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1)
41화 – 협력(1)
기사의 검이 세계를 반으로 가른다.
세이르의 육신은 굉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마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걸 위해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지금까지 방치했던 거니까.
세이르가 마족의 진신을 꺼낼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충격에서 아주 무사할 수는 없었겠지만 곧 괜찮아지겠지.
세이르에게도 재생의 권능은 있으니까.
“아, 안돼. 세이르! 세이르!”
물론,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적들 사이에 홀로 남겨진 카드낙.
세이르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떨고 있는 저 남자의 처분이다.
아마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거다.
굳이 내가 손을 거들지 않더라도 저 성기사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이 정도면 설령 세이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를 도울 방법이 없겠지.
“이 더러운 종자가..!”
크루세이더들이 카드낙의 팔을 붙잡았다.
카드낙이 저항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비명인지 애원인지 모를 날 선 소리.
아마도 제 최후를 직감한 것이리라.
“사, 살려줘. 이봐! 듣고 있어? 날 좀 도와줘! 대가라면 얼마든지..!”
“닥쳐라! 더러운 악마 숭배자 놈!”
쏟아지는 절규. 그러나 그의 애원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하기야, 유일했던 아군들을 제 손으로 밀어내 버렸는데 누굴 원망하겠냐마는.
카드낙은 크루세이더들의 손에 이끌려 사라졌다.
아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지.
“후.. 그래도 한 건 했군요.”
크루세이더들이 떠나고, 중년의 남성과 젊은 여기사가 자리에 남았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저 남자가 추기경인 거겠지.
“저에게 마족의 출현에 대해 제보하신 분 맞습니까? 목소리가 익숙하군요.”
그러던 중, 남자가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단정하고 절제된 분위기가 인상적인 남자다.
흔히 말하는 성직자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
확실히 벨이 호들갑을 떨 만도 하다.
추기경 중에서도 유난히 청렴하고 공정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래. 내가 연락했다.”
“역시 그렇군요. 실례지만 잠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거절하겠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 이 말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을 거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주머니 속에 있던 벨이 날뛰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대체 왜죠? 그냥 이야기나 하자는 건데.”
“난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게 싫어.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 당신 혼자라면 모를까.”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어이가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왜 내가 겪었던 일들을 일일이 고해바쳐야 한단 말인가.
딱히 내가 아리벨의 신도인 것도, 하물며 저놈의 부하인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어차피 할 설명이라면 그냥 한 번만 하고 끝내겠다는 건데.”
“..뭐,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와 같이 설명을 들어야 한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능하면 외부인에게 지금 대화를 들려주고 싶진 않습니다만.”
“이 땅의 영주다. 오테 팔레아스. 사실 따지고 보면 영주가 제일 먼저 이 사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너희도 영주의 허가 없이 들어온 입장이니 만나러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고.”
“그건.. 그렇긴 하군요.”
내 추궁에 남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저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토트를 향해 소리쳤다.
“야, 먼저 가서 손님 받을 준비 해라. 너희 때문에 아까부터 굶었으니 점심 식사도 챙겨놓고.”
“욱.. 여기서 또 밥을 먹는다고요?”
갑자기 마법소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설마 마기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건가?
‘쯧. 나약하긴.’
고작 이 정도의 마기에 이렇게까지 상태가 안 좋아질 줄이야.
아무래도 조금 더 단련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약해서야.. 일단 밥을 많이 먹여야겠군.”
“이제 그만..”
그런데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 건가? 이러면 식사도 제대로 못 할 거 같은데..
그나저나 추기경씩이나 되는 작자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전에 벨이 안토니오라면 무조건 올 거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으레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은 하나같이 엉덩이가 무겁지 않던가.
‘오히려 잘된 일인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온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물론 조금 놀랐을 뿐,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기는 했다.
안 그래도 남작 하나만으로는 좀 아쉬운 느낌이 있었으니까.
‘일이 잘 풀린다면 앞으로의 일이 조금은 편해지겠지.’
나는 모종의 기대감을 품은 채, 저택의 응접실로 귀환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빌어먹을 연구원 놈들의 얼굴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아까 전의 그 마족은 뭐고?”
“너, 날 볼 때마다 그 말밖에 안 하는 것 같은데? 여기 손님 온 거 안 보여?”
“그런 말 듣기 싫으면 좀 상식적으로 행동했어야지.”
적막한 응접실.
크리스 팔레아스가 우리를 맞이한다.
난데없이 방문한 추기경의 모습에 하인들이 혼비백산했지만 크리스는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말하는 걸 보니 저놈도 조금 전에 있었던 싸움을 본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날뛰었는데 못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그런데 밥은 멀었냐?”
“..밥을 맡겨놨나? 남의 집에 와서 참 별 걸 다 요구하는군.”
“따지고 보면 너 때문에 점심을 못 먹은 거잖아. 그 정도면 맡겨놓은 거나 다름없지 않나?”
“그건 미안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는 거 아닌가?”
나는 크리스의 목소리에 담긴 조급함을 간파하며 코웃음 쳤다.
시선이 떨린다. 목소리가 잠긴다.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한 모습.
아마 조금 전 세뇌당했던 병사들의 모습에서 옛 기억을 떠올린 거겠지.
“너희 형제의 어머니에 대한 거 말이냐?”
광기에 젖어 날뛰던,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던 크리스티나 팔레아스의 모습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20년 전의 일을 알기엔 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물론 나야 퀘스트 덕에 안 것에 불과하긴 하다.
하지만 이놈이 그걸 알 리 없을 테지.
어쩌면 이 크리스 입장에서는 귀신에게 홀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름의 방법이 있다고만 해 두자고.”
진실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희미한 웃음을 내걸며 입을 다문다.
아마 저놈이 보기엔 참 의미심장한 미소였을 것이다.
하기야 생판 남이 제 가족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그래, 네 생각대로다. 크리스. 카드낙 그놈의 짓이었지. 너의 어머니도, 이번 일도.”
“…”
그래도 뭐, 설명이 부족했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기에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들 형제의 어머니, 크리스티나 팔레아스가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은 사실 누군가의 계략이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마음의 병을 얻은 것처럼 보인 것이 사실은 세뇌의 결과였을 뿐이라는 것도.
“…”
그 말을 들은 크리스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은 얼굴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화제를 돌렸다.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어색했던 탓이다.
“그런데 오테 팔레아스 경께서는 건강하신가? 갑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좀 걱정이 되는데.”
“..토트와 함께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나가셨다. 곧 들어 오시겠지.”
다행히 오테 팔레아스 역시 다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긴, 상급 익스퍼트씩이나 되는 사람이 고작 병사에게 당하지는 않겠지.
“그건 다행이군. 나와 약속한 보수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지금 그게 문제냐? 성격 한번 더럽군. 그러고도 네가 용사냐?”
“뭐야?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어?”
“토트가 말해주던데?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나는 그건 오해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마법소녀를 지키기 위해선 나 자신이 용사로 보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떠올린 것이다.
그래,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애초에 내가 성직자 놈들을 끌고 온 이유부터가 그 오해를 이용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수배령을 내리는 너희 나라는 또 어떻고?”
나는 태연한 얼굴로 되물었다. 마치 내가 진짜 용사라도 되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다.
“그건..”
“수배령? 그건 무슨 소립니까?”
안토니오가 대화에 끼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더 이상 궁금함을 참지 못한 거겠지.
그러나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기왕 오해시키기로 마음을 먹은 거 더 확실하게 가는 것이 좋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보던 안토니오는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얌전히 오테를 기다리기로 한 것 같다.
덜컥.
“내가 기다리게 한 건가? 미안하군. 그러고 보니 추기경님께도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는 설명을 듣고 싶군요. 왜 영지에 마족이 나타난 겁니까?”
때마침 오테와 토트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그 새 수척해진 오테를 보며 말했다.
“먼저 그쪽의 설명이 우선일 것 같군. 그래야 이해하기가 편할 테니까.”
“..그러지.”
오테는 양옆에 앉은 제 아들들을 잠시 지켜보다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제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카드낙과의 만남에 대한 것이었다.
전장에서 상처를 입은 오테를 당시 농민에 불과했던 카드낙이 구해준 것.
그리고 그런 카드낙에게 뭘 원하냐고 물었을 때, 카드낙은 자신 역시 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
나머지는 이전에 말했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테는 어떻게든 카드낙을 기사로 만들어 주려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카드낙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익스퍼트가 되기는커녕 소드 유저 상급에도 접어들지 못했으니까.
물론,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카드낙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게 접어들게 되었다.
사실상 카드낙이 기사가 될 방법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비록 카드낙 자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진실이었다.
결국, 오테는 카드낙에게 다른 방식으로 은혜를 갚기로 했다.
그에게 시종장이나 행정가의 직위를 제안하며 노후를 편히 살게 해주려 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설마 카드낙이 그 나이가 되도록 기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을 줄은 몰랐네.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이라 할 수도 있겠군. 결과만 본다면 나는 멋대로 부하의 꿈을 짓밟고 다른 길을 강요한 셈이 되었으니까.”
오테는 그 말과 함께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강건했던 노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져 버린 모습이다.
하긴, 수십 년을 함께했던 심복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누구인들 충격을 받지 않겠는가.
‘쯧, 한심하긴. 그래도 한때는 소드 마스터를 꿈꿨다는 양반이..’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런 오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대로 가면 내 목적을 이루기 힘들 거라는 걸 깨달아서 그런 거겠지.
오테가 좌절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모든 의욕을 잃고 아들에게 작위를 물려주는 건 곤란하다는 거다.
괜히 가주가 바뀐 걸 축하하겠다며 다른 귀족들이 방문하기라도 한다면 나 또한 연구소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나친 자책은 좋지 않아. 남작.”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책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모든 것이 내 잘못인데..”
“당신은 카드낙에게 할 만큼 했어. 오히려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건 그놈이지. 당신이라면 이미 짐작한 거 아닌가? 당신 아내가 왜 그런 꼴이 된 건지. 그리고 멀쩡했던 당신의 다리가 왜 잘려 나가게 된 건지도.”
“아내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내가 다리를 잃어버린 것도 카드낙의 짓이라는 건가?”
“그럼 뭐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나?”
나라는 예외를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하급 익스퍼트는 상급 익스퍼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그렇게 입은 상처가 하필 썩어들어간 것도 단순한 우연이라 보기는 힘들었고.
아마 거기에도 카드낙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었을 테지.
“이제 알겠어? 카드낙은 당신의 원수야. 그런데도 지금 그 작자를 동정하는 건가?”
“그건 아닐세. 다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지. 애초에 이 모든 건 내가 카드낙을 기사로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애초에 그 약속은 그놈이 먼저 어긴 거 아닌가? 당신이 빚졌던 생명을 다시 거둬 가려 했잖아. 대체 그놈에게 죄스러워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지?”
“..그거 혹시 위로인가?”
“위로는 무슨.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 것뿐이야.”
내가 인간을 위로할 리가 있나. 나는 코웃음 치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하핫.”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까부터 오테의 표정에 웃음이 걸려있다.
그뿐만 아니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안토니오의 얼굴에도 말이다.
“뭐야 그 얼굴?”
나는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그들의 시선에서 묘한 꺼림칙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뭐가 그리 우습..”
“키킥..”
그래,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나는 그들을 따라 웃음을 터트리는 마법소녀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