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 역사(2)
파라켈수스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뭐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가 거느리고 있었던 강철의 군대가 쓰러진다. 아니, 사라진다.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무슨 짓을 한 거냐! 라나 클락!”
그러나 가장 경악스러운 일은 따로 있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세운 라나 클락.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파라켈수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기 시작했다.
“..난 분명 죽었는데?’
물론 이 느닷없는 부활에 가장 놀란 것은 라나 클락 본인이었을 거다.
라나의 손이 제 심장 위를 만진다.
두근.
그러나 거짓은 없었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완벽한 부활이었다.
“이게 대체..”
라나는 그 믿을 수 없는 진실에 숨을 삼켰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몸에 새겨져 있었던 상처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부러졌던 성검조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꿈인가?’
이쯤 되면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라나는 어쩌면 이곳이 사후 세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꿈이구나.’
라나는 죽음의 순간에서의 환각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게 바로 조금 전 파라켈수스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그녀가 아닌가.
칼날이 자신의 몸을 꿰뚫던 감각이 아직도 선연하기만 한데 이것이 진짜일 리 없지 않나.
라나는 결국,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용사님! 출격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게 거짓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다.
라나가 눈물을 머금은 채 돌아섰다.
그녀의 뒤에는 쓰러졌던 병사들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은 쓰러졌던 적이 없었다.
“아..”
저 멀리 지평선 위로 옛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무너졌던 도시들은 어느덧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라나는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그들을 마주했다.
“여러분이 어떻게..”
눈물을 훔쳐내며 고개를 들어보면, 병사들의 눈빛에는 사기가 가득했다.
저런 눈빛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했던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용사님?”
아니, 오히려 그들이 울먹이는 라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후..”
라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믿기 어려운 기적.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병사들은 마치 이전의 기억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기억도, 파라켈수스에 대한 공포나 그 어떤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 태도.
라나는 우선 상황을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라나!”
하지만 그런 라나조차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작은 배. 그 위에는 옛적에 죽어버린 칠검이 서 있었다.
어색하다는 듯 뺨을 긁적이는 예이츠와 시선을 피하는 티타르가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라나!”
그뿐이던가. 저 하늘 너머에는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엘리아가 천둥마를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레고리오를 타고 달려오는 데이브 클락이 있었다.
꿈만 같은 재회였다.
라나는 얼결에 그들을 끌어안으면서도 좀처럼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데이브가 물었다.
“라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혹시 너는 알고 있어?”
모두가 데이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뒤바뀐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이들에게는 병사들과는 다르게 ‘본래의 역사’에 대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한 짓일 거야.”
질문에 답한 것은 라나가 아니었다.
천둥마에 올라탄 채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는 엘리아.
그녀는 이곳에 없는 누군가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한때는 벨제뷔트, 또 다른 때는 데이브 클락이라 불리던 그들의 동료를.
“날 이 시대로 다시 보낸 것도 그 녀석이었거든.”
“..이 시대?”
물론 엘리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수년 전도 아니고 수억 년 전의 일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냐마는..
다만 그녀가 말한 ‘그 녀석’이 누구인지 만큼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 모든 게.. 아저씨가 한 일이라는 건가요?”
“그래,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내가 아는 그 녀석이라면.. 모든 걸 돌려받으려 할 테니까.”
모든 것. 라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도..
“이럴 리 없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러나 일행들과는 달리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바로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시작점이었던 파라켈수스가 그 정체였다.
하기야 그에게는 이 모든 광경이 악몽처럼 느껴졌을 거다.
“왜 저들이 다시 살아난 거지?”
아니, 차라리 악몽이라면 그나마 나을 것 같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라면, 언젠가 깨어날 수도 있을 거라는 뜻이니까.
“무슨 짓을 한 거냐! 데이브 클락!”
파라켈수스의 울분에 찬 비명이 울려 퍼진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의 바람이 이뤄지는 거였는데.
지난 3천 년간의 꿈이 비로소 성사되는 거였는데.
“음. 미안하지만 나도 잘 몰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으아아아아아! 데이브 클락!”
물론 데이브라고 해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파라켈수스가 그 말을 믿을 리 없겠지.
당연하게도 그는 이번에도 데이브 클락이 원흉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그의 계획을 망쳐왔던 사람은 오직 데이브 클락뿐이었으니까.
파라켈수스가 피눈물을 흘리며 데이브에게로 달려들었다.
“좋아. 다시 한번 승부를 내자..!”
데이브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곧장 검을 뽑아 들고 파라켈수스에게 겨눴다.
물론 승산은 여전히 희박했다.
상대는 반신이었고, 이미 한번 그를 죽인 상대였으니까.
‘어차피 한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몸..!’
그러나 상대는 클로드와 아레스의 원수였다.
데이브에게는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었다.
이윽고 펼쳐지는 황혼의 빛.
“황혼명.. 어?”
그런데 그 순간, 파라켈수스의 몸이 사라졌다.
설마 또 다른 권능을 사용하기라도 한 걸까?
데이브가 긴장한 기색으로 주위를 살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무슨 짓을 해올지 몰랐다.
“..어?”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분명 파라켈수스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본 것 같은데.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뒤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사라져 있었다.
설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데이브와 일행들은 어느덧 평화로운 도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마치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혹시 환각을 보고 있기라도 한 걸까?
‘..환각이라기엔 너무 생생하잖아?’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별 희한한 사람을 본다는 듯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롭다 못해 안전불감증에 걸린 듯한 반응이었다.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고 이런 반응이라니?
“거기 너! 도시 한복판에서 검을 휘두르다니 무슨 생각이냐!”
심지어 그들을 체포라도 하려는 듯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설마 파라켈수스의 또 다른 부하들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약한데?
“검을 내려라!’
“…”
아무리 봐도 파라켈수스와는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데이브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검을 집어넣었다.
“그, 나는 데이브 클락인데.. 혹시 여기에 있던 사람 못 봤..”
우선은 질문부터 해보자.
그래도 정체를 밝히면 그가 누군지 정도는 알아보겠지.
“데이브 클락? 그게 누구냐. 수배자냐?”
“..뭐라고?”
그런데 어째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데이브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나를 모른다고?
영웅 ‘데이브 클락’은 분명 이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일 텐데?
‘저 반응은 뭐지? 설마?’
그 순간 데이브의 머릿속에 기묘한 예감이 스쳤다.
마치 전쟁 자체를 모르는 것만 같은 사람들의 반응. 데이브를 알아보지 못하는 병사.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도시와 사라져 버린 파라켈수스까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그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다.
“..데이브 아저씨.”
“..라나. 왜 그래?”
“..제 안에 있던 어둠의 정령이 사라졌어요.”
심지어 그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데이브가 아연해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사를 바꾸다니.. 이건 규모가 너무 크잖아..’
아무래도 그의 친구가 또 일을 벌인 모양이다.
* * *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연국의 병사들.
하나같이 죽지는 않았지만 누구 하나 뼈가 부러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마 치료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
“우리가.. 우리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거냐!”
아직 쓰러지지 않은 병사 하나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수백 년간 이어지던 귀족들의 만행에 분노해 들고 일어선 민중들.
그들의 무리는 이윽고 반란군이 되어 나라를 뒤집어엎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들의 무리를 왕으로 세웠고, 그 왕은 ‘연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사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지.
“너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뭐, 뭐라고..?”
“말했잖아. 내가 용건이 있는 건 연화은. 연국의 황제라고.”
“폐, 폐하께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기습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병사.
나는 그 검격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물러섰다.
‘어우. 하마터면 베일 뻔했네.’
물론 저런 칼에 베인다고 해서 나한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고작해야 소드 익스퍼트한테 베인다고 해서 내 몸에 상처라도 나겠는가?
‘자칫하면 나라 채로 부숴버릴 뻔했잖아?’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내가 아니라 이 나라.
공격당하는 순간 실수로라도 신력이 흘러나온다면, 이 나라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겠지.
아니, 어쩌면 이 대륙 전체가 붕괴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심해. 잘못하면 맞을 뻔했잖아.”
“으아아아아!”
과연 이 병사는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의 손으로 이 나라를 포함해 대륙을 위기로 몰아넣을 뻔했다는 걸.
“죽어라아아!”
“어휴. 진짜 시끄럽네.”
나는 그대로 병사의 몸을 쳐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황성에 들어가 대전 안으로 박차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언제 봐도 재수 없는 얼굴이네. 파라켈수스. 아니, 지금은 연화은이던가?”
“..날 왜 그렇게 부르는 거지? 설마 이 뒤바뀐 역사는 너의 짓인가?”
“설마 바뀌기 전을 기억하는 거야?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외신의 꼭두각시도 하는 거겠지.”
“..뭐라고?”
“네가 신경 쓸 것 없는 이야기야.”
나는 그대로 놈의 앞으로 걸어갔다.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권좌에 앉아 일어설 줄을 모르는 모습.
“네 멋대로 역사를 바꾸는 것이 정녕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놈의 말에 웃었다.
“난 단 한 번도 내가 옳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하지만 사마연을 손에 넣겠다고 세상에 구멍을 낸 네가 할 말은 아니겠지.”
“너..! 감히 그 이름을..!”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세계가 또 한 번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