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6)
26화 – 용사 귀환.
공략과 동시에 던전이 사라진다.
그렇게 다시 나온 세상 밖.
탕 티르는 저무는 태양을 등진 채 평야를 가로질렀다.
먼지투성이의 몸이 허공을 휘적이며 내달린다.
방향이나 체력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질주였다.
‘대체 뭐야! 저게 뭐냐고!’
길잡이로서의 지침을 완벽히 무시하는 도주였으나 애석하게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냉철한 이성이 앞서기보다 먼저, 마음 가득한 공포가 그의 걸음을 재촉하는 까닭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라고, 당장 이곳을 벗어나라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헉.. 헉..”
그러나 사실,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연구원이건 마족이건 데이브건 간에 이미 진작부터 탕 티르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단지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탕 티르의 마음이 절망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해. 여긴 지옥이야!’
하기야 지금은 정체불명의 기계군단과 마족의 무리가 등장한 상황이다.
심지어 마족들에 의해 제 동료들은 쓰러져 버리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 혼자서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라는 거다.
심지어 그 두 세력을 혼자서 압도해 버린 괴인까지 있었으니 도망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 괴인, 데이브와는 완전히 척을 져버린 상황이라면 더 그럴 테고.
‘이럴 줄 알았으면 배신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설마 동료들을 구하겠다고 벌인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차라리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겠지.
이미 그전부터 데이브를 향해 무수한 망언들을 내뱉지 않았던가.
물론 탕 티르야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었지만, 별 의미는 없겠지.
데이브의 실력을 생각해 보면, 그저 쓸데없는 참견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
“젠장! 대체 뭐 하는 새끼야 그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데이브의 검이었다.
다른 두 세력을 단숨에 압도하던 거대한 불꽃.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속성 오러였다.
그것도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화염의 오러.
모르긴 몰라도 그 정도 화력의 불꽃을 피워낼 수 있는 건 제국의 궁정 마법사나 대륙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불의 정령사 이프리트 정도가 전부일 거다.
사실상 데이브의 검은 8서클 마법사들의 헬파이어나 상급 정령들의 불꽃에 비견되는 위력이었다는 거다.
애초에 고작 용병단의 후계자 따위가 범접할 상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어?”
그런데 그 순간, 달려가던 탕 티르의 걸음이 한 지점에 멈춰 섰다.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얼굴들이 보인 것이다.
“얘, 얘들아..?”
찾아드는 것은 혼란이다.
대체 왜 너희가 여기에 남아 있는 걸까. 진작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무사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는데.
“아.. 아아..”
눈빛이 떨린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하기야 제 동료의 시신이 눈앞에 있다면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으어어어..”
한때는 그의 동료였던 이들.
그런데 어째서일까. 동료 중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는 어째선지 좀비가 되어 있었다.
“살려 준다고.. 살려 준다고 했잖아..”
그들이 다른 마수들과는 달리 평원에 남게 된 건, 한때 데이브가 말했던 것처럼 언데드는 마수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하긴, 무슨 이유이건 간에 잔혹한 이야기다.
차라리 던전 소멸에 휘말려 사라져 버렸다면, 이렇게 희망이 깨지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탕 티르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힘없이 부르짖었다.
데이브 클락만 넘겨주면 동료들을 살려주겠다던 마족들과의 약속이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지켜질 리가 없었던 약속이기도 했다.
마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굳이 성가심을 감수하며 그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마 탕 티르가 데이브 일행을 무사히 유인했어도 그 결말이 좋지는 않았을 거다.
“아.. 아아..”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서 충격이 느껴지지 않을 리는 없다.
특히나 탕 티르 같은 사람이라면,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데이브에게까지 손을 내밀었던 그라면 더 그럴 테고.
“으어어어어어..!”
그러나 그런 탕 티르의 마음과는 달리, 저들은 이미 좀비가 되어 버린 상태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 속에 선 존재.
끝없는 고독에 시달리며 산 자의 피를 갈망하는.
걸어 다니는 죽음.
“크하아악!”
생전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두 좀비가 탕 티르를 덮쳐들었다.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벌어진 기습이었다.
하긴, 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서 의미가 있진 않을 거다.
설령 언데드가 되어버렸다 하더라도, 탕 티르가 과거의 동료를 벨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아..”
탕 티르는 그렇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렸다.
좀비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며 몸이 짓눌러버린 것이다.
카드득. 카드득.
쏟아지는 것은 무자비한 공격이다.
이대로 가면 필시, 탕 티르 역시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테지.
촤아악!
허나 그 순간, 두 좀비를 베어내는 이가 있었다.
단칼에 두 좀비를 반으로 갈라버리며 그를 일으켜 세우는 남자.
“너, 너는..”
그런데 그 얼굴이 낯이 익다.
흐려졌던 탕 티르의 눈이 또렷해졌다.
사실, 낯이 익다 못해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조, 조니? 사, 살아있었던 거야? 대체 어떻게..”
“응? 아.. 이 몸의 주인이랑 아는 사이였던 건가? 그것참 미안하게 되었군.”
그래, 어떻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탕 티르의 용병대의 소속원이자 뛰어난 검 실력으로 이름을 높였던 용병, 조니.
제 동료가 눈앞에 있는데.
“그, 그게 무슨 말이지? 그건 마치..”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어째 좀 이상하다.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저 눈빛은 대체 뭐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눈이다.
‘온기가 느껴지질 않아..’
무엇보다 맞잡은 이 손. 핏기 하나 없는 이 손은 마치..
“좀비..?”
“틀린 말은 아니군.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런데 지금이 몇 년이지?”
“그.. 제국력으로 102년인데..”
“제국력이라. 처음 듣는 기준인데? 그 말은 내가 죽은 날로부터 적어도 100년이 흘렀다는 건가?”
“배, 백 년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흠.. 이름을 말하면 알아들으려나? 내 이름은 예이츠. 성은 없고 그냥 예이츠다. 혹시 알겠나? 그래도 꽤 유명한 이름인데.”
탕 티르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물론, 아는 이름이 나왔다고 해서 알아들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는 당연히 조니라는 이름이 나올 거로 생각했을 테니까.
“그래? 이거 좀 섭섭하구만.. 역시 패자는 잊히고 만다는 건가? 서글픈 이야기야. 그럼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까? 용사. 네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네가 알지 못하는 용사라고 말이야.”
“..용사라고?”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
혼란의 뒤를 잇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이다.
탕 티르는 슬슬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이어지는 조니의 말은.
아니, 예이츠의 말은 단순히 놀라는 것을 넘어 탕 티르의 인생 자체를 바꿔 버릴 만한 것이었으니까.
“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다가오는 운명의 궤적을 알지 못한 채, 탕 티르는 그렇게 되물었다.
지금 이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누구라고?
“마왕 말이야 마왕. 혹시 이 근처에서 마왕 못 봤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근처에 있었는데.”
* * *
한편, 마왕성에서는 또 다른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급 마족, 단탈리안과 안드로말리우스가 올린 용사 발견 보고가 그 원인이었다.
지금까지의 추측성 보고와는 완벽하게 결이 다른, 누가 봐도 용사의 등장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는 보고서.
당연하게도 보고받은 마족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새로운 용사가 등장할 시기가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성가신 적이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기를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단순히 제어하는 게 아니라? 이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제 몸을 보십시오. 아직도 마기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능력이 마기 제어였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죠.”
줄곧 보고를 듣던 사천왕, 아가레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른 사천왕들.
바알과 바사고, 가미긴 역시 좀처럼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마족에게 있어 마기는 인간의 혈액이나 다름이 없는 힘이다.
그런 마기를 제어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지워버리는 이가 나타났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확실히.. 몸 안에 마기가 거의 없군. 회복 기간이 있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확실히 마기가 소멸했던 게 틀림없어 보여.”
“이건 마왕님께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마왕님은 바쁘시다. 그러니 그 전에 확인부터 해봐야지. 이봐, 단탈리안. 그자의 무력은 어느 정도였지?”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던 악마 대공, 바알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회의 석상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그답지 않게 유독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무력 자체는 아직 별 게 아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고 해야겠군요.”
“모르겠다고? 그와 싸우고 온 게 아니었나?”
“싸우려고 했었지만 다른 놈들이 개입해 오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보고를 드리라 하셨기에 별도의 문서로 제작했습니다. 왕립 연구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시면 될 겁니다. 그런데 그 연구원들도 보통 놈들은 아닌 것 같더군요. 왜 지금까지 저희가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요.”
“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새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별난 기계들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그 기계들만 해도 어지간한 중급 익스퍼트를 뛰어넘는 것 같더군요. 문제는 그게 놈들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자세히 설명해 보게.”
바알의 질문에 단탈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조종 및 강화했던 이상한 기계부터 시작해 무수한 기계군단.
그리고 오래전에 죽어버린 옛 용사의 기술을 사용하던 골렘까지.
“옛 용사라고? 누구를 말하는 거지?”
“무형검 예이츠입니다. 아마도 137번째 용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흠.. 그 녀석인가. 성가신 적이었지.”
마왕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최고령의 마족답게 바알은 예이츠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용사의 기술을 되살렸다는 것 자체는 놀랍지만 그래도 신경 쓸 정도는 아닌 것 같군.”
물론, 오래 살았다는 것이 꼭 현명하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용사를 완벽하게 복원했다면 애초에 너희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을 리 없을 테니까.”
단탈리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지만 바알의 태도는 지극히 가벼웠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가볍게 치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그렇군요.”
“그래도 일단 기억해 두도록 하지. 하지만 잊지 마라. 단탈리안. 우리가 우선시해야 할 건 어디까지나 용사라는 걸.”
의아해하는 단탈리안의 표정에도 바알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용사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어쩐지 묘한 말이었다.
‘중요한 건 되살아난 용사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가 아니라 용사가 되살아난 사실 자체인 것 같은데..’
단탈리안은 어딘가 논점이 어긋난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하급 마족에 불과한 그가 할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바알의 말이 틀린 건 아니기도 했다.
그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당대의 용사를 처리하는 것에 있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단탈리안.”
“얘, 바알 님!”
“너희의 공은 실로 칭찬할 만하다. 덕분에 당대의 용사에 대해서도 대비할 수 있게 되겠군.”
“과,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은 보고는 뒤로 미뤄야 할 모양이다.”
“네? 그, 그게 무슨..”
의아해하는 단탈리안을 향해 바알은 말없이 손을 들어 그의 뒤를 가리켰다.
단탈리안은 그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
그 순간, 묘하게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어딘지 모르게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만 같은 냄새였다.
단탈리안은 그가 품었던 의문들이 순식간에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리, 릴리스 님!”
그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곳에는 절세의 미인이 서 있었다.
마왕의 반려, 릴리스.
그녀가 마왕의 말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직접 찾아온 것이다.
“마왕님께서 당신들을 부르시네요. 회의는 나중으로 미루시죠.”
데이브의 앞날이 더욱 어두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