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2)
62화 – 인공 정령 프로젝트(2)
난데없이 벌어진 재앙이 엘프들을 덮친다.
그러나 탄식할 겨를은 없었다.
바위를 녹이는 화염이 그들을 쫓아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숲을 잃어버린 엘프들은 다급히 불길을 피해 달렸다.
끊이지 않는 비명. 삶은 죽음만큼이나 가혹했다.
“다, 달려! 멈추지 마!”
“엘리나! 엘리나 어디에 있어?”
“나중에 찾고 일단 달려! 죽고 싶은 거야?”
불타 사라지는 건물들.
시간을 끌지 않고 달려 나간 것이 생존율을 높였다.
하기야 챙겨 나갈 물건마저 불타버렸으니 당연하겠지만.
“사, 살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던전과 가까운 쪽에 살고 있던 엘프들일수록 그 피해가 컸다.
개중에서도 이른 잠이 들었던 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버렸을 정도다.
하긴, 별 의미 없는 구분이긴 했다.
이대로 가면 너 나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죽어버릴 테니까.
죽음에는 늦고 빠름만이 있을 뿐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던전에서 저 괴물이 나왔어!”
“괴물? 느껴지는 건 정령의 힘인데?”
“정령이 던전에서 나올 리 없잖아!”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이들이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붉은 용.
그들은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남들보다 많이 아는 건 아니었으니까.
“던전이라면.. 조금 전 그 가짜 용사 놈이 간 곳이잖아?”
“그럼 이게 다..”
그래서일까. 엘프들은 이번에도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던전을 공략하려던 데이브를 막아선 것이 그들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용사는 어디에 있는 거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그 남자가 마수들을 지배하기로 했었잖아!”
“빌어먹을 용사 놈. 역시 인간을 믿는 게 아니었어!”
사실, 그들에게 있어 이 사건이 누구의 책임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누구 건 간에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갑작스레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것만도 충분히 억울한 일 아니겠나.
이 모든 게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을 테지.
“다들 진정해.”
그런데 이 순간, 그런 엘프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이가 있었다.
“쿠단.”
순혈파 엘프들의 수장, 쿠단.
그가 이 재앙 속에서 엘프들을 선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 방법이 있어.”
“방법이라니? 지금 이 근방 전체가 불타고 있는데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야?”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우리의 피를 지키기 위해 마련해 둔 장소가 있다고.”
“..그럼 다른 엘프들은?”
쿠단은 그 말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목숨을 건지기도 벅찬 상황이잖아. 보라고. 지금 숲이 어떻게 되었는지..”
“하지만..”
“그리고 저놈들은 순혈파도 아니잖아. 설마 장로와 같은 놈들이 또 나오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쿠단의 윽박에 엘프들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내 말 잘 들어. 그게 싫으면 여기서 헤어지던가.”
엘프들은 결국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같은 부족에서 살던 만큼 가엾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동정도 일단 내가 살아남은 이후의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래봤자 타인. 자기 목숨을 바칠 만큼 아끼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럼 어디로 가는 거야?”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우선은 그것부터 해결하자고.”
그러나 그중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왜 하필 그들 순혈파만이 이 소란 속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인지.
어째서 쿠단만이 이번 일에 대해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킥..”
저물어 가는 태양 아래, 쿠단은 홀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동안 던전이 방치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거겠지.
* * *
숨 막히는 열기 속,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 정령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젠장.”
문제가 있다면 아무래 생각해 봐도 방법이 없다는 거겠지.
차라리 이게 엘프 놈들만의 일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 일대 전역을 불태우는 놈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는 않을 테지.
여기서 도망을 쳐봤자 문제를 미루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저걸 쓰러트려야 하는 거지?
“애초에 저걸 어떻게 쫓아가지?”
쓰러트리는 것 이전에 접근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음속 따위는 진작에 돌파해 버린 듯한 놈의 속도.
쾅!
공중을 박차며 놈을 쫓는다.
그런데 거리가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기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만이 아니었다.
역시 정령답다고 해야 할까. 방향을 트는 것에 아무런 전조가 보이질 않는다.
관성 따윈 옛 저녁에 팔아 치워버린 움직임이다.
“거참 더럽게 빠르네!”
마치 나를 농락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날아가는 정령의 모습.
그러는 와중에도 놈의 궤적 아래에 있는 모든 대지는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이 일대 전체가 불타 사라져 버리겠지.
‘다행히 마법소녀는 몸을 피한 것 같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대처가 시급한 상황. 허나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오러를 남발할 수는 없었다.
이미 대부분의 출력을 방어에 돌리고 있지 않던가.
공격을 시도할 만한 힘이 남아 있질 않다는 거다.
설령 쫓아갈 수 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그야 답답할 수밖에.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듣고 싶군.”
“엘리야.”
그 순간,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익숙했다.
엘프들의 장로 엘리야.
그녀 바람의 정령을 통해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왜 갑자기 화염의 정령이 나타난 거지? 그리고 저 얼굴은 분명..”
시종일관 무심했던 엘리야조차 이런 상황에서까지 냉정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당황한 듯한 목소리.
“..드라키아인 것 같은데?”
그런데 저놈의 이름이 드라키아였던 건가?
뭐든 간에 우선은 설명부터 해야겠군.
나는 연구소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간략하게 말하며 이번 일을 요약해 전달했다.
“순혈파 놈들이 던전의 출입을 막았다는 건, 놈들이 연금술사 놈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는 거겠지. 전부 그런 건지 한 놈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쿠단의 짓이겠지. 그 녀석은 우리 엘프 중에서도 유별난 순혈주의자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딸아이만이 아니라 드라키아한테도 손을 썼을 줄은 몰랐는데.”
바람이 떨려온다. 나는 그 바람에서부터 엘리야가 가진 슬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기야, 결과적으로 엘리아는 부모 양쪽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드라키아 개인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그녀로서는 손녀의 마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내가 뭘 도우면 되겠는가?”
“흠. 솔직히 곤란한 게 좀 많아. 일단 저걸 쫓아가는 것부터가 문제고, 설령 쫓아간다 해도 공격할 힘이 부족하니까.”
물론 마기를 꺼내 든다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왜 내가 지금까지 마기를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기본적으로 엘프가 반 요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 친화적인 종족이어서다.
괜히 여기서 마기를 사용했다가는 그 여파를 짐작하기 힘들 테지.
“그렇다면 내가 자네를 돕겠네.”
“..뭘 어쩌겠다는 거야?”
“내가 이동과 방어를 맡아 주겠네. 그렇게 하면 자네는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겠지?”
그 말과 동시에 엘리야의 바람이 내 몸에 휘감겼다.
나는 그와 동시에 피부로 느껴지던 열기가 한층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나는 시험 삼아 몸에 두른 오러를 회수해 보았다.
“오? 이거면 가능성이 있겠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방어가 단단했다.
비록 피부가 붉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전부다.
재생의 권능도 있는 만큼, 이 정도라면 나도 전력을 다할 수 있겠지.
“..지금 뭘 한 거지? 정령이 괴로워하고 있는데.”
“아, 맞다.”
그런데 이번에는 재생의 권능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바람의 정령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느껴진다.
권능의 사용에는 마기가 사용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대가였다.
엘리야가 경악한 듯 소리쳤다.
“어떻게 인간이 마기를..”
“음. 그건 꽤 복잡한 이야기인데.”
나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머리를 긁적였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엔 시간이 없었으니까.
“..뭔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지. 마기를 사용해도 좋네. 내가 감당하도록 하지.”
다행히 엘리야는 우선 넘어가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뭘 믿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지금 내 마기는 중급 마족의 것을 넘어선 상황.
아무리 정령의 힘이 있다고는 해도 견디기는 힘들 텐데.
“..자칫하면 네가 다크 엘프가 될지도 모르는데?”
자칫하다간 엘리야 본인이 타락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것 없이도 배척당하고 있는 그들 가족에게는 그리 좋은 이야기가 아닐 테지.
“..괜찮으니 내 말대로 하게.”
그러나 엘리야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가타부타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사실 그 마음가짐에는 감탄했다.
아무리 죽을 때가 가깝다고는 하지만, 타락이라는 건 쉽게 감당할 만한 위험이 아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다크 엘프가 된다는 것은 세계수의 의지에 반하겠다는 것.
즉, 죽어서도 그녀의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니까.
“..네 각오에 감사를 표하마. 엘리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신의 모든 오러를 회수해 검으로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들끓어 오르는 것은 진득한 마기였다.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노을빛으로 물드는 검.
나는 그대로 검을 겨눈 채 엘리야의 대답을 기다렸다.
콰아앙!
다음 순간, 나의 몸은 하나의 포탄이 되어 놈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나는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노리고 있는 것은 정령이 아니었다.
“찾았다. 빌어먹을 뇌 둥둥 깡통아.”
애초에 실체가 없는 정령을 베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래봤자 얼마 안 가 재생해 버릴 테니까.
하지만 저 안에 숨어든 개조 인간 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저, 저리 떨어져!”
놈을 향해 그대로 검을 찔러 든다.
그런데 이 정령,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겁다.
검을 찔러 넣음과 동시에 검 끝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예이츠의 검조차, 정령의 불꽃에는 견뎌내질 못하는 것이다.
“흐읍!”
그러나 이대로 검을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마기와 오러를 뒤섞어 검을 내질렀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더없는 모호함으로 경계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크롸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용의 머리.
물론 그런 것에 놀랄 내가 아니다.
나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용의 목을 잘라냈다.
“멈추라고 했잖아. 이 멍청아!”
아니, 잘라냈다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 너 때문에 통제권을..!”
아무래도 화염 때문에 시야가 일그러진 모양이다.
어긋난 겨냥.
정령에게서 개조 인간 놈을 뽑아내긴 했지만 놈을 끝내는 것에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끈질긴 녀석.”
나는 혀를 차면서도 그대로 발을 내리찍어 놈의 머리를 박살 내려 했다.
“크롸아아아아아!”
“이건 또 뭐야!”
그런데 그 순간 정령이 날뛰기 시작했다.
설마 통제에서 벗어난 반작용인 건가?
용의 꼬리가 나를 후려친다.
콰앙!
튕겨 나간 몸이 그대로 지면을 향해 처박힌다. 세상이 붉다.
점점 더 올라가는 열기에 바람이 밀려난다.
“이봐, 엘리야! 방어가 풀리고 있잖아!”
“이런.. 이 정도의 열기는 나도 통제하기가 힘들..”
엘리야의 목소리가 흐려진다. 아무래도 정령이 견디질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그대로 손을 휘둘러 저 먼 곳으로 벨을 던졌다.
“야! 지금 뭐 하는..!”
벨의 비명이 닿기도 전, 나는 몸이 불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 너도 눈이 있으면 알겠지.
그러니까 오지 마라. 괜히 같이 불타기 싫으면.
‘..마법소녀는 어디에 있지?’
나는 정령을 향해 걸었다.
엘리야가 없어 방어가 무력해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테니까.
나의 사명도, 약속도, 내가 품어왔던 모든 바람과 마음조차도.
“오냐, 너도 불꽃을 쓴다는 거냐?”
그러니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모든 것을 잃느냐, 얻느냐는 단 한 번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럼 누가 더 뜨거운지 겨뤄 보자..!”
나는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