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1)
81화 – 검은 뿔과 하얀 날개(4)
숲은 다시 고요해져 있었다.
마릴의 공격에 이 일대의 모든 안드로이드와 마수들이 사라진 탓이다.
이제 남은 건 먼저 간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 레온하트 왕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가자.”
나는 쓰러진 마릴을 어깨에 들쳐메고 돌아섰다.
이대로 마을까지 계속 걸어갈 작정이었다.
“이자벨은 어떻게 된 건데? 원래 라나랑 같이 있었잖아.”
그런데 그 순간, 줄곧 주머니에 들어 있던 벨이 내 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이자벨? 이자벨이 누구지?
“아. 성녀 말이군.”
그러고 보니 그런 녀석도 있었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이건 뭐지?
“흠. 이봐 벨.”
“응? 왜 그러는데?”
“이참에 성녀 하나 새로 구하는 건 어때?”
“야! 미쳤어?”
흠.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아쉽게도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쪼잔하긴.”
“너 진짜..”
그나저나 귀찮게 되었다.
단탈리안의 기척과 성녀의 기척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게 느껴진다.
아마도 붙잡힌 거겠지.
마법소녀를 지키는 데에만 치중한 나머지 옆에 있던 성녀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였다.
“쯧. 성녀씩이나 되어서는 인질이나 되고 말이야.”
“..네가 실수한 거잖아.”
“평소 나처럼 무예를 단련해 두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그래도 일단은 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겠지.
벨이 시끄럽게 굴면 피곤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띠링!
퀘스트 보상도 꽤 마음에 드니까.
“멈춰라!”
그런데 설마 저쪽에서 와줄 줄은 몰랐는데.
나는 익숙한 얼굴을 살피며 녀석과 눈을 마주했다.
“윽.”
그런데 그 순간, 단탈리안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다.
아무래도 내 염제의 눈에 두려움을 느낀 것 같다.
불러놓고 무서워할 거면 왜 부른 거야?
“이 여자의 목숨이 아깝다면..”
“아깝지 않아. 마음대로 해.”
“..뭐라고?”
나는 일부러 태연한 척 연기하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단탈리안이 당황하는 것이 보인다.
“저, 절 버리신다고요?”
그런데 설마 성녀까지 당황할 줄은 몰랐는데.
내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난가? 아니면 그냥 날 못 믿는 건가.
“뭘 그리 놀라는 거야? 설마 너와 라나를 바꾸기라도 할 줄 알았냐?”
“..동료를 버리겠다고?”
“그 동료를 붙잡고 있는 네가 할 소리는 아니군.”
“가증스러운 인간! 너에게는 최소한의 도리조차 없다는 거냐!”
그런데 듣고 있자니 좀 불쾌하긴 하군.
아무리 옛 부하라도 선을 넘는 건 용서할 수 없는데.
그리고 애초에 성녀가 내 동료였던가?
오히려 짐짝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야! 데이브!”
벨의 주먹질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단탈리안에게 물었다.
“그래, 뭘 바라는 건데?”
“그 꼬마를 넘.. 케헥!”
그런데 그 순간, 단탈리안을 공격하는 이가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달려와 발굽을 내리치는 거대한 흑마.
“너..”
푸른 불꽃이 내달린다. 허공을 박차며 숲의 위를 넘어온 녀석.
이윽고 지면에 내려선 흑마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설마 날 따라온 건가?
“이자벨!”
“라나 양!”
뭐든 간에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풀려난 이자벨이 라나를 끌어안는다.
반면, 발굽에 차여 날아간 단탈리안은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아서라.’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난 동정심을 필사적으로 죽였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
잊지 말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시간을 거슬러 왔는지.
정말로 마족의 부흥을 바란다면, 설령 마족의 피를 취해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주저해선 안 된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일이니까.
“네 손님도 왔군.”
단탈리안을 지나쳐 흑마에게로 다가간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 녀석, 혼자가 아닌 것 같다.
녀석의 등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새하얀 말.
페가수스가 마법소녀의 주위를 맴돈다.
설마 둘이 아는 사이였던 건가?
“너는..”
그 녀석이 요정의 꽃을 준 장본인이라는 걸 알아서일까.
마법소녀는 새끼 페가수스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 마법소녀를 따라가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그런데 너도 날 따라올 작정이냐?”
내 옆에 따라붙은 유령마를 바라본다.
안 그래도 알 수 없는 인연이 느껴지던 이 녀석.
설마 이 녀석도 날 따라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일까?
“푸르릉.”
그러나 이번에도 이 녀석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애써 그런 기색을 숨기며 웃어 보였다.
어째 이 녀석에게는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서다.
“그래? 그럼, 여기서 작별이군.”
“푸르르르.”
“..아니라고?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따라올 거냐고 묻는 말에 고개를 젓던 녀석.
그런데 반응이 좀 이상하다.
설마 따라가긴 싫지만 헤어지는 것도 싫다는 건가?
새삼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라져 버렸군.”
그러나 나와 마주 보던 것도 잠시.
다음 순간, 흑마는 나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내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단은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거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제멋대로의 행동에 안도감을 느끼는 나도 나지만, 이 녀석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성녀도 돌아왔으니 이제 그만 가자. 놈들이 기다릴 거다.”
“..네!”
마법소녀는 어느새 페가수스의 등 뒤에 올라타 있었다.
그런데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은 말 이름치고는 좀 거창한 거 아닌가?
* * *
아무리 새끼여도 영물은 영물이라는 것일까.
페가수스에 탄 마법소녀의 이동 속도는 보통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내가 번번이 움직임을 놓칠 정도였겠는가.
‘흑마 녀석도 이 정도로 빠를까? 어쩌면 성체라서 더 빠를지도 모르겠군.”
물론 뒤처지고 있다고 해서 딱히 힘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속도와 체력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다만 내가 들고 달려가고 있는 이 두 명에게는 이야기가 다르겠지.
“아, 아리벨 님..”
성녀는 흔들림을 견뎌내지 못하고 연신 토악질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토할 것도 없으면서 빈속을 게워 내는 것이다.
그런데 토한 입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건 좀 불경한 거 아닌가?
‘이런 걸 벨한테 물어보면 화내겠지?’
나는 순간적으로 든 의문을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이 녀석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군.”
반면 마릴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기절한 척 연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마도 번개의 정령을 소환한 후유증인 거겠지.
‘그래, 차라리 기절해 있어라.’
나는 온갖 난리를 피워대는 성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쩌다가 저런 녀석을 돌봐주는 신세가 된 거지?
‘내가 보모인 줄 아나..’
역시 이 여자는 두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적당한 지부에 던져두고 가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멈춰! 이 간악한 악당!”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러던 중, 나의 걸음을 멈춰 세우는 이가 있었다.
“..나한테 한 소리냐?”
“그래! 이 납치범! 그 두 사람을 어쩔 생각이냐!”
이해 못 할 소리는 아니다.
확실히 기절한 여자 하나랑 다른 여자 하나를 짐짝처럼 들고 가는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일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하지만 개인적으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고개를 돌려보면 이제 막 익스퍼트가 된 듯한 검사 하나가 나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짧은 머리칼과 큰 키. 그러나 누가 봐도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듯한 소녀다.
‘그래, 저 나이에 익스퍼트가 되다니 살면서 천재라는 소리는 다 듣고 다녔겠군.’
나는 시답지 않은 감상을 내놓는 한편, 적막한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따라 하늘이 푸르다.
이런 날이면 언제나 창문을 열어두고 책을 읽곤 했었는데.
“야!날 무시하지 마!”
“아, 참. 네가 있었지.”
하도 같잖은 위협이라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익스퍼트도 사람이었지 참.
한때는 나도 익스퍼트였는데 설마 이걸 잊어버리고 있었을 줄이야.
“야, 저런 소리 하는데 뭐 할 말 없냐?”
“우웨에에엑.”
괜히 귀찮아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성녀를 방패 삼아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물론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지만.
성녀는 여전히 바닥에 고개를 박은 채 기분 나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런 게 성녀? 교단의 미래가 어둡다.
“언제까지 날 무시하려는 거야? 너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결국 참다못한 소녀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그 결말이 어떨지는 뻔한 일이었다.
* * *
우리는 그대로 레온하트 왕국에 들어섰다.
마릴의 경우는 적당한 상자에 넣은 후 그대로 그림자 안으로 넣어버렸다.
느닷없는 불청객의 등장에 흑마가 날뛰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쩌겠는가.
그림자 속에서도 야금야금 내 마기를 뽑아가는 놈이다. 양심이 있다면 밥값은 해야지.
“후, 드디어 도시군.”
참고로 말하자면 그 칼 든 꼬마는 그냥 길 위에 방치하고 왔다.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었고, 데리고 오기엔 손이 부족했으니까.
그래도 뭐, 익스퍼트쯤 되면 객사하지는 않을 거다.
가도 위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마수의 습격을 받을 일도 없을 테고.
‘페가수스 놈의 덕을 봤군.’
마법소녀가 그 광경을 보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그 모습을 봤다면 분명 데려가야 한다고 했을 테니까.
그러나 당시 마법소녀는 페가수스에 탄 채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페가수스가 아직 어려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탓이다.
오죽하면 레온하트 왕국에 도착하는 데 삼 일밖에 걸리지 않았겠는가.
과거 미노타우르스에게 쫓겼을 때보다도 절반 이하로 단축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니콜라스 이놈은 왜 안 오는 거지?”
“..그냥 저희가 너무 빨리 온 거 아닐까요?”
성녀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하긴, 생각해 보면 놈들에게도 바르바토스의 추격이 붙었다.
먼저 출발했다 하더라도 우리보다 늦게 도착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바르바토스에게 당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군. 다들 날이 서 있어.”
그런데 어째 이 영지 역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경계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모르셨나요? 이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이상한 일?”
음식을 가져오던 종업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걸 보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거겠지.
그럼에도 조심스러워하는 까닭은 아마도 저 밖에 있는 병사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리라.
“저희도 계속 모르다가 최근에야 알게 된 건데, 아무래도 시체를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나 봐요. 없어진 시체를 보아하니 작년부터 그랬다는 것 같은데.. 참 별 일도 다 있죠?”
“..시체?”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 걸 가져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하기엔 묘한 이야기다.
나는 종업원의 말을 곱씹었다.
‘시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꼭 누가 빼돌렸다는 보장은 없지.’
던전에서도 그랬지만 시체가 꼭 가만히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마기나 마력의 영향을 받아 언데드가 되거나, 땅 자체에 깃든 사기가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건 오히려 다반사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관리가 허술한 묘지에는 도굴꾼이나 짐승들이 들끓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는 따로 있지.’
그러나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전혀 다른 가정이었다.
작년.. 아니, 이제는 재작년이 되어 가는 시기에 연구소에서 만났던 사령술사.
그 녀석이 사라진 시기와 시체가 사라진 시기가 겹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있는 게 그 녀석일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선은 확인부터 해봐야겠지.
정말로 여기에 있는 것이 폴 뷔마인 건지, 아니면 다른 녀석인지만이라도.
나는 종업원에게 적당한 돈을 쥐여 주었다.
비록 지금은 즉흥적인 생각에 불과했지만, 이 즉흥적인 생각이 정말로 실현될 수만 있다면 연금술사 놈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때가 되면 저 여자도 밥값을 하겠지.’
나는 삼 일은 굶은 것처럼 수프에 고개를 처박은 성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켁. 케헥!”
그런데 너무 겁먹는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