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
51화 – 한계 돌파(4)
영혼이 뽑혀 나가는 것만 같은 아찔한 감각이 덮쳐든다.
코끝을 찌르는 것은 죽음의 냄새다.
“젠장.”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몸 위를 덮고 있던 건물의 잔해가 쓸려나간다.
몸이 아프다. 뼈마디가 성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지끈거리는 통증이 전신을 두드린다.
피와 함께 뱉어지는 것은 부러진 치아였다.
한쪽 눈은 멀어버렸고 팔은 뒤틀렸다.
“고작 공격 한 번에 이 정도라니.”
분명 상급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재생이 느렸다.
아마도 상대의 마기가 내 마기를 압도하고 있는 까닭이겠지.
하위의 마법이 상위 마법에 굴복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마기 역시도 격이 높은 상대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법소녀의 아르카나에 당했을 때처럼, 오직 오러에 의한 재생만이 이뤄지고 있는 거겠지.
“..쿨럭.”
그래도 재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체는 다행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러졌던 뼈마디가 이어진다.
찢어졌던 근육이, 뽑혀 나갔던 이가, 멀어버린 눈이 회복을 거듭한다.
그러나 여전히 시야가 뿌옇다.
이래서야 두 번째 기회는 없다고 봐야겠지.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데모닉이라.”
마왕의 눈에 보이는 저 거인의 이름은 데모닉이었다.
마족의 육신을 이용해 제작한 키메라.
그러나 저것 역시 인간을 이용해 제작한 키메라처럼 지능이 높은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도 도시를 파괴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을 뿐, 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명령에 대해서만 반응하게끔 되어 있는 것 같다.
하긴, 본래라면 그 대머리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을 녀석이다.
필시 나를 공격한 것 역시도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래도 녀석의 시선이 나에게서 멀어졌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었지만.
“후우..”
인간들을 위해 싸우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나로서는 마법소녀만 챙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정 탓이었다.
마법소녀나 데이브 클락으로서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과거의 미련.
데모닉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부하들의 시신들이 눈에 밟힌 까닭이다.
이대로 두고 떠날 수는 없다는 거다.
저 육체를 묻어주지는 못할망정, 인간의 뜻대로 이용당하는 꼴은 죽어도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 해보자고.”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터져나간다.
전력을 다해 오러를 끌어올린 것이 원인이었다.
혈액이 가속한다. 심장의 고동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거칠고 둔탁한 맥박. 뇌가 뻐근해진다. 눈은 건조하고 코끝이 시렸다.
인간의 몸에서 벌어진다기엔 기이한 변화였다.
열거한 내용들만 따져보면 곧 죽을 사람 같지 않은가.
‘오래는 버티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딱히 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저 출력에 비해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뿐이다.
매 순간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까닭에 재생이 견뎌내질 못하는 거다.
“쿨럭..”
검을 지팡이 삼아 꺾여가는 몸을 일으켜 세운다.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들은 무엇 하나 놓쳐서는 안 되니까.
“우어어어어어!”
그런 나의 모습에서부터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데모닉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해 움직였다.
나는 녀석과 눈을 마주한 채 빙긋 웃어 보였다. 검을 들어 올린다.
“그래, 와라.”
명령과 함께 대기가 술렁인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연구소에서의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연금술사라는 족속들의 불합리한 폭력 속에서 목숨을 잃어버린 원혼들.
최후의 순간 팔레아스의 사람들이 품었던 마음을, 원한을 한데 모아 힘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커헉..”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구소의 원혼들이야 폴의 협력이 있어 순순히 나를 도와줬지만 이놈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죽은 지 얼마 안 된 원혼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다.
아직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몸을 빌려서라도 미련을 해소하고 싶겠지.
“..좀 빡세긴 하네.”
원혼들이 나의 영혼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왕의 영혼이야 멀쩡할지 몰라도 인간의 육신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니 정신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이 손에 들린 마검은 나의 목을 베어 넘길 테니까.
“우어!”
순식간에 나에게로 쇄도한 데모닉의 주먹이 나를 향해 떨어진다.
나는 충격에 대비하는 한편, 핏발이 서도록 눈에 힘을 주며 녀석의 움직임을 읽으려 노력했다.
본래의 내 역량으로는 쉽게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사령의 도움을 받는 지금이라면 다르겠지.
나는 발끝에 힘을 주며 시간을 쟀다.
노리고 있는 것은 녀석이 나의 머리를 내리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지금!’
불꽃이 스친다. 발바닥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화염이 나의 몸을 밀어낸다.
바닥을 긁어내듯 내달린 몸. 나는 그대로 도약하여 허공을 디뎠다.
콰앙!
폭발하듯 터져 나온 불꽃이 나의 몸에 추진력을 더한다.
나는 공중을 딛듯이 뛰어오르며 녀석의 복부를 가로지르는 세로줄을 그었다.
“으어어어어어!”
비명을 지르며 넘어가는 녀석의 몸.
나는 수평이 된 놈의 몸을 딛고 내달렸다.
“하앗!”
연달아 펼쳐진 어스름의 초식이 데모닉의 몸을 난도질한다.
무자비한 연격이다. 간신히 기세를 잡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무리한 움직임에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건했던 체력이 녹아내린다.
생각은 멎어버린 지 오래다. 열기로 가득한 머릿속은 투박하고 희미했다.
나는 오직 검의 투로와 발을 내디딜 공간만을 바라보며 움직였다.
“카학..!”
달뜬 호흡에 불을 지르며 화력을 올린다.
급기야 열기가 피부를 뚫고 치솟기 시작한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되니까.
투웅!
다행히 들끓는 마기가 내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아마도 힘이 부족해 고꾸라질 일은 없을 테지.
나는 그대로 검을 겨눠 데모닉의 목을 노렸다.
“..젠장.”
육신에 한계가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으어어어어!”
움직임이 멎는다. 의도와는 다른 결과였다.
그리고 녀석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정확하게 날아든 주먹이 나의 몸을 꿰뚫는다.
“컥.”
데모닉의 마기가 내 몸을 뒤흔든다.
경계가 희미해진다. 삶이 무너지고 죽음이 찾아든다.
나의 의식은 그대로 목 위에서부터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 * *
“우어어어어!”
지면을 꿰뚫고 정지한 데이브의 몸.
데모닉은 그런 데이브를 내려다보다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승리의 함성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야 마는 것은.
“..크륵.”
그래, 이겼으면 된 것이리라. 데모닉은 애써 수긍하며 뒤돌아섰다.
아직 그에겐 부숴야만 할 것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핫.”
그런데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일렀던 것일까.
데모닉은 난데없이 느껴지기 시작한 강렬한 기운에 흠칫 몸을 떨며 물러섰다.
“…”
가슴을 물들이는 것은 생소한 감정이다.
키메라가 된 이후로는 다시는 느낄 일이 없으리라 여겼던 감정.
“..아. 그래.”
그 감정의 이름은 공포였다.
“그랬었지.”
흙더미를 밀어젖히며 치솟는 것은 부러진 팔이었다.
이리저리 뒤틀리고 비틀려, 핏기 하나 없이 푸르게 물든 팔.
부러진 손가락이 지면을 딛는다. 몸을 끌어올린다.
휘적거리며 일어서는 데이브.
“지금에야 그걸 깨닫다니.. 참 멍청하기도 하지.”
탄식하는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분명 입으로는 말을 내뱉고 있고, 마치 의식을 찾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그게 전부다.
그 몸짓에서는 조금의 이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갑던 이성이 들끓어 휘발되어 버리고, 남은 것은 본능과 무의식이었다.
근원적인 본능만이 남은 것이다.
그의 경우에는 마왕으로서의 기억이라고 해야겠지.
그의 영혼을 무려 삼천 년간이나 지탱해 온 벨제뷔트의 기억.
“하찮은 동정 따위를 품다니.. 싸움이라는 건 언제나 간절한 자가 이기는 법인데..”
죽음의 위기와 함께 부상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다.
그가 느꼈던 최초의 위기이자 죽음.
깜빡이는 눈과 함께 첫 번째 용사의 모습이 데모닉 위로 덧씌워진다.
“아..”
마기가 휘몰아친다. 응축된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오러의 빛이다.
평범한 오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와는 형태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이전까지는 마기와 오러가 한데 뒤섞인 형태를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마기도, 오러도 아닌 정체불명의 무언가다.
굳이 설명한다면 황혼의 힘이라고 해야겠지.
“..크륵.”
그 순간 데모닉의 행동이 멈췄다. 불현듯 떠오른 것은 의문이다.
‘내가 왜 저것과 싸우고 있는 거지?’
도망쳐야 한다.
저 힘은 위험하다. 이길 수 없다.
데모닉은 생각과 동시에 뒤돌아섰다.
쿵!
그런데 왜 세상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일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몸이 바닥을 뒹군다.
‘다리.’
고개를 내려보면, 데모닉의 다리가 잘려 나가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데이브의 검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을 텐데.
“으어어어어!”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지는 것은 고통이다. 비명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 데모닉은 남은 다리를 내질러 데이브를 공격했다.
서걱!
별 의미는 없었다. 그저 남은 다리마저 잃었을 뿐.
이제, 그의 배 위에 선 것은 자색으로 물든 검을 든 데이브였다.
노을의 말단,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이 떠오르는 검이다.
“그어어어어!”
그래, 분명했다.
한계까지 응축된 저 빛.
의심할 여지 없는 오러 블레이드임에 틀림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롭고 단단한 개념 중 하나.
이 세상 전체를 통틀어 오직 소드 마스터에게만 허락된 권능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이잉!
그러나 평범한 오러 블레이드는 아니었다.
데이브의 검은 다른 오러 블레이드에 비해 본질적인 무언가가 달랐다.
어쩌면 그 근간에 마기가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진동하는 검.
그의 오러 블레드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절삭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대기가 떨린다. 흔들린다.
데모닉은 그 광경에 기겁하며 두 팔로 지면을 박찼다.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대로 달려들어 데이브의 몸을 뭉개버릴 작정이었다.
그의 검에 도륙되기 전에 말이다.
“으어어어어!”
막대한 양의 마기가 데모닉의 몸 위에 덧씌워졌다.
지금의 데이브는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에테리얼 바디의 응용이었다.
안 그래도 단단한 마족의 육신을 한층 더 강화해 견고함을 올리는 것이다.
분명, 그 위력은 오러 블레이드에 비견될 만한 것이겠지.
겉으로 보이는 수준만 따져봐도 중급 마족에 필적하는, 소드 마스터에 비견되는 힘임에 틀림이 없다.
쩌억!
그런데 어째서 데모닉의 손만이 잘려 나가고 있는 것일까.
“개와 늑대의 시간.”
펼쳐지는 것은 황혼검의 두 번째 초식이다.
첫 번째 검, 어스름이 소드 익스퍼트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공격이었다면 이것은 그다음의 단계였다.
소드 마스터의 능력을 한계까지 이용한 공격.
그리고 그 실체는 마기와 오러를 완벽하게 혼합하여 이뤄낸, 일종의 도핑과도 같은 상태다.
짧은 시간이나마 최강이라는 이름에 도전할 수 있는.
일시적으로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술.
쿠웅!
그 모습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모호함의 극치와도 같았다.
다만 그 결과는 실로 분명하다.
세로로 갈라진 데모닉의 몸. 잘려 나간 육신의 단면은 유리구슬의 그것처럼 매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잘 가라. 나의 옛 친구들.”
뒤를 잇는 송별. 데이브는 그대로 주저앉아 무너지듯 잠이 들었다.
그렇게 적막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