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0)
70화 – 마리아 체스터.
엘프의 마을을 떠난 데이브 일행이 그대로 말을 타고 달렸다.
목적지는 새롭게 검을 구할 수 있을 만한 장소였다.
이번 전투에서 데이브의 검이 완전히 못 쓰게 되어 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곧 마을이 나타나겠군.”
물론, 이 근방에서 검을 팔만한 곳은 그리 변변치 않았다.
그나마 큰 영지가 팔레아스 령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말 다한 셈이겠지.
기껏해야 마을 대장간 정도가 전부일 거다.
아마도 농기구나 생활 물품을 만드는 수준일 터인 대장간.
소드 마스터가 쓸만한 명검이나, 하다못해 예이츠의 검처럼 단단하기만 한 검조차 꿈도 꾸기 힘들 거다.
‘어쩔 수 없지.’
데이브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우선은 임시로 쓸 무기만이라도 구한다면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이제 좀 맛있는 걸 먹겠군. 그런 다행이야.”
“..네.”
가능하면 육류를 섭취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엘프들의 마을에서는 고기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데이브가 밥투정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일행에는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가 있지 않은가.
성장기의 단백질 섭취는 중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너도 따라올 작정이냐?”
그런데 아까부터 끈질기게 쫓아오는 니콜라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제 볼일도 다 끝났으니 헤어질 줄 알았는데 대체 언제까지 쫓아오려는 것일까.
“그게 이상해? 연금술사들은 나도 노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니콜라스의 태도는 당당했다.
물론, 그 역시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기는 했다.
“한 시대에 용사라는 건 한 명밖에 존재할 수 없다며? 그 말은 결국 내가 죽으면 저 꼬마 아가씨가 위험해진다는 거잖아. 너도 곤란해지고 싶지는 않을 텐데?”
“..그건 맞는 말이지.”
연금술사들은 니콜라스를, 그리고 용사 후보로 의심되는 데이브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시대에 용사는 오직 한 명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즉, 라나 이외의 모든 용사 후보가 사라져야만 아르카나가 완전한 각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카나가 각성하지 못하고 있는 건 단지 마법소녀의 재능과 의지력 때문만은 아니야. 전대 용사가, 니콜라스가 살아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거겠지.’
즉, 당대의 용사인 니콜라스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앞으로도 라나는 트윙클 다이아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니콜라스가 살아있기만 해도 연금술사들은 절대로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거다.
‘..확실히 함께 다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물론, 함께 다니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지켜야 할 대상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네 말이 틀린 건 아니군.”
데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허튼소리 말고 물이나 떠와. 이 어르신께서는 목이 마르시다.”
“..그런데 기왕이면 널 완전히 봉인시켜 버리는 게 지키기엔 더 편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수긍하는 그의 모습에 의기양양해 하는 니콜라스.
데이브의 시선이 니콜라스의 성검, 아켈루스로 향했다.
니콜라스의 태도가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흠. 그러고 보니 수통에 아직 물이 있었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할 일 마저 해.”
“에휴..”
데이브는 고개를 내저으며 힐끔, 라나를 내려보았다.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벨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그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울리지 않는 일.
“그만 좀 봐라. 누가 보면 진짜 부모인 줄 알겠네.”
니콜라스가 그런 데이브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러다가 뚫어지는 거 아닌가?
“..뭐라고?”
그러나 정작 데이브는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라나를 보고 있었는지 모르는 기색이다.
“아니, 아무것도.”
“훗.”
결국 니콜라스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엘리아가 작게 웃는다.
“..싱겁기는.”
데이브가 코웃음 치며 주위를 살폈다.
슬슬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쉴 생각이었다.
“..이봐, 좀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불이 난 것 같은데? 음. 살기가 느껴진다. 뒤로 가서 라나를 지켜.”
그런데 그 순간, 피부를 찔러 드는 살기가 있었다.
데이브가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다 혀를 찼다.
일순 지금 검이 없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니콜라스는 그런 데이브를 보며 웃었다.
“그러게 왜 나서냐? 그냥 내 성검이라도 빌려 쓰지?”
“그런 불쾌한 걸 내 손으로 만지라고?”
“에휴. 그냥 뒤로 가 있어라. 내가 싸울 테니까.”
결국, 니콜라스가 한숨과 함께 앞으로 나선다.
데이브는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쩌겠는가.
검이 없어도 싸울 수야 있겠지만,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투박할 거다.
그 과정에서 옷가지 같은 게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겠지.
이 날씨에 찬물로 빨래하고 싶지 않다면 그야 자중하는 수밖에.
“대체 무슨 일인데?”
“아직은 나도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큰 싸움이..”
엘리아가 활을 꺼내 들며 묻는다. 그리고 그 직후.
콰아아앙!
평원 위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데이브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절벽을 타고 들려오는 메아리.
소리를 따라 데이브의 고개가 움직인다.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것은 익숙한 기운이었다.
한때 팔레아스 령에서 그 위용을 보인 적이 있었던 소드 마스터.
“그 크루세이더의 기운이군.”
“마리아 체스터 경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 이름이었나?”
이어지는 라나의 말.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이브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아직 인간의 이름이 낯설었다.
“그런데 뭐랑 싸우고 있는 거지? 마기는 느껴지지 않는데.”
뭐든 간에 의아한 것이 사실이다.
성기사씩이나 되는 인물이 왜 여기서 싸우고 있단 말인가.
“..아저씨. 안토니오 추기경님께 연구소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마리아 체스터 경도 옆에 있었잖아요.”
의문의 해답을 내놓은 것은 의외로 라나였다.
그 말을 들은 데이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저씨가 말씀하셨잖아요. 그 사람은 거짓 간파의 가호를 가졌다고. 그리고 팔레아스 령에 나타난 연금술사들은 아저씨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데이브의 표정이 변했다.
라나의 말을 들으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 분명 팔레아스 령에 나타났던 그 대머리 연금술사는 그가 용사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마치 무언가 증거라도 있기라도 한 것처럼.
“확실히 의심이 가긴 하는군.”
“네, 무엇보다 지금 이 앞에 있는 게 마리아 체스터 경이라는 점이 확실한 증거에요. 원래라면 교단 지부에서 나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니까요.”
데이브는 그 말에 새삼스러운 얼굴로 라나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만난 지 이제 막 1년이 되었을 뿐인데도 무척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아저씨는 지금 검이 없으신데.. 제 검이라도 쓰실래요?”
“네 검은 너무 짧아. 너한테도 그렇고. 마을에 가면 네 검도 구해보도록 하자. 슬슬 너도 진짜 롱소드를 가질 때가 된 것 같으니까.”
“아직 쓸만한 것 같은데..”
“매일 써서 익숙해진 거겠지. 네 키가 얼마나 컸는지를 봐라. 네 몸에 그 칼이 맞는 거 같냐?”
데이브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라나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데이브의 말이 옳았다.
최근 들어 라나의 키는 부쩍 자라 있었으니까.
사실, 이제 막 열두 살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훨씬 작았을 때부터 쓰던 숏소드를 계속 쓰기엔 키가 너무 컸다는 거다.
“나타났군. 엘리아. 드라키아를 부를 수는 있나?”
불청객의 등장에 데이브가 엘리아를 향해 물었다.
드라키아의 힘만 쓸 수 있다면 누가 나설 것도 없이 순식간에 끝나버릴 테니까.
“음. 아니. 그때부터 시도는 해보고 있지만..”
그러나 엘리아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지난번 전투가 끝난 이후 드라키아를 불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데이브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한평생 정령과는 연이 없었으니 당연하겠지. 그래도 보우 마스터라면 도움이 되긴 하려나?”
“잘난척하기는. 그러는 너는 무기도 없는 주제에.”
엘리아의 핀잔을 무시하며 앞을 바라본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누군가를 업고 달리는 성기사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마리아 체스터와 안드로이드의 군단.
라나의 의심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다.
“도, 도와주십시오!”
“저건 또 뭐야?”
안드로이드를 처음 보는 니콜라스의 눈빛이 찌푸려진다.
어찌 된 게 데이브를 따라나선 뒤부터 처음 보는 것들이 는 것 같다.
“저는 성녀님을 지키는 기사입니다! 도와주십시오!”
“하핫. 그냥 도망쳤으면 저들까지 말려들게 하진 않았을 텐데. 너무한 거 아니야?”
“제, 젠장!”
도망치는 기사를 향해 마리아의 검이 새하얀 빛을 내뿜는다.
그와 동시에 나선 것은 니콜라스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저 기계들이랑 있는 걸 보면 너도 연구소 소속이냐?”
“..너, 연구소를 어떻게 알지?”
니콜라스의 물음에 마리아의 검이 멈춰 선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새로운 적들의 모습을 살핀다.
“..너.”
그러던 중, 마리아의 눈이 데이브에게로 향했다.
머릿속을 스치는 무수한 생각들.
마리아가 낭패했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설마 여기서 데이브와 만나게 될 줄이야..
‘설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마리아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 만남을 우연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었던 거겠지.
하기야 이 넓은 세상에서 하필 데이브와 재회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설마 함정을 파둔 거였나? 멍청한 줄로만 알았는데 제법이었군 성녀.”
이쯤 되니 성녀가 이렇게 맥없이 당한 것조차 계획의 일부라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물론, 데이브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지만.
“..쟤 뭐라는 거냐?”
“음. 뭔가 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어이가 없어 되묻는 데이브의 말에 라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물론 그녀라고 해서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뭐, 일단 잡아놓고 생각하면 되겠지. 야, 니콜라스. 가능하면 생포해 둬. 뭐, 죽어도 알아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좀 귀찮아서.”
“그래, 걱정하지 마.”
니콜라스의 부름과 동시에 그의 그림자가 번져나간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가 던전에서 싸웠던 데모닉들이었다.
시종일관 여유로웠던 데이브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가는 순간이다.
“..야, 니콜라스.”
“아 좀 봐줘!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마수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병력이 텅텅 비었다고!”
“..너 나중에 보자.”
세 마리의 데모닉이 마리아를 향해 손을 뻗는다.
마리아의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퇴로를 찾음과 동시에 물러서는 마리아.
그녀는 곧바로 안드로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간을 끌어!”
“도망치려는 거냐!”
니콜라스가 지팡이를 겨눈 채 캐스팅을 시작했다.
제아무리 검사의 속도가 빠르다 하더라도 번개 마법의 속도에 비하면 느릴 터.
그는 마리아가 등을 돌리는 즉시 마법을 사용해 그녀를 쓰러트릴 작정이었다.
“도망친다고? 그럴 리가!”
그러나 마리아의 반응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파지직!
그녀의 검에 서린 흰 빛이 한층 더 강렬한 빛을 흩뿌린다. 눈부신 섬광이다.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하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신성력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이브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니콜라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 마법은 그만둬라.”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여자한테 번개는 통하지 않아.”
데이브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리아의 검이 변하기 시작했다.
성기사의 검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패도적인 힘이다.
파직거리며 튀어 오르는 뇌전.
저릿하게 타오르는 대기와 곤두서는 솜털.
니콜라스는 본능적으로 캐스팅을 취소했다.
데이브의 말이 옳았다.
저 여자를 향해 번개의 마법을 쓰는 건 멍청한 짓이다.
“숙여!”
비명처럼 울려 퍼진 목소리.
그와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우레의 창이었다.
시야가 불탄다. 백열 한다.
공기가 떨어 울리고 세계는 소리의 물결에 잠겨 들었다.
귓가를 맴도는 이명.
“뭐, 뭐야?”
니콜라스가 힘겹게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데이브가 서 있었다.
“이게 뭔..”
눈앞의 모든 것이 망가져 있었다.
데모닉들은 모조리 허리가 잘려 나간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절벽은 무너졌으며, 지면 위는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박살 났다.
데이브가 성기사의 몸을 끌어당기지 않았더라면, 그와 성녀는 이곳에서 죽어버렸을 테지.
“..창?”
그러나 니콜라스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제 얼굴 바로 앞에 멈춰 선 채 들끓고 있는 창.
상황으로 보건대 아마도 니콜라스의 목을 노리고 던져졌을 무기였다.
“쯧. 도망치지 않는다고 하더니..”
데이브가 혀를 차며 창을 내던진다.
이어지는 것은 적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