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4)
74화 – 세 마리의 제물.
생각이 깊어진 나머지 밤을 새우고 말았다.
“..괜한 짓을 했군.”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의미 없는 사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이제 와서 고민해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해답은 진작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상대가 마족이건 사천왕이건, 나는 내 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 인정하자. 이번 일은 내 실수였어.”
그걸 알면서도 하지 못했던 것부터가 내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나는..”
나는 어쩌면 평화로운 방법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는 마법소녀를 생존시키고, 강하게 만드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위기가 끝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 인정하마. 파라켈수스. 네가 위협적인 적이라는 것을.’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연금술사들의 마수는 이 대륙 전역에 뻗어 있었다.
인간과 이종족, 심지어 종교와 마족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런 와중에도 마법소녀의 운명은 발이 닿는 곳마다 풍파를 일으키고 있었다.
과연 용사의 그릇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저 파란의 운명은 분명 타고난 것이리라.
그야 평화와는 거리가 멀 만도 하다.
“..오늘도 안 주무신 거예요?”
“마법소녀.”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모호한 방법이 아니라 확실한 해답이.
“그러다가 몸 축나는 거 아니에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그러나 선택은 신중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마법소녀의 삶은 지금보다 더 각박해지게 될 테고.
결국, 나뿐만 아니라 이 녀석의 손에도 마족의 피가 묻게 될 테니까.
“연금술사와 싸울 거냐? 아니면 도망칠 거냐.”
그렇기에 나는 마법소녀에게 물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만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네?”
물론, 마법소녀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일 거다.
“사실 이 질문은 조금 더 미뤄두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기엔 네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더는 미뤄둘 수 없다. 이제는 물어야만 한다.
지켜야 할 대상인 마법소녀가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라나 클락에게.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바라는지.
마냥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미뤄둘 수는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네가 마냥 어리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도 너는 혼자서 많은 결정을 했었지. 네 부모에 관한 결정도 그렇고, 저번 사건에 관해서도 그렇고.”
“..저를 두고 가시려는 건가요?”
“아니, 전에도 말했듯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어기지 않아.”
“…”
“네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따를 거다. 그러니 생각해라.”
마법소녀와 눈을 마주한다.
이렇게 진지하게 눈을 마주한 건 아마 이 녀석과 알게 된 이후 처음이었을 것이다.
“저는..”
말끝이 흐려진다. 눈이 흔들린다.
하기야 갑작스럽긴 할 거다.
“어젯밤 벨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지?”
“..연금술사와 태양신에 대해서요.”
“그 모든 일의 중심에 네 안에 있는 아르카나가 있다면 믿을 수 있겠냐?”
마법소녀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오러를 흩뿌려 소리를 감췄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저들에게 들려선 안 된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지. 너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 아니냐. 마왕이었던 내가 왜 인간이 된 건지.”
“..추측일 뿐이에요. 허무맹랑한 생각이기도 하고.”
“말해봐라.”
“..아저씨는,”
마법소녀의 눈이 떨려온다.
“미래의 제 손에 죽은 거예요. 그리고 여신 아리벨에 의해 시간을 되돌아온 거죠. 그래서 두 분이 함께 계신 거고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이해력이 좋군.”
“..제 말이 맞다고요? 정말로?”
“너무 그렇게 볼 필요 없다. 지금은 사라진 미래니까. 정확히는 네가 연구소에서 탈출하지 못했을 경우 벌어졌을 일이라고 해야겠지만.”
“제가.. 무슨 짓을 한 거죠?”
..그래, 더는 숨길 수 없겠지.
“아르카나 프로젝트.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과거를, 7년 후의 미래를 전했다.
연구소의 실험으로 인해 각성한 아르카나와,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고 감정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 마법소녀.
그런 마법소녀가 벌였던 수많은 참극.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마법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를 원망하시나요?”
떨리는 목소리.
평정을 가장하려 노력하는 것 같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어째서죠? 저는..”
“누군가가 너의 가족을 죽인다면, 너는 그자의 칼을 원망할까?”
마법소녀는 그 말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미래의 저는 그렇게 심하게 망가져 있던가요? 원망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지.”
“..그래서였군요. 저를 강하게 만들려고 하셨던 건.”
“그래, 그러니 이제는 방향을 정해야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사실 이번에도 내 의견을 밀어붙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의 의지를 무시하고 내 의견만을 밀어붙인다면, 내가 연금술사 놈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어?”
“네가 바란 운명은 아니겠지만, 이 세계의 운명은 분명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마 이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겠지.”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 운명에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네가 도망치는 것을 선택해도,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할 거다. 어디까지나 그 결정이 네 의지로 정해진 것이라면 그렇다는 거지만.”
만약 이 마법소녀가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다면, 나는 이 녀석을 데리고 대륙의 너머로 갈 생각이었다.
라나 클락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마법소녀가 해칠 만한 이들이 없는 미지의 땅으로.
“아저씨의 의견은요?”
“네 마음을 우선시해라. 후회하지 않도록.”
마법소녀가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으니까.
“꼭 둘 중에 고를 필요는 없다. 그게 아니어도 방법은 많이 있을 테고.”
“예를 들면요?”
“..뭐, 많겠지.”
“아저씨도 생각이 안 나시는가 보네요.”
마법소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작 하룻밤의 고민으로 뭘 할 수 있었겠는가.
무엇보다 내 고민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도 하고.
“…저는 싸우고 싶어요.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고민 끝에 마법소녀가 내어놓은 답은 싸우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유는 묻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럴 필요가 없지. 사실,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
이 녀석이 도망친다 해도 연금술사들은 포기하지 않을 테지.
분명 지난번과 같은 실험을 끝없이 반복할 것이다.
‘너는 그걸 바라지 않을 테고..’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은 늘 그랬다.
제 아픔에는 둔한 주제에 타인의 아픔에는 마음 깊이 공감하고야 마는 것이다.
실로 용사다운 일이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어쩌시려고요?”
“방향이 정해졌다면 계획을 짜야지. 저놈들에게도 설명을 해줘야 할 테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부터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놈들을 노려보았다.
그제야 모른 척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참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엘리아.”
나는 방음을 위해 펼쳐두었던 오러를 흩어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 * *
훈연하고 남은 고기로 스튜를 끓인다.
나는 놈들에게 스튜와 훈연 된 고기를 담은 주머니를 분배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논의했다.
가장 먼저 논의된 것은 드라키아가 남긴 단서였다.
“세 마리의 제물. 분명 그렇게 말했다는 건가?”
“그래, 맞아. 나도 아버지한테서 전해 들은 내용이지만.”
“역시 가장 시급한 건 제물을 모으는 걸 막는 일이겠군. 드라키아의 경우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때 본 얼음의 정령을 생각해 보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엘리아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 모양이다.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아마도 제물 중 하나는 번개의 정령일 거야.”
그 순간 입을 연 것은 니콜라스였다.
녀석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어제 만난 마리아 체스터라는 여자 때문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여자가 쓰던 번개는 보통이 아닌 거 같거든.”
“..그렇긴 하지. 그게 정령의 힘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 힘이 과연 드라키아나 얼음 고래와 동류의 것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 까닭이다.
“흠. 싸워본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도 확신은 안 드는데. 애초에 정령은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아마 맞을 거야.”
그런데 그 순간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이가 있었다. 엘리아였다.
“이걸 봐.”
“그건..”
뻗어진 손. 그 위에서 화염이 치솟는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염의 마력을 다뤄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아직 아버지를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아버지와 계약하는 순간 내 몸 안의 마력이 안정되는 게 느껴졌어.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 힘이 커지고 있지.”
“..그게 화염의 성녀가 가진 권능이라는 거야?”
“그래, 그리고 그 마리아라는 여자가 번개의 성녀라면 그때 보인 힘도 이해가 돼. 네가 다르다고 느낀 건 아마도 정령이 곁에 없어서 그런 거겠지.”
“..그렇군. 그럼 번개의 정령은 이미 존재한다고 봐야 하는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상대는 무려 삼천 년간 암약했던 조직이다.
오히려 왜 지금까지 제물을 마련하지 못했는지가 더 의아할 정도라는 거다.
“그럼 남은 정령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는 거군.”
“화염과 번개라. 태양신을 부활시키기 위한 제물이어서 그런가? 남은 건 뭐지? 빛?”
“아마도 그럴 겁니다.”
니콜라스의 말에 동조하고 나선 것은 성녀였다.
모두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성녀를 바라본다.
하나같이 놀란 기색이다.
하긴, 설마 성녀 쪽에서 먼저 입을 열 줄은 몰랐던 거겠지.
“계속 삐져있을 줄 알았는데?”
“..입 다무세요.”
것 봐. 역시 삐져 있잖아.
“당신에게 실망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저에게는 신께서 내리신 사명을 다해야 할 소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않지만?”
“..어쩌면 천사님께서 말씀하신 사도가 당신일지도 모르니까요.”
“영문 모를 소리군.”
그런데 사도는 또 무슨 소리지?
설마 벨이 또 무언가 수작을 부린 건가?
“이 세상에서 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존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녀는 내 의문을 가볍게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여자도 보통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겠지. 예를 들면 너나 교단 같은 놈들.”
“네, 맞습니다. 그리고 그건 저희 아리벨 교단 역시 마찬가지죠.”
“..태양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거냐?”
‘이 세계에는 더 이상 태양신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하지 않았었나?’
나는 불현듯 느껴진 의문에 벨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째 저 벨조차도 처음 듣는다는 눈치다.
놀란 듯 성녀를 바라보는 모습.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태양신이라는 것이 대체 언제 존재했던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기록 중에는 어떤 단서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마족은 알지도 모르겠군요. 그들의 도서관에는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지식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까요.”
“..아마 거기엔 없을걸?”
“마치 본 것처럼 이야기하시는군요.”
그거야 진짜로 봤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군.
지금 생각해 보면 도서관에는 신에 대한 정보 자체가 이상하리만치 적었다.
그 이외의 정보들은 넘쳐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신에 대한 정보도 있을 만도 한데..
‘어쩌면 선대 마왕들이 뭔가를 해놓은 건지도 모르겠군.’
“뭐든 간에 기록이 없다면서 어떻게 확신하는 건데?”
“어제 설명을 들어보니 아리벨 님께서는 지금 태양신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그런 말이었군.”
나는 그제야 성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단순한 이야기이긴 했다.
태양신에 대한 기록 자체는 존재하지 않을지 몰라도, 아리벨에 대한 기록은 넘쳐나고 있었으니까.
“아리벨 님의 권능으로 알려진 힘 중에서 상징적인 권능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죠.”
“본격적이군. 혹시 오래 걸리나?”
“아니요, 답은 간단합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더 명확해지죠. 사실, 이 부분은 오랫동안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된 부분이기도 하거든요.”
아리벨은 신 중에서도 가장 많은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만약 그 권능이 태양신의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면 답은 명확하겠지.
“보통 빛이나 불, 번개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부분이 부각되기 마련이죠. 그러나 아리벨님은 달랐습니다.”
“..아리벨은 달과 바람, 파도의 여신이라 불리고 있지.”
“제물 중 하나가 빛의 정령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래서죠. 불과 번개. 그리고 아리벨 님의 권능을 제외한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물론, 그 빛의 정령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거라면 내가 알 것 같군.”
나는 성녀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니콜라스. 너는 사막 왕국 출신이라고 했으니 알겠군. 백사 지옥. 흰 모래의 마경에 대해서 말이야.”
“알기야 알지만.. 설마 거길 가려고? 확신 같은 것도 없으면서?”
확신? 글쎄..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을까?
“걱정 마. 확실하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지난 회차에 대한 정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