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8)
98화 – 마약.
배신자가 쓰러진다.
이어지는 정적. 성기사들이 무기를 든 채 나를 노려본다.
살기가 쏟아진다. 눈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만 같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저들의 눈에는 내가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배신자에 대해 경고하기는커녕 내 소개조차 하지 않은 상황 아닌가.
‘그나저나 마약에 중독된 놈들은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겠군.’
그럼에도 덤비지 않는 것은 이곳에 이자벨이 있기 때문일 거다.
교황 직속의 기사라면 모를까.
추기경 휘하의 기사들로서는 감히 성녀의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던 거겠지.
무엇보다 내 손에서 찬란히 빛나는 이 성검.
본래라면 내게서 느껴질 미약한 마기를 숨기고자 든 검이지만, 아리벨 교단의 사람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성직자들은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지나쳐 이자벨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자벨. 상황 설명 좀 해줘.”
“..일부터 저지르고 저한테 수습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물론 내가 설명해도 되긴 하는데.. 괜찮겠어?”
나는 반발하는 이자벨에게 조용히 현실을 알려주었다.
딱히 이자벨을 협박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진실을 이야기했을 뿐.
팔레아스 령에서도 그렇고 엘프의 영지에서도 그렇고.
어째 나라는 사람은 설득이나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괜히 내가 나섰다간 일만 더 복잡해질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제가 할게요.”
그리고 그건 이자벨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한숨을 내쉬며 추기경과 성직자들을 불러 모으는 이자벨.
“그래, 난 잠시 이놈과 대화 좀 해볼게.”
나는 그런 이자벨을 지나쳐 배신자를 끌고 갔다.
우선은 이 녀석에게서 정보를 캘 심산이었다.
이자벨이 프로키온의 저주를 해주 하지 못했으니 이 녀석에게서라도 정보를 얻으려 한 것이다.
“쯧.”
그런데 이번에도 쉽게 정보를 캐내긴 그른 것 같다.
이 녀석의 몸속에서부터 기묘한 기계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혹시 몰라 이 녀석이 가지고 있던 폭탄들을 모두 다 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몸속에 폭탄이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아무래도 이걸 빼내야 할 것 같은데.”
괜히 염제의 눈을 쓰는 장면을 들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슬쩍 추기경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다행히 추기경은 이자벨의 설명에 연신 놀라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성기사나 사제들 역시 몹시 놀란 듯 이자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 자기들 사이에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거겠지.
물론,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놀란 거겠지만.
‘이런 상황이면 들키진 않겠네.’
나는 성검의 힘이 마기를 감춰주길 기대하며 염제의 눈을 사용했다.
“하필이면 심장이냐.”
아니나 다를까. 놈의 몸속에는 폭탄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심장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폭탄. 심지어 회선 몇 개는 뇌와 연결되어 있기까지 하다.
자세한 구조는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쓸데없는 말을 하면 폭발하게끔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벨. 저거 뽑아올 수 있냐?”
“..대체 나한테 뭘 시키려는 거야?”
“그럼 하는 수 없지. 심장을 뽑아내는 수밖에.”
“..뭐라고?”
나는 벨의 의문을 뒤로한 채 손에 오러를 집중했다.
푸욱!
단순에 놈의 심장으로 파고드는 손.
벨이 경악하며 비명을 내지른다.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찾았다.”
나는 그대로 녀석의 심장을 뽑아 내던졌다. 심장이 바닥을 나뒹군다.
점멸하는 불빛. 이어지는 것은 정적이다.
콰아앙!
뒤를 잇는 거대한 폭발. 폭음에 귀가 아프다.
“폭발하는 심장이라니. 그로테스크하군.”
“네 손의 피나 닦고 말해.”
벨의 핀잔을 한 귀로 흘리며 눈을 감는다.
오러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피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
섬세함이 필요한 순간이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폭발 소리에 놀란 추기경과 성기사들이 다가온다.
“이게 대체..”
그리고 내 앞에 멈춰 선 그들.
추기경이 내 행동에 경악한다. 그녀가 배신자의 가슴을 바라본다.
아마도 추기경의 눈에는 핏줄기가 허공에서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거다.
“오, 오러로 피를 순환하고 계신 건가요?”
“그래, 아마 오래는 못 버티겠지만.”
그녀의 말처럼, 나는 오러를 이용해 심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임시로나마 배신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하겠지.
피 자체의 순환은 이뤄지고 있지만 감염을 피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거기다 혈액 속으로 미세하게 공기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의 오러 통제 능력으로는 공기의 흐름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던 탓이다.
‘차차 개선해 나가야겠군.’
그래도 엘리아의 화살에 맞아 몸이 마비된 덕에 쇼크사하지는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이것조차 마비가 풀린다면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이봐, 추기경. 이거 고칠 수 있나?”
“..당신, 설마 성녀님께도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야, 얘 죽는다. 정보 필요 없냐?”
“당신..!”
내 재촉에 추기경이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추기경답게 인내심이 꽤 깊은 것 같네.’
잠시 머뭇거리던 추기경이 배신자의 가슴 위로 손을 올린다.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손. 신성력이 뻗어져 나온다.
나는 그 불쾌함을 억누르며 오러의 통제에 집중했다.
‘역시 신성력은 꺼림칙해. 내가 괜히 성직자 놈들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불쾌함을 감수한 보람이 있긴 했다. 배신자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이 보였다.
장기의 손실까지는 고칠 수 없겠지만 해독이나 소독 자체는 이뤄졌을 거다.
이 정도면 입을 열게 하는 정도는 될 테지.
“이자벨. 거기 걔 이름이 뭐라고 했지? 마약 중독은 치료했나?”
“산드라에요. 아직 치료는 다 되지 않았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독한 마약인 것 같아요.”
“대화도 나눌 수 없을 수준인가?”
“그렇지는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산드라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렇게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배신자가 연신 눈을 굴리며 산드라의 시선을 피한다.
그에 반면 산드라는 원망스럽다는 듯 배신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같은 편은 아닌 것 같군.’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마약에 손을 댄 건 산드라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필시 강제로, 혹은 의도치 않게 마약에 중독이 되었던 거겠지.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 성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너희 중에도 마약 손댄 놈들 있으면 지금 알아서 나와라.”
“…”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성직자들.
대체 왜 눈치를 보는 걸까.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라고.
“이미 누가 중독된 건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까 숨을 생각하지 마라. 설마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나와. 그래야 치료라도 받을 거 아니냐.”
“..젠장.”
내 부름에 쭈뼛거리며 나서는 성직자들.
주위에서 한두 명씩 앞으로 나오기 시작하니 그제야 눈치를 보던 이들도 따라 나오는 것 같다.
“다, 당신들..?”
하나같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추기경을 바라보지 못하는 성직자들.
그들의 숫자는 무려 저 중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었다.
“아리벨 님..”
그 모습을 보며 추기경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중독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거겠지.
그러나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지부에 있던 이중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그 말은 즉, 추기경이 관리하던 지부에만 최소 수백 명의 중독자가 더 있을 거라는 뜻이다.
‘슬슬 마비독은 사라졌겠지.’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기사들에게, 그리고 산드라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나는 이 배신자 놈을 심문할 거다. 이 녀석이 말하는 것 중에서 틀린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와서 지적해라. 먼저 지적을 하는 사람부터 이자벨의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서, 성녀님의 손을 쓸 필요는..”
“너희가 먹은 마약의 위험성을 알고 있나? 명색이 성직자라는 너희 힘으로도 해독할 수 없었던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냐?”
“…”
침묵하는 그들을 비웃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배신자와 눈을 마주했다.
“우선 이름부터 묻지. 참고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 목숨은 말 그대로 내 손에 달려 있으니까.”
“큭. 나, 날 죽이면 아무것도 알 수 없을..”
“물론, 이대로 널 죽이는 것도 좋겠지. 실력 좋은 사령술사를 고용해서 정보를 캐내면 될 테니까. 물론, 그 이후로도 네 영혼을 알뜰하게 부려 먹을 작정이지만.”
“유. 유리치입니다.”
“좋아. 빨리 끝내자고.”
그렇게 심문이 이어진다.
* * *
유리치는 심문 끝에 결국 목숨을 잃어버렸다.
일단 말해두겠지만, 딱히 고문하거나 한 건 아니다.
그냥 더 이상 캘 정보가 없어 그냥 방치한 것뿐이니까.
“생각보다 심각하군. 중독자가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이, 이 말들이 진짜인가요?”
싸늘하게 식어가는 유리치.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온 말들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일까.
추기경은 유리치의 죽음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지금 나온 이름들만 헤아려 봐도 이미 수백을 넘어서는 상황이다.
사실상 이미 이 지부 전체가 괴멸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물론, 알짜배기 정보는 따로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쯤에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군.”
“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 이자벨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당황하는 그녀.
하지만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여기까지 같이 온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의 여정을 견뎌내기엔 이자벨의 몸은 너무 약했다.
“일반 사제들은 물론이고 추기경조차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치료하진 못했다. 그 말은 이 세상에서 오직 너만이 저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추기경에게 저 아이들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폴 뷔마와 함께 숨어 있던 아이들을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설령 추기경이 아이들을 지키려 애를 쓴다 하여도 배신자들의 암수를 막아내긴 힘들 거다.
마약에 눈이 먼 이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저와 함께 지부로 가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너 혼자의 힘으로는 날 도울 수 없다. 이미 봐서 알고 있을 텐데?”
“..아저씨.”
내 단언에 이자벨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중, 라나가 나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아직 부탁할 게 남으셨잖아요.”
“부탁..?”
라나의 말에 의아해하는 이자벨.
라나가 그런 이자벨을 바라본다.
“저희에겐 아군이 필요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사람을 모을 시간이 없죠. 연금술사나 마족들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거기에 과거의 용사들까지 부활한 상황이니까요.”
“부활이라니? 그게 무슨..”
“이자벨. 그 천사가 아저씨를 꼭 쫓아다녀야 한다고 했나요?”
“사실, 그렇진 않았어요. 그냥.. 도우라고만 하셨죠.”
이자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반발하던 때와는 달리 지나치게 순순한 모습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라나를 보낼 걸 그랬나?
다시 생각하는 거지만, 아무래도 나는 설득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저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천사님이 말씀하신 용사가 정말로 데이브 클락이 맞는 걸까요?”
“절 믿으시나요?”
“예, 제 목숨보다도.”
“그렇다면 믿어주세요. 비록 아저씨가 겉으로는 흉폭하고 미덥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음? 그런데 말이 좀 심한 것 같은데.
“아저씨는 분명, 이 세상을 지키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그걸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죠.”
칭찬이라기엔 묘한 말이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말아야 하는 건가.
“..제가 뭘 해야 하는 거죠?”
“힘을 모아주세요. 교단의 배신자를 찾고 교단의 사람들을 단결시켜 주세요. 그리고..”
“그리고?”
“용사 데이브 클락을 지지해 주세요. 아마 믿기 힘드실지도 모르겠지만. 곧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과거의 용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될 거예요. 사람들은 분명 그들에게 환호하겠죠.”
“그래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저희와는 달라요. 그 사람들은 생전의 미련에 얽매여 있죠. 그들은 이 세계를 지킬 수 없어요.”
라나의 말에 이자벨이 고개를 끄덕인다.
“..믿을게요. 라나 양. 걱정하지 마세요.”
라나는 그런 이자벨을 보며 웃었다.
“믿어줘서 고마워요.”
이자벨의 눈이 깊어졌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라나를 불렀다.
“라나. 슬슬 출발하자. 연금술사들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
“네, 알겠어요.”
“이자벨. 아이들을 부탁한다. 뭐, 말 안 해도 알겠지만.”
“..그럴게요.”
이자벨의 대답을 들으며 뒤돌아선다.
그런데 그 순간, 이자벨이 내게 질문했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마약의 근원지를 제거해야지. 치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처음 듣는 마을 이름이던데.. 찾아가실 수 있겠어요?”
“그래, 물론이지. 그곳은 데이브 클락의 고향이니까.”
“..네?”
이자벨의 되물음을 뒤로한 채 떠나간다.
그래, 그 말대로.
목적지는 데이브 클락. 이 육신의 고향이다.
하필이면, 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물론, 그게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가봐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