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4)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94화(194/466)
<89. 금단의 기록 (4) >
수많은 핑계를 댔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늘 전장에 있었다.
3번이나 고준위 정신 감응 테스트를 받아 반죽음에 이른 것도, 리트머스지 수십 장에 침을 발랐던 것도, 아이엠지저스를 데리고 가려던 것도 결국 그 때문이다.
어웨이큰이 되면 다시 전장에 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웨이큰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강한민과 나혜인이 싫었다.
나에게서 전장을 뺐어간 그들을 질투하고 원망했다.
그들이 실패하길 바랬다.
그것이 이 박규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니지만.
“······역시, 박 선배, 조금도 녹슬지 않았네? 그 다리를 하고서도.”
열세 마리째를 처치했을 때 김다람이 처음으로 칭찬의 말을 건넸다. 나도 그녀에게 비슷한 취지로 물었다.
“너도 사실 눈 멀쩡한 거 아니냐?”
감만으로는 32회가 넘는 인터미데이팅을 모두 성공시킬 수 없다.
“나, 원래 잘 쏘잖아? 그러는 선배야말로 다리 멀쩡한 거 아니야?”
“······.”
아무래도 좋다.
그녀의 눈이 멀쩡하건 진짜 감으로 쏘건.
모처럼 몸이 달아올랐다.
얼마 만인가.
이토록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 건,
아마도 완장을 찼을 때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
잠깐.
이건 조금 아닌 거 같은데.
완장이 좋긴 하지만 전장에서 느껴지는 충족감에 비할 수 없는 건 아닌가.
“선배?”
김다람이 날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내가?”
“아니, 안색이 안 좋아서.”
“완장.”
“완장?”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피곤해? 좀 쉴까?”
“아니, 그대로 진행하자. 모처럼 감을 잡았는데 이 감각을 잃기 싫으니까.”
김다람이 저 너머에 오롯이 선 커다란 푸른 건물을 가리켰다.
“마지막 하나야.”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가 드러났다.
바로 국회의사당이다.
*
마지막 장소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정지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탕! 탕! 타타타타탕!
쾅!
총성과 폭음이 들리는 거 보니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전에 박상민 건으로 국회의사당에 들어갔을 때도 스파이더 타입은 꽤나 복잡한 미궁을 만든 상태였다.
그 난이도는 스파이더 본체를 처리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으로 가득 찬 일이겠지.
쉬고 싶진 않지만 정지 작업 중에 들어가는 건 아군 오사 등의 위험을 범할 우려가 있기에 잠시 대기하기로 했다.
나란히 대기 시간을 받긴 했지만 나와 김다람이 한 자리에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전용 막사에서 휴식을 취했고 김다람은 장갑차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주변의 사람들은 콤비로 합을 맞춰 사냥한 우리들이 각자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의아해 했지만 우리 관점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다.
모처럼 합을 맞춰 신나게 몬스터를 죽이긴 했지만 우리 사이에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나는 그녀를 용서한 적이 없고 그녀도 딱히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흘러가는 상황이 우리를 다시 합치게 만들었을 뿐, 오늘이 지나면 이 잠깐의 동맹도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전장으로 복귀하는 걸 원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개죽음을 당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나는 프로페서지만 동시에 스켈톤이기도 하다.
전장과 완장, 두 가지를 모두 소중히 하는
삐- 삐- 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무전기 소리가 들려 온다.
내 것이 아닌 바깥에 있던 군인들의 것이다.
바쁘게 헌터와 군인들이 오갔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도 멋대로 귓가에 밀고 들어왔다.
“본부장님이 오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본부장님이?”
“위험하실 텐데.”
“아, 박대령이 그대로 있으라고 하던데, 본부장님은 자기 위해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텐트 밖에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장갑차 문이 열리며 김다람이 나왔다.
내게 할 말이 있는 눈치다.
“거의 다 끝난 모양이야.”
아니나 다를까 의사당 쪽에서 차 한 대가 출발해 이쪽을 향해 곧장 달려왔다. 정지 작업을 하던 헌터들이 탑승한 차로 그중엔 내가 아는 얼굴도 포함되어 있었다.
“샘!”
송유진이다.
“오늘도 활약 대단했다면서요?!”
“내가 한 건 별로 없어, 주변에서 다 밥상 차려준 거 주워 먹은 것뿐이니.”
반은 맞는 말이다.
그 차려진 밥상 먹는 게 쉽지 않은 것이 문제지.
날 보며 반가워하던 송유진은 뒤늦게 김다람을 의식하고는 풀 죽은 얼굴로 어색하게 보고했다.
“티, 팀장님!”
“응.”
김다람은 우민희와 다르게 사람을 괴롭히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악취미는 없다.
뒤통수를 쳐서 그렇지, 김다람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의 기본 조건은 학교 시절부터 아득히 우민희를 뛰어넘었다.
송유진이 그 김다람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사람이 있어요.”
‘사람?”
“네, 이상한 사람들요. 그… 마, 만두교?”
“만류귀종교.”
김다람이 날 돌아보았다.
“광신도가 있는 거 같은데?”
“귀찮게 됐군.”
몬스터 소굴에 사는 광신도는 몬스터와 한 패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록 몬스터가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몬스터와 동거 중인 광신도는 몬스터의 하수인처럼 행동하니까.
패턴 하나하나의 난이도는 높을지언정 정형화된 행동을 하는 몬스터와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이 포함된 건 임무의 난이도를 급상승시키는 요인이다.
물론 우리의 매뉴얼 속엔 이런 상황을 상정한 해결법이 있다.
망원경으로 국회의사당 쪽을 관찰, 혹시 모를 저격수나 기타 인간의 흔적을 찾으며 김다람에게 넌지시 말했다.
“매뉴얼대로 하자.”
적대적인 인간과 몬스터가 한 장소에 있을 때 필드 매뉴얼은 포격을 권장한다. 포격으로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만 포격의 주목적은 인간이다.
즉, 안에 있는 인간부터 씨부터 말리겠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경우, 현장 지휘관의 판단만으로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국제사회에선 비인도적인 행위라고 규탄했지만 현장에 있던 나로서는 글쎄다. 굳이 비난 받을 일일까?
인간이면서 인간의 적을 옹호하고 인간을 적으로 돌리는 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몬스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존재다.
“포격 요청 말하는 거지?”
김다람이 되물었다.
“매뉴얼 내용 까먹은 거냐?”
“그냥 다시 확인해봤어.”
김다람이 장갑차에 들어갔다.
장갑차 안에 있는 통신 장비로 포격 요청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곧 김다람이 장갑차에서 나왔다.
표정이 좋지 않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니 김다람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게, 어려워.”
“왜?”
“국회의사당 같은 대한민국의 상징적 건물을 작전의 난이도를 이유로 파괴할 수 없다는 게 상부의 답변이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군인의 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군단파의 모토 아니었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긴 한데 요점은 하나야.”
김다람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본부장님이 저기서 연설을 할 예정이거든. 그러니 건물을 더 부수고 싶지 않은 거겠지. 현충일까 지 외장만이라도 보수를 해야 하니까.”
“그래?”
알고는 있었지만 군단파도 참 답답한 조직이다.
대한민국 국군이니 뭐니 하는 허울 좋은 이야기를 해대고 있지만 결국 그 정체는 좀 더 힘 세고 체 계가 잡힌 군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겠지.
킹이 지배하는 세종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본부장님이 곧 여기로 오겠대. 국회의사당 재점거는 그분의 오랜 숙원이니까.”
“어쩔 수 없네.”
장갑차를 가리켰다.
“그 양반이 오기 전에 시작하자.”
“이대로 강행할 거야?”
“방해받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하지만 확실하게 해야겠지. 투입 가능한 전투원의 수를 늘렸으면 하는데.”
“3개 팀을 더 투입할 수 있어.”
“정지 작업에 나간 팀에게 몬스터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봐 줘.”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내가 사람이 가장 큰 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던 건 어쩌면 전장에 있었을 때 인간이 주는 불안정성과 위험에 질릴 정도로 시달린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몬스터만을 상대하는 건 변수가 적다.
아주 어렵거나, 할 만하거나.
인간이 끼면 변수의 폭이 확 뛰어 오른다.
그러므로 그 변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야 한다.
가령 상대방이 감제가능한 지역을 타격하고 상대방이 킬존으로 구축할 수 있는 지역을 미리 파악 하여 조기에 분쇄하고 혹은 매복이 용이하거나 측면을 급습할 수 있는 지역에 대한 경계와 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아, 그리고 방금 나랑 이야기 한 송유진이라는 애, 예비조에 넣어 둬.”
“걔, 감지 능력자였지?”
“어. 다른 사람이 있으면 대체하고.”
“왜? 아는 애라서?”
“아니, 못 미더워서.”
김다람이 송유진을 불렀다.
“너, 감지 능력자라고 했지.”
“네? 네!”
“좋아. B 스쿼드에 합류해.”
“네!”
송유진이 힘차게 달려나가자 김다람이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감지 능력자는 쟤 하나뿐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신뢰가 깨진다는 건 여러 트러블로 이어진다.
방금만 해도 김다람이 송유진 말고 다른 감지 능력자가 없다고 한 게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불필요한 의심이지만 신뢰가 깨진다는 건 그런 것이다.
매사, 거의 모든 국면에서 상대방을 의심하고 회의를 품고 그 감정은 이내 악감정으로 이어진다. 한 번의 작전이야 함께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속 가능한 관계 구축은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김다람과 장갑차에 올랐다.
“······백승현이라는 사람 기억하지?”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백승현?”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김다람은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기수 선배.”
“아, 그 프리랜서 헌터? 이제야 기억나네.”
“그 사람 어디에 있는 줄 아냐?”
“인천?”
“중국에 있어.”
“중국?”
여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김다람이지만 이번에는 그녀도 놀라움을 드러냈다.
“피난 선단에 탔거든.”
“1차? 2차?”
“2차.”
“1차는 전멸판정으로 아는데 2차도 비슷할 걸?”
“아니, 일부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안에 백승현이 있다는 거야?”
“어.”
점점 가까워지는 국회의사당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 사람에게도 아이가 있어.”
순간 김다람의 하나 남은 눈동자가 잠시 수축했다.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악착같이 살아 있다고 하더군.”
나답지 않게 말속에 뼈를 심었다.
김다람은 이에 대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느끼는 게 있는 걸까.
그 흔한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우리 뒤를 이어 또 다른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사당으로 접근했다.
“하차! 즉시 전개!”
차량에서 전투복을 입은 헌터와 군인이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갖췄다.
철컥-
곳곳에 사수가 배치됐다.
대 몬스터가 아닌 대인 저격수다.
그들은 의사당 폐허에서 사람이 나와 이쪽을 공격할 수 있는 모든 지점을 시야에 담으며 우리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위잉—
이 시대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항공 드론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일부는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탕! 탕! 탕!
총성이 울렸다.
“4, 7호기 로스트.”
안경을 낀 드론 조작 요원이 박스형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며 상황을 보고했다.
“정지 작업조가 보고한 광신도 장악 지역입니다.”
김다람이 내 앞을 지나가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권총이네? 22구경.”
그녀가 앞서간 정지 작업조를 응시하며 날카롭게 물었다.
“다른 무기는 없었어? 그리고 어웨이큰의 조짐은?”
김다람이 권총을 뽑으며 옆으로 돌아섰다.
공교롭게도 나도 그녀와 같은 행동을 했다.
의사당 폐허에서 사람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뭐야, 좀비잖아?”
김다람이 권총을 권총집에 넣으며 부하들에게 처리하라고 손짓했다.
좀비들을 보았다.
머리에 날카로운 파편이 꽂힌 여성 좀비 하나, 그리고 먼지에 뒤덮이고 낡고 찢어졌지만 여전히 명품으로 보이는 옷을 휘감은 늙은 여성 좀비 하나.
그 나이 든 여성 좀비는 내가 아는 얼굴이다.
“······.”
국회의사당에서 최후를 맞이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박상민의 모친이다.
그렇게 아들을 달달 볶으며 자신을 투영하려 했던 어머니는 결국 죽어서도 아들 옆을 떠돌아다니는 운명을 가지게 되었다.
몽둥이라기보다는 철퇴에 가까운 육중한 철봉을 가진 사내 두 명이 다가가 좀비를 후려쳤다.
퍽!퍽!
머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참하게 좀비들이 쓰러졌다.
그 몽둥이를 든, 이제 약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덩치 큰 친구가 날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이빨에 문신 비슷한 걸 했다.
[ LE OR DIE ]거짓 혹은 죽음이라는 의미인가,
다른 건 몰라도, 이 친구.
김필성과 닮은 눈을 하고 있다.
김필성처럼 나를 죽이면 내 업적과 명성이 자기 것이 된다고 착각하는 친구가 군단파 내에 많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미덥진 않지만 최소한 김다람이 이런 놈들을 억제하는 건 사실이겠지.
“······가자.”
오늘의 마지막 사냥이다.
<89. 금단의 기록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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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댓글)
(mord**) -추천53-
어웨이큰이 보고 싶으면 문피아에 ‘헌터’ 검색하고 상위권 작품 보면 됨 다른 작품에서 엄한 초능력자 주인공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보단 확실하지
(g4133***) -추천38-
지휘관의 욕심으로 부하가 죽는다. 아포칼립스에서도 욕 먹을 행위는 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까.
(jimbo***) -추천32-
중간에 스켈톤이 살짝 돌아올려 했던 거 같은데 ㅋㅋ
(단풍**) -추천32-
전장과 완장. 프로페서와 스켈톤..우욱
(원투****) -추천30-
본부장이라는 새끼 욕심땜에 여럿 죽어나가겠네
아집숨은 현실비판 블랙코미디였다
(반물질**) -추천26-
예전에 나왔던 사람들이 죽은 채로 재등장하는 거 보니까 슬슬 후반부로 진입한다는 느낌이 팍팍드네
(열혈***) -추천23-
송유진 : 마,만두교?
스켈톤 : 그럴 만두 하지
엄창이 : 전장 완장 간짜장
(란**) -추천14-
김다람하네 백승현 애기한 건, 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용서해주겠다는 박규의 시그널이 아니였을까….
김다람은 여기서도 침묵하네 ㅜㅜ
(둥글**) -추천11-
백승헌은 김다람에게 부려먹히다가 결국 인천의 개척단에 합류하며 겨우 생존했죠
김다람이 군단파에서 자리를 잡고자 저지를 만행의, 억울한 피해자죠
(야호**) -추천8-
프로페서 실은 송유진이 못미더운게 아니라 작전중에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예비로 뺴두라고 한듯… 하나뿐인 제자라고 챙겨주네
(Roo**) -추천5-
완장과 전장.. 모두 박규가 잃어버린 것들..