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7)
57화 – 마수의 용사(1)
뭐든 간에 우선은 이 대화를 끝내야겠지.
나는 일단 엘리야의 제안을 수락했다.
용사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알려준 것은 분명 내가 빚을 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꺼림칙한 것이 있다면,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겠지.
“결국 이번에도 답하지 않겠다는 거냐?”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속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나는 오러를 이용해 주변의 공기를 차단하며 벨에게 질문했다.
바람의 정령의 개입을 막기 위해 행한 조치였다.
더 이상 정보가 새는 건 막고 싶었으니까.
“너라면 왜 용사 시스템에 그런 문제가 생긴 건지 알고 있을 거 아니냐.”
가장 질문한 것은 용사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였다.
솔직히 다른 것보다도 이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엘리야의 말이 사실이라면, 단순히 마법소녀로부터 마족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거니까.
즉, 지금 내가 맡은 임무에는 근본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답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야.”
“어째서지?”
“필멸자가 천계의 일에 대해 알아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특히나 너의 경우는 더 그렇고.”
그러나 벨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번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뭘 했다고?”
“전에도 말했잖아. 시간을 되돌아온 이상, 너는 이 세계에 허락된 존재가 아니야. 내가 조율하지 않으면 너 역시 이 세상의 왜곡점이 되어버리겠지. 그런데 나보고 여기서 더한 변수를 만들라는 거야?”
벨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화의 여지를 단호하게 끊어내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납득가는 설명은 아니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입을 강제로 열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나는 결국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건. 지금은 우선 용사부터 만나야겠네. 그래야 저놈의 던전을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런데 라나는 어디에 있는 거야?”
“흠. 우선은 마법소녀부터 찾아야..”
식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기 때문일까. 나는 마법소녀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심지어 여기는 풀밖에 안 먹는 것 같던데..
분명 근손실이 심각할 거다.
나는 계획했던 것보다 빠르게 이 상황을 타개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 저게 뭐 하자는 거지?”
그러나 평화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내 시야에 들어온 기묘한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이봐, 벨. 지금 저 자식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마법소녀가 웬 엘프 하나에게 멱살이 잡혀 있었다.
이성이 휘발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절로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절로 주먹이 쥐어지는 광경이다.
“야, 베, 벨제뷔트. 좀 진정..”
콰아아앙!
정신이 들었을 땐 나는 이미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머리가 날아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위력의 공격이었다.
‘젠장. 힘 조절을 잊어버렸어.’
솔직히 좀 후회가 되긴 했다.
물론, 엘프의 머리가 날아가고 말고는 내 알 바는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터져 나올 선혈과 육편이 마법소녀 위로 쏟아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콰아앙!
그런데 그 순간, 땅에서부터 치솟은 흙으로 된 장벽 하나가 내 주먹을 막아냈다.
도중에 힘을 뺐다고는 하지만 놀랄만한 결과였다.
“누, 누구냐!”
상대를 얕보고 있었던 만큼 더 놀라웠다.
아무리 힘을 뺐다고 해도 소드 마스터의 공격을 막을 줄이야.
역시 사람은 보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일까?
겉만 보면 간신히 익스퍼트가 된 정도로만 보이는데.
“아, 아저씨?”
그래도 내 공격을 완전히 다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주먹을 내지름과 동시에 마법소녀를 빼내기 위해 뻗었던 오른손.
“크아아악!”
마법소녀를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손목이 으스러진 엘프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으니까.
“이, 이 더러운 동자가 감히 내 손목을..!”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사실 이쯤 되면 좀 감탄스럽기는 했다.
아무래도 이놈의 순혈주의는 진작에 육신을 지배한 지 오래인 모양이다.
“더럽다고?”
그러나 화가 난 건 저놈만이 아니다. 역린을 찔린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마법소녀가 공격당한 이상, 나 역시 더 참을 생각은 없다는 거다.
콰앙!
나는 되돌아온 주먹을 다시 내질러 눈앞의 방벽을 부쉈다.
구멍 난 장벽. 나는 그 안으로 손을 뻗어 엘프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하다는 건데?”
물론, 그 과정에서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내 주먹을 막아낸 작자가 아닌가.
괜히 얕보다가는 피를 볼 수도 있다는 거다.
“커헉!”
그런데 대체 언제 힘을 쓰려는 거지?
설마 장벽의 구멍으로 머리가 처박히고 있는 와중에도 가만히 있을 줄은 몰랐는데.
‘뭔가 이상한데?’
나는 마왕의 눈을 사용해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이건 뭐지?
“야, 너 내 공격은 어떻게 막은 거냐?”
내 공격을 막기는커녕 같은 엘프들에 비해서도 빈약한 능력,
아무리 봐도 이놈에게 내 공격을 막을 정도의 능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마왕의 눈을 속일 정도의 능력자인가?
아니, 그런 거라면 이렇게 쉽게 잡히지는 않을 텐데?
“오. 설마 그걸 뚫어 버릴 줄은 몰랐는데.”
의문에 빠지는 것도 잠시,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무언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 네가 범인이구나.
나는 그대로 엘프를 벽에서 뽑아내어 등 뒤로 집어 던졌다.
콰앙!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장벽이 치솟아 올랐다.
내가 내던진 엘프가 장벽과 부딪히며 비명을 내지른다.
그와 동시에 마왕의 눈에 들어오는 적의 힘.
“너였군.”
가라앉은 먼지 속,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 이 근방에서는 보기 힘든 색이다.
“그래 맞아. 나였어.”
나는 저 남자의 모습에서부터 익숙한 불쾌함을 느꼈다.
캐스팅 없이 소환한 장벽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마력.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을 듯한 수려한 모습까지.
‘이 쓸데없이 맑은 공기. 따끔거리는 피부. 그리고 저 장벽이 품고 있는 불쾌한 마력..’
“그래, 너였구나.”
해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저 남자야말로 이번 대의 용사라는 것.
“음. 시선이 따가운데? 가짜 용사라고 해서 우습게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 실수였나 보군. 그럴 만한 힘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놈과 눈을 마주했다.
마왕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용사 특유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호다.
단순히 읽어내리는 데에만 해도 한참이 걸리는 숫자.
내 경험에 반추해 생각해 보았을 때, 저 정도면 역대 용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겠지.
물론 첫 번째 용사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바로 아래 단계의 놈들과 비교할 정도는 될 거다.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지금을 기준으로 삼아도 전성기의 예이츠보다 한두 단계 낮은 수준이었으니까.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군. 니콜라스 쾰메른.”
“내 이름을 알아?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나와 동향 사람인가?”
“굳이 떠볼 필요 없어. 너와는 첫 만남이니까.”
사실 첫 만남이기에 더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저토록 뛰어난 자질과 힘을 가졌는데도 과거의 내가 저놈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기본적으로 용사라는 존재는 한 시대에 한 명만이 존재한다는 것.
그 모든 사실이 과거의 용사가 그 존재를 알려지기 전에 살해당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군. 그 눈 덕에 알았나 보지? 그런데 이상하군. 아무리 봐도 인간의 눈 같지 않은데.”
“용사님! 물러서십시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었구나! 침입자 놈!”
“죽여버려! 저놈이 용사일 리 없다고!”
풀어야 할 의문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그새를 못 참고 방해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런 엘프들의 모습에 순순히 마왕의 눈을 억누르는 한편, 새롭게 얻은 사실을 곱씹었다.
당대의 용사가 가진 능력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렇군. 그래서 저 던전을 방치하고 있었던 거야.’
마수 조종. 아니, 마수 개조라고 해야 하려나?
용사의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 떠오른 것은 과거 쥴리와 티그리스 왕국으로 향할 무렵, 나를 쫓아 달려오던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이었다.
설령 지옥의 끝이라 하더라도 쫓아올 것 같았던 마수의 모습.
아마도 그 녀석 역시 저 용사의 손에 개조되었던 마수였을 거다.
내 안에 존재하는 마기의 냄새를 맡고 쫓아온 거겠지.
‘악연은 악연이군.’
앞으로의 행보가 걱정되는 상황이다.
그 말은 즉, 앞으로 저 녀석이 만든 마수와 만날 때마다 지난번과 같은 일을 겪어야만 한다는 뜻이니까.
‘육체야 인간의 것을 하고 있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마족의 것이지.’
겉으로야 인간 그 자체이긴 하지만, 시스템은 이런 나를 두고 하프 데몬이라 규정 짓고 있다.
니콜라스 본인이야 내 정체를 모르는 눈치지만, 용사의 힘으로 개조된 마수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인간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닌 마수들은, 나를 보는 즉시 내 정체를 간파하게 되겠지.
그리고 만약 그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보게 된다면, 일이 곤란해질 것이다.
‘뭐, 의심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이츠 때처럼 벨을 앞세워 설득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벨이 예이츠를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예이츠가 한 번 죽어본 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아직 전생의 장소에 가본 적이 없는 니콜라스는 벨이 설득하더라도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거다.
“하여간 골치 아픈 일은 다 걸리는군.”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은 그렇다고 해서 저놈을 죽일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한 시대에 용사가 단 한 명만 존재한다는 점도 그렇고, 과거의 연금술사들이 저놈을 죽인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처럼 우습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엘프 놈들의 행동도 그렇고 이제 무시당하는 건 그만하자.’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의식을 집중했다.
불러내는 것은 엘프들의 손에 빼앗긴 나의 검이었다.
‘힘으로 증명하는 거야.’
“치, 침입자가 무기를 들었다!”
검이 허공을 날아 손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놈들을 향해 검 끝을 겨눴다.
엘프들은 어느덧 화살을 꺼내 들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시선을 움직여 놈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어쩔 작정이야? 여기서 싸우면 엘리야가 곤란해질 텐데.”
“흠, 그럴지도 모르겠네.”
나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검날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격하며 날아간다.
콰광!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어버리는 숲. 엘프들이 기겁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알 바는 아니잖아?”
딱히 엘프들을 죽이려는 건 아니다.
그저 죽도록 겁을 먹도록 만들 뿐.
“저놈들도 한 번 제대로 당해봐야 손님에게 그런 짓을 안 하지.”
“에휴. 너는 진짜.”
잔뜩 겁에 질린 엘프들 사이로 소드 마스터라는 이름이 맴돈다.
어떤 엘프는 지금이라도 장로를 불러와야 한다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졸렬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엘리아의 핑계를 대며 장로 취급도 안 해주던 주제에 막상 위기가 닥치자마자 태도를 바꾸다니.
“이봐, 니콜라스.”
뭐든 간에 더 공격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슬슬 본론에 들어가기로 했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냐?”
니콜라스는 조금 전과는 달리 나를 경시하지 못했다.
적막해진 공터.
녀석은 경계심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역시 처음부터 힘을 쓸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힘의 논리는 언제나 평등하게 작용한다는 거겠지.
인간이나 엘프나, 한 번 우습게 보였다가는 끝까지 우습게 보인다는 거다.
“그래, 나랑 대화 좀 하지. 뭐, 그전에 할 일부터 끝내야겠지만.”
“할 일?”
“그래, 할 일.”
나는 니콜라스를 지나쳐 엘프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법소녀를 그들 앞에 세우며 소리쳤다.
“누가 우리 애 괴롭혔냐? 말로 할 때 나오는 게 좋을 거다.”
잔뜩 윽박지르며 내뱉은 말.
엘프들이 겁먹은 얼굴로 물러선다.
“에휴..”
그런데 마법소녀. 왜 네가 한숨을 쉬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