을 이룩한 이상, 이 세상에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없었으니까.
나는 꿈의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용사님?”
“용사가 아니라니까.”
눈을 떠보면 내 눈앞에 단테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은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 있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시선.
외신의 눈이 나를 향해 따라붙는 것이 느껴진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아무래도 외신은 그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건지가 궁금한 모양이다.
‘..그래도 들킨 것 같진 않은데.’
다행히 그 눈빛에 호기심은 있을지언정 경계심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 계획이 들켰다면 그렇게 속 편하게 있지는 못할 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꿈속에서의 일은 외신도 모르는 모양이네.’
나는 당장 시간을 벌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물론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릴리스와 사마연에 대해서는 외신 역시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얼마 안 가 두 사람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그 즉시 외신은 그 이유를 알고자 할 것이다.
나로서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안전해지는 방법은 간단하지. 원래 내가 하려던 일을 계속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외신이 당장 눈앞에 있는 먹잇감을 두고도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놈의 시간이 나에게 위협이라면, 놈에게 생각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거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놈에게 생각을 읽힐 위험도 있으니까.’
아마 외신 역시 답답한 거겠지.
놈이 내 머릿속을 염탐하려 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거다. 나 역시도 나름대로 강해졌으니까.
이전과는 달리 놈도 내 생각을 완전히 읽을 수는 없다는 거다.
물론 전혀 읽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봤자 두루뭉술한 단서 정도를 읽어내는 것 정도가 전부겠지.
‘너.. 지금 뭘 하려는 거지?’
물론, 그렇게 읽어낸 표면적인 생각 역시 놈에게는 충분히 경악스럽겠지만 말이다.
“단테, 내가 없을 때를 잘 부탁하마.”
“..뭘 하시려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단테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나는 그대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게 물든 하늘은 마치 하늘 전체가 거대한 구멍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대로 구멍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후.”
저도 모르게 나온 한숨.
거대한 팔이 날아든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래도 꽤 화난 모양이네.”
나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 * *
외신의 눈이 마왕을 바라보았다.
‘왜 여기로 온 거지?’
갑작스레 등장한 마왕의 등장에 외신은 가벼운 혼란을 느꼈다.
안 그래도 어떻게 하면 마왕을 이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찰나다.
그런데 설마 상대 쪽에서 제 발로 이곳으로 찾아와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쯤 되면 외신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라는 녀석은 여러모로 규격 외의 존재라는 걸. 단순한 사냥감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멍청해.’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외신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마왕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계에 머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왕이 시공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지게 된 이상, 외신으로서는 더 이상 하계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만약 마왕이 그대로 하계에 머물렀다면, 세계는 차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겠지.
그로 인해 태양신의 힘은 차츰 강해졌을 테고, 길고 길었던 외신과 태양신의 전쟁은 동귀어진이라는 결말로 끝이 나고 말았을 거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외신은 처음부터 이 세계가 그런 식으로 굴러가게끔 ‘설계’해놓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외신이 멸망신으로서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제약 같은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덤벼든다라..”
그러나 마왕은 그런 외신의 걱정을 비웃듯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불길에 몸을 던지는 부나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모하다는 것을 넘어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솔직히 이쯤 되면 자존심도 상하지 않았다.
그저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할 뿐이다.
“드디어 미친 것이더냐?”
물론 짐작 가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아마도 마왕은 외신의 시선을 돌리고 싶은 거겠지.
뭔지는 몰라도 분명 마왕 스스로의 목숨을 걸 정도로 소중한 것이 있는 것이리라.
마왕은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다른 놈이 상대였다면 보란 듯이 미끼를 무시했을 텐데.’
원래 같았으면 외신은 눈앞의 마왕보다는 그 소중한 것을 노리려 했을 거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외신의 본질이나 다름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 좋다. 어디 끝까지 해보자.”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외신으로서는 감히 눈앞의 먹잇감을 두고 한눈을 팔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외신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눈앞의 마왕을 위협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내가 왜 외신이라 불리고 있는지를!”
물론, 여기서 패배할 거라는 생각은 만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방심해서 진다는 건 상대와의 격차가 어느 정도 좁혀져 있을 경우의 이야기였으니까.
외신이 경계하는 것은 현재의 마왕이 아니었다.
“죽어라!”
무수한 손아귀가 뻗어진다. 하계에서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다.
순식간에 공간을 집어삼키며 도달한 손바닥이 마왕의 몸을 도려낸다.
마왕이 시공검이라 부르며 경외하는 그 권능.
그러나 외신에게 있어선 손발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힘에 불과했다.
마왕의 원영신이 쪼개졌다. 단숨에 영핵을 도려낸 외신의 손이 그 심장을 씹어 부순다.
“역시 대단하긴 하군.”
그러나 그 직전, 마왕의 시공검이 인과를 수정했다.
본래라면 그의 몸을 도려냈을 터인 손바닥들이 허공에 흩어진다.
가까스로 펼쳐낸 반격이었다.
“대단하다고? 고작 그런 것이?”
외신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공격을 이어 나갔다.
콰광!
허공에서 터져 나가는 파공성을 따라 마왕의 피가 흩날린다.
눈으로는 차마 인식할 수조차 없는 공격이었다.
늦고 빠름의 문제를 떠나 이 시간의 제약을 무시하는 공격들.
당연하게도 승자는 외신이었다.
마왕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넝마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다행히 곧 회복하긴 했지만 열세는 여전했다.
하기야 서로 보유하고 있는 마기의 양에서부터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그 힘을 다루는 스킬조차 수준이 달랐으니 사실상 마왕의 승산은 없다고 보아야겠지.
외신이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이제 그만 사라져라!”
거대한 마탄이 마왕을 향해 쏘아졌다.
칠흑의 소용돌이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선을 관통하여 마왕의 등 뒤에서 나타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왕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 채였다.
그의 눈은 여전히 눈앞의 외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순환이라.”
다음 순간, 쏟아지는 탄환이 마왕의 몸을 꿰뚫었다. 이어지는 되감김.
마왕은 일련의 과정에서부터 묘한 흐름과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흐름.. 태양신의 것과는 다르지만 이건 흐름이야.’
고민이 깊어진다. 그러나 사태는 여전히 긴박했다.
섭리에 간섭하는 외신의 손짓이 마왕의 시야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긴박한 와중에서조차 마왕의 시선을 빼앗아 버릴 만큼 매혹적인 힘이었다.
마왕은 자신의 마음에 탐욕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그가 단순히 태양신의 환생이기만 했을 적에는 느끼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물들고 있는 건가?”
마왕의 걸음이 찍어 누르듯 바닥을 딛는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외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서로의 눈이 그들의 내면을 탐색한다.
마왕은 외신으로부터 역순환의 단서를 얻으려 했고, 외신은 마왕의 진의를 간파하려 했다.
터엉!
그 결말은 파멸이었다. 서로를 향해 내질러진 공격이 교차한다.
당연하게도 피해를 보는 건 마왕이 유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조차 이것보다는 승산이 있을 거다.
“죽지 않는다고 해서 전부인 줄 아는 거냐?”
물론 지금의 마왕은 불사의 힘을 가지고 있다.
제아무리 외신이라 한들, 지금의 마왕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콰직. 콰직.
그러나 불사라고 해서 죽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기야 그런 것쯤은 태양신과 외신의 죽음으로 이미 증명된 바다.
불사라는 것은 분명 견고한 방패였지만, 신의 앞에서까지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죽어라. 그리고 사라져!”
외신은 마왕의 육체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그럼에도 마왕은 죽지 않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
하물며 외신은 그 대단한 태양신조차 침묵시켜 버린 존재가 아닌가.
외신이 그토록 설치는 와중에도 태양신이 가만히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뭣?”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외신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와중에도 기어이 접근에 성공한 마왕.
그의 붉은 눈이 광기에 젖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잡았다.”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 행동.
그러나 마왕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당연한 행동이기도 했다.
외신의 살해.
그리고 마왕의 목적을 위해서는 외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고작해야 팔 몇 개 정도에 고전하려고 여기에 온 건 아니라는 거다.
“뭘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군.. 잡았다고 해서 뭐가 바뀐다는 거냐!”
하지만 마왕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지금의 그로서는 외신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두 신의 격차는 그만큼 크고 깊었다.
“바뀌지 않겠지. 하지만..”
그러나 그런 건 마왕도 알고 있었다.
그로서는 외신을 쓰러트릴 수 없다는 걸.
그의 힘으로는 외신을 죽일 수 없다는 걸.
“내가 안 되면 다른 놈을 데려오면 되는 거잖아?”
그렇기에 마왕은 처음부터 직접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래봤자 외신의 편린조차 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 설마 아직도 태양신을 믿고 있는 거냐? 그 태양신이 지금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물론 외신으로서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설령 태양신을 데려온다 해도 전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신? 틀렸어. 설마 벌써 잊은 거야?”
“..뭐라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잖아?”
하지만 여유를 부리는 것도 잠시.
외신의 뇌리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설마..’
그 정체는 과거 그의 말에 속아 호루스족을 배신했던 미트라에 대한 것이었다.
멍청하게도 저 스스로 심장을 바쳐 외신의 노예가 되었던 그.
그런데 그 노예를 멋대로 해방해 버린 건 누구였지?
“손으로도 모자라 마탄까지 쏘아주다니.. 이거 참 감격스러운 일인데?”
“멈춰라!”
“이미 늦었어!”
이윽고 마왕의 몸을 타고 막대한 마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정체는 조금 전까지 그의 몸을 헤집었던 마탄과 마수. 그리고 그 자신의 마기였다.
뒤섞이는 두 개의 힘.
파도처럼 몰아치는 격류는 단 한 순간, 외신의 몸에 깃든 ‘계약’에 간섭하는 것에 성공하고 있었다.
외신이 옭아매고 있었던 두 신을 해방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그 사실에 분노를 참지 못한 외신이 마왕의 몸을 튕겨냈다.
솟구쳐 오르는 마기에는 외신의 진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고맙다. 마왕. 너의 덕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두 신들이 외신의 앞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