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 해피 엔딩?
데이브가 지친 얼굴로 밖으로 나섰다.
잔뜩 찌푸린 눈을 손으로 가린다. 태양 빛이 눈 부시다.
“자, 여기.”
데이브를 기다리고 있던 엘리아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
데이브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걸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
“두부라는 음식이래. 감옥 갔다 오면 이걸 주는 게 전통이라던데?”
“..처음 보는 음식인데? 이것도 바뀐 역사 때문인가?”
“글쎄. 바뀐 게 음식만이 아니라서.”
엘리아는 데이브에게 손짓하며 그를 이끌고 광장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칠검과 라나,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디 마왕성에서 목숨을 잃었어야만 하는 폴 뷔마와 프로키온. 그리고..
“..클로드?”
“데이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
기나긴 시간 후에야 비로소 이뤄진 재회였다.
쿵쿵 뛰는 심장.
“크흠. 이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까요?”
“..어?”
그러나 재회의 기쁨도 잠시, 누군가가 데이브에게 말을 걸었다.
마족이었다. 그것도 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고위의 마족.
“마, 마족이 여기는 왜..!”
데이브가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하기야 갑작스레 도심 한복판에 마족이 나타난 것이다.
그 모습에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뻔한 노릇.
자칫하면 또다시 병사들이 출동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거다.
데이브는 이제 이 두부라는 음식은 그만 먹고 싶었다.
“..어라?”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이 평온했다.
아니, 평온하다 못해 무관심했다. 마치 마족이 뭐 어쨌냐는 듯한 반응이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은 인간과 마족들이 공존하는 도시거든요.”
혼란스러운 듯한 데이브를 진정시킨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휘둥그렇게 변하는 데이브의 눈.
“프, 프로키온? 당신이 어떻게..”
“하하. 역시 놀라시는군요.”
그곳에는 프로키온이 데이브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 ‘프로키온’ 시의 시장, 프로키온 백작이라고 해야겠지.
이전과 달리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그.
“일단 늦게 풀어드린 건 죄송합니다. 저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거든요. 당신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도 라나의 말을 듣고서 알았을 정도니까요.”
“..말이 좀 공손해지신 것 같은데요.”
“그랜드 마스터의 앞에선 공손해야죠. 제가 왕이 되었을 때 반란이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왕이요?”
난데없는 반란 선언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데이브의 눈이 다시금 마족에게로 향했다.
이제 보니 꽤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과거와는 달리 기계 몸이 아니라 그런지 알아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 것 같다.
“단탈리안.”
“네, 기억하시는군요.”
그곳에는 본래의 육신을 되찾은 단탈리안이 서 있었다.
“단탈리안..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건 설마..”
“네, 마왕님께서도 살아계십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그곳에 가시면 알게 될 겁니다.”
단탈리안의 손짓에 저 하늘 위에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내려왔다.
안드로말리우스가 사역하고 있는 거대한 마수.. 아니, ‘환수’였다.
“..원래는 마수를 다루지 않았나요?”
“이 세상에 더 이상 마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마족과 인간이 싸울 이유가 사라진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거기도 하고요.”
“..그런 게 가능한 일이야?”
“저에겐 불가능하죠. 그리고 마왕님도요. 하지만.. 그분이라면 다릅니다.”
“..그분?”
“지금 여러분들이 찾고 계신 그분이죠.”
데이브의 물음에 답하는 단탈리안의 표정은 까닭 모를 아련함을 품고 있었다.
마치 단탈리안이 아닌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가보도록 하죠.”
그래, 뭐든 간에 우선은 가보고 생각하자.
데이브와 일행들은 안드로말리우스의 환수 위로 올라탔다.
그렇게 도착한 마왕령. 그런데 그곳에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올가? 생원?”
라나가 마왕령 내를 활보하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라나!”
두 사람 역시 그런 라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다.
토인족과 하프 데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라나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다.
마치 이전까지의 모든 것이 한때의 악몽이었던 것만 같다.
앞으로도 이러한 행복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다.
‘..정말로 그럴까?’
하지만 행복이 이어질수록 라나는 오히려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불행에는 한도가 없다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와라.”
그리고 그런 라나의 불안은 마왕성에 들어서는 순간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굳은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는 벨제뷔트.
그런 그의 곁에는 처음 보는 마족이 서 있었다.
“..그분은 누구죠?”
“벨제고트. 나의 아들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들? 아들이라고?
일행들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마왕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니 어딘가 거리감이 들었던 탓이다.
마치 영원히 아이일 것만 같았던 친구가 결혼을 한 느낌이랄까.
“뭐,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은 날 좀 도와다오.”
“돕다니요? 뭘 하시려는 건데요?”
“파라켈수스를 죽일 거다.”
그 말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검을 뽑아 들었다.
* * *
도대체 얼마를 걸어온 걸까.
하기야 시간을 헤아리는 건 의미가 없겠지.
솔직히 이쯤 되면 좀 지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따라와 준 솔레이에게 미안함이 들 정도다.
“푸르릉.”
“그래, 이제 마지막이야.”
이윽고 내 발이 닿은 곳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마왕령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어느 고즈넉한 나라의 왕성.
어쩌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곳.
“아르나드 왕국.”
이곳이 나의 종착점이었다.
아마도 이 이상의 미래로는 가지 못하겠지.
섭리가 나를 멈춰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나를 과거로 보낸 왜곡점이 여전히 나를 이 시간에 붙들고 있는 거다.
그러니 아마 그 아이와도 다시 만나기는 힘들 거다.
나 역시 마지막을 준비해야겠지.
“..너.”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결코 잊지 못할 목소리. 익숙한 발걸음.
쐐액!
뒤돌아서는 순간 날아드는 것은 칼날이었다.
나는 그것을 가볍게 피해내며 검의 주인과 눈을 마주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한참이나 어린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클라리스.”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클라리스 아르나드.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환상은 또 뭐고!”
아무래도 그녀는 이 모든 것이 환각이라고 인지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내 개입으로 인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마수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즉, 마족과 인간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마족의 힘만으로는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기 힘들겠지만 지난 세월은 그걸 가능케 했다.
나는 수십억 년의 시간에 걸쳐 인간들의 팽창을 억누르고, 그들의 오만함을 꺾어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지켜내지 못한 인물들도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인간과 마족의 동맹은 체결되었다.
아르나드 왕국은 마족의 친구가 된 것이다.
“이런 환각을 보여준다고 해서 내 마음이 바뀔 것 같아?”
그러나 클라리스에게는 이 모든 것이 거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겠지.
이 순간의 결말뿐만이 아니라 삼천 년 후의 기억까지도 가지고 있는 그녀라면.
“환각이 아니야. 클라리스 아르나드.”
“헛소리하지..”
“이 모든 건 진실이야. 정확히 말하면 ‘뒤바뀐 진실’이라고 해야겠지만.”
“..바뀌었다고?”
“미래를, 아니.. 과거를 바꿨다고 해야 하나.. 뭐든 간에. 더 이상 네가 걱정할 건 없어.”
클라리스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기야 그녀로서는 쉽게 기뻐하기 힘든 일이겠지.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할 거고.
무엇보다 그간 나나 세상에 느끼고 있었던 원망이 부질없게 느껴질 거다.
순순히 기뻐하기는 힘든 이야기.
그러나 나는 믿고 있었다.
클라리스는 결국 이 세계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할게.”
“..어딜 가는 거야?”
“마무리할 게 있거든. 너도 알잖아. 애초에 우리가 왜 싸우게 된 건지.”
“..파라켈수스.”
클라리스가 검을 집어넣으며 내게 말했다.
“나도 같이 가.”
“그 몸으로 뭘 하겠다고? 잊고 있나 본데 지금의 너는 용사가 아니야. 클라리스.”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아직 네 말을 믿을 수 없어.”
“그래서 따라오겠다고?”
“..그래. 방해는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와.”
“그런데.. 어딜 가는 거야?”
나는 가만히 마왕성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을 구하러.”
오늘은 벨제고트가 죽는 날이었다.
* * *
파라켈수스의 눈이 어둠 속을 노려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이 세상을 멸망의 직전으로 몰아넣고 있었을 터.
그런데 왜 돌연 3천 년 전의 시대에 와버린 걸까.
왜 또다시 아르나드의 종자가 되어 버린 거지?
‘..환각인가?’
클라리스가 그러했듯, 파라켈수스는 이내 이 모든 것이 환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증스러운 데이브 클락이 이번에도 자신을 속이려 드는 거라 판단했다.
마왕성에서도 한 차례 환각을 보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다고 해서 내가 포기할 줄 알았나?”
뭐든 간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면 이곳에서 클라리스를 만나는 건 의미가 없을 테지.
어차피 깨어질 환상이라면 그보다는 현실에 더 집중하는 게 나을 테니까.
“하필 이 시대의 환상을 보여준 게 너의 실수다..!”
파라켈수스는 이 환상을 역이용하고자 했다.
이 환상 속에 존재하는 벨제고트를 죽여 데이브 클락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자 한 것이다.
잔혹하게 빛나는 파라켈수스의 눈
그의 몸이 이윽고 마왕성의 창문을 넘어섰다.
“기다리고 있었다.”
“..벨제뷔트!”
그런데 아무래도 행동을 읽혀버린 모양이다.
눈앞의 적을 발견한 파라켈수스가 검을 뽑아 들었다.
반면, 벨제뷔트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길 수 없는 적을, 반신을 마주하고도 머뭇거리는 기색이 아니다.
“..넌 데이브 클락이 아니군.”
“그래, 난 벨제뷔트다.”
“그럼.. 놈은 어디에 있는 거지?”
벨제뷔트는 말 없이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돌아서는 파라켈수스.
“..뭐지?”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갑다. 파라켈수스.”
“넌.. 넌 도대체..”
“이제 좀 상황을 알겠나?”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한동안 눈을 굴리던 파라켈수스는 이내 상황을 파악한 듯 미소 지었다.
“그랬군.. 그런 거였어!”
광기에 젖은 그 눈동자가 마신을 바라본다.
“너! 과거를 바꾼 거구나!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였어!”
“그래, 네 말대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너뿐이지.”
“하하하! 멍청한 짓을 했군. 내가 이런 걸 고려하지 않았을 것 같더냐! 과거와 현재. 그 모두를 바꾸려면 양쪽 모두에 개입해야 해! 네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건 간에 과거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단 말이다!”
아마도 파라켈수스의 말은 진실일 거다.
클라리스를 되살리고자 별의별 짓을 다 했던 그였으니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겠지.
시간은 단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하나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전반적인 흐름 전체에 간섭할 필요가 있었다.
“알고 있어.”
그러나 마신이 그걸 몰라서 이런 짓을 벌인 건 아니었다.
뽑아 올린 검. 그의 검이 파라켈수스의 몸을 겨눈다.
“..공명?”
파르르 떨리는 검. 단순한 진동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무언가와 공명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검의 모습.
그 모습에 표정을 굳힌 파라켈수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검을 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저 검과 공명하고 있는 거지?
“..설마.”
“황혼검. 여명검. 세월검. 모두 익혀야 시공검이 되지. 하지만 굳이 한 사람이 그걸 익힐 필요는 없지 않겠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파라켈수스가 마신을 보며 소리쳤다.
그로서는 알 수 없는 공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네가 알 거 없잖아. 어차피 사라질 텐데.”
마신은 그런 파라켈수스를 보며 웃었다.
그러나 파라켈수스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비명처럼 쏘아낸 말.
“여기서 날 죽이면! 너는 원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걸 알고 이러는 거냐! 세계의 섭리가 너를 내쫓을 거란 말이다!”
“상관없어. 이걸로 그 아이와 헤어지게 된다 해도..”
하지만 마신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영원한 이별은 아닐 테니까.”
마신의 검이 파라켈수스의 몸을 가른다.
비명처럼 뻗어진 손. 파라켈수스의 눈은 마지막까지도 클라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 스승..”
오랜 여정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