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7)
97화 – 인간 폭탄.
갑작스러운 예이츠의 제안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사라는 예이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단 설득이 쉬웠다.
아무래도 또래의 검사에게 패배했다는 점이 결정에 영향을 준 모양이다.
절대 질 리가 없었던 싸움이라 생각했던 만큼 더 그랬겠지.
아닌 게 아니라 그 나이대에는 적수가 없는 게 당연한 실력이기도 했고.
“걱정하지 마. 내가 널 최강의 검사로 만들어 줄 테니까. 이래 봬도 나는 그랜드 마스터라고!”
“..네, 그러시겠죠.”
물론, 아무리 그래도 정작 예이츠의 실력이 별로였다면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았을 거다.
보아하니 아직 내게 미련이 남은 것 같았으니까.
“진짜라니까? 데이브 저놈도 오러 사용은 내가 더 낫다고 했잖아!”
“..네, 알겠어요. 믿을게요.”
“아니.. 믿는 표정이 아니잖아.”
그래서일까. 답답해하는 예이츠에 비해 정작 사라 본인은 꿩 대신 닭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이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안다면 실소가 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 계셨군요.”
이자벨이 돌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성.. 아니, 이자벨 님!”
이자벨의 등장에 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사라의 눈에 불길이 일어난다.
“저 여자는 또 누구야?”
“벤! 무사하셨군요.”
비로소 이뤄진 재회. 그 화기애애한 모습에 사라의 얼굴이 좌절로 물들어 간다.
아무래도 저 둘의 사이를 오해하는 것 같다.
하루아침에 스승뿐 아니라 연인마저도 잃어버렸다고 절망하는 거겠지.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야, 이자벨. 쟤 치료 좀 해줘라.”
하지만 나는 구태여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마음을 접어두는 게 저 녀석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나는 상황을 얼버무릴 겸 텅 티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텅 티르를 바라보는 이자벨.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네? 헉. 왜 팔이.. 대체 누구한테 당한 거죠?”
“나한테.”
“..네?”
나는 의아해하는 이자벨을 뒤로한 채 검들을 챙겼다.
괜히 한 마디 더했다가 잔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다섯 자루씩이나 되니 들고 다니기가 좀 거추장스럽다.
‘그러고 보니..’
그러던 중 떠오른 생각 하나.
생각해 보니 전에 내가 벤에게서 검을 빌리지 않았던가?
“야, 받아라.”
“어,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건 제 검이 아닌 것 같은데..”
“네 건 부러졌어. 별로더라 그거. 그래도 그 검이 더 좋은 거니까 일단 그거 써라. 나중에 돌려받을 거니까 조심히 쓰고.”
“..네?”
누가 같은 교단 소속 아니랄까 봐 똑같은 표정을 짓기는.
누가 보면 남매라도 되는 줄 알겠다.
“이자벨. 추기경은 오겠다고 하던가?”
“네, 아마 곧 오실 것 같아요. 포탈을 타고 오신다고 하셨으니.”
“그럼 저건 뭔데?”
이자벨이 텅 티르의 팔을 고치며 대답한다.
나는 그런 이자벨의 뒤에서 나타나는 한 무리의 여성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들의 모습을 본 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째 좀 불안한데..’
“여러분! 무사하셨군요!”
벤이 그녀들의 등장을 반긴다.
나는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틀림없이 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반응은 뭐지?
“설마 아는 얼굴이냐?”
“네, 이번 여행에서 성녀님을 모시던 시녀들입니다. 설마 살아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다행이군요.”
“글쎄. 과연 다행일까?”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시녀들.
그러나 반가움을 느끼는 벤과는 달리 나는 경계심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저 여자들이 아군처럼 느껴지진 않는단 말이지.’
나는 시녀들의 태도가 지나치게 고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과 재회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담백한 거 아닌가?
‘진짜 의심스러운 건 그런 게 아니지만.’
물론,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애초에 저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혹시 잊을까 봐 말해두자면, 기본적으로 며칠 만에 나라를 왕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이동 속도가 인간의 것을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거다.
그도 그럴 게 일반인의 기준에서 엘프의 숲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편도로만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 장거리였으니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물론, 포탈을 사용했다면 오지 못할 거리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녀가 여기에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나 가능한 수단이다.
‘이자벨이 통화를 마치고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추기경조차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이자벨에 대한 정보가 어디선가 새 나간 것이다.
그것이 추기경의 밀고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뭐, 그건 확인해보면 될 일이지.’
검을 뽑아 든다. 벤이 당황하며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빨랐다.
나는 벤을 향해 소리쳤다.
“허튼짓하지 말고 이자벨이나 지켜.”
“네?”
아마도 벤이 보기엔 아무런 근거 없는 의심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그러나 나라고 해서 어림짐작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니다.
“라나. 물러서라. 아마 곧 터질 거다.”
“..네!”
염제의 눈에 저 시녀들에게 붙어 있는 무언가가 비친다.
조금 더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만, 연금술의 손이 닿은 건 확실해 보였다.
마력이나 오러가 아닌 무언가가 느껴진다.
지이잉!
기계음을 내뿜으며 붉게 물드는 구체.
콰아앙!
이윽고 그 구체들이 연달아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폭발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화염이 잘려 나간다.
“확실히. 다르긴 하군.”
나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미소 지었다.
몸에 맞지 않는 방어 초식을 펼쳤음에도 무뎌지지 않은 검.
하르트의 검은 지금껏 사용했던 어떤 검보다도 완성도가 높았다.
‘오래 쓰지 못하는 건 좀 아쉽지만.’
나는 시녀 중 한 명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펼쳐지는 새벽의 걸음.
나는 폭발의 원인이 되는 구체의 기계를 뽑아내어 내동댕이친 후 그대로 물러섰다.
콰아앙!
“으, 으으..”
바닥을 나뒹구는 시녀. 그런데 어째 정신을 차리질 못한다.
폭발에 겁을 먹은 것 같진 않고 모종의 약 같은 것에 취해 있는 것 같다.
하긴, 자폭이라는 게 제정신으로 할만한 짓은 아니긴 하지.
‘약에 중독된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심각했다.
이른바 만성 중독이라 부를 법한 증세도 보일 정도다.
어쩌면 이 시녀들이 이자벨을 배신한 건 마약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상태가 꽤 심각한데. 아무래도 일반적인 마약은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이것도 연금술로 만든 마약이라는 걸까.
나는 어쩌면 교단의 배신자 중에는 이 약 때문에 협력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산드라?”
그제야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듯, 이자벨이 비척거리며 다가온다.
나는 그런 이자벨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마약에 절어있는 것 같다. 치료할 수 있겠냐?”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저도 처음 보는 마약이라..”
“그래, 일단 치료는 해봐라.”
나는 그런 이자벨을 내버려 둔 채 예이츠에게 다가섰다.
“보다시피 또 성가신 일에 휘말린 것 같다. 팔의 치료가 끝났다면 이만 가보는 게 좋겠군.”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어?”
“십검이 용사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괜히 발을 들였다간 네 입장이 곤란해질 거다.”
“내 걱정까지 해주는 거냐? 확실히 변하긴 했군.”
능청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는 예이츠.
그런 그의 뒤로 텅 티르와 사라가 따라붙는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아무래도 이만 떠나야겠어.”
“배웅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
“너한테 그런 걸 바랄 리가 있겠냐. 그럼 또 보자고.”
예이츠의 일행은 그렇게 이곳을 떠나갔다.
나는 그대로 돌아서 니콜라스와 엘리아를 바라봤다.
“추기경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우선 이번 일에 녀석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아봐야 해. 적당한 마수는 있는 거냐?”
“안타깝지만 지금은 성직자를 속일 만큼 훈련된 마수는 안 데리고 있어.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방법?”
“엘리아. 한 번 보여주겠어?”
니콜라스의 요청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엘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이 앞으로 뻗어진다. 타오르는 화염의 마력.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작게 타오르는 불의 정령이다.
본래의 드라키아에 비하면 한참이나 작은 불도마뱀.
“드라키아. 너, 꼴이 그게 뭐냐?”
“..나도 어쩔 수 없어. 아직은 엘리아의 힘이 약하니까.”
“..그래, 감시만 하면 되니까 상관없겠지. 설마 그것도 못 하진 않을 테니까.”
“나,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이래 봬도 한때는 위대한..!”
나는 드라키아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아무래도 자리부터 옮겨야 할 것 같다.
* * *
나는 벨에게 간단한 결계를 부탁했다.
골목길에 숨어 있던 하르트와 아이들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벨이 결계를 펼치는 동안 나는 이자벨에게 프로키온에게 걸린 저주의 해주를 부탁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설마 성녀의 힘마저 막아낼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이 저주, 보통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니콜라스. 성검 좀 빌려줘라.”
“..괜찮겠냐? 너 성검에는 닿기도 싫어했잖아.”
“어쩔 수 없지. 시간을 오래 끌 순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니콜라스로부터 성검 아켈루스를 받아들었다.
검을 듦과 동시에 마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위축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불쾌함을 감추려 고개를 휘저었다. 술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다.
“..드라키아.”
그러던 중, 드라키아가 나에게로 돌아왔다.
곧바로 내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사라지는 녀석.
나는 곧장 그 내용을 벨과 공유했다.
나는 내 염제의 눈과 벨의 안목을 이용해 상대의 정체를 간파할 생각이었다.
‘추기경은 배신자가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저 중에 배신자가 있는 건 확실해.’
드라키아의 말을 곱씹고 있으려니 저 멀리서부터 말을 탄 군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선두에 선 이들을 지켜보다 말없이 이자벨에게로 걸어갔다.
“이제부터 배신자를 잡을 거다. 딱히 도와줄 필요는 없으니 멀리서 보고 있어라.”
“배신자를 어떻게 잡으실 거죠? 신성력을 이용해 찾으시려는 건가요?”
“그걸로는 찾기 힘들 거다. 아리벨의 기준은 관대하니까. 혹시 잊어버린 건가? 마릴 그 여자도 신성력을 쓸 수 있었다는 걸. 굳이 따져보자면 오히려 유디아 같은 경우가 드문 셈이지.”
“마릴이 아니라 마리아 체스터 경인데.. 그럼 어떻게 찾으시려고요?”
의아하다는 듯 되묻는 이자벨의 말에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보면 알아.”
“..사람이 많이 죽을까요?”
그런 내 모습에 이자벨이 걱정스레 묻는다.
확실히, 성직자는 성직자인 모양이다.
배신자를 잡으려는 순간에도 그런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걱정하지 마라. 한 놈만 잡으면 되니까.”
그와 동시에 말들이 멈춰 선다. 그 위에서 내리는 한 무리의 성직자들.
그 가운데에서 추기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허둥지둥하며 이자벨을 향해 달려오는 그녀.
“서, 성녀님!”
나는 그런 추기경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 여자는 배신자가 아니었으니까.
그 사실은 드라키아의 말과 나의 눈이 증명하고 있었다.
“저 검을 든 남자는 누구지?”
내가 노려야 할 상대는 저쪽에 있다.
추기경을 따라온 성직자들의 무리.
나를 향해 경계하듯 멈춰 선 그들.
‘저 안에 배신자가 있다.’
염제의 눈이 타오른다. 그런데 저 중에도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새삼 이 상황이 얼마나 막장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역시 위험한 건 이 모든 일의 주동자일 테지.
나의 눈이 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드라키아가 알려준 그대로의 모습을 한 남자.
“벨, 쟤가 맞냐?”
“음. 일단 신성력은 느껴지지 않아. 네 눈에는 어떤데?”
나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염제의 눈이 가진 투시의 능력이 발현된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남자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구체의 기계들이다.
나는 그 기계가 시녀들에게서 발견했던 폭탄과 같은 기종임을 확신했다.
“그래, 확실해.”
회심의 미소가 걸리는 순간이다.
가슴을 스치는 확신.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날아갔다.
“제, 젠장. 어떻게 안 거지..!”
그런 내 행동을 본 배신자의 행동이 긴박해졌다.
녀석의 손이 품속으로 움직인다.
“가까이 오지 마! 더 이상 다가오면..!”
아마도 폭탄을 터트리거나 인질을 잡으려는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대처가 빠르다.
“미안하군. 내 역할은 미끼라서.”
“그게 무슨.. 커헉!”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부 예상했던 일이니까.
푹!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배신자의 몸에 꽂힌다.
화살촉에 발려있는 마비독이 배신자의 몸을 파고든다.
바닥을 뒹구는 녀석의 몸.
“그것 봐. 안 놓친다고 했잖아?”
엘리아의 기념비적인 첫 활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