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5)
35화 – 크리스 팔레아스의 호출.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갑자기 멈춰 선 마법소녀의 모습에 뒤돌아섰다.
“왜 그러지? 아는 얼굴이라도 발견한 건가?”
“아뇨, 아는 사람은 아닌데..”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마법소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어 봤지만, 딱히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인파에 떠밀려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하긴, 뭐든 간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만약 마족을 본 것이라면 곧장 말을 했을 테니까.
“서두르자. 그리 시간이 많지는 않아.”
“..네.”
마법소녀는 석연찮은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마법소녀를 이끌고 거리를 누볐다.
오늘은 먹잇감이 걸려들 때까지 계속 거리를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용병으로서의 의뢰를 수행하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애초에 마법소녀와 함께 용병 길드를 찾아갔다간 괜한 주목을 받게 될 거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수배자의 신분이었니 더 그럴 테고.
“엉? 이봐, 그거 네 애야? 유부남인 줄은 몰랐는걸?”
“어, 그래.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물론, 용병 길드에만 안 간다고 해서 끝은 아니었다.
그냥 걷고 있을 뿐인데도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 했던 놈들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대꾸하며 놈들을 무시했다.
개중 몇몇 용병 놈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진한 의심이 눈빛에 어린다.
하는 꼴을 보아하니 조만간 공격해 올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이 왜 우리를 노리는 거죠?”
“회색 머리카락, 푸른 눈. 스물 중반의 청년과 갈색 머리카락의 열 살 꼬마. 이 두 명에게 현상 수배가 붙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환영 마법을 걸었잖아요.”
“그래, 맞아.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냐? 그만큼 색깔이라는 건 바꾸기가 쉽다는 거.”
그 말에 마법소녀가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땀에 젖은 손이 내 옷자락을 쥐어온다.
“저.. 때문인가요? 제가 따라와서?”
“결과만 보자면 그렇겠지. 하지만 신경 쓰지 마라.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이니까.”
확실히, 내가 지금까지 마법소녀와 개별적으로 행동해 왔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긴 했다.
나 혼자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수배서의 내용과 연결 짓기가 어렵지만 거기에 꼬마 하나가 더해지게 된다면 조금 더 확실해질 테니까.
거기다 내가 이 마을에 등장한 시기와 수배서가 나붙은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의심을 사는 건 피할 수 없을 테지.
‘눈치 빠른 놈들은 진작부터 의심하고 있었지. 그때까지는 탐색에 불과했지만.’
물론, 그때까지는 내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을 거다. 기껏해야 기억만 해두는 정도였겠지.
나와 같은 시기에 등장한 사람이 한두 명인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지금 내 등급은 C랭크다.
혹시나 모를 잭팟을 노리고 공격해 보기엔 더없이 만만한 상대라는 거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편이 나을까요?”
“그게 더 위험할 텐데? 그리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냐. 어차피 이 나라에 머무는 한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될 거다. 그냥 좀 빨리 적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반응이 늦다.
정작 노리고 있던 먹잇감은 안 나타나고 이상한 날파리들이 달라붙다니..
내 예상대로라면, 내가 거리에 들어서는 즉시 뭔가 사건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정지!”
그래, 바로 이렇게 말이다.
“C랭크 용병, 데이브 클락이 맞나?”
나는 회심의 미소를 감춘 채 태연하게 뒤돌아섰다.
예상했던 대로, 지금 내 앞에는 세 명의 병사가 서 있었다.
아니, 병사처럼 보이는 남자들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까?
행색은 병사처럼 보이지만 가문의 인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정규군은 아닐 것이다.
필시 장남 휘하에 속한 사병인 거겠지.
“네. 무슨 일이시죠?”
“너에게 살인의 혐의가 걸려있다.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다.”
“흠. 딱히 그러고 싶지 않군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지금 영지의 법을 어기겠다는 거냐?”
“영지의 법이라.. 언제부터 정규군이 아닌 자들에게 법을 집행할 권한이 생긴 겁니까?”
비꼬는 듯한 나의 질문에 병사들의 눈빛에 동요가 일어난다.
그래, 아마도 이놈들도 알고 있는 거겠지.
지금 그들의 행동이 엄연한 위법 행위라는 걸.
“당신들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습니까?”
제아무리 크리스 팔레아스의 계승이 확실시된 상황이라고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이야기다.
그가 지금 이 영지의 주인이 된 건 아니라는 거다.
즉, 현재의 크리스 팔레아스에게는 법을 집행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오테 팔레아스의 몫이니까.
“..말로는 안 되겠군. 끌고 가자!”
“본때를 보여주마. 멀대 자식!”
그러나 이놈들도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결국, 병사들이 실력 행사에 나섰다.
괜히 되지도 않는 입씨름을 하기보단 무력으로 나를 제압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날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끌고 가는 정도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무마시킬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끌고 갈 수 있을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오, 본때를 보여준다고?”
콰아앙!
병사들이 달려들기 직전, 나는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일체의 가감 없이 전력을 다해 내지른 공격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을 향해서 내지른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겁을 주는 정도로 끝낼 작정이었으니까.
“벼, 벽이.. 주먹 한 방에..”
그런데 좀 세게 친 것 같다.
나는 슬쩍 저려오기 시작하는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 뒷짐을 지는 척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그들과 눈을 마주했다.
“크흠..”
마법소녀가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나는 모른 척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만두시죠. 저는 딱히 당신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여기서 아픈 티를 내면 모든 게 헛수고다.
나는 최대한 평온한 어조를 유지하며 놈들과 눈을 마주했다.
물론, 그러는 김에 아까부터 우리를 보고 있던 용병 놈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왕 다친 거 본전은 찾아야 했으니까.
“데이브 저 녀석 생각보다 센데?”
“그, 그러게.”
다행히 내 연기력이 꽤 쓸 만했던 건지 용병 놈들이 황급히 물러선다.
나는 그대로 눈을 돌려 이번에는 병사 놈들을 쏘아보았다.
계속 눈에 힘을 주고 있으려니 눈이 뻑뻑해지는 기분이었으나 참았다.
“서,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너를 데려가야 한다. 너에게는 지금..”
“영지 내에서 용병들을 살해한 혐의가 걸려있다. 맞습니까?”
“..그걸 어떻게.”
확실히 장남 휘하 병사들의 충성심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니 대단하긴 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몸을 좀 사릴 줄 알았는데.
“대충 예상이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습니까? 그걸 알면서도 왜 저는 이 도시를 떠나지 않은 걸까요?”
“네가 무죄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론..”
“하지만 그쪽도 증거가 없는 건 마찬가질 테죠. 아닌가요?”
“…”
병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래, 그렇겠지. 당연히 그럴 거다.
그들에게야 명백한 증거나 다를 바 없겠지만 이쪽에서 보면 평범한 ‘증언’에 불과할 테니까.
아마 나를 끌고 가 심문하면서 죄를 실토하게끔 만들려고 한 거겠지만, 글쎄..
지금 날 봐서 알겠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을 텐데?
“당신들을 따라가도록 하죠.”
그러나 계속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계속 평행선을 이룰 뿐이다.
나는 이쯤에서 못 이기는 척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사실, 원래부터 장남을 만날 생각이기도 했고.
다만 내가 끌려간다는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인으로서의 동행을 원합니다. 즉, 제가 만날 사람은 심문관이 아니라 당신들의 머리라는 거죠.”
“…”
병사들의 얼굴에 고민의 기색이 스친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그대로 몸을 돌렸다.
빨리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자리를 떠날 것처럼.
“자, 잠시만 기다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아니나 다를까. 그런 내 행동을 본 병사들의 태도가 다급해졌다.
나는 다시 천천히 돌아서 그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럼 시간을 드리죠. 넉넉잡아 30분 드리겠습니다.”
“3, 30분이라고?”
잘 알아들은 것 같으니 굳이 두 번 말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더 이상 놈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떠났다.
그동안 마법소녀에게 밥이라도 사줄 작정이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라. 사줄 테니까.”
“저기.. 아저씨.”
“왜 그래? 배 안 고프냐?”
“..마기가 느껴져요.”
그리고 그 순간, 드디어 상대가 미끼를 물었다.
그래,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지?
아무래도 제 계획의 변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려고 한 것 같다.
하긴, 어젯밤 용병들이 살해당한 건 그로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뭐 먹을 건데?”
“네? 아.. 그, 샌드위치요.”
“그래. 마침 저기 있네. 가자.”
허나 그건 그거고 밥은 밥이다.
성장기 아이에게 식사는 중요한 법이니까.
어차피 급한 건 저쪽이니 알아서 찾아오지 않겠는가.
“야, 고기는 안 먹냐?”
“..그, 아침부터 고기는 좀.”
그런데 벌써 편식을 하는 건가?
쯧. 요즘 애들이란..
* * *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다시 찾아왔다.
내가 마법소녀에게 네 개째의 샌드위치를 욱여넣고 있을 무렵의 일이었다.
“사, 살았다..”
그런데 마법소녀 이 녀석. 너무 노골적으로 반기는 거 아닌가?
원래 같으면 세 개쯤 더 먹이려다 참은 거였는데.
‘회귀 전의 마법소녀는 빈말로라도 건강해 보인다고는 할 수 없었지. 쯧 비쩍 골아서는.’
기회가 되면 마법소녀의 식단을 새롭게 짜두어야겠다.
먹는 것도 훈련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나는 아까보다 많아진 병사들을 향해 물었다.
“그래, 대답은 가져왔나?”
“..갑자기 반말을?”
아, 헷갈렸다. 아무래도 아직 존댓말이 입에 붙진 않은 것 같다.
하기야 지난 3천 년간 써온 말인데 오죽하겠냐마는.
그래도 뭐, 상관은 없었다.
이제부터 저놈들의 대장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데 부하들에게까지 존칭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
“대답은?”
“..따라와라. 팔레아스 경께서 너를 기다리신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놈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오테 팔레아스의 저택과는 꽤 떨어진 곳이었다.
아마도 크리스 팔레아스의 사병을 기르고 있는 곳이겠지.
“..네가 그 용병이냐?”
연병장의 가운데, 이전에 본 초상화 속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도발적인 어조를 담아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이 그 패륜아인가?”
“…”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밖에 하지 않을 대답이었지만, 사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절차였다.
곧 싸울 놈에게 무슨 예의를 차린단 말인가.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부러 위압감을 숨기지 않으며 크리스 팔레아스와 눈을 마주했다.
마왕의 눈을 사용하는 것이다.
‘잘난 아들이긴 하군.’
그런데 이 남자, 예상했던 것보다 실력이 좋다.
아직 마흔 살 정도밖에 안 됐으면서 중급 익스퍼트에 오르다니.
솔직히 좀 놀랍기도 하다.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래봤자 토트 놈의 형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래, 저 정도라면 충분히 동생을 부끄러워할 만하겠지.
‘어디까지나 그 소문이 사실일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뭐, 사건의 진위야 지금 이 자리에서 시험해보면 될 일이다.
“영지에서 사람을 죽인 주제에 간이 크구나.”
놈이 나를 노려본다.
그런데 그 눈빛에서 미약한 마기가 느껴진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가 마족과 계약한 것은 아닐 거다.
그런 것치고는 그 흔적이 너무 희미했으니까.
저놈은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가능성이 컸다.
“글쎄. 그놈들이 당신의 동생을 죽이려고 한 건 정당한 사실인지 모르겠군.”
“..뭐라고?”
“오, 그건 들어본 적이 없나?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한 얼굴이군.”
나는 남자의 눈빛에 어린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비록 마왕의 눈의 수준이 낮아 그 마음속을 꿰뚫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눈에 비하면 보이는 게 더 많았으니까.
그 결과, 나는 어제 있었던 습격의 범인이 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저놈에게는 토트 팔레아스를 죽일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 역시도.
오테 팔레아스가 주장하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네가 사람을 죽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저 자존심 강한 녀석은 여전히 내 말을 들으려 하질 않는다.
아마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솔직히 예상한 대로이긴 했다.
“글쎄. 증거는 있나?”
“믿을만한 이로부터 확인한 사실이다. 너 따위가 가늠할 일이 아니지.”
“그리고 심문도 그 믿을만한 이에게 시킬 작정인가?”
“..나를 동요시키려 해도 소용없다.”
나는 그 말에 빙긋 웃음을 터트렸다.
크리스 팔레아스라는 남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을 정도로 냉철한 인물이다.
그런 남자가 유독 부하에게만 이토록 깊은 신뢰를 보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저 녀석은 지금 마족의 권능에 세뇌당하고 있다.
‘아마 저놈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아니, 너의 제안은 듣지 않는..”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배후는 과연 이것까지도 예측했을까?
“..지금 뭐라고?”
“결투를 하자고 했습니다. 당신과 저, 누가 옳은지. 검으로 승부를 내봅시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 기사를 향해 변함없는 웃음을 내보였다.
그리고 입으로는 계속해서 도발을 내뱉었다.
“왜, 자신 없습니까?”
스르릉.
도발의 결과는 즉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