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
7화 – 마법소녀와 매드 사이언티스트(1)
혹시 내 착각인가?
그래, 그렇겠지.
가도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마수를 만난단 말인가.
“그어어어어!”
“젠장, 운도 더럽게 없지.”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나는 결국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중급 마수 중에서도 빠르기로 유명한 미노타우르스라니.
딱 봐도 부딪쳤다가는 마차가 부서지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
“벨제뷔트 이 미친놈아! 그러니까 내가..!”
“알겠으니 일단 들어가! 달린다!”
히이이잉!
나는 달려드는 거인의 모습에 기겁하는 말들을 보채며 고삐를 내리쳤다.
“왜 도망치는 거야? 그냥 싸우면 되는 거 아니야?”
“나야 그걸로 괜찮겠지만 마차에 타고 있는 인간들은 어쩌고?”
“그럼 계속 이대로 가겠다는 거야?”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돌려줄 말이 없었다.
이게 다 내 잘못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웠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곧장 국경으로 간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완전히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추격해 오는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에 놀란 것인지.
말들이 정말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으니까.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냥 싸우라니까!”
“닥쳐! 네가 뭘 알아! 마차도 못 모는 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나긴 추격전 끝에, 나는 일주일로 예상했던 일정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 * *
한 편, 레온하트 왕국의 국경 근처.
후드로 얼굴을 가린 두 인영이 숲 주변을 살핀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흔적이 끊겼군. 커다란 발자국이 바퀴 자국을 지워버렸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발자국으로 보아 미노타우르스와 조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의 행동은 이해하기가 힘들군요. 왜 이런 식으로 움직인 걸까요? 혹시 흔적을 숨기려고..?”
“어쩌면 그냥 우리를 놀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저걸 봐. 고작 이 거리를 이동하는데 방향을 여덟 번이나 바꿨잖아. 설마 여기에도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음.. 확실히 이해하기가 힘들군요. 딱히 규칙이나 의도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사실 상대는 심각한 길치인 게 아닐까? 아니면 이 이상한 이동법에 미노타우르스를 불러들이는 효과가 있다거나.. 애초에 이 근처는 미노타우르스가 없는 곳이잖아. 뭔가 수작을 부려서 마수를 불러들인 거라면 이해는 가는데..”
“일단 길치인 건 아닐 겁니다. 오히려 길 찾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비상한 것 같았으니까요. 애초에 제가 이자를 의심하게 된 것부터가 제 계약자가 있는 곳을 단숨에 찾아내 살해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어쩌면 그와 관련된 가호를 받은 건지도 모르죠.”
“흠.. 그렇군. 그럼 진짜로 미노타우르스를 불러내려고 이런 짓을 한 건가?”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 같군요. 애초에 뭘 위해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어쩌면 미노타우르스가 등장한 건 우연일 수도 있겠네요. 가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이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급 마족, 안드로말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러나 그의 직속 상사인 단탈리안은 의견이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애초에 내가 걱정하고 있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만약 이놈이 정말로 용사일 경우. 나는 그게 걱정인 거라고.”
“..어째서죠?”
“생각해 봐. 저 이동법이 뭘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해. 이놈은 마수를 만났는데도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는 거.”
“..혹시 단번에 죽인 건 아닐까요?”
“그렇게 큰 놈을 죽이고 흔적을 지웠다고? 그럴 거면 발자국이나 바퀴 흔적도 지웠겠지. 확실해. 이놈은 마수를 보고도 도망친 거야.”
“하지만..”
“그래 지금까지 용사라 불린 놈 중에 마수와 조우하고 도망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지. 하나같이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마수나 마족들만 보면 죽이려고 발작했으니까.”
“확실히 용사 놈들은 마족이나 마수를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맞아. 그런데 이놈을 봐. 이놈은 그 마수를 피해서 도망치고 있잖아. 힘이 부족해서 도망친 건지 아니면 뭔가 의도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탈리안은 얼굴을 한가득 찌푸리며 말했다.
덩달아 안드로말리우스 역시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혹시 마수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도망친 건 아닐까요? 무의미한 살생을 싫어한다거나.”
“이봐, 안드로말리우스. 너 역시도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혹시 학교에서 졸았나?”
“..죄송합니다.”
“됐어. 어찌 되었건 결론은 하나야. 이놈이 진짜 용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용사라면 성가신 일이 벌어질 거야. 용사로서의 본능을 이겨내고 실리를 선택할 수 있는 놈이라는 거니까.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놈이라는 거지.”
“..그렇군요. 하지만 이놈이 용사가 아니라면 어쩌죠? 보고를 드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이 제일 크지 않습니까. 이놈의 행동이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걸 알아봐야지.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고 있어. 나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너도 알잖아. 우리 하급 마족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말이야.”
“용사의 흔적을 파헤치고 가능한 한 빠르게 제거하는 것 말씀이시군요.”
안드로말리우스의 말에 단탈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우리가 하는 일에 확신이라는 건 없어. 희박한 가능성 하나.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움직일 이유는 충분한 거야.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인간 놈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겪어보진 않았지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가증스러운 여신이 우리 마족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요.”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렇다면 상상해 봐. 용사가 마왕님을 쓰러트리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때의 역사가 반복되겠군요. 모든 마족이 처참한 몰골이 되어 붙잡히고. 처형당하거나 능욕당할 테죠.”
“그리고 인간 놈들은 우리의 시신을 향해 돌을 던지겠지. 너라면 그걸 참을 수 있겠어?”
“..아니요.”
“그래, 당연하겠지. 그러니 움직여야지. 일단은 확인만 해보자고. 네 말대로 용사가 아닐 수도 있고 다른 후보들도 조사해 봐야 하니까. 이참에 전에 못 한 용사 추적을 연습한다고 생각하자고.”
“그러고 보니 이상한 소문을 듣긴 했었네요. 엘프의 숲에 이상한 마법사가 나타났다고 하던데. 듣자 하니 마수를 부리는 마법을.. 어? 어디 가세요?”
“그런 건 됐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와!”
그렇게 두 마족이 사라졌다.
그들에게 있어선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사소한 의심이라도 발견하면 확인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하급 마족들이 그들의 왕을 지키는 방법이었으니까.
* * *
“설마 이렇게 일이 풀릴 줄은 몰랐는데..”
미노타우르스가 우리를 쫓아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분명 더 손쉬운 먹잇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나만을 쫓아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결국, 제대로 된 휴식 한번 취하지 못한 채 국경까지 달려가야만 했을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는가.
그 과정에서 타고 있던 마차가 부서지고 말들이 죽어버릴 정도였으니 이놈이 얼마나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테지.
이쯤 되면 그냥 죽여버리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아마도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없었다면 곧장 실행에 옮겼을 테지.
“정지!”
그런데 뜻밖의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줄곧 나를 쫓고 있던 미노타우르스가 오히려 나를 돕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이 용병패는 수배 중인 로만 아티의 용병패잖아?”
“자, 잡아!”
사건의 시작은 나의 신분증에서부터였다.
나름 신중을 기한답시고 한 행동이, 데이브 클락으로서의 신분증 대신 회색 매 용병단의 용병패를 사용하려 했던 게 문제가 된 것이다.
나로서는 통탄해 마지않을 일이었다.
설마 애써 챙겨온 신분증이 수배범의 것이었을 줄이야.
“저, 저건 또 뭐야!”
“미노타우르스다!”
아마도 그 순간 찾아온 미노타우르스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감옥에 갇히거나 또 다른 죄목으로 현상 수배를 당하고 있었을 테지.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혼란을 틈타 국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게 다 나를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해 준 이름 모를 미노타우르스 덕이었다.
왜 미노타우르스가 병사들의 칼에 맞아가면서까지 나를 쫓아오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나는 순순히 그의 희생에 감사하기로 했다.
“조, 좋아. 계획대로군.”
“퍽이나. 차라리 그냥 원래 신분증을 쓰지 그랬어? 레온하트와 티그리스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맞지만 그래도 형제 국가 출신인데. 아직도 두 나라 사이에 가도가 놓아져 있는 거 보면 모르겠어? 비록 두 나라로 나뉘긴 했지만 국제 조약이 있는 한 서로를 공격하진 않을 거라고.”
“인간 놈들의 약속을 나더러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배신의 여신 따위를 믿는 놈들인데.”
“배, 배신의 여신이라니! 나는!”
“저, 저기..”
그렇게 얼마를 다투고 있었을까.
나는 불현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쥴리와 타라가 어색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신이라던가 마왕이라던가.. 그게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거기 계신 요정님은 대체..”
“..타라.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야.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여기까지 데려다주신 빚도 갚기가 힘든데 괜한 말씀을 드린 거 같네요.”
“아니, 뭐. 그런 건 상관없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은 모양이다.
하긴, 앞뒤 안 가리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가며 싸웠는데 듣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
‘좀 민감한 내용이긴 하지만.. 상관 없으려나? 하긴.. 저런 얘들이 말해 봤자 믿어줄 놈들이 몇이나 된다고.’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넘기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조심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으니까.
“그래, 친척이 있다는 마을이 저기냐?”
“네, 맞아요.”
두 소녀가 나를 따라 티그리스 왕국에 온 이유는 현재 갈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화전민 마을에 살고 있던 이 아이들의 부모가 회색 매 용병단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원인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이나 마을 사람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진 않았던 거겠지.
애초에 회색 매 용병단에게 그녀들을 팔아넘겼던 것이 그들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을 테지.
띠링!
[퀘스트 완료 내역이 있습니다. 천애 고아가 된 가엾은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보상으로 근력 스텟이 1 증가합니다.]하긴, 그렇게 말하는 나 역시도 퀘스트가 없었다면 이들을 데리고 오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 이게 라나에게서 받았던 펜던트에요.”
물론, 퀘스트 보상보다도 더 중요한 것도 있었다.
나는 쥴리가 꺼내든 반쪽짜리 펜던트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다.
좌우가 반대이긴 했지만, 이 펜던트는 분명 기억 속에 있는 마법소녀.
트윙클 다이아가 가지고 있던 것과 한 쌍으로 보이는 펜던트다.
사연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이건 두 사람이 가진 우정의 증표라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내게 펜던트를 건네주는 쥴리의 표정에 일순 아련함이 스쳤다.
“라나는.. 괜찮은 건가요?”
“글쎄..”
그녀의 절실한 질문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 대답하기가 곤란한 질문이기도 했다.
마왕의 눈을 통해 보았던 마법소녀의 과거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런데 글쎄. 이런 것을 정말로 괜찮다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인형이나 다를 바 없는 그 삶을.
제 부모의 죽음에조차 화를 내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그래도 그 아이의 삶은 지금보다 나아질 거다. 이거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지.”
“..저와 라나만이 알고 있는 추억이 하나 있어요. 아마 라나도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혹시 라나와 만나셨을 때 펜던트를 보여줘도 당신을 믿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럼 아마 괜찮을 거예요.”
“..그렇군.”
나는 쥴리의 말을 귀담아듣는 척을 했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들을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굳이 불안에 떨도록 놔둘 필요는 없겠지.’
나는 쥴리를 위해 잠자코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녀는 마법소녀가 의지하는 몇 안 되는 버팀목 중 하나가 아닌가.
곁에서 지켜주진 못할망정 썩어 부러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거다.
마족을 구하기 위해선, 우선 마법소녀의 운명이 변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녀에게도 돌아갈 장소가 필요할 테니까.
“제발.. 제발 라나를 지켜주세요!”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가엾은 소녀 라나를 잔혹한 운명에서부터 구해내라. 지속형 퀘스트입니다. 마법소녀를 운명에서 구해낼 때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난이도 -.]“..그래. 그러도록 하지.”
허나 그 모든 사정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잡한 심경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한때 나와 나의 부하들을 죽였던 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모순을 느낀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자고.”
“네! 저희는 이제 팔레아스 령으로 갈 거예요. 다시 만나요! 라나도 함께요. 꼭 이예요!”
나는 그렇게 두 사람과 헤어졌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마법소녀라.. 지금은 열 살인가? 어리긴 하군.’
지금 마법소녀는 왕립 연구소 제1 공방에서 갖은 실험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꽤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을 테지.
나는 나름의 각오를 다지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