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8)
38화 – 악마가 속삭여 말하는 이유(3)
너무도 갑작스레 이뤄진 반란.
팔레아스 일가의 놈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사건에 휘말려 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혼란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다.
‘뭐, 그럴 만도 하지만.’
그러나 사실, 사건의 전말은 지극히 간단했다.
카드낙은 오테와 크리스에게 했던 일을 병사들에게도 똑같이 한 것뿐이다.
팔레아스를 배신하고, 그들에게 검을 휘두르도록.
마족과의 계약을 통해 그들을 세뇌한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 될 법한 일은 아니었다.
흑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설령 마족과 계약했다 하더라도, 그 능력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영지에서 오래 일했던 병사들만이 그 명령을 따르고 있는 거겠지.
‘뭐, 이 정도면 범인이 누군지는 확실해진 거 아닌가?’
이쯤 되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카드낙은 마족 숭배자다.
정확히는 마족의 계약자라고 해야 할까?
목적은 아마 팔레아스 일가에 대한 복수일 테지.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거다.
애초에 카드낙이고 팔레아스고 간에 내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곳 사람이었다면 또 모를까.’
내가 팔레아스 령의 영주민이었다면 그런 카드낙의 행동에 역겹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무의미한 가정일 뿐이다.
나는 이곳의 사람이 아니었고, 완전한 인간도 아니었으니까.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을지언정, 공감할 수는 없다는 거다.
“오, 병사들을 아주 싹 모아버린 모양인데?”
그나저나 카드낙 이놈, 아무래도 겁을 먹긴 한 모양이다.
설마 내가 남작과 장남 놈을 만나기가 무섭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 올 줄이야.
하긴, 생각해 보면 그놈은 줄곧 나를 감시해 오고 있었다.
아마 그 녀석 나름대로 노리는 바가 있었던 거겠지.
추측하건대 이전 회차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의 모든 죄를 나에게 떠넘기려고 했던 거겠지.
그때 죄를 뒤집어쓴 것은 토트 팔레아스였지만 그놈보다는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게 낫다고 여겼을 테니까.
하긴, 이전 회차의 그 카드낙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오늘 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거겠지.
“아저씨. 괜찮은 거예요?”
마법소녀가 걱정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설마 내가 병사들에게 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뭐가 괜찮냐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아저씨 부하잖아요.”
“아, 그쪽이구나.”
아무래도 마법소녀는 내가 카드낙과 계약한 마족과 싸우게 되는 것을.
나의 옛 부하와 싸우게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한때 마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더 그런 거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적어도 지금은, 내 손에 마족이 죽는 일은 없을 거니까.”
그래, 마법소녀의 걱정처럼, 언젠가 내 손에 마족이 죽는 날이 오게 될 거다.
마법소녀의 편을 들겠다고 한 순간부터 그건 이미 예정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이 그날이 되지는 않을 거다. 그래, 아직은..
“..네.”
마법소녀의 모습을 뒤로한 채 검을 뽑아 든다.
마왕의 눈을 사용해 앞을 바라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조악한 마기의 흐름이 보이고 있었다.
설마 저런 걸 세뇌랍시고 사용하고 있는 건가?
‘우습구나. 카드낙. 그런 걸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족의 권능을 빌렸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사용법이 아닌가.
애초에 저런 것을 두고 세뇌라고 부를 수 있긴 한 건가?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 움직인다기보다는 그저 이지를 상실한 채 날뛰고 있을 뿐이다.
이래서야 적과 아군조차 구분하지 못할 테지.
이래서야 겨우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을 거다.
“..설마 시간을 버는 게 목적인 건가?”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오후에 보기로 했었던 망나니 놈.
그러고 보니 토트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냐?”
나는 의문을 가짐과 동시에 카드낙의 생각을 간파했다.
아무래도 이 자식, 이전 회차와 같은 짓을 저지르려는 모양이다.
토트 팔레아스에게 마족 숭배자의 누명을 덧씌우고 그 이름에 숨어 팔레아스 일가를 몰살시키려고 한다는 거다.
“쯧.”
자칫 돌이킬 수 없을 실수를 할 뻔했다.
궁지에 몰려 막무가내로 공격해 오고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오히려 내가 함정에 빠져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여기서 병사들과 싸우고 있어봤자 카드낙의 수작대로 놀아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거다.
나는 그대로 마법소녀를 들어 올렸다.
“아, 아저씨?”
“입 다물어. 혀 깨문다.”
지금은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전력을 다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켁!”
물론 경고한 것이 무색하게도 혀를 깨물고 말았지만.
* * *
스륵.
먼지가 수북한 손잡이를 닦아낸다.
손잡이를 돌려보면, 무척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듯 거친 쇳소리가 귀를 찔러 들고 있었다.
토트는 잠시 심호흡하고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다.
“후..”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케케묵은 곰팡이의 냄새가 코끝을 찔러 들고 있었다.
뒤이어 보이는 것은 썩은 나무 바닥과 다 떨어져 나간 옷장. 너저분하게 흩뿌려진 옷과 시트.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조차 선명히 남아 있는 광기의 흔적들이다.
“어머니..”
낯선 이름을 혀끝으로 더듬으며, 토트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된 기억이 불현듯 그의 목을 억죄어 오는 까닭이다.
그래, 무엇을 숨길까.
그의 숨결을 타고 떠오르는 것은 추억이라기보단 악몽에 가까운 것이다.
그의 어머니. 크리스티나 팔레아스와 함께했던 묵은 기억들.
그리고 이곳은 그들 형제의 친모를 가둬두었던 격리실이다.
저택 바깥 한구석에 마련된, 이제는 불길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장소.
친아들인 토트조차 이곳을 찾은 것은 실로 간만의 일이었다.
“..오랜만이군요.”
방안의 모습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들 형제의 어머니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다.
선천적인 병은 아니었다.
원인을 따지자면 아마도 오테 팔레아스가 그리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까닭이겠지.
토트라고 해서 좋은 아들이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일차적인 책임이 오테에게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전장을 넘나들며 사신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오테 팔레아스.
그러나 그 사신이 가족에게까지 좋은 사람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를 기다려야 하는 아내에게는 언제 부고 소식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태로운 사람에 불과했다는 거다.
“…”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오테 팔레아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의식불명의 상태로 빠져들었던 순간이겠지.
토트와 크리스는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며 체념할 뿐이었지만, 크리스티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이제는 절 기억하시나요?”
그래서일까. 크리스티나는 어느 순간부터 좋지 않은 종교에 몸을 담고 말았다.
그녀가 이른바 극약이라 불리는 것에 손을 댄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겠지.
오테 팔레아스가 간신히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있는 것은 크리스티나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광기에 불타 손톱을 휘두르던 광인이 있었을 뿐.
“..아직 있었구나.”
토트는 다 무너져 가는 침대 밑 서랍에서 한 권의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가 처음으로 그림에 도전했을 때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노트였다.
어쩌면 그녀는 자식들이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길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검이 아니라 그림 도구를 사달라는 토트의 요청에 당시의 크리스티나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더라지.
비록 그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은 화방 주인의 쓴소리와 함께 불타 사라져 버렸지만, 그답지 않게 몇 날 며칠에 걸쳐 그려냈던 습작만큼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거다.
“..다 번져버렸네.”
물론 침대가 저 꼴이 되었는데 노트라고 해서 무사할 리 없다.
당연하게도 노트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이래서야 내용을 읽어보기는커녕 형태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것 같다.
“뭐, 예상은 했었지만.. 조금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토트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그걸 알면서도 이곳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과연 자신은 다시 한번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한 번 포기했던 것을 다시금 사랑할 수 있게 될지.
오래전에 식어버린 꿈은 다시 타오를 수 있을 것인지.
“여기 있었군. 그것도 모르고 한참을 찾아다녔어.”
“..카드낙?”
그렇게 얼마나 노트를 살피고 있었을까.
불현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토트는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어딘지 모르게 낯선 분위기의 카드낙이 검을 든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지? 그리고 그 검은 또 뭐냐? 설마 전쟁이라도 난 건가?”
“내가 여기에 왜 왔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설마 네가 여기에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거지? 하긴,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나온다. 토트의 시선이 그 검을 따라 미끄러진다.
장난치고는 정도가 심하다. 애초에 분위기부터가 장난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다.
피부를 찌르는 것은 잔인하리만치 뚜렷한 살의였다.
토트의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은 지독한 공포. 그리고 배신감이다.
‘배신감? 내가 저 작자에게?’
토트는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다.
크리스티나가 죽은 이후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눈앞의 남자만큼은 믿고 있었다는 건가?
하필 지금 그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저 남자를?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설마 어제 있었던 습격도 네 짓이야?”
“그래도 눈치는 빠르군. 마냥 얼간이는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그래봤자지. 망나니 따위가 뭘 알겠어?”
가슴이 아프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까짓 망나니라는 말이 뭐가 어쨌단 말인가. 그런 것쯤은 평소에도 들어왔던 이야기일 텐데.
심지어 카드낙 역시도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해왔던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지금은 이토록 아픈 거지? 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날 죽이면 아버지가..”
“화를 내겠지. 하지만 그래 봤자야. 한쪽 다리를 잃고 빌빌대는 노인네를 내가 두려워할 것 같냐?”
“너..!”
“무엇보다 내가 그런 것 하나 생각하지 않고 여기에 온 거라 생각한 거냐?”
뭐든 간에 지금은 도망쳐야 할 시간이다.
토트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타개책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이다.
‘젠장.’
그러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곳에 무기로 쓸만한 것이 있을 리 없다.
나무는 문드러졌고, 쇠는 녹슬었으며, 인적은 드문 데다가 심지어 그 누구에게도 이곳에 올 것이라 말하지 않고 나온 상황이었으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날.. 죽일 작정이야?”
“그래,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너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아마 너도 만족할 거야. 평소 네 아버지와 형에게 복수하고 싶었잖아?”
“..복수라고?”
토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카드낙의 말에 혹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 복수. 널 우습게 보았던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아?”
허나 그런 토트의 모습이 카드낙에게는 다르게 보였던 것일까.
그는 징그러운 미소를 입에 건 채 그를 향해 다가갔다.
“내 손을 잡아라. 토트. 그렇게 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마.”
“나, 나는..”
“그래, 누굴 죽이고 싶지? 네 그 잘난척하는 형인가? 그렇지 않으면..”
탁!
토트는 반사적으로 카드낙의 손을 쳐냈다.
지극히 본능적이었다고밖에는 할 수 없을 반응이었다.
“그래, 너도 팔레아스라는 거냐?”
카드낙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지독히도 음울하고 비틀린 눈빛과 증오로 가득 찬 목소리다.
“그럼.. 너도 필요 없어. 어차피 필요한 건 네 목뿐이니까. 이만 여기서 사라져 줘야겠다.”
촤악!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의 검이 휘둘러졌을 때, 잘려 나간 것은 토트 팔레아스의 목이 아니었다.
“으, 으아아아악!”
카드낙의 오른팔이 맥없이 공회전했다.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