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4)
24화 – 대머리와 악마(3)
예이츠를 무시한 채 달려가는 데이브.
그 모습에 두 마족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정면승부를 할 것처럼 나설 때는 언제고 왜 엉뚱한 놈을 공격하는 거지?
‘당연한 행동이지. 예이츠 하나에게 전력을 다 해 봤자 다른 놈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니까.’
그러나 마족들과는 달리 안드라스의 반응은 차분했다.
아니,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이다.
어쩌면 안드라스 자신부터가 냉철한 연구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전사가 아닌 만큼, 그에게 있어선 수백 년을 넘어 재현된 인연 같은 건.
전투의 낭만 같은 건 단 한 줌의 가치도 없다는 거다.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상황을 분석하는 게 더 나았으니까.
‘마족들은 사이클롭스를 쓰러트릴 힘이 있는데도 시간만 끌고 있었지. 저놈을 도우려는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어. 애초에 저들은 같은 편이 아니었다는 건가? 그럼 왜 저 남자를 쫓아 연구소에 찾아왔던 거지? 아, 그렇군.’
그 순간, 안드라스의 뇌리에 떠오르는 가정이 있었다.
‘저 마족들은 저 남자를 용사라고 생각했던 거야. 하긴, 저 나이치고는 훌륭한 실력이긴 하지. 당대의 용사가 마법사라는 것을 모른다면 오해할 만도 해.’
그는 한껏 오해를 하고 있는 마족들과는 달리 완벽하게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 괜히 연구소장이 된 건 아니라는 거겠지.
“하지만 이래서야 곤란하군.”
그러나 제아무리 머리가 좋다 한들 뭘 하겠는가.
칼날 앞에서는 그 역시도 한낱 인간에 불과할 진데.
오해고 뭐고 간에 일단은 데이브를 쓰러트린 다음의 이야기라는 거다.
카드득!
다음 순간, 데이브의 검날이 안드로이드들의 발목을 스친다.
본래라면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을 검격이었다.
터엉!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 손에 들린 것이 예이츠의 검이었기 때문일까.
싸구려 검으로 근근이 버텨왔던 이전과는 달리 공격력 자체가 몰라볼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쿵!
발목이 갈라진 안드로이드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데이브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돌격을 거듭했다.
그야말로 신위라고밖에는 부를 수 없을 활약이다.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아니,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 그럼 정말로 순식간에 강해진 건가? 하지만 그건 마치..”
사실, 이쯤 되면 안드라스도 좀 헷갈리긴 했다.
갑작스레 강해져 버린 데이브의 모습이 그의 판단에 혼란을 준 것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아는 것이 많아서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고.
‘설마 정말로 용사란 말인가?’
그 순간 안드라스가 떠올린 것은 이른바 용사 시스템.
혹은 시련의 가호라 불리는 권능이었다.
일정 업적을 달성하는 순간 용사에게 믿기지 않는 힘을 부여한다는, 오직 용사만이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알려진 최상위의 가호.
한낱 농부에 불과했던 이를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로 탈바꿈시킨다는 신의 선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안드라스는 곧 제 생각을 부정했다.
한 시대에 두 명의 용사가 존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용사 시스템 역시도 두 개가 한꺼번에 등장할 수는 없다는 거다.
‘..뭐든 간에 마족들이 괜히 저 남자를 쫓아 온 것이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우리의 눈을 피해 용사로 각성할 수는 없을 텐데?’
허나 마냥 부정하기엔 데이브의 성장이 지나치게 인상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기야 데이브의 정체가 회귀한 마왕이며 그 옆에 전직 여신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냐마는.
‘저놈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변수를 용납할 수는 없지. 결국은 저 남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건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아무래도 지금 전력으로는 힘들지도 모르겠어.’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안드라스의 미간이 모인다.
남은 것은 지극히 극단적인 해결책뿐이다.
“그나저나 저건 용사라기보다는 마치 마족 같은데? 정말 내 착각이 아닌 건가?”
반면, 데이브의 전투는 시간이 갈수록 격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오러는 이제 진짜 불꽃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데이브가 기준대로라면 화염의 오러를 사용할 그릇이 완성된 것이다.
이제 여기에 열기만 더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속성 오러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겠지.
“크윽..!”
그러나 완성에의 길은 여전히 힘겨웠다.
온도가 올라가고는 있었지만 따뜻하다는 수준이 전부.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한 걸음을 도저히 내디딜 수가 없었다.
오러의 성질을 변화시킨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거겠지.
“젠장.”
그런 와중에도 상황은 차근차근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지금이야 어찌어찌 견뎌내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테지.
매 순간 전력을 다해 몰아치고 있는 데이브와는 다르게 상대는 지치지 않는 안드로이드였으니까.
“후욱.. 후욱..”
결국, 견디지 못한 데이브가 먼저 나가떨어졌다.
전신의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몸이 뜨겁다.
이 열기의 절반만이라도 검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면 진작 속성 오러를 완성했을지도 모르지.
‘젠장, 마기였다면 이렇게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데이브의 눈이 일순 붉게 물들다가 가라앉았다.
답답함을 느낀 탓인지 자꾸만 마족의 권능이 발현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 될 말이다.
마기를 쓴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마족들의 앞에서 섣불리 마왕의 권능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적어도 마족 중에 존재하는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젠장.”
허나 그런 데이브의 마음과는 별개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빠졌다.
줄곧 밀어붙이던 때와는 다르게 기어이 전세가 역전되고 만 까닭이다.
-기긱. 긱.
결국 물러서고 마는 데이브.
그와 동시에 안드로이드들의 눈이 새파란 빛을 뿜어낸다.
* * *
같은 시각, 라나의 상태는 시시각각 악화하고 있었다.
속이 매스껍다. 구역질이 난다.
전신이 바르르 떨리고 눈이 뒤집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라나? 괜찮니? 응?”
“벨.. 몸이 이상해요.”
원인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저쪽에서 한창 예이츠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두 명의 마족.
그들이 연신 뿜어대는 마기가 그녀 안의 아르카나를 자극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하급이어도 마족은 마족이라는 것일까.
그만큼 라나도 충동을 이겨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만둬. 나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런 라나를 보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직 각성하지도 않은 아르카나의 충동쯤, 그냥 견뎌내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라나?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벨..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가요?”
하지만 아르카나의 정체가 무엇이던가.
기본적으로 아르카나는 성검의 파편 수백 개를 모아 제련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아르카나에는 용사라는 존재를 등불 삼아서 모인 사념들이.
지난 삼천 년을 살아갔던 모든 인류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거다.
당연하게도 그 마음의 태반은 마족에 대한 적의로 이뤄져 있을 테지.
자신들의 숙적을, 마족을 멸하고 인류의 평화를 실현해달라는 망념에 가까운 사상이 담겨 있는 거다.
각성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습게 볼 수는 없을 테지.
애초에 아르카나라는 물건 자체가 열 살짜리 소녀에게 줄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거다.
스르릉.
그러니 충동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단검이 뽑혀 나온다.
라나의 갈색 눈은 어느덧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지?
“라나? 라나! 멈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벨이 그녀를 막아섰지만 소용없었다.
페어리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십장님! 마기의 흐름이 좀 이상합니다!”
“설마 마기 부족이냐? 학교에서 놀았던 건 아니지? 물러서! 내가 앞장선다!”
반면, 마족들은 여전히 예이츠와의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느닷없이 이뤄진 전투였기에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탓이다.
하도 끈질기게 달라붙어 오는 탓에 섣불리 발을 빼기가 애매했다.
그나마 데이브가 예이츠의 검을 빼앗아 간 덕에 전투 자체는 호각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글쎄..
그걸 감사해야 하는 건가?
“저 빌어먹을 놈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람!”
단탈리안이 열 개의 손톱을 휘두르며 반격에 나선다.
하지만 상대의 방어가 보통이 아니다.
강철조차 손쉽게 잘라내는 그의 손톱이건만 오히려 그의 손이 아파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대 마족병기라고 해야 할까.
전직 용사답게 마족이 상대라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크윽..!’
그런데 왜 공격한 쪽의 몸이 갈라지고 있는 걸까.
단탈리안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이건 예이츠의 특기인 무형검의 응용이었다.
기본적으로 예이츠의 오러보다 강한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디 얼마나 단단한지 보자!”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단탈리안의 안광이 짙어진다.
그와 동시에 단탈리안의 몸에서부터 끈적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흘러나온 마기가 불꽃처럼 타오른다.
거대한 불꽃. 이윽고 그것이 단탈리안의 몸을 집어삼켰다.
마치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만 같은 광경이다.
그러나 마족에 대해 잘 아는 이라면 이 모습에 오히려 경계심을 품을 테지.
“네가 옛 용사의 기술을 어디서 배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검은 불꽃은 그의 몸을 불태우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왜냐하면 저 검은 불꽃은 마족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현현 과정이었으니까.
“죽여주마! 과거의 망령아!”
단탈리안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박쥐의 것을 닮은 날개와 염소의 뿔. 사자의 손을 가진 단탈리안이 분노의 철권을 내지른다.
본래의 예이츠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약화된 상태의 그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공격이다.
‘..어?’
그러나 승리를 확신하기엔 아직 일렀다.
다음 순간, 단탈리안의 몸에 이변이 발생한 까닭이다.
그의 손톱이 갈라진다. 피부를 덮고 있었던 비늘들이 무너져 내린다.
“이게 무슨..”
숨이 벅차다. 본디 차가워야 할 마족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다.
지금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 순간, 단탈리안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안드로말리우스로부터 들었던 말이었다.
‘마기의 흐름이 이상하다고 했던가? 설마 마기가 부족하다고 말한 게 아니라..!’
왜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던 것일까.
딱히 그가 평소에 거짓말을 일삼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커헉..”
그러나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법이다.
부풀어 오른 풍선에서부터 바람이 빠져나오듯, 단탈리안의 몸이 줄어든다.
마기를 통제하기가 힘들었던 까닭이다.
아니, 통제할 마기 자체가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설마.. 설마 이게 용사의 힘인가?’
그 순간, 단탈리안의 뇌리를 스친 것은 데이브의 존재였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들은 라나가 하프 데몬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
정작 데이브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아, 안드로말리우스..”
“시, 십장님!”
쓰러지는 단탈리안. 정신이 아득해진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당장에라도 기절해 버릴 것만 같은 기분.
그러나 단탈리안은 그것을 거부했다.
실로 놀라운 집념이었다.
단탈리안이 안드로말리우스의 어깨를 잡고 몸을 일으킨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정신을 붙드는 것이다.
반드시 그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던 까닭이다.
‘역시.. 너였구나. 네가 이번 대의 용사였어..!’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덤덤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데이브를 볼 수 있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물드는 순간이다.
남은 것은 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겠지.
‘용사의 능력은 시대마다 달랐지. 조금 전의 그 기사가 무형의 오러를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야. 이번 대의 용사는 마기를 지워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건가?’
머릿속에 경종이 울린다. 위험하다. 진한 위기감이 가슴을 서늘하게 물들인다.
만약 저 남자가 이 힘을 완성 시킨 후 마왕성을 공격해 온다면…
“제, 젠장.. 안드로말리우스. 퇴, 퇴각한다!”
“하, 하지만 십장님!”
“내 말 들어! 당장 이 사실을 마왕님께 알려야 해! 명령에 따라라! 안드로말리우스!”
잠시 망설이던 안드로말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양팔이 단탈리안의 몸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세차게 날갯짓하며 순식간에 던전을 빠져나간다.
“…”
데이브는 제자리에 선 채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일견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마족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에게는 마기를 지워내는 힘 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쿨럭.”
“아, 아저씨..?”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전신의 마기가 사라져 버린 까닭이다.
뒤를 돌아보면, 라나는 그의 등을 찌른 채 제자리에 멈춰있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머릿속을 물들이는 것은 강한 의문, 그리고 죄책감이다.
라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허나 데이브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라나의 몸을 밀어낼 뿐이다.
“후.”
그리고 다시금 전장을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