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
3화 – 데이브 클락(1)
눈을 뜨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더 이상 마족이, 마왕이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묘한 기분이군.”
몸이 무겁다. 생경한 기분이다.
분명 호흡하고 있음에도 공기가 희박한 기분.
요란하게 울리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몸이 뜨거워.”
물론, 가장 큰 차이는 이 몸을 타고 흐르는 혈액일 거다.
차갑기 그지없는 마족의 피와는 달리, 온기를 품고 있는 인간의 몸.
“이게 인간인가..? 내 생각과는 좀 다르군. 그래도 조금은 쓸 만할 줄 알았는데..”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셔 본다. 그리고 내쉰다.
정신을 하나로 모아 내면을 관조하는 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혈액과 그 안에 깃든 오러의 성질을 살피기 위해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앞으로 얻어낼 힘을 대략적으로나마 알아내기 위함이다.
“글렀네.”
그런데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인간치고는 나름대로 근육이 있긴 하지만 그래봤자 일반적인 수준.
전직 마왕이었던 내 눈에 찰 수준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해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무려 삼천 년의 지식이 아니던가.
심지어 마왕의 눈을 통해 읽어낸 용사들의 기억도 있는 상황.
설령 인간의 방식을 고르더라도 어지간한 용사 수준으로 강해지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거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야. 나와 싸웠던 그 용사 놈들만 해도 인간이긴 했지만 쓸만한 몸을 가지고 있었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허약하게 있지는 않겠지. 아니,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나는 순순히 체념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선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아닌가.
모든 게 끝났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거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약하면 강해지면 되는 거지. 나는 이제 벨제뷔트가 아니야. 욕심을 버리자. 그런데.. 지금 내 이름이 뭐지?’
나는 이 육신에 새겨진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마왕으로서의 자아가 너무 뚜렷한 까닭에 일시적인 망각이 찾아온 것 같았다.
하기야 기껏해야 백 년도 안 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거기에 삼천 년의 기억이 더해진다면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겠지.
‘아, 그렇군.’
그래도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육신에 깃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데이브 클락.”
이 육신의 이름은 데이브 클락이었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자 부모 없이 자란 고아.
그를 거둬준 상인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으며, 상인의 무남독녀와는 연인 관계에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목수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나마 근육의 상태가 쓸만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오늘은 심부름을 위해 잠시 마을을 나선 상황이었다.
목공소의 소장으로부터 목재에 칠할 유액을 사 오라는 말을 들어서다.
‘그나마 다행인가? 마을 안에서 전생을 각성했다면 갑자기 변한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우선은 상황을 파악하자.
마을 밖은 지금의 나에게는 위험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툭.
허리춤을 내려다보면 먼저 어수룩하게 매인 호신용의 단검이 보인다. 사실, 마음에 들진 않는다.
이런 건 인간 상대로는 쓸만할지 몰라도 마수가 상대라면 이쑤시개만도 못했으니까.
아무래도 무기부터 빠르게 구해야 할 것 같다.
검이라면 가장 좋겠지만 배틀 엑스나 활, 하다못해 숏소드라도.
‘그래도 심부름 값이 넉넉해서 다행이구나. 어쩐지 속여먹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인류를 위해서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지.’
나는 데이브가 옆 마을에서 물자를 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소장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첫 행보가 심부름 값 횡령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마족 멸망하기까지 앞으로 7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
고작 이런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거다.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야 좋기야 하겠지만 시간이 없어.’
아마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마법소녀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을 거다.
그 사실을 모르는 또 다른 나, 벨제뷔트는 마족들에게 닥쳐오는 멸망을 모른 채 허무감에 빠져 있을 테고.
그러니 어쩌겠는가. 급한 감이 있긴 하지만 그냥 떠날 수밖에.
“그러고 보니 나도 가호를 쓸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던가? 원래라면 곧 죽어도 여신의 힘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인간이 된 이상 마족의 권능을 사용하기는 힘들 거다.
개인적인 호오와는 별개로 쓸 수 있는 건 써야겠지.
나는 마음속으로 상태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인류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아리벨이 부여한 가장 기초적인 가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빌어먹을 아리벨. 상태창을 쓸 수 있을 거라면서?”
어째 이 상태창이라는 것.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설마 시작부터 장난이라도 치려는 건가?
아니, 어쩌면 전생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뭔가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우선은 넘어가자.”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처하는 수밖에.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만큼 앞으로 남은 7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아서다.
‘인간의 몸으로 내 검술을 구현하려면 일단 오러홀을 구성하는 게 좋겠지. 문제는 그걸 시도할 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오러홀 생성을 시도하기 위해선 안전하고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다.
나는 인간들의 수련법을 떠올리며 주위를 탐색했다.
감각을 예리하게 만드는 거다.
“젠장.”
그런데 오늘따라 일진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수련 장소를 찾아내긴커녕 외려 살기가 느껴지고 있다.
혹시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일까? 그게 아니면 도적?
데이브 클락으로서의 삶은 평탄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인간 기준에서는 다른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은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래도 상대가 인간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지나치게 마족 관점에서 생각한 건지도 모르지.
침착하게 주위를 잘 살펴보면 짐승의 꼬리와도 같은 무언가가 보인다.
가느다란 몸과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의 털이 인상적이었다.
하급 마수 중 하나인 호롱 여우다.
‘여우 마수라.. 하필 이럴 때 공격해오다니..’
긴장한 것치고는 약한 상대. 그런데 상황이 영 좋지가 않다.
호롱 여우가 단독적으로는 약한 마수이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상대가 단독일 경우의 이야기.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여우가 모이면 설령 중급 마수라 한들 견뎌낼 도리가 없었으니까.
당연하겠지만 상태창 하나 꺼내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테고.
‘도망칠까?’
마왕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되겠지만 사실 도망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놈들의 상태를 보아 꽤 오래전부터 나를 추격하고 있었던 것 같았으니까.
아마 도망친다 해도 얼마 못 가 잡히고 말 테지.
마수들의 후각은 보통이 아니었고, 지금의 나로선 그걸 속일만한 방법이 없었다.
설령 냄새를 지울 수 있다 해도 지금 내 속도로 마수를 따돌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나마 다행인가? 전생을 기억한 덕에 감각이 예리해지지 않았으면 이미 죽은 거나 다름이 없었을 테니까.’
뭐든 간에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나는 소리 없이 단검을 뽑아 들며 발소리를 죽였다.
쓸데없이 기척을 죽이거나 몸을 감추려 들지는 않았다.
그런 짓을 해 봤자 호롱 여우의 후각을 속일 수는 없을 테니까.
아니, 오히려 그런 행동에 자극당해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했다.
‘숫자는 대충 스무 마리 정도인가? 감각이 어중간하게 예민해서 정확한 숫자를 모르겠군..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어느 정도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하다못해 에테리얼 바디만 있었어도 저까짓 놈들에게 상처를 입을 일은 없었겠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오러 한 줌 쌓지 않은 인간에 불과하다.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마족들을 구하기는커녕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도 상대가 마수라서 다행인 건가? 가능하면 마족을 죽이고 싶지는 않은데..’
쓴웃음을 감추며 몸을 던져 바닥을 구른다. 그런데 어째 이조차도 움직임이 둔하다.
상정했던 것보다도 반 박자가 느린 움직임.
머릿속의 움직임과 실제의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
이 정도면 전생하기 전의 나는커녕 막 태어난 마족 아기보다도 약할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할만해. 척마의 가호에 당했을 때와 비하면 훨씬 상태가 좋으니까.’
“캐애앵!”
몸을 굴리기가 무섭게 공격해 오는 호롱 여우들.
나는 단검을 몇 번 휘둘러 지금 내 검속을 확인했다.
제대로 된 검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검속.
그러나 정확하게만 휘두를 수 있다면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콰득!
달려드는 여우의 목을 오른손으로 움켜쥔다. 단검은 왼손으로 바꿔 든 상황.
오른손잡이인 데이브와는 달리 나는 왼손잡이였다.
“키에에엑!”
“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른데?”
뒤를 잇는 것은 호롱 여우의 권능 중 하나인 신체 변형이다.
확실히 여우 마수의 권능은 성가셨다.
몸을 늘린 여우가 내 목덜미를 향해 달려든다.
나는 고개를 젖혀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이용했다.
촤르륵!
나는 늘어난 호롱 여우의 몸을 채찍처럼 휘둘러 다른 놈들을 휘감는다.
나는 그대로 다섯 마리의 여우를 결박했다.
촤아악!
뒤이어 휘둘러지는 단검.
잘려 나간 여우들의 몸이 피를 흩뿌린다.
“젠장.”
그런데 검흔이 지나치게 얕았다.
아무래도 부족한 것은 속도만이 아닌 모양이다.
아무리 단검이라도 그렇지 저 조막만 한 놈들도 못 죽일 줄이야.
“..근력부터 길러야겠네.”
자책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나는 그대로 단검을 고쳐 쥐었다.
콰득!
솜씨 좋게 들어간 검날이 여우들의 두개골을 가르며 관통한다.
그런데 자세가 좋았던 탓일까.
한 놈을 죽이고도 여력이 남은 검이 다른 하나의 목을 찌른다.
“쯧.”
그러나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설프게 공격에 성공한 게 독이 된 것 같았다.
놈들의 경계심이 강해진 것이다.
“골치 아프네.”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공격이 올 거다. 아마도 불꽃을 쓰겠지.
놈들이 ‘호롱’ 여우라 불리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는 거다.
화르륵!
가을 들녘 위로 새빨간 불꽃이 수를 놓는다.
넘실거리는 화염은 연신 혀를 날름거리며 주위의 모든 것을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호흡을 멈춘 채 자세를 숙였다.
마족이었다면 오히려 반겼을 상황.
그러나 인간이 된 이상 불꽃도 연기도 내게는 독일 뿐이었다.
“..왜 뜨겁지 않은 거지?”
그런데 어째서일까. 뭔가가 좀 이상하다.
매캐한 연기에 고통을 느끼는 폐부와는 달리 멀쩡한 피부.
그리고 여전히 느껴지는 가을날의 서늘함까지.
“..설마?”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건 마치 마족의 권능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