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
9화 – 마법소녀와 매드 사이언티스트 (3)
느닷없이 들려온 낯선 목소리.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려오기 훨씬 전부터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체를 간파한 건 아니었지만.
“누군데 친한 척이야?”
“놀라지 않는 거야? 좀 실망인데..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라 기대하고 있었더니..”
그런데 상대방의 기척이 조금 이상하다.
단순히 인간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생기가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인간보다는 마수나 마족에 가까운 기운이 느껴진다.
‘설마 진짜로 마족일 리는 없겠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냄새나니까 가까이 오지 마라. 넌 대체 언제 씻은 거냐?”
“씻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여긴 시체밖에 없단 말이야.”
나는 고약한 냄새에 미간을 모으며 다가오지 말라고 손을 저었다.
태연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 시체투성이인 방에서도 유독 지독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악취가 저놈에게서 풍겨왔기 때문이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병에 걸릴 것만 같은 수준의 악취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역한 기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놈과 눈을 마주했다.
“..옷이 더럽혀져서 알아보기 힘들군. 그래도 대충은 알겠어. 꼴을 보아하니 너 역시 실험체였나 보지?”
“그걸 묻는 걸 보니 역시 그놈들은 아닌 모양이네. 잘된 일이야. 사실 좀 걱정하고 있었거든. 행색을 보아하니 그놈들이 아닌 것 같긴 한데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마수나 다름없는 몰골. 그러나 이놈이 정말 마수라면 이렇게 대화가 통할 리가 없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마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적의를 억누를 수 있는 마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덥수룩한 머리칼과 수염이다.
뒤이어 보이는 것은 정체불명의 액체로 더럽혀진 몸뚱이.
“내가 정말 그 연구원 놈들이라면 널 속이려고 연기하는 걸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잖아? 오히려 내가 연구원일 수도 있으니까.”
“그럴 리는 없어. 최소한 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핫. 그것도 그렇군.”
남자. 아니, 괴인은 내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왜 아까부터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는 거지?
‘설마 저거 웃는 건가? 수염 때문인 건가? 아니 그걸 감안해도 표정을 알아보기가 힘든 것 같은데..’
뭐든 간에 제발 좀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필이면 마기 숙련도가 낮은 것이 통탄스러웠다.
마기만 조종할 수 있었어도 단숨에 불을 일으켜 저놈의 몸을 태워버렸을 테니까.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군.’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산 사람의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저기서 썩어가는 시신에서도 이런 냄새는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의아함을 느낀 나는 곧장 마왕의 눈을 사용해 녀석을 살펴보았다.
“우왁! 눈이 빨개졌어!”
“입에서 냄새나니까 닥쳐.”
그와 동시에 녀석의 상태창이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놈이 가진 스테이터스와 정보. 그리고 흐릿한 과거의 편린까지도..
‘..아, 그런 거였군.’
그제야 나는 이 남자의 정체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왜 멀쩡한 인간에게서 이런 냄새가 나는지도,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도..
하지만 아직 확신은 없었다. 지금 내 마왕의 눈은 예전과는 달리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이 녀석의 상태가 정상적이었다면 이마저도 보지 못했을 거다.
나는 이 녀석과 조금 더 이야기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너, 흑마법사였나?”
“엥? 난 마족이랑 계약 같은 거 안 했는데..?”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흑마법사라기보다는 사령술사라고 불러야겠지. 지금 네 몸에서 나는 악취도 네가 시신들로부터 사기를 뽑아내 흡수했기 때문에 생겨난 걸 테니까.”
“그걸 어떻게.. 너 대체 누구야?”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이어지는 추궁.
괴인은 잠시 입을 다물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시원스러운 인정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너 대단하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사기를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상태창이 있으니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있으면 뭘 하겠어. 열리지도 않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분명 너에게도 가호가 있을 거 아니야?”
“그래, 있었지. 그 이상한 것과 닿기 전까지는.”
이상한 것? 나는 잠시 미간을 모으다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벨에게 눈짓했다.
인간들의 가호는 아리벨의 담당이었으니 그녀라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알 거라는 생각에서다.
다행히 벨은 짐작 가는 원인이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아르카나에 닿아서 이렇게 된 건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의 힘을 밀어내는 것일 텐데.. 그런데 어째서 가호가 사라진 거지? 아무리 실험에 실패했어도 가호가 사라질 이유는 없을 텐데..?”
“우왁! 이건 또 뭐야? 요, 요정? 요정이 실재하는 거였어?”
“이봐 너! 연구원들에게 무슨 짓을 당한 거야? 똑바로 설명해!”
“아니, 설명하라고 해 봤자.. 그냥 푸른빛의 구체 하나를 몸에 심었던 것뿐인데..”
나는 벨이 말한 ‘가호가 사라질 이유가 없다’는 말에 주목했다.
마음속에 세워졌던 가설에 신빙성이 가해지는 순간이다.
“아르카나 때문에 이런 꼴이 되었다는 게 말이 돼? 마기가 사라졌다면 또 모를까!”
그러나 나와는 달리 벨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다.
결국, 벨의 독촉을 이겨내지 못한 괴인은 체념한 듯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폴 뷔마. 22살의 청년이다.
듣자 하니 이곳 연구소에 끌려왔을 땐 아직 14살이었다는 것 같다.
사실, 그 당시의 기억에 대해서는 잘 증언을 하지 못했다.
하기야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그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웬 이상한 곳에 와 있었으니 그야 놀랄 수밖에.
“실험을 위해 끌려오긴 했지만 솔직히 겪은 일은 별로 없었어. 3년에 걸쳐 몸에 이상한 약물을 투여하고 반응을 살피는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어. 이상한 전투 훈련 같은 걸 받긴 했지만 죽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죽게 되었잖아?”
“그래, 그다음 단계가 문제였지. 그 빌어먹을 놈의 최종 단계 말이야. 내가 알기로 그 단계를 통과한 사람은 없었어. 하나같이 실패해 버렸지. 나 역시도 그랬고 말이야.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나이 기준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야. 놈들은 우리가 19살.. 성인이 되는 족족 가슴에 ‘총’을 쏴서 죽여버렸거든.”
“..총이 뭐지?”
“사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 이름도 놈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거였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냥 큰 소리가 들리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날아가 친구들을 죽였다는 거뿐이야.”
“그들과 친했나?”
“친할 수밖에. 사실상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폴은 그렇게 말하며 지난날의 끔찍함을 토로했다.
“그다음 단계라는 게 뭐였지?”
“저 요정 말대로라면 아르카나라고 했던가? 놈들은 그 푸른 구슬을 우리의 몸에 심고 반응을 지켜봤어. 우리와 그 구슬을 융합시키려고 한 거지. 하지만 구슬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튕겨 나왔어.”
“거부 반응은 없었고?”
“거부고 뭐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니까? 나만 해도 19살이 될 때까지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죽어버렸지.”
폴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녀석도 살아남았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한 언급을 우선 넘겼다.
조금 각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놈에 대한 게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이 녀석의 말대로라면 실험을 위해선 무려 3년이나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마법소녀가 이곳에 온 건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터.
시간이 맞지 않는다.
“..네 가슴의 그것도 그 총이라는 것에 맞은 상처인가?”
하지만 라나의 존재를 모르는 녀석에게 그걸 물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의문을 뒤로한 채 녀석의 옷 중앙에 뚫린 구멍에 관해 물었다.
“맞아, 이곳의 시신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놈들은 반드시 확인 사살을 하더라고. 아무래도 우리가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야. 듣자 하니 이 실험은 왕국 쪽에도 비밀이라는 모양이더라고.”
“..왕립 연구소인 주제에?”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아무튼.. 나는 살아남았어. 기적적인 일이었지. 어쩌면 필연이었을 수도 있지만..”
“무슨 일이 있었지?”
“아르카나인가 뭔가를 받아들였을 때 내 몸 안에서부터 이상한 힘이 생겨났어. 그래. 네가 조금 전에 보았던 그거야. 그날부터 나는 죽은 이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되살아난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너, 살아있는 건 아니잖아. 아직은 걸쳐 있지만.”
비로소 확실해진 의혹. 그제야 나는 녀석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어색한 표정과 뻣뻣한 움직임. 사라져 버린 가호와 끔찍한 악취까지..
폴을 바라보는 벨의 눈에 경악이 어린다.
“죽었..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
그러나 이 모든 증거는 분명 폴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는 움직이는 시체나 다를 바가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반만 그렇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야. 그래서 가호를 쓸 수 없는 거지. 대신 그 반대의 힘은 얻은 것 같지만..”
벨의 말을 정정하며 나는 폴과 눈을 마주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언데드로서의.
움직이는 시체로서의 활동에 불과하다.
폴은 나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지금의 나는 인간이라 보기 힘들지.”
그러나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가벼운 수긍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운 게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사역하는 사령술사라니.. 실로 드문 일이군. 이런 건 나도 본 적이 없어.”
“네가 본 게 세상의 전부는 아니잖아? 한 몇백 년은 살아본 것처럼 말한다 너?”
“몇백 년이라..”
아쉽지만 단위가 틀렸다. 백 년 단위가 아니라 천 단위로 셈해야 계산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니지.
실제로도 나는 이런 연구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까.
사실, 그 점은 지금도 의문이었다. 왜 나는 이곳의 정체를 몰랐던 것일까.
“먹을 것 하나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 했더니 그것 때문이었군.”
“이 몸의 유일한 장점이지. 사기만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거.”
“상태창이 사라진 건 네가 마수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 거다. 죽은 이에게 가호는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할 수도 없으니까. 그 거인들로부터 어떻게 숨어서 지내는가 싶었더니 이래서였군? 그놈들은 이미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 네 말이 옳을 거야. 그놈들은 사람의 생명력을 감지하거든.”
상태창이 보이는 걸 보면 완전히 죽은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도 아니라는 거겠지.
이 녀석이 사령술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이놈의 상태가 인간보다는 마수나 마족에 가까워서일 거다.
말하자면 저놈이 쓰고 있는 힘은 가호라기보다는 권능에 가까운 셈이다.
“대체 이 녀석들은 뭘 하고 싶은 거야? 뭘 하면 이렇게 되는 건데?”
이어지는 것은 벨의 고함이다. 아무래도 꽤 충격이 큰 모양이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러게 진작부터 인간 놈들을 관리했어야지.
인류의 여신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아껴주기만 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언제까지 나에 대한 것만 물어볼 거야? 내가 좀 신기하게 생긴 건 알고 있고 솔직히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긴 하지만 나도 궁금한 게 있다고.”
“그래, 그렇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 라나라는 소녀를 찾아왔다.”
“..모르는 이름인데?”
“듣자 하니 몇 개월 전에 왔다더군. 너는 최소 2년 전부터 여기에 틀어박혀 있었을 테니 모를 수밖에 없겠지”
“음. 그렇구나. 그런데 그 아이는 왜 찾아온 건데? 혹시 좋아하는 아이야?”
나는 그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좋아하냐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고작 열 살짜리 애를? 나와 내 종족 모두를 죽인 살인자를?
“어, 미안. 알겠으니까 화 좀 그만 내.”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표정으로 말하고 있거든? 죽어서 감각도 없는데 괜히 얼굴이 따가워지는 기분이야.”
나는 심호흡하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벨에게 손짓하며 그녀를 불러들였다.
“아까 전 목소리가 들렸던 장소를 이놈에게 설명해 줘라. 거기가 어딘지 알지도 모르니까.”
“응.. 거기가 어디냐면..”
벨은 누가 봐도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폴은 그녀의 말에 몇 번씩 질문을 던졌다.
말로만 설명하다 보니 자신이 아는 위치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설마.”
그런데 어째 대화가 이어질수록 폴의 목소리가 굳어지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표정을 알아보긴 힘들었으나 눈치로 보아하니 꽤 놀란 기색이다.
“거긴 그 파란 구슬을 이식했던 곳인데..”
“그럼 지금 아르카나를 이식하고 있다는 건가?”
“아니, 네 말대로라면 이식은 아닐 거야. 그렇게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만한 분위기가 아니니까.”
“그럼..”
“그래, 믿기진 않지만 아마도 아르카나의 이식에 성공한 거겠지.”
‘그야 그렇겠지.’
심각하게 말하는 것치고는 맥이 빠지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마법소녀가 아르카나 이식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나 역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젠장.. 큰일인데. 이렇게 되면..”
“큰일이라니? 대체 뭐가 큰일이라는 거지?”
“여길 보고도 모르겠어? 여기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미쳤다고. 만약 정말로 실험이 성공한 거라면 놈들이 할 일은 뻔해. 남은 아이들 전부를 죽여버릴 거라고!”
나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원인 모를 기시감이 나의 머릿속을 덮쳐든 것이다.
‘이건.. 마법소녀의 기억인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홀로 연구소 내에서 온갖 실험에 시달리던 마법소녀의 모습이다.
그녀의 안에 깃든 아르카나가 각성할 때까지 계속되었던 수많은 실험의 과정들.
허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겪었을 고독과 괴로움이 아니었다.
그런 마법소녀의 곁에는 다른 실험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 이전 회차에서 다른 실험체들은..!’
띠링!
그리고 또 한 번, 퀘스트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